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

최근 한국 교회사의 연구 흐름

하나님아들 2020. 2. 11. 15:23

최근 한국 교회사 연구 흐름

 -사관과 방법론을 중심으로-

 

 

이덕주 /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이사, 한국 교회사

 

 

 

 이 글은 1990년대 한국 교회(개신교)사 연구의 흐름을 살펴보고 사관과 연구 방법론과 관련하여 최근 경향을 살펴보는데 목적이 있다. '한국 교회사' 연구사(硏究史)에 대한 개괄적인 논문은 이미 여러 편 나왔기 때문에 그 동안 한국 교회사 분야에서 적용된 사관이나 방법론에 대한 통전적 설명은 생략하고 최근 10년 사이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연구 업적과 경향을 중심으로 사관과 방법론에서 어떤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1. 최근 한국 교회사 연구 동향

 

 최근 10년 사이에 한국 교회사는 양적인 면과 질적인 면에서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룩하였다. 우선 단행본을 중심으로 최근 10년 사이에 출판된 한국 교회사 관련 저술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강명숙. 『일제하 한국 기독교인들의 사회 경제사상』. 백산자료원, 1999.
 강인철. 『한국 기독교회와 국가·시민사회』.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6.
 구라타 마사히코. 『일제의 한국 기독교 탄압사』. 기독교문사, 1991.
 국제신학연구원,『하나님의성회 교회사』 서울말씀사, 1998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역사편찬위원회. 『한국성결교회사』.,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출판부, 1992.
 기진오. 『한국 기독교 역사의 전개』. 경향문화사, 1998.
 김광수. 『북한기독교 탐구사』. 기독교문사, 1994.
 김광우. 『한국감리교회 백년:제도변천기』 전망사, 1990
 김남식·간하배, 『한국 장로교회 신학사상사』. 베다니, 1997.
 김대인. 『숨겨진 한국교회사』, 한들, 1995
 김민영. 『한국 초대 교회사』. 쿰란출판사, 1998.
 김수진. 『김수진 목사의 일본 개신교회사』. 홍성사, 1993.
 김수진. 『목포지방 기독교 100년사』. 대한예수교장로회 목포노회, 1997.
 김수진. 『호남기독교 100년사(전북편)』. 쿰란출판사, 1998.
 김수진. 『호남선교 100년과 그 사역자들』. 고려글방, 1992.
 김수진·주명준. 『일제의 종교탄압과 한국교회의 저항』. 쿰란출판사, 1996.
 김승태, 『한국기독교의 역사적 반성』 다산글방, 1994
 김승태 엮음,『신사참배거부자들의 증언』 다산글방, 1993
 김승태 편,『한국기독교와 신사참배문제』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1
 김승태 편. 『일제강점기 종교정책사 자료집 1910-1945』.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6.
 김영재. 『한국교회사』. 개혁주의신행협회, 1992.
 김영재. 『한국 기독교의 재인식』. 엠마오, 1994.
 김옥룡. 『대한성공회 강화 선교 백년사』, 대한성공회 강화선교 1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1993.
 김인수. 『한국 기독교의 역사』.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1997.
 김인수. 『한국 기독교회사』. 한국장로교출판사, 1994.
 김정순. 『한국기독교여성운동사』. 대한예수교장로회 여전도회전국연합회, 1990.
 김진복. 『한국 장로교회사』. 쿰란출판사, 1995.
 김진형. 『수난기 한국 감리교회 북한교회사』. 기독교대한감리회 홍보출판국, 1999.
 김진형. 『초기 한국감리교회 북한교회사, 1887-1910』. 서부연회·한민족통일선교회, 1997.
 김창수·김승일. 『해석 손정도의 생애와 사상연구』. 넥서스, 1999.
 김해연. 『한국교회사』. 성광문화사, 1993.
 김흥수. 『한국전쟁과 기복신앙 확산연구』.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9.
 김흥수 편,『일제하 한국기독교와 사회주의』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2
 김흥수 편,『해방 후 북한교회사-연구·증언·자료-』 다산글방, 1992
 남영환. 『한국 기독교 교단사』. 영문, 1995.
 노치준. 『일제하 한국 기독교 민족운동 연구』.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3.
 민경배. 『서울 기독교청년회사』. 서울기독교청년회, 1998.
 민경배. 『알렌의 선교와 근대 한미외교』, 연세대학교출판부, 1991.
 민경배. 『일제하 한국 기독교 민족·신앙운동사』. 대한기독교출판사, 1991.
 민경배. 『한국기독교사 신개정판』.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3.
 박명수, 『근대근본주의의 성결론』. 대한기독교서회, 1997
 박명수, 『근대근본주의의 주요 흐름』.  대한기독교서회, 1998
 박명수, 『근대복음주의와 한국성결교회』. 서울신학대학교, 1994
 박영복, 『한국기독교사회교육사』. 교육과학사, 1995
 박용규. 『한국장로교 사상사』. 총신대학교 출판부, 1992.
 박정신.  『근대 한국과 기독교』. 민영사, 1997
 서정민, 『역사 속의 그-한일기독교사론』. 한들, 1994
 서정민. 『일본기독교의 한국 인식』. 한울 아카데미, 2000.
 서정민. 『한국교회 논쟁사』. 이레서원, 1994.
 서정민. 『한국교회 사회운동사』. 이레서원, 1996.
 성백걸. 『초기 한국 감리교 신학 형성에 관한 연구』. 감리교신학대학 대학원, 1997..
 손병호, 『장로교회의 역사』. 그리인, 1993
 신광철. 『천주교와 개신교: 만남과 갈등의 역사』.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8.
