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에 대한 다섯가지 물음들
첫번째 물음: 구약은 한 권의 책인가?
구약성서는 한 권의 책인가? 아니면 여러 권이 한 권으로 묶어진 일종의 “책모음집”인가? 언제부터인가 우리 손에는 구약과 신약으로 된 오직 한 권의 성서가 있어 왔다. 책이 한 권이면 우리는 으레 어떤 단일한 주제 아래 전개되는 일관성 있는 내용을 연상하게 된다. 이렇게 볼 때 구약 안의 여러 책들은 별도의 책이라기 보다는 한 권의 책안에 있는 다양한 주제 혹은 소제목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성서는 오늘날의 개념과는 달리 한 권의 책이면서 동시에 “거룩한 책들의 모음”이기도 하다. 구약성서의 거의 모든 책들이 하나님에 대한 증언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내포한다는 점에서 한 권의 책으로 간주될 수 있다(통일성). 하지만 구약성서 안에 있는 39권의 책들은 각기 나름대로 독특한 내용과 신학적 주제를 내포하고 있으며, 문학양식 또한 다양하다(다양성). 예를 들면 창세기와 이사야서를 비교해 볼 때, 그 형식과 내용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창세기는 인류의 태고사(太古史)로부터 시작하여 이스라엘의 족장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설화(narratives) 형태로 서술된 반면, 이사야서는 예언자의 말씀이 “신탁”(oracle)이라는 형식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영어의 성서(Bible)란 말은 헬라어(Greek) “책들”(Biblia)이라는 말에서 유래한다. 즉 성서는 “여러 책들의 모음”이다. 각각의 책들은 수록된 양도 다르고, 문체와 내용 면에서도 차이가 난다. 그 책들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말미암아 기록된 것이긴 하지만(딤후 3:16), 그렇다고 해서 어떤 한 사람 혹은 하나님 자신에 의해 기록된 것도 아니다. 그것은 또한 어느 한 시기에 일시적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다. 구약성서의 39권은 무려 천여 년에 걸쳐 “하나님의 백성”에 의해 수집되고 기록되고 편집되었다. 구약성서는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역사적 산물이요 다양한 시대적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성서 각권의 저자(혹은 편집자)와 그 책에 드러난 신학적 의도는 역사적 배경과 함께 구체적이고도 독립적으로 연구되어져야 한다.
두번째 물음: 왜 구약성서인가?
우리의 두번째 질문은 “구약”(Old Testament)이라는 표현에 관한 것이다. 왜 구약성서인가? “구약”이라는 말은 “신약”에 대응하는 말로써 크리스천들이 예수시대 이전의 성서를 가리켜 “구약”이라고 부르는데서 연유한다. 전통적인 견해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계약은 옛계약이요, 예수님과 온 인류의 계약은 새로운 계약으로서 이 새로운 계약에 의해 우리는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옛것도 새것도 없다. 성서는 늘 새로운 것이요, 이전에도 그렇듯이 우리 삶에서 여전히 성취의 과정에 있는 희망의 메시지이다. 따라서 구약이라는 용어는 신약에 반대되는 개념도 아닐 뿐더러, 소위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복음”이 대립되는 것도 아니다.
