성경 용어 사전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은 어떻게 다른가요?

하나님아들 2020. 10. 5. 17:45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은 어떻게 다른가요?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은 둘 다 성령의 역사지만 다른 개념입니다. 이 둘의 차이를 아는 것은 결혼과 결혼생활을 아는 것과 같습니다. 결혼과 결혼생활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결혼을 해야 법적 부부가 됩니다. 그러나 부부가 되었다고 결혼생활이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부부가 서로 지속적으로 사랑하고 서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할 때 행복한 결혼생활이 유지됩니다. 이제 이 둘의 상관관계가 성령세례와 성령충만과 같다는 의미를 이해하실 것입니다. 성령세례가 결혼과 같다면 성령충만은 결혼생활과 같은 것입니다.

 

먼저 성령세례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세례의 종류
성경은 세례가 세 가지가 있다고 증언합니다. 세례 하면 생각나는 사람은 세례자 요한입니다. 세례(침례)요한은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로서 예수님보다 6개월 일찍 태어나서 메시아의 길을 예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로 메시아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였습니다( 40:3, 3:1). 그는 회개를 촉구하며 임박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요단강에서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 때, 자신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에게 참된 회개를 촉구하며 이렇게 불같이 외쳤습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발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태복음 3:11-12)

세례요한은 '물세례', '성령세례' '불세례'가 있다고 말하며 자신이 지금 주는 것은 물세례라고 말합니다. 그가 비록 어머니 태중에 있을 때부터 성령 충만하였지만( 1:15), 그도 성령세례를 받아야만 하는 죄인이었습니다. 아무튼 성령세례와 물세례는 그보다 능력이 많은 어떤 분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이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7:28). 그렇다면 세례요한보다 큰 자는 하나님 한 분밖에는 없습니다.

 

 

2) 성령세례와 불세례
물세례는 회개의 세례이고, 세례요한이 준 것처럼 인간이 주는 세례입니다. 그러나 성령과 불세례는 오직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참고로 예수님은 물로 세례를 주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준 것이라"( 4:2)

 

성령세례
"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1:5)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이 성령세례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연장선상에 놓인 구속사역의 프로세스 중 하나입니다. , 성령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을 실제로 죄인들에게 적용하시는 사역으로서 우리의 구원과 영적 출생을 위한 것입니다(고전 13:12). 성령세례는 예수님의 생명(, 호흡)을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에게 불어넣는 재창조(우리 입장에서는 거듭남) 사역입니다.

"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20:22)

이 성령세례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하셨던 코에 생기를 불어넣는 장면과 같다 할 수 있습니다( 2:7). 우리가 중생하는 순간 성령은 우리에게 인간의 영을 창조하시고 우리 몸에 내주합니다(고전 3:16, 6:19).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내주 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존재가 됩니다( 8:15).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불세례
성령세례가 구원과 영적 출생을 위한 필수 과정이라면, 불세례는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자들에게 임하는 심판을 의미합니다.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태복음 3:11-12). 쭉정이 즉,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모든 사람들은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지는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불은 정화와 소멸, 고통을 동반하는 재앙이나 심판을 의미합니다. 불로 세례를 받는 다는 것은 그 자체로 너무도 끔찍합니다. 꺼지지 않는 불은 지옥에서 타오르는 불입니다( 19'20, 20:10, 21:8).

 

구원과 심판은 오직 하나님께서 그 권한을 위임받은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3:11-12, 1:5).

 

3) 성령세례와 자녀됨
우리가 믿는 순간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시고 그 영원한 관계는 취소될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그리스도 안에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서술합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이 관계는 영원한 관계입니다. 그 누구도 끊을 수 없습니다(로마서 8, 요한복음 10:28).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이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이 관계의 보증이시기 때문입니다.