 신기영. 『한국 기독교의 민족주의 1885-1945』. 동혁, 1995.
 연규홍. 『한국 장로교회와 칼빈사상』. 한빛, 1996.
 유동식. 『재일본한국기독교청년회사』. 재일한국YMCA, 1990.
 유동식. 『한국 감리교회 사상사』, 전망사, 1993.
 유동식. 『한국 감리교회의 역사』, 2권, 기독교대한감리회, 1994.
 윤경로. 『105인사건과 신민회 연구』. 일지사, 1990.
 윤경로. 『한국 근대사의 기독교사적 이해』. 역민사, 1992.
 윤정란. 『일제시대 한국 기독교 여성운동 연구』,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1999.
 윤춘병. 『전덕기 목사와 민족운동』, 한국감리교회사학회, 1996.
 윤춘병. 『한국 감리교회 성장사』. 감리교출판사, 1997.
 윤혜원. 『일본 기독교의 역사적 성격』.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5.
 이관숙. 『중국 기독교사』. 쿰란출판사, 1995.
 이광린. 『올리버 알 에비슨의 생애』.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2.
 이광린. 『초대 언더우드 선교사의 생애』.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1
 이균성, 『성결교회 수난사』. 기독교대한성결교회, 1994
 이덕주. 『초기 한국기독교사 연구』.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5.
 이덕주.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의 역사』.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 1993
 이덕주. 『한국 감리교 여선교회의 역사』. 기독교대한감리회여선교회전국연합회, 1992.
 이덕주. 『한국 교회 처음 여성들』. 기독교문사, 1990.
 이덕주.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개종이야기』. 전망사, 1990.
 이덕주. 『한국 토착교회 형성사 연구』,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0.
 이덕주 . 조이제. 『강화기독교 100년사』. 강화목우회, 1994.
 이덕주 . 조이제. 『한국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고백』. 한들, 1997.
 이만열. 『대한성서공회사』. 2권, 대한성서공회. 1993, 1994.
 이만열. 『한국 기독교수용사 연구』. 두레시대, 1998.
 이만열. 『한국 기독교와 민족의식』. 지식산업사, 1991.
 이응호, 『한국성결교회사 1, 2』. 성결문화사, 1992
 이재원. 『대구 장로교회사』. 도서출판 사람, 1996.
 이재정. 『대한성공회 백년사』. 대한성공회 출판부, 1990.
 이진구. 『종교자유에 대한 한국 개신교의 이해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1996.
 이진호. 『안양지방 감리교회 백년사』, 기독교대한감리회 경기연회 안양지방회, 1995.
 이진호. 『한국 성서백년사』. 2권, 대한기독교서회, 1996.
 장규식. 『일제하 기독교 민족운동의 정치 경제 사상』. 연세대학교 대학원, 2000.
 장동민. 『박형룡의 신학 연구』.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8.
 정상운. 『성결교회와 역사연구』. 이레서원, 1997.
 정상운. 『한국 성결교회사(Ⅰ)』. 은성, 1997.
 정석기. 『한국 기독교 여성인물사』. 쿰란출판사, 1995.
 조이제. 『한국 감리교청년회 100년사』, 기독교대한감리회청년회전국연합회 백주년기념사업회, 1997
 주명준. 『전북의 기독교 전래』. 전주대학교출판부, 1998
 주재용. 『한국 그리스도교 신학사』. 대한기독교서회, 1998.
 최광선. 『한국기독교회사 - 장로교성장을 중심으로』. 칼빈서적, 1991
 최규환·최태육·구본선, 『교동 선교 100년사』. 교동지역교회연합회, 1999.
 최기영. 『한국 근대 계몽운동 연구』. 일조각, 1997.
 한국교회사학연구원. 『한국 기독교사상』.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8.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북한교회사 집필위원회. 『북한교회사』.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6.
 한국기독교장로회 역사편찬위원회. 『한국기독교 100년사』, 한국기독교장로회출판사, 1992.
 한규무. 『일제하 한국 기독교 농촌운동』.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7.
 한규원. 『개화기 한국기독교 민족교육의 연구』. 국학자료원, 1997
 한석희(김승태 역). 『일제의 종교 침략사』. 기독교문사, 1990.
 한숭홍. 『한국 신학사상의 흐름』.  2권.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1996.
 홍석창. 『감리교회와 독립운동』. 에이맨, 1998.
 Kim, In-Soo. Protestants and the Formation of Modern Korean Nationalism, 1885-1920: A Study of the Contribution of Horace Grant Underwood and Sun Chu Kil. Richmond: Union Theological Seminary, 1993.
 Paik, Jong Koe. Constructing Christian Faith in Korea: The Earliest Protestant Mission and Choe Pyong-hon, Zoetermeer: Uitgeverij Boekencentrum, 1998.
 Lee, Seung-Joon. The Significance of Eschatology in the Shaping of the Korean Evangelical Religion, 1883-1945. New Jersey: Drew University, 1997.