신약성서는 종종 구약성서 안에 있는 여러 가지 구절들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예수의 메시야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예수는 감추어진 신비한 존재로서 구약 안에 계시된 메시야라는 것이 사도들의 고백이었다. 하지만 구약성서는 지금도 신약성서와의 관련 없이 여전히 유대인에게는 유일한 성서요, 나름대로의 독특한 전승을 유지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히브리성서(구약)를 예수의 메시야성과는 별도로 자기들의 전통에 입각하여 이해하고 있다. 기독교인과 유대인 사이에 실존하는 이러한 이해 차이는 현대 기독교인에게 구약성서에 대한 가치관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우리는 구약성서를 여전히 “옛계약”(구약)이라고 불러야만 하는가? 아니면 구약성서의 독자적 영역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히브리성서”(The Hebrew Bible)라고 불러야 할까? 이 문제는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근의 개신교 구약학자인 갓월드(N. K. Gottwald)는 그가 쓴 구약개론서를 “히브리성서”라고 명명하기도 하지만, 아직은 여러 학자들이 구약(Old Testament)이라는 용어를 습관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구약성서에 대한 접근 자세에 달려 있다. 성서독자는 우선 구약성서 자체가 주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본문의 역사적 배경에 따른 구체적 정황을 파악한 후에, 그 의미를 예수의 가르침과 연관시켜 본다면 보다 풍성한 의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처음부터 예수의 메시야성을 미리 염두에 둔다거나, 율법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구약성서에 접근한다면 성서 자체가 주는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구약성서는 앞서 언급한 대로 다양한 저자에 의해 수세기에 걸쳐 완성된 여러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안에는 시대가 요구하는 하나님의 정의가 내포되어 있으며, 사람들의 삶속에 나타난 희노애락이 담겨져 있다. 이 책들이 수집되어 오늘의 형태에 이르기까지 두 전통을 형성해 왔다. 그 하나는 기독교 전통이요, 다른 하나는 유대교 전통이다. 유대교 전통은 예수시대에 유대인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다. 이 유대 전통에서 기독교 전통은 출발한다. 유대교는 랍비들의 모임인 얌니야회의(주후 90년경)에서 구약성서의 범위를 현재의 39권으로 한정했다. 그후 기독교 공동체는 주후 397년에 북아프리카의 칼타고회의에서 신약 27권, 구약 39권을 표준이 되는 성경, 즉 정경(canon)으로 인정하기에 이른다. 이제 구약성경에 대한 기독교와 유대교의 전승을 살펴보자.
세번째 물음: 기독교는 무엇을 정경으로 하는가?
우리 성경을 살펴보면 크게 4부분으로 나뉘어진다:
1)오경: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2)역사서: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아, 에스더, (외경: 유딧, 토빗, 마카베오상, 마카베오하)
3)시와 지혜서: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외경: 솔로몬의 지혜, 시락)
4)예언서:
대예언서(4): 이사야, 예레미아(예레미아애가), 에스겔, 다니엘, (외경: 바룩)
소예언서(12):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기독교의 초기 문헌에는 오경도 역사서의 일부로 열거되기도 했다. 이는 구약성서 각권은 오경을 포함하여 예수의 오심을 증거하기 위함이라는 초대교회의 성서관을 반영한다. 오경은 인류의 태고사를 비롯하여 이스라엘의 족장(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생활을 그리고 있다. 이스라엘의 애굽생활과 출애굽사건, 그리고 가나안에 진입하기까지의 광야생활이 오경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 역사서는 창조의 순간부터 페르샤통치까지의 이스라엘의 삶이 묘사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역사기록이 아니라, 역사 안에서 체험되는 하나님의 진리가 이야기체로 소개되어 있다. 따라서 성서 독자는 성서 안에 소개된 사건에 접할 때, 그것이 역사 안에서 실재로 일어났느냐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 사건의 의미를 발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역사서는 다음 두 가지 기준에 의해 이해되어야 한다. 그 첫째는 고대인들이 삶속에서 일어난 사건을 어떻게 기술했느냐를 물어야 한다. 둘째로 그 사건에 어떤 종교적 교훈이 있느냐를 물어야 한다. 고대의 역사가들은 다음 두 가지 방식으로 사건을 기술한다: 1)고대인들은 통계적 내용을 열거하기를 좋아한다. 예를 들면 어느 도시가, 언제, 누구에 의해 점령당했다는 것을 상세히 열거한다. 이러한 현상은 이집트의 카낙(Karnak)에 있는 성전벽에 기술된 내용이라든지 여호수아 1-12장과 사무엘하 8장에서 볼 수 있다; 2)고대인들은 역사를 이야 기체로 서술한다. 그들은 이야기(신화, 전설, 민담 등)를 통해 하늘의 신(神)이나 지상의 왕을 찬양한다(참조. 수 1-8).
