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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는 어떤 책인가?

하나님아들 2020. 10. 5. 17:32

예레미야는 어떤 책인가?

 

 


예레미야서는 선지자의 이름을 따라서 불렸습니다. 그의 이름이 가진 뜻을 분명히 하기 어렵습니다 . “야웨께서 세우셨다”, “야웨께서 들어 올리신다(높이신다)”입니다. 그는 제사장의 혈통에서 태어나, 아나돗이라는 제사장의 성읍에서 살았습니다. 그가 부동산을 살 수 있었고 서기관을 고용할 수 있었던 점으로 보아 그는 개인적인 재산을 소유한 부자였을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는 “어린 아이“(1:4-6)였을 때 사역에 임하도록 부름을 받았는데, 그 때가 10대였습니다. 주전 627년의 일이었습니다.

*예언서는 크게 다음과 같이 구분됩니다:
1. 전기 예언서 – 여호수아-열왕기서(룻기는 제외)
2. 후기 예언서 – 이사야-말라기(다니엘서와 애가서는 제외)


•예레미야 시대의 배경

*역사적 배경
예레미야서의 연대는 1:2 에 나옵니다. 예레미야는 젊었을 때에 부름을 받았다. 그는 요시야 왕 제 13년에 부름을 받았는데, 이때는 그가 종교 개혁을 시작한 지 만 1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그는 이후부터 약 40년간(주전 626-587년) 다섯 왕(요시야,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여긴, 시드기야)에게 예언활동을 하였습니다. 이때에는 그 동안 패권을 장악해 왔던 앗수르가 서서히 침몰하고 그 대신 바벨론이 새로운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유다에서는 요시야에 의해 종교개혁이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요시야 왕이 죽게되자(주전 609년) 그의 계승자들은 그가 이루어 놓은 일을 모두 원위치 시켰습니다. 그리고 유다가 그 동안 압제받았던 앗수르의 짐에서 해방되는 순간, 그들은 또 다시 신흥제국인 바벨론의 눈치를 보아야 했으며, 바로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민족의 운명에 대해 대언을 하게 하셨습니다.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사마리아의 멸망(주전 722 년)부터 예루살렘의 멸망(주전 586 년)에 일어난 사건에 초점을 둡니다.


*주요 연대표
가. 주전 686 년 – 므낫세(주전 686-641 년)
나. 주전 664 년 – 이집트 제국이 삼메티커스의 통치아래 세력을 확장함(주전 664-610 년)
다. 주전 648 년 – 요시아의 출생
라. 주전 642 년 – 유다 왕 아몬이 신복들에게 암살당함(왕하 21:19-26)
마. 주전 640 년 – 앗시리아의 마지막으로 강력한 통치자였던 아수르바니팔이 죽음
바. 주전 640 년 – 요시아가 8 세에 즉위함(왕하 22:1)
사. 주전 628 년 – 요시아가 개혁을 시작함(왕하 34:3 이하; 왕하 23 장)
아. 주전 626 년 – 예레미야가 부르심을 받음(렘 1:2)
자. 주전 626 년 – 나보폴라살(주전 626-605 년)이 신바벨론 제국의 왕이 됨
차. 주전 621 년 – 성전을 보수하던 자들이 율법책을 발견함(대하 34:8 이하; 왕하 22 장)
카. 주전 614 년 – 지방에 있는 앗시리아의 수도인 아술이 신바벨론 제국에게 망함
타. 주전 612 년 – 앗시리아의 수도인 니느웨가 신바벨론과 메데에게 망함
파. 주전 609 년 – 요시아가 므깃도에서 바로 느고 II 세(주전 610-594 년)에게 죽임을 당함.
바로 느고는 도망하는 앗시리아의 남은 군대를 도우려고함(대하 35:20-24;
왕하 23:28-30)
하. 주전 605 년 – 이집트 및 앗시리아 군대의 잔여병력을 신바벨론이 갈케미스에서 이김
가. 주전 605 년 – 느부갓네살 II 세가 팔레스타인에 조공을 요구하며 침략함(다니엘과 1 차
포로). 네 차례에 걸쳐 유다와 예루살렘을 침략함, 주전 605 년, 597 년,
586 년, 582 년
나. 주전 601 년 - 느부갓네살 II 세가 이집트에 대한 지배권을 결정하는 전투에서 패함(교착
상태)
*'밥 어틀리'의 예레미야 주석에서 참고하였습니다.


