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용어 사전

팔복

하나님아들 2020. 10. 5. 17:53

팔복

 

 



“복”은 “행복한” 혹은 “영예로운”을 뜻한다(참조, 3-11 절).

하나님께서 주신 신자의 행복은 물질적 조건에 근거하지 않는 내적 기쁨이다. 이것은 감탄어(참조, 계 1:3)로서 아람어와 히브리어의 단어와 같은 형태이다(참조, 시 1:1).

이러한 축복은 현재 하나님과 삶에 대해 갖고 있는 태도이며 또한 종말론적 소망을 이룬다. 복된 자는 의로운 자이다(참조, 시 119:1-2).


• 제 1복/ 심령이 가난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남이 주는 것에 의존해야 하는 거지를 나타낸다. 구약에서 이 단어는 하나님께만 소망이 있음을 암시한다! 마태는 이것이 물질적 가난이 아니라 영적으로 부적절함을 뜻하는 것으로 분명히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적합하심과 자신의 부적합함을 인식해야만 한다(참조, 요 15:5; 고후 12:9). 이것은 복음의 시작이다(참조, 롬 1:18-3:31).

“천국” 혹은 “하나님의 왕국”은 복음서에서 100 회 이상 사용되었다. 눅 6:20 에서는 “하나님의 왕국”으로 되어 있다. 마태복음은 출 20:7 의 말씀을 인해 하나님의 이름을 발음하는 것에 민감한 유대인의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기록한 책이다. 그러나 마가복음(참조, 10:14)과 누가복음은 이방인들을 위하여 기록한 책이다. 두 표현은 동의어적이다.

이 구는 하나님께서 지금 사람의 마음에서 다스리심을 나타내는데 이 통치는 어느 날 땅 위의 모든 것에 대한 통치로 드러날 것이다(참조, 마 6:10).


• 제2복/ 애통하는 자
“애통하다” 이 단어는 “크게 소리내어 슬퍼함”을 뜻하며, 헬라어에서 슬퍼함을 가장 강력하게 나타낸다. 문맥은 우리의 죄를 인해 슬퍼함을 뜻한다. 자신의 죄를 인식하는 결과(3 절)는 회개가 되어야 한다(4 절). 만일 이것과 구약의 사 61:1-3 가 평행을 이룬다면 이 애통은 사회 공동체적 애통을 말할 것이다.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새 시대는 그리스도 안에서 동이 텄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구약 백성만 아니라 예수를 믿고 신뢰하는 자 모두를 위로하신다.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전 세계로 확장되었다(참조, 요 3:16).


•제3복/ 온유한 자
“온유” 이것은 문자적으로 “유순한” 혹은 “겸손한”이다. 예수께서는 이 용어를 자신에게 사용하셨다(참조, 마 11:29; 21:5). 이 단어의 유래는 길들은 말처럼 길들여진 힘을 나타낸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필요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공급하심을 인식함으로써 신자들은 겸손하고 가르침을 잘 받을 수 있게 된다(참조, 벧전 3:4).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 그의 목적을 깨트리는 것이 아니라 이를 이루게 되기를 원하신다(그가 목적을 주셨다, 참조, 시 139편; 고전 12장).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이것은 종종 약속의 땅과 관련이 있다(참조, 시 37:11). 그러나 이것은 온 땅을 말하는 종말론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참조, 사 11:6-9). 이것은 히브리 단어인 에렛쓰(BDB 75)가 가진 모호함을 반영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구약의 약속은 또 다시 전세계에 대한 것으로 확장되었다.


•제4복/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주리고 목마른” 이것은 현재 능동 분사로서 인류의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영적 필요를 나타낸다(참조, 요 4:10-15). 이 은유는 왕국의 백성이 하나님께 갖는 지속적인 자세를 나타낸다(참조, 시 42:2; 63:1-5; 사 55:1; 암 8:11-12). 이것은 범죄로 인해 잃어버려진 하나님의 형상이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됨을 나타내는 표이다.

“배부를 것임이요” 문자적으로 “게걸스럽게 먹다”를 뜻하는 이 용어는 시장에 팔 수 있는 살진 소를 말한다.


• 제 5복/ 긍휼이 여기는 자
“긍휼히 여기는” 긍휼은 하나님을 앎의 결과이지 기초가 아니디. 이것은 다른 이의 상황에 자신을 두고 동정심을 갖고 행하는 능력을 말한다(참조, 마 6:12,14-15; 18:21-35; 눅 6:36-38; 약 2:13).

이 산상수훈은 기회를 가져다 준다. 앞의 두 항목은 왕국 백성의 영적 필요에 초점을 두지만 그 다음 항목들은 사람의 행동을 유발하는 태도에 초점을 둔다. 이것은 그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놓쳤던 내용이고 또한 오늘날 율법주의자들이 놓치고 있는 내용이다.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이것은 미래 수동 직설법으로서 글자대로 번역하면 “긍휼을 받게 될 것이다”이다. 이 시제가 나타내는 의미는 (1) 지금 확실함을 나타내는 의미의 미래 시제 혹은 (2) 마지막 심판(종말)시 있을 미래적인 축복과 용서이다. 수동태의 사용은 “천국”과 같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으려는 우회적 표현이다.