통계자료나 이야기들은 사건의 실재성을 강조하기 위해 생생한 상상력을 제공한다. 그러나 통계자료는 객관적으로 보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유리한 면이 있지만 기계적인 반복적 표현은 매우 밋밋하고 비인격적이며 형식적인 면이 강하다. 반면에 이야기는 주관적인 측면에서 독자에게 보다 효과적으로 신앙과 정서를 감정이입(感情移入)시킬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된 여러가지 일들을 이야기식으로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이 고대(古代)의 사건에 직접 참여하게 하는 효과를 거둔다. 따라서 성서이야기는 사건의 전달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통해 사건 뒤에 있는 깊은 의미를 전하고자 한다. 이런 이유로 해서 예수는 제자들을 가르칠 때 직접적인 훈계나 교리적인 지식을 활용하기보다는 자유롭고 흥미로운 이야기(stories)나 비유(parables)를 더 많이 인용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성서를 읽을 때, 고대의 성서기자도 현대인과 같은 사고방식을 가졌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해서 고대의 이야기가 모두 비현실적이고 비역사적인 것이라고 속단해서도 안된다. 고대의 이야기들은 역사적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도하는데 역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사람들 간의 대화, 기도, 찬양, 그리고 환상이나 꿈을 통해 신적인 세계와 인간세계를 연계시킨다. 이런 다양한 표현법은 상징(symbols)을 동원함으로써 언어가 표현하지 못한 다양한 내용을 암시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성서이야기의 종교적 교훈을 간과하거나, 그것이 실재적 사건과 거리가 멀다고 해서 무가치한 것으로 속단하지 말아야 한다. 대신 성서이야기를 통해 후세에게 하나님의 섭리와 사회정의를 일깨우고자 했던 성서기자의 의도를 살피는데 주력해야 한다.
다른 문제는 성서의 예언현상(prophecy)이 가끔 잘못 이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언(預言)이 장래 일어날 일을 자세히 알아 맞춘다는 개념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았다. 혹은 구약의 예언이 메시야의 출생이나 그의 죽음에 관한 장소나 시기를 미리 예견하는 정도로 이해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예언은 미래에 발생할 사건을 예견하는 기능도 있지만, 보다 본질적인 기능은 야훼의 이름으로 사회를 개혁하는 것이다(참조. 미 2-3장). 예언자들(prophets)은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중재자(mediators)들이었으며, 동시에 야훼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민중들을 교화하는 기도선생들(teachers of prayer)이었다(겔 1-3장; 슥 1장). 그들은 야훼의 명령에 따라 신탁(神託)을 전하지 않으면 자기의 존재가치를 느낄 수 없었던 소명있는 일꾼들이었다(렘 12:1-5; 20:7-18).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관에 입각하여 왕, 제사장, 백성 앞에서 소신껏 야훼의 정의와 사랑을 선포했던 일종의 사회개혁자들(social reformers)이었다. 그들의 메시지는 역사적 정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으며, 예언자들은 당시의 세대에게 하나님은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가를 알고 있었다. 따라서 예언자들의 메시지는 역사적 사건과 결부되며, 야훼 하나님은 예언자의 신탁(oracles)을 역사 안에서 현실화시키면서 자신을 계시하신다.
네번쟤 물음: 유대교는 무엇을 정경으로 하는가?
유대교의 히브리 성서는 우리말 성서와는 달리 크게 세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대인들은 히브리성서를 “거룩한 경전”(The Holy Scriptures) 혹은 “타낙”(Tanak)이라고 부르는데, “타낙”은 이 세부분의 첫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그 첫째 부분은 율법(Law)이라 부르는 “토라”(Torah)요, 둘째 부분은 “예언서”(Prophets)로 불려지는 “네비임”(Neviim)이요, 세번째 부분은 “성문서”(Writings)라고 부를 수 있는 “케투빔”(Kethubim)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록 “타낙”이라는 말이 성서에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히브리성서를 삼등분 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유의할 만하다. 타낙의 구조에 따라 유대교의 성서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토라(율법서):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2)네비임(예언서):
(1)전기예언서: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서, 열왕기서
(2)후기예언서: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열두 예언자(호세아-말라기)
3)케투빔(성문서):
(1)시와 지혜: 시편, 잠언, 욥기
(2)특별제의를 위한 두루마리(Scrolls): 아가서(유월절), 룻기(절기및 오순절), 애가(성전파괴를 슬퍼하는 의식), 전도서(성막축제), 에스더(부림절)
(3)역사설화: 에스라-느헤미아, 역대기서
(4)묵시서: 다니엘
유대인 성서의 타낙에는 “역사서”(historical books)로 구별되는 책들이 따로 있지 않다. 유대인들은 전통과 역사에 남다른 비중을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전을 보는 시각은 역사적 관점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경전을 교훈(율법)과 기도로 된 영속적인 가르침으로 간주한다.