 최근 출판된 한국 교회사 관련 저술들을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경향을 읽을 수 있다.
 첫째, 통사(通史)류의 저술보다는 보다 세분화된 분야의 연구 저술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두드러진 것은 신학자들에 의해 신학사(神學史) 혹은 신학 사상사를 정리한 역작들(유동식·주재용·한숭홍·한국교회사학연구원 등)이 나왔고 청년운동(민경배·유동식·조이제), 여성운동(김정순·이덕주·윤정란·정석기), 농촌운동(한규무), 민족운동(민경배·이만열·윤경로·박정신·최기영·장규식·신기영·홍석창), 신사참배(김승태) 분야의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같은 연구들을 통해 한국 교회사 이해와 연구의 깊이가 더한 것은 사실이다.
 둘째, 지방 교회사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강화 지역의 경우 강화 선교의 두 축인 감리교와 성공회 역사가 별도로 정리되었고(이덕주·조이제) 그 가운데 교동 지역 목회자들에 의해 교동 선교 역사가 정리되었다. 이외에 대구(이재원)와 호남지역(김수진·주명준) 교회사 연구도 꾸준히 이루어졌다. 지방 교회사 연구는 종래 서울과 중부 지역 중심으로 서술되었던 교회사의 편중성을 교정해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셋째, 본격적인 사회주의 관련 연구(김흥수)와 북한교회사 관련(김광수·김흥수·김진형·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저술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는 1990년 이후 변화된 사회 상황을 반영한 것이기도 한데 그 동안 공개되지 않고 있던 북한 관련 자료들이 읽히면서 해방 이전 북한 교회사 뿐 아니라 해방 후 현대 북한 교회사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북한 교회사 연구는 해방이후 실종된 북한 기독교 역사를 복원한다는 의미와 함께 해방 전에 남·북한이 공유한 역사를 정리함으로 통일 이후 시대를 준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넷째, 일본 기독교 및 일본 교회사에 대한 연구(구라타마사히코·한석희·김수진·윤혜원·서정민)들이 많이 나왔다. 일본 기독교가 일제시대 한국 교회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교회사가들의 일본 기독교사 연구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일본 기독교사 연구만큼은 활발치 못했지만 역시 한국 교회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중국 교회사와 관련 연구(강인규·이관숙)도 나왔다. 이같은 작업은 한국 교회사를 아시아 교회사 시각에서 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다섯 째, 인근 학문들의 한국교회사에 대한 연구가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한국 교회사는 역사신학의 관심 분야만이 아니었다. 한국 사학(이광린·이만열·윤경로·최기영·한규무·장규식)과 종교학(이진구·신광철·김흥수), 사회학(노치준·신기영·강인철·이 철) 분야 학자들의 한국 교회사 관련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이같은 연구 교류를 통하여 한국 교회사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은 물론, 교회사 방법론에서도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여섯 째, 한국 교회사를 주제로 삼은 박사 학위 논문들이 많이 나왔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교회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경우는 외국 대학에 한정되었는데 1990년대 들어서면서 국내 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하는 경우가 훨씬 많아졌다. 1990년대 들어와 외국에서 한국 교회사 관련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은 학자도 많았지만(김인수·김성일·이승준·장동민·백종고·서영일·신기영·이 철 등) 국내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학자들이(정상운·이진구·노치준·신광철·한규무·연규홍·강인철·성백걸·김흥수·서정민·윤정란·강명숙·이덕주·장규식 등) 더욱 많은 추세를 보였다. 이는 한국 인문 학계에서 '한국교회사'가 독립된 연구 장르로 자리 매김을 할 수 있게 되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최근 10년 동안 한국 교회사는 독립된 인문학의 한 분야로 자리 매김을 하게 되었으며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연구에 참여함으로 사관과 방법론에서 다양한 시도들이 가능하게 되었다.