 

3) 성령충만이란
우리가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도, 우리의 혼은 성령으로 충만할 때만 성령의 다스림 아래에 있게 됩니다. 일단 성령이 우리 몸에 내주하게 되면 성령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8:9). 하지만 우리가 죄를 짓게 되면 성령의 충만을 잃고 성령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성경은 우리에게 성령으로 충만하라고 명령하고 있지( 5:18) 결코 성령으로 내주하게 하라고 명령하지 않는 것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5:18)

 

성령충만은 성령께서 우리를 온전히 지배하시고 다스리시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임계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임계점(臨界點, Critical point) 액체 기체로 변하는 최대의 온도-압력 한계점을 의미합니다. 임계점이 이르기 전에는 액체가 기체가 되지 못합니다. 기체가 되었어도 임계점 이하로 떨어지면 액체로 변화합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7:18-19)라고 말하며 괴로워했습니다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5:17).

 

우리가 거듭났지만 우리 안에 죄성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이 죄성이 우리를 다스리고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육체(죄성, 옛자아)의 지배아래 놓여 육체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임계점 아래로 떨어진 기체가 액체 상태로 변화된 것과 같습니다. 성령충만하던지 아니면 죄성의 지배아래 놓이든지(육신에 속한 상태) 둘 중 하나의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그 중간은 없습니다. 신앙 생활에서 회색지대는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육신에 속한 상태
"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영적인 사람을 대하듯이 말할 수가 없어서 세속적인 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를 대하듯 말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젖을 먹이고 단단한 음식을 먹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그것을 소화시킬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아직도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처럼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시기와 다툼이 있는데 어찌 육적인 세상 사람들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고린도전서 3:1
-3)

육신의 속한 자의 특징을 '어두움 가운데 행하는 상태'라고 요한은 표현했습니다(요한일서 1:5-7).

 

주도권 싸움
영적인 출생 때부터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과 우리 육체 안에 거하는 죄성은 서로 주도권 타툼을 하게 됩니다(로마서 7:18). 이 주도권 싸움에서 우리의 지배권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 자신, 우리의 의지입니다. "너희가 어느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찌니라?"(왕상 18:21).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의지, 신앙)을 얻기 위해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가 대결은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성령과 죄성의 영적인 전투를 비유하는 이미지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죄성의 지배아래 놓이게 될 때 성령께서는 슬퍼하시고 근심하십니다(에베소서 4:30). 그 상태가 지속되게 되면 성령은 소멸됩니다(데살로니가전서 5:19). 성령께서 사라지거나 떠나신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령을 근심시키는 상태가 되면 우리는 성령께서 공급하시는 영적인 자원과 능력이 우리에게 흘러오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아의 능력으로 살게 되며 그 열매는 쓴뿌리에서 기인한 것이기에 쓸 수밖에 없습니다(히브리서 12: 15). 우리가 성령을 소멸시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게 되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되어 GPS가 고장나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배와 같습니다.

성령의 내주하심이 성령충만의 절대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성령충만을 결정짓는 것은 성령님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입니다.

 

 

4) 성령충만과 성령의 열매
우리들이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있는 밭이 되면 성령께서는 우리를 통해 당신의 어떠함을 나타내십니다(고린도전서 12:7). 우리의 생각, 표정, 말과 행동을 통해 드러나게 됩니다. 이것이 성령의 열매입니다(길라디아 5:22-24).

 

성령의 열매
성령충만이 지속되어 인격의 변화가 열매로 나타나는 것이 성령의 열매입니다.

오직 성령에 충만한 그리스도인만이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매일의 삶속에서 산제물(살아있는 제물)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을 영적으로 성장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베드로후서 3:18).

"여러분은 우리 주님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분을 아는 지식에서 점점 자라가십시오. 주님께 이제와 영원히 영광이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베드로후서 3:18)

 

결정자
그럼 성령충만과 육의 충만의 임계점을 긋는 선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율법(하나님의 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난 것이 죄입니다. 그 죄는 우리를 영적인 어두움으로 덮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관계는 어그러지고 멀어집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59:2).

 

회복의 길
죄성은 지배아래에서 벗어나 임계점을 통과하여 성령충만으로 나아가는 길은 회개입니다(요한일서 1:9).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죄악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요한일서 1:9). 회개를 통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다시 회복되면 우리는 다시 성령의 충만한 상태가 되어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5) 그러므로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은 결혼과 결혼생활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결혼을 잘 했는데 결혼생활이 실패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교인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렇게 호소합니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출처: https://mybiblenotes.tistory.com/173?category=884687 [묵상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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