구약성서의 핵심적 전승을 반영하고 있는 율법서의 다섯 책은 종종 모세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야훼로부터 율법을 수여 받고 내려올 때, 그의 얼굴에 빛나는 광채 때문에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백성과 말해야 했다(출 34:29-34). 민수기 12:3은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뛰어났다”고 전하고 있다. 율법서의 마지막 책인 신명기 34:10-12은 모세 이후 그와 같은 예언자가 이스라엘에 출현하지 못했다고 보도함으로써, 모세만이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여 율법을 수여 받은 사람으로 추앙하고 있다.
예언서와 성문서가 경전에 추가될 때까지 율법서는 이스라엘의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다. 바벨론 포로기에는 회당(synagogue)에서 율법서는 부분적으로 예언서들과 함께 읽혀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율법서의 일관된 주제와 모세의 권위 있는 증언에도 불구하고, 구약성서의 처음 다섯 권은 모세의 저작으로 보기는 어렵다. 서로 다른 문체와 상충되는 내용들은 율법서가 오랜 세월 동안 구전(口傳)되다가 포로기 이후에야 비로소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라프-벨하우젠(Graf-Wellhausen)이론에 따르면 오경은 다양한 특색을 지닌 여러 문서의 집합체라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문서가설(文書假說)이라고 불리는 오경의 자료설은 오경이 JEDP라는 네가지 문서형태로 구성된 것으로 간주한다. 학자들 간에는 아직까지도 그 문서의 성격이나 범위, 그리고 각각의 문서가 기록되거나 편집된 시기에 대해 이론(異論)이 분분하지만, 율법서(오경)가 모세와 같은 단일한 저자에 의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 여러 문헌의 복합체라는 사실에는 대체로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가장 오래된 문서로 여겨지는 야훼문서(J문서; 독일어 Jaweh의 첫자)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야훼(혹은 여호와)로 호칭한다. 야훼문서(Yahwistic Documents)는 솔로몬 이후의 유다전승을 반영하며(950-850 BCE) 신인동형론적(神人同形論的)인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예: 창 2:4b-3:24). 엘로힘문서(Elohistic Documents)로 알려져 있는 E문서는 북쪽의 에브라임전승을 반영하며(850-750 BCE) 야훼라는 이름을 알기 전까지 이스라엘의 신(神)을 엘로힘(Elohim; 하나님)으로 부른다. 엘로힘 기자는 모세에 의해 처음으로 야훼가 이스라엘에게 소개된 것으로 보도한다(참조. 출 3:14). 야훼문서의 내용을 대체로 알고 있었던 엘로힘 기자는 야훼 기자와 구별되는 별도의 저자로 간주되기도 하고, 때로는 야훼문서를 수정 혹은 보완했던 편저자(redactor)로 인식되기도 한다. 신명기문서로 알려진 D문서(Deuteronomic Documents)는 요시야왕에 의해 수행된 종교개혁(621 BCE)의 근간이 된 것으로서 모세의 율법이 재차 강조된 신명기법전을 가리킨다(650-450 BCE).