 

 2. 다양한 사관과 방법론 모색

 

 그 동안 한국 교회사 사관은 1) 선교사관(宣敎史觀), 2) 민족교회사관(民族敎會史觀), 3) 민중교회사관(民衆敎會史觀)으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1990년대 들어서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에 참여한 학자들을 중심으로 제시된 '총체적 역사 이해'와 세계 교회사에 대한 전이해를 바탕으로 한 '역사 신학적 이해', 그리고 최근 '토착교회사관'(土着敎會史觀)이 새롭게 제시되고 있다. 따라서 1990년대 한국 교회사 연구는 기존의 사관을 계승·발전시키려는 노력과 함께 사관과 연구 방법론 정립에서 인근 학문의 도움을 받아 다양한 연구들이 시도되고 있다.

 2.1 '선교사관'의 부활

 '선교사관'은 한국 교회사학의 선구자인 백낙준의 『한국개신교회사』(The History of Protestant Missions in Korea, 1832-1910)에서 출발된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지도교수 라투렛(K.S. Latourette)의 지론을 받아들여 "한국 개신교회사도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분명한 '선교사관'(宣敎史觀)을 갖고 방대한 자료를 동원하여 초기 한국 교회사를 정리해 냈다. 그는 기독교 역사를 '복음 선포의 역사'로 규정함으로 일반사와 교회사의 경계와 교회사 연구의 목적을 분명히 하였다. 그러면서 연구방법론으로는 서구 역사학의 실증적 방법론에 충실함으로 그의 연구는 "서구의 역사학적 방법을 충분히 구사하면서 역사학과 선교학을 종합하는 관점에서 생산해 낸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비록 그의 연구가 "한국 교회쪽의 고백과 증언이 전혀 고려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교회사의 내용과 성격을 복음의 확산과 적용 과정으로 규정하고 일반 사학의 실증적인 역사방법론과 선교신학적 해석의 원리를 종합하였다는 점에서 한국 교회사와 관련된 역사신학의 초석을 놓은 점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백낙준과 같은 맥락에서 한국 교회사를 연구한 학자로 김양선과 이호운을 꼽을 수 있다. 김양선은 비록 완성된 한국 교회사 관련 저술은 내지 못했지만 그의 사후 유고를 묶어 펴낸 『한국기독교사연구』(1971)는 개신교 선교와 그 결과 이루어진 한국 교회 역사를 다루면서도 백낙준 저술의 한계인 '한국측 자료 빈곤'을 극복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 즉 그는 선교사들의 기록과 승정원 일기, 왕조실록, 한말 외교문서 등 한국 관변측 자료들을 대조하면서 역사적 사실(事實)을 규명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철저한 실증주의 방법론에 근거하여 자료를 채택하고 분석하려는 의지는 그가 생전에 예장(통합측) 총회로부터 부탁을 받고 저술한 『한국 기독교 해방 십년사』(1955)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국 교회 '분열사'라 할 수 있는 해방 10년사를 정리하면서 그는 자신이 속한 교단측에 불리하게 읽힐 수도 있는 지료들도 원문 그대로 인용, 혹은 소개함으로 '실증적' 자료 검증을 통한 역사 서술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외국 유학의 경험이 없었던 그는 한국측 자료를 충분히 소화하면서 선교사들이 남긴 자료들을 분석하여 한국 교회사를 서술하였다는 점에서 백낙준의 한계를 극복하였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이호운은 해방 후 미국에 유학하여 개렛신학교에서 역사신학을 수학하고 돌아와 감리교신학교와 대전감리교신학교 교수로 교회사를 강의했다. 