*정치적배경 
예레미야가 사역을 시작하였을 때 앗수르가 세계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애굽과 바벨론이 급진적으로 세력을 뻗치고 있었으며, 주전 607년에는 바벨론이 니느웨를 점령하여 앗수르의 세력을 무찔렀습니다. 그러자 바벨론은 유다를 향하였고, 유다의 “정치가들“은 애굽에게 도움을 청하도록 왕에게 권고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언제나 애굽과의 동맹을 반대하였습니다. 그는 유다의 유일한 희망은 오직 여호와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다의 죄가 너무도 컸으므로 이 민족은 하나님의 축복을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바벨론은 유다를 쳐서 예루살렘을 점령하였습니다(주전 606-586). 예레미야는 거룩한 성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하여 “애가“를 썼습니다.
 

•예레미야서의 메시지
이 책에 나오는 핵심 단어는 타락입니다. 이 민족은 여호와께 등을 돌렸으며, 그들을 우상 숭배로 인도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추종하였습니다(2:19/3:6/3:8/4:1-12/4:22/5:6/8:5/14:7). 이 선지자는 회개하라는 말을 열 한번 사용하였으나, 이 민족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예레미야를 눈물의 선지자라고 부릅니다. 그는 그 만족의 타락과 심판 때문에 울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타락한 자기 민족에 대하여 큰 부담을 느끼고 있었습니다(9:1/13:17/14:17/15:17-18/애 1:2/애 2:11/애 2:18).

예레미야같은 유다가 포로될 것을 예언하여 바벨론에게 항복하라고 왕들에게 말했기 때문에 반역자로 불리웠으며, 정치인들과 백성들에게 박해를 당하였습니다(1:12-33/1:20/1:26/1:28-29/38장). 구약 예언자들 중에서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처럼 많은 박해를 받아야 했던 사람은 예레미야외에는 없었습니다(2:8/2:26/4:3/6:14/14:13-16/18:18/ 23:9-40/26:8-19/27:9-16/28-29 장). 유다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향하였더라면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그들을 바벨론에서 구원하셨을 것입니다. 이들은 자기의 죄 가운데서 고집스러웠기 때문에 형벌을 받아야만 하였으나, 하나님은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회복시켜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25장에서 그는 이 민족이 70년 동안 유배를 당하게 되며 그 후 왕국을 재건하기 위하여 돌아오게 될 것임을 예언하였습니다. 이 예언은 다니엘에게 상기되며 큰 위로가 됩니다.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단 9:2)

예레미야는 31장에서 그는 여호와와 그의 백성 사이에 “새 언약“을 맺게 될 것을 예언합니다. 이것은 돌에 새겨진 율법이나 행위의 언약이 아니라 마음에 씌어진 사랑과 믿음의 언약입니다. 마지막 장에서 예레미야는 유다 주위에 있는 이방 나라들을 다루며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말합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것이라"(렘 31:33)
 

예레미야는 자기의 멧세지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샘들과 웅덩이(2:13), 약(8:22), 아무 소용없는 띠(13:1-11), 토기(18-19장), 멍에(27장), 강에 던지운 책(51:59-64) 등의 극적인 예화들을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예레미야와 예수 그리스도
*예레미야와 예수 그리스도 사이의 유사점들이 많습니다. 그것을 살펴 보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둘 다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16:1), 자기의 출신지에서 거절을 당하였습니다(11:21/12:6/눅 4:16-30).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위협이라는 그늘 아래서 사역을 하였으며 예수께서는 로마의 그늘 아래서 사역하였습니다. 이들은 둘 다 자기 백성들에게서 반역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예레미야는 거짓 선지자들에게, 예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당대의 거짓 선생들로부터 악의적인 반대를 받았습니다. 둘 다 예루살렘성을 바라보고 울었으며, 이 성의 파멸을 예언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소수의 제자들을 모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도 얼마 되지 않았으며 그들 중의 더러는 그가 가장 어두움에 처해 있을 때 그를 남겨 두고 떠났습니다. 둘 다 거짓되게 체포되어 박해를 받았으며, 외적인 형식과 의식의 아닌 마음의 종교를 강조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을 정결케 하시며 제사장들에게 성전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다고 말씀하셨을 때 예레미야 7장 11절을 인용하신 것이었습니다. 둘 다 마음의 “새 언약“을 강조하였다(렘 31:37/히 8:7- 이하). 설교를 통하여 감동적인 예화들과 비유들을 사용했으며, 동정심이 많고 온유한 마음을 보여 주었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이 민족의 사악함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상하였습니다. 결국 둘 다 생애와 사역에 있어서 실패한 것처럼 보였으나, 하나님은 그들을 높이셨으며 그들의 사역을 성공적으로 만드셨습니다.
 