레위기 전부와 창세기, 출애굽기, 민수기에 두루 퍼져 있는 있는 제사장문서(P문서; Priestly Documents)는 바벨론포로기(586-538 BCE)에 기록된 것으로 여겨지며, JE문서를 수정, 보완, 첨가한 것이다. P문서는 이스라엘의 제사규정에 주목하며, 안식일과 할례를 강조함으로써 이스라엘 공동체의 정체성(identity)을 확립하고자 한다(예: 창 1:1-2:4a). 율법서는 결국 포로기에 활동한 제사문서기자에 의해 종합되고(JEP), 그 후 신명기기자에 의해 대략 주전 450년경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JEDP). 우리성경의 오경에 해당되는 율법서는 가장 일찍 형성된 문헌임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 면에서 완성된 일면을 보여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약속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대신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의 인도로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2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는 내용이 역사서로 이어진다.
그러나 유대인 성서인 타낙은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열왕기서를 역사서로 부르지 않고 “예언서”로 간주한다. 가나안에 정착하게 된 배경이라든지, 그후 일상적인 삶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사건의 객관성보다는 토라(율법서)의 가르침에 의해 판단된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적 행위는 율법의 준수를 촉구하는 예언자의 시각에서 이해되며, 그것은 곧 야훼의 명령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의 차원에서 서술된다. 결국 이스라엘의 역사관은 야훼와 그의 백성 사이에 발생하는 상호관계에서 조명된다. 이런 취지에서 70인역의 역사서에 해당되는 여호수아-열왕기하에 이르는 책들은 마소라본문(MT)에서는 “전기예언서”로 불려진다. 전기예언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게 된 배경으로부터 출발하여 남왕국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포로로 끌려가기까지의 상황을 그리고 있다. 이어 후기 예언서는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예언서들을 말한다. 대예언서에 속하는 이사야, 예레미아, 에스겔에 이어 12예언서가 한 권의 분책으로 엮어져 있다. 전기예언서와 후기예언서는 포로기 혹은 포로후기에 편집되어, 오경이 완전한 모습을 갖춘 이후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을 것이다(주전 586년 이후).
성문서(Writings)는 성전제의에 필요한 중요한 문헌들을 포함하고 있다. 성문서는 성전의 기도서로 알려진 시편으로 시작하고 있으며, 우리 성서의 예레미아애가가 단순히 애가(Lamentation)라는 이름으로 시가서 가운데 하나로 소개된다. 욥기, 잠언, 전도서 등의 지혜서는 솔로몬 이전 시대로까지 그 뿌리를 거슬려올라갈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지혜서들의 내용은 고대 근동의 바벨론과 이집트의 지혜문학과 많은 점에서 유사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혜서들이 경전의 권위를 지니고 편집되기에는 많은 세월을 필요로 한것 같다. 이 지혜서들은 주전 2-3세기 경에 성문서들이 수집될 때 다른 문헌과 함께 그 대열에 낀 것으로 여겨진다. 성문서는 동시에 유대인들의 여러 축제에 활용된 다양한 신앙서(Scrolls)를 소개한다. 우리말 성서의 역사서에 포함되는 룻기, 에스더서가 축제일을 위한 경전에 포함되어 있다. 70인역과 우리말 성서에서 대예언서 가운데 하나로 분류되는 다니엘서는 묵시문학으로 성문서에 포함되어 있으며, 한 권으로 되어 있는 에스라-느헤미아서는 포로후기의 유대역사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성문서는 역대기서를 포함한다. 우리말 성서와 달리 역대기서는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와 함께 상하로 나누어지지 않고 한 권으로 되어 있다. 역대기서는 창조 때부터 포로말기까지의 이스라엘 역사를 새로운 안목에서 기록하고 있다. 바벨론포로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귀향하도록 조치한 고레스칙령을 소개하고, 귀향한 유대인에게 성전재건의 임무를 강조한다. 역대기서는 창세기에서 열왕기하에 이르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재평가하고 포로후기의 유대적 민족주의에 입각하여 새롭게 역사를 기술한 것이다. 따라서 역대기와 에스라-느헤미아 등에서 나타난 포로후기의 역사서들은 자연히 신명기사가(Deuteronomistic Historians)에 의해 기록된 역사서(여호수아-열왕기하)와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대체로 주전 2-3세기 경에 수집되어 편집된 성문서는 포로 이후의 유대인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기록된 것으로서, 유대 중심적이며 민족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성문서의 역사설화(historical narratives) 북쪽 이스라엘보다는 자연히 다윗혈통을 잇는 남왕국 유다의 역사에 더 관심을 둔다.