그는 아쉽게 1969년 별세하여 많은 연구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1970년 유고집으로 간행된 『한국교회 초기사』가 있어 그의 학문적 관심과 방법론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사관이나 연구 방법론에서 백낙준과 거의 일치한다. '한국측 자료 빈곤'이라는 백낙준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의지에서 한국사 관련 도서들이 인용되고 또 내용에서 한국 근대사 관련 기사가 상당 부분 첨부된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적인 주제는 "세계 기독교 선교운동의 흐름이 어떤 과정을 거쳐 한국에 유입되어 교회 설립으로 이루어졌는가?" 하는 선교사적 관점이다. 그리고 비록 선교사들의 보고 자료를 근거로 한 것이긴 하지만, 복음을 수용한 결과로 나타난 한국 기독교인들의 신앙적 특징을 정리한 것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수요 예배와 금요 예배, 새벽 기도회, 사경회 같은 토착적 예배 문화와, 우상타파와 구습 철폐 같은 기독교인의 사회개혁 활동을 한국 기독교인들의 특징적 신앙으로 소개함으로 한국 교회사에서 한국 기독교의 '토착적 성격'을 규명해 내는 작업의 단서를 제공한 것이다.
 그러나 '선교사관'은 '민족교회사관'이 등장한 1970년대 이후 심각한 위기 상황에 몰렸다. 심지어 1980년대 들어서 '반미', '반외세'라는 급진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 한국 교회사에서 선교사들의 활동은 비판적 연구의 대상이 되었고 '선교사관'은 '반(反)민족적 사관'으로까지 매도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면서 '용도 폐기' 상황으로까지 몰렸던 '선교사관'의 부활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는 한국 교회의 신앙과 신학 형성 과정에서 선교사들의 역할이나 영향력을 배제할 수 없다는 사실 인식에 바탕을 두고 선교사와 선교사를 파송한 구미 교회 신학과 선교 정책을 연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1) 선교사 관련 자료들의 발굴과 정리 작업, 2) 선교사들의 신학과 업적에 대한 재평가 작업, 3) 선교사를 파송한 구미 교회의 신학적 경향과 선교 정책 연구, 4) 한국인 그리스도인들이 선교사로부터 받은 신학 교육과 그 영향에 대한 연구들이 진행되면서 '선교사' 신학의 실체와 그것이 한국 교회 성격 형성에 끼친 영향을 조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1세대' '선교사관' 학자들이 간과하였던 선교사와 구미 교회 신학 및 선교 과정에서 나타난 오류와 부정적 결과를 확인하면서 동시에 선교사와 구미 교회를 통한 세계 교회사와 한국 교회사의 연결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지나치게 '민족' 상황을 강조한 결과 범할 수 있는 국수주의적 폐쇄성을 극복하고 한국 교회의 역사를 세계 기독교의 '보편적' 역사와 연결시킬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계 교회사 서술의 사관을 한국 교회사 서술에 적용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났다. 주로 외국에서 한국 교회사를 주제로 하여 학위를 받고 들어온 교회사가들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구속사관(救贖史觀) 내지는 섭리사관(攝理史觀)의 입장"에서 한국 교회사를 정리한 김인수의 작업이나 "성경을 규범으로 삼되 교회와 성경 이해를 포함하는 신학을 그 전통에 비추어 평가하며, 또한 그것을 한국의 역사적, 문화적 및 사회적인 상황에 비추어 고찰"한 김영재의 작업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2.2 '민족교회 사관'의 계승