• 제6복/ 마음이 청결한 자
“마음이 청결한” 우리의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참조, 딛 1:15). 우선권 또한 똑 같이 중요하다(참조, 히 12:14). 시 24:4 과 73:1 에서 “청결한”은 (1) 전념하는 (2) 초점이 있는 혹은 (3) 깨끗게 된(히 12:14)을 뜻한다. 이 용어는 구약에서 씻는 의식을 나타낸다. 초점이 사람의 지식이나 예식에 따른 행동이 아니라 존재의 중심인 심장에 있음을 주목하라. 구약에서는 인격체인 사람의 중심에 있는 것을 “심장”으로 이해했고 헬라의 개념에서는 “마음”으로 보았다.


*마음: 여러 의미를 지닌다.
1) 인간에 대한 은유로서 육체적 삶의 중심(참조, 행 14:17; 고후 3:2-3; 약 5:5)

2) 영적(도덕적) 삶의 중심
ㄱ. 하나님은 중심을 아신다(참조, 눅 16:15; 롬 8:27; 고전 14:25; 살전 2:4; 계 2:23)
ㄴ. 인간의 영적 삶을 나타냄(참조, 마 15:18-19; 18:35; 롬 6:17; 딤전 1:5; 딤후 2:22; 벧전 1:22)

3) 생각의 중심(즉, 지력, 참조 마 13:15; 24:48; 행 7:23; 16:14; 28:27; 롬 1:21; 10:6; 16:18; 고후 4:6;
엡 1:18; 4:18; 약 1:26; 벧후 1:19; 계 18:7; 마음은 고후 3:14-15 과 빌 4:7 에서 생각과 동의어임)

4) 의지의 중심(즉, 뜻, 참조, 행 5:4; 11:23; 고후 4:5; 7:37; 고후 9:7)

5) 감정의 중심(참조, 마 5:28; 행 2:26, 37; 7:54; 21:13; 롬 1:24; 고후 2:4; 7:3; 엡 6:22; 빌 1:7)

6) 성령이 일하시는 독특한 영역(참조, 롬 5:5; 고후 1:22; 갈 4:6[즉,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에 계심, 엡 3:17])

7) 마음은 은유적으로 사람 전체를 가리킨다(참조, 마 22:37, 신 6:5 의 인용). 생각, 동기, 행동을 말하는 마음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드러낸다. 구약의 몇가지 특이한 용법은 다음과 같다:
ㄱ. 창 6:6; 8:21, “하나님이 그 마음에 슬퍼하셨다” (또한 호세아 11:8-9 를 보라)
ㄴ. 신 4:29; 6:5, “너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ㄷ. 신 10:16, “할례받지 못한 마음”과 롬 2:29
ㄹ. 겔 18:31-32, “새 마음”
ㅁ. 겔 36:26, “새 마음” 대 “돌로 된 마음”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에게 하나님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모든 피조물에게 자신을 보게 하신다. 청결함은 영적 눈을 뜨게 한다. 구약에서 하나님을 보는 자는 죽었다(참조, 창 16:13; 32:30; 출 20:19; 33:20; 삿 6:22,23; 13:22; 사 6:5). 따라서 이 진술은 아마도 종말론적 상황을 가리킬 것이다.


•제7복/화평하게 하는 자
이 합성어는 이곳에서만 나온다.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를 의미하며 그 결과 양자 사이에 평화가 생기게 함을 뜻한다. 한편 이것은 절대 평화주의가 아닌 회개와 믿음으로 누리는 평화를 말한다(참조, 막 1:15; 행 3:16,19; 20:21; 롬 5:1). 하나님께서 변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변한 것이다(즉, 창 3 장; 롬 3:9-10; 갈 3:22).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원래의 마음가짐이 회복되었다.

“하나님의 아들” 구약에서 이 구는 일반적으로 천사들을 가리켰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히브리 관용구이다. 기독교의 목적은 그리스도를 닮는 삶으로서(참조, 롬 8:28-29; 갈 4:19), 이것은 창세기 3 장에 있는 타락으로 인해 인간이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함을 뜻한다. 27:54의 특별주제를 보라.


•제8복/ 박해를 받은 자
이 단어는 완료 수동 분사이다. 이 표현은 외부 사람(즉, 사탄, 악마, 불신자)에 의해 박해를 받았으며
또 계속해서 받고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타락한 세상에서 살고 있기에 신자들이 박해를 받는 일은 실제로 있을 수 있는 일이며 예상되는 일이기도 하다(참조, 행 14:22; 롬 5:3-4; 8:17; 빌 1:29; 살전 3:3; 딤후 3:12; 약 1:2-4; 벧전 3:14; 4:12-19; 계 11:7; 13:7). 신자의 경건한 삶의 양식과 증거를 인해 고통이 생김을 주목하라. 하나님은
이것을 사용하사 신자를 그리스도와 같이 되게 하신다(참조, 히 5:8).

이 절은 오늘날 미국인들이 신명기 27-29 장의 언약적 내용을 모든 신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또 무조건적(즉 불순종으로 인한 저주를 무시함)으로 적용하여 축복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에 대해 균형을 갖도록 도와 준다. 건강, 부, 번영을 약속하는 일은 반드시 신자의 고통을 반복해서 인식하는 것으로 균형을 갖추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타락하고 경건치 않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 믿음의 백성들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고통을 받으셨고 사도들이 고통을 받았으며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고통을 받았듯이 모든 시대에서 신자들이 고통을 받을 것이다! 이 진리를 염두에 둘 때 교회가 환란의 시기를 거칠 가능성이 또한 있다(은밀한 휴거가 아님)!

 



출처: https://mybiblenotes.tistory.com/439?category=884687 [묵상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