다섯번째 물음: 70인역 구약성서(LXX)와 마소라본문(MT)은 모두 필요한가?
카톨릭 교회(Catholic Church)는 개신교(Protestant Church)에서 “외경”(apocrypha)이라고 부르는 제 2의 경전(the second canon)을 가지고 있다. 이 외경들은 기원전 2-3세기에 북아프리카의 알렉산드리아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디아스포라)이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위해 히브리어로 기록된 자기들의 성서(원마소라본문)를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 구약성서(LXX)에 포함되어 있다. 72인의 장로에 의해 번역되었다고 해서 LXX(70)라고도 표기되는 70인역 구약성서는 주후 450년 이후 정착된 히브리성서인 마소라본문(Massoretic Texts; MT)에 없는 경전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개신교 전통은 이를 외경이라고 부른다.
70인역의 배열순서를 따르고 있는 우리 성서에는 예레미아서에 시가서에 해당되는 예레미아애가가 첨부되어 있으며, 카톨릭 성서에는 외경인 바룩서가 예언서에 첨가되어 있다. 외경에 속하는 지혜문헌도 있다. 이집트에서는 예수가 탄생하기 약 20-50년전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솔로몬의 지혜”(Wisdom)를 영감 있는 지혜서로 인정하였다. 종말론적인 대망을 가지고 사해동굴에서 100년 이상 살았던 유대인들 역시 다른 외경지혜서인 “시락서”를 숭배하기도 했다. 이 두 지혜서가 사해연안의 쿰란(Qumran)동굴과 그 근처의 마사다(Masada)에서 발견되었다. 외경의 역사서에는 유딧, 토빗, 그리고 마카베오상, 마카베오하가 있다. 이 역사서들은 말라기 선지자 이후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의 유대상황을 서술하고 있어 신구약중간기의 사회적, 종교적, 정치적 정황을 밝혀주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70인역 구약성서에 또한 에스더서와 다니엘서의 추가부분이 있다. 70인역에는 그러나 때론 마소라본문보다 적은 양의 책을 포함하기도 하는데, LXX의 예레미아서는 MT의 예레미아서보다 1/8이 적다.
그렇다면 70인역 구약성서(LXX)와 유대교 성서(타낙)가 따르고 있는 마소라본문(MT) 가운데 어느 내용이 더 권위가 있을까? LXX와 MT가 서로 다른 독법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은 두 성서의 원본이 다르거나 필사과정에서 수정 및 삭제 혹은 보충하는 과정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것이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상당한 차이를 보여준 것이다. 양자 사이에 있는 이독(異讀)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성서학도들은 히브리성서의 원래적 모습을 찾고자 한다. 따라서 헬라어로 번역된 70인역 구약성서와 히브리어 전통을 유지한 마소라본문은 구약성서의 본문비평(Text Criticism)을 위한 상호보완적 역활을 한다. 그 밖에도 구약성서의 원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 이용되는 사본들과 번역본들이 많이 있다. 사해 연안의 쿰란동굴에서 발견된 쿰란사본들은 MT와 LXX가 보여주지 않는 또 다른 독법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번역본들은 이른 시기에 번역된 70인역 구약성서를 참고로 번역된 것들이 많다. 탈굼역(Targum), 시리아역(Syriac), 그리고 카톨릭 교회에서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라틴어역인 불가타역(Vulgate)은 주로 LXX의 독법을 반영하고 있다. 정경의 범위에서 마소라본문을, 그리고 책배열 방식으로는 70인역 구약성서를 따르고 있는 개신교의 우리말 성서에는 LXX에 나타난 외경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카톨릭 전통은 그것들을 “제 2 정경”으로 간주함으로써 초대교회에 널리 사용되었던 LXX의 전승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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