 '선교사관'을 극복하기 위한 '민족교회사관'(民族敎會史觀)을 제시한 민경배는 "교회가 민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에큐메니칼한 사명을 전제하고, 그 성립과 전개에서 민족의 교회로서 구형된 정신과 과정을 주체로 역사를 일괄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그 '정신과 과정'의 역사를 규명하는 방법론으로 신앙의 내연(內燃) - 체험의 외연(外延)이란 도식을 제시하였다. 그의 한국 교회사 연구가 "스스로 확실한 사관을 의식하면서 쓴 최초의 통사"로서 중요한 업적이자 의미가 크지만 한계도 있다. 민중 신학자들이 지적하는 대로 교회사를 지식인·엘리뜨 중심으로 서술함으로 '민중 부재의 정치체제 중심의 사관'이란 비판을 받고 있으며 지나치게 '주관적' 사관에 매인 결과 역사가 지닌 다양한 요인과 결과들을 간과하거나 자료를 취사 선택하는 과정에서 '연역적 오류'를 범할 위험이 있다. "민족적인 감정과 민족을 너무 앞세운 나머지, 외국 선교회를 '민족교회' 설립의 저해하는 요소로 보는 경향이 너무 짙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민족 교회사관'이 갖고 있는 치명적인 한계는 서구 교회로부터의 단절이 아니라 '민족 교회'라는 개념의 모호함에 있다. 민경배 자신도 그 점을 인식하여 '신개정판'(1993) 『한국기독교회사』 서문에서 '민족 교회' 개념을 설명하는데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였다. 즉, "'민족 교회'는 저 악명의 volkskirche는 물론 아니다. 아모스가 공격한 선민 의식도 아니다."고하여 자신의 '민족 교회' 개념이 유대교와 독일 나치즘이 표방한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민족 교회 개념은 단재 신채호의 국혼적 민족주의와 무관하고 더욱이 비아(非我)의 절대 적(敵)이라는 단정과는 근본적으로 상극한다"고하여 소위 한국사의 '민족 사학'에서 말하는 저항적 민족주의 개념도 아님을 밝혔다. 그가 말하는 "저항의 역사"는 폐쇄적 민족주의에 대한 저항, 그같은 민족주의의 필연적 결과로 빚어지는 무정부 상태에 대한 저항의 역사일 뿐이다. 결국 그가 추구하는 '민족 교회'는 "성서의 구속적 진리라든가, 인간성, 종교적 자유와 같은 대의가 선행하여 확립되고, 그것이 한국이라는 지역에서의 실현을 추진해 나가는 단위 개념일 따름이다"고하여 오히려 자신의 '민족교회사관'이 추구하는 것은 한민족 '고유의' 역사적 전통보다는 성서와 세계 교회 역사와 공유하는 '보편적' 기독교 전통의 한국적 적용임을 분명히 하였다. 이 점에서 그의 민족교회사관은 '민족' 보다는 세계 기독교의 보편적 가치에 보다 충실하고자 하였고 그런 면에서 그의 사관은 '선교사관'과 맥을 같이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같은 '민족교회사관'은 1980-90년대에도 민경배의 '단독' 사관으로 유지되다가 최근 서정민에 의해 방법론에서 한층 발전된 측면을 보이게 되었다. 즉 서정민은 '교회와 국가'라는 신학적 주제로 한·일 기독교 관계사를 연구하면서 '내연-외연'이라는 민경배의 역사 해석의 틀을 그대로 계승하는 동시에 방법론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였다. 그는 민경배의 역사 이해를 역사적 표상(외연)과 섭리적 의미(내연)이라는 '역사적 이중구조'로 해석하면서 이것을 '신앙현상학' 측면에서 '국가적응 신앙유형'(丁夏祥型)과 '국가배타 신앙양태'(黃嗣永型)이라는 '양축자장구조'(兩軸磁場構造)로 설명하였다. 그는 민경배의 '역사적 이중구조'를 신앙(씨줄)과 민족적 정황(낱줄)의 '상황교차'(狀況交叉)라는 용어로 설명하기도 한다. 결국 서정민은 민경배의 '역사적 이중 구조'라는 신학적인 주제를 사회학적 구조주의 개념을 빌어 설명을 시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2.3 '민중교회 사관'의 전개