•예레미야 개요

1) 서론: 선지자로서의 소명 /1장
 
2) 민족적인 내용:유다에 대한 멧세지 / 2-33장
 
정죄 / 2-24장
(1)민족 전반에 대한 정죄/2-20장
(2)특히 지도자들에 대한 정죄 /21-24장
포로됨 /25-29장
회복됨 / 30-33장
 
3) 개인적인 내용: 예레미야의 고난/34-45장
 
예루살렘 포위 공격 이전/ 34-39장
포위 공격 이후, 남은 자들과 함께 함/ 40-45장
 
4) 국제적인 내용: 나라들에 대한 멧세지 / 46-51장
 
애굽/46장
블레셋 /47장
모압/48장
암몬/49장 1-6절
에돔/49장 7-22절
수리아, 게달, 엘람/49장 23-39절
바벨론/ 50-51장(168번 언급됨)
 
5) 결론: 선지자의 사로잡힘과 해방/51장"
 
 

• 하나님은 토기장이시다
*하나님의 인격-
우리의 삶은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나 맹목적인 “운명“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한 인격자, 즉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자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우리의 삶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는 토기장이십니다(사 64:8 참조).
 
*하나님의 능력-
진흙은 스스로 빚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삶을 안내하는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 위에 절대 주권을 행사하십니다(6-10절). 우리는 그와 논쟁을 하거나 무슨 일을 하시는지를 문의할 수 없습니다(롬 9:20-24 참조). 물론, 이 말은 하나님께 인간들의 죄나 민족들의 실패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
토기장이는 진흙에 대한 완전한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이미 완성된 생산품을 그의 마음에서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대한 완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롬 12:1-2/엡 2:10/빌 1:6). 우리는 그 완성된 생산품을 볼 수 없으나 하나님은 그 생애가 놀라울 것을 약속하십니다(고전 2:9).
 
*하나님의 인내-
토기장이는 인내심을 가지고 진흙으로 일을 하며 부드럽게 모양을 빚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지시하심에 있어서 인내하시며 그의 뜻을 성취하고자 하습니다. 때때로 그는 부모, 교사, 동료 그리스도인,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들의 손을 빌려 우리의 모양을 빚는 일을 도우십니다. 가치있는 생산품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즐겨 기다리십니다.

 
• 인간은 진흙이다
물론 예레미야의 멧세지에서 진흙은 이스라엘 민족을 나타내만 이것을 우리의 삶에 개인적으로 적용한다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보물들을 담도록 하나님이 빚으시는 하나님의 그릇들입니다(딤후 2:19-21/고후 4:7/행 3:15). 인간은 진흙으로 지어졌는데, 진흙이란 흙을 물과 섞은 것입니다. 우리는 흙으로 되어 있습니다(시 103:14). 그러나 하나님의 영의 물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생명을 부어 주셨습니다. 진흙은 그 자체로는 그다지 큰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나 바른 목적을 위해 올바른 손으로 빚어질 때 위대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생활에 잠재해 있는 놀라운 가능성을 계산할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진흙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그 고분고분함에 있습니다. 만일 토기장이의 손에서 고분고분하지 못합니다면 작품을 망쳐 놓게 될 것입니다. 진흙은 스스로 빚을 수가 없으며 토기장이가 있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스스로 만들어진“ 그리스도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인생은 녹로(회전대)이다
녹로(회전대)는 토기장이로 말미암아 신속히 돌아갑니다. 그리고 속도를 조절하는 이도 토기장이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의 삶은 우연이나 행운에 의해 조절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조절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의 환경들을 배정하시며, 그 환경은 또한 우리들을 빚게 됩니다. 어린 요셉을 애굽으로 가게 하여 왕과 같이 빚어지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셨습니다. 우리는 생의 환경들에 대하여 이상히 여기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불친절하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우리는 로마서 8장 28절의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며, 결국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그에게 모든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출처: https://mybiblenotes.tistory.com/233?category=884687 [묵상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