 '민중 부재'라는 민족교회사관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로 주재용의 '민중교회사관'(民衆敎會史觀)이 제시되었다. 그는 선교 백주년을 맞아 한국의 기독교가 준비하는 모든 행사의 초점이 "한국 기독교의 정체(identity)가 무엇이냐는 물음과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이 되어야 함을 지적한 후 그 같은 대답의 학문으로서 한국 교회사는 "민중의 전망에서", "다른 말로 하면 고난의 역사 속에서, 즉 고난받는 민족에 의해 싹이 튼 한국의 기독교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적인 의식구조 형성, 사회사상적인 측면에 보다 더 큰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제시하였다. 이같은 그의 민중교회사관은 1980년대 한국 교회와 민족이 겪고 있던 '민중 저항운동적 상황'에서 상당한 호응을 불러 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같은 사관에 입각한 '한국 기독교 민중사'는 아직 실체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민중교회사관이 "한국 교회를 있게 한 전통적인 복음 이해와 교회관을 송두리째 부정"함으로 "자체의 설 자리도 없게 되는" 교회 부재의 역사가 될 수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민중교회사관은 '소외 계층', '수난 계층'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촉구함으로 자칫 '정통 중심', '다수 중심', '기득권 중심'의 안정지향적 교회사 서술이 범할 수 있는 편중적 역사 이해'를 교정해 주었다는 점에서 기여한 바가 크다.
 민중교회 사관에 입각한 한국 교회사 서술 요구의 압박을 받고 있던 주재용은 비록 한국 교회사는 한국 교회 신학 사상사를 정리한 『한국 그리스도교 신학사』(1998)를 펴냄으로 부분적이나마 그 요구에 응답하였다. 그가 처음 민중교회사관을 제시했을 때부터 강조하였던 '시기 구분'을 『한국 그리스도교 신학사』에서 적용하여 한국 개신교 신학운동사를 1) 선교사의 신학에 의해 지배받던 신학 식민지 시대(1885-1933), 2) 보수와 진보주의 신학의 갈등과 투쟁의 시대(1933-1960), 3) 한국 문화·역사 현실에서 주체적인 한국 신학을 형성하려는 산고기(1960-1973), 4) 한국의 문화·역사 현실에서 한국 신학을 전개하려는 시기(1973- ) 등 4기로 나누어 정리하였다. 그의 시기 구분에서 주목되는 것은 "한국 신학의 바벨론 포로기"를 중심으로 전 시대와 후 시대를 구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선교사들에 의해 주도되었던 신학과 한국인들에 의해 전개된 신학을 구분하고 한국 교회의 주체적 신학에 보다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선교사들과 그들에게 교육받은 청교도적 보수 전통주의 신학자들에 의한 '신학의 바벨론 포로기'와 이런 보수주의 신학에 "이의 제기"를 함으로 비롯된 보수·진보 간 신학 갈등과 논쟁이 한국 신학사를 구분하는 기준점이 된 것이다. 그 분깃점에 보수신학을 대변한 박형룡과 진보 신학을 대변한 김재준이 있고 그런 의미에서 '바벨론 포로기'의 기점은 "한국 신학사에 김재준이 등장한 ... 1933년"이 된다.
 그러나 이같은 시기 구분이 갖고 있는 한계도 있다. 우선 한국 신학사를 선교사 신학과 한국인 신학으로 2분하여 선교사 신학을 '지배자 신학'으로, 한국인의 신학을 '해방의 신학'으로 규정하는 2분법적 구조 인식이 갖고 있는 위험성이다. 이는 '민중 사관' 내지 '민중 신학'이 같고 있는 민중에 대한 정치 구조적 개념을 그대로 적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같은 역사 해석은 사관주의가 갖고 있는 연역적 오류를 범할 위험이 크다. 그리고 '주체적'이란 개념을 반(反) 선교사 내지 반(反) 외세로 규정할 경우 한국 신학을 '반동'(反動) 신학으로 제한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기득권층에 대한 소외계층의 저항과 해방의 역사를 민중의 역사로 보듯, 신학사에서 '보수주의' 기득권 신학에 대한 반동 신학으로 형성된 '진보주의' 신학을 한국의 주체적 신학이라 규정하기에는 문제가 많다. 왜냐하면 보수주의 신학에 저항하는 진보주의 신학 역시 '서구 전통'의 신학이었기 때문이다. 박형룡이 '메첸 신학'에 철저했던 것처럼 김재준 역시 다양한 서구 '고등비평 성서신학'에 충실했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결국 민중교회 사관은 그보다 앞선 선교사관과 민족교회 사관 모두를 비판하며 '민중 중심'의 교회사 정립을 외치고 나왔지만 그 실체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이는 민족교회 사관이 '민족 교회'란 개념 설정에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처럼 민중교회 사관도 '민중'이나 '민중 교회'란 개념 설정에 실패함으로 사관이 의지한 바를 방법론에서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2.4 한국 교회사와 인근 학문의 교류

앞서 1990년대 출판된 한국 교회사 관련 저술 목록에서도 확인되었듯, 최근 10년 사이에 한국 교회사 연구의 폭이 급속도로 확대되었다. 그 동안 주로 신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어 오던 한국 교회사 분야에 최근 들어서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참여함으로 이해의 폭과 깊이를 더하고 있다. 우선 두드러진 현상은 일반 사학, 특히 한국 근대사를 전공한 학자들의 참여 현상이다. 한말 이후 전개된 한국 교회사는 민족의 수난과 저항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 교회사는 한국 민족사 관점에서 보아야 할 측면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수용사'(受容史) 관점에서 한국 초기 교회사를 보려고 시도한 이만열과 근대 민족사와 상관 관계에서 교회사 사건들을 해석하려 한 윤경로의 연구가 주목을 받고 있다.
그리고 한국 교회사와 민족사의 관계는 단순한 사관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일반 사학이 추구하는 실증적 역사방법론의 도입으로 이어졌다. 교회사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역사적 실증방법론을 채용하게 됨으로 '규범'과 '해석'의 학문으로서 신학이 갖고 있는 특징 때문에 자칫 '사관주의' 역사 서술이 범할 수 있는 '연역적 오류'(reductio ad absurdum)를 피할 수 있게 되었다. 객관적 사실 규명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역사적 해석이라는 교회사의 고유 업무가 한층 깊이를 더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종교학과 사회학 분야에서 한국교회사를 연구함으로 기독교의 신앙 양태 분석 및 사회적 기능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가능하게 되었다. 종교학은 교회사의 주요 내용이 되어야 하는 기독교인들의 신앙과 종교 체험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촉발시켰다. 사회학은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종교 행위들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 '신앙'이란 표면 속에 내재해 있는 '현실'의 실체를 규명해 냄으로 한국 교회사를 객관적 현실의 학문으로 정착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 종교학과 사회학의 현상학적, 구조주의적 분석 방법론은 신학에서 자칫 변증적이고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하기 쉬운 신앙 분석의 자세를 객관적인 것으로 교정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처럼 한국 교회사가 한국 사학, 종교학, 사회학 등 인근 학문들과 교류하면서 한국 교회사의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되었음은 물론이고 그 동안 기독교 신학의 범주 안에 갇혀 있던 한국 교회사 영역을 일반 인문학 분야까지 '외연'시켰다. 이같은 과정을 통해 한국 교회사에 대한 '총체적' 이해가 가능하게 되었고 그러한 점에서 교회사와 인근 학문과의 교류는 계속 확대될 전망이다.

 2.5 새로운 사관 정립의 시도: 토착교회 사관

이제 필자는 지금까지 살펴본 사관 및 방법론 문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보다 '통전전으로' 한국 교회사를 이해하기 위한 시도로 '토착교회사관'(土着敎會史觀)을 제시한다. 토착교회사관은 "기독교 복음이 한국이라는 민족 상황에서 수용-해석-적용된 결과로 형성된 토착교회"의 역사에 주목한다. 이는 다른 종교도 그러한 과정을 거쳤지만 한국에서도 기독교 복음이 전파되는 그 순간부터 '토착화'(土着化, indigenization)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고 그 결과로 형성된 토착적 신앙에 1차적인 관심을 갖고 이를 분석함으로 한국 교회 특유의 존재 양태를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그 결과 한국 교회는 '서구' 기독교 신앙·역사 전통 및 한국의 고유 종교·문화 전통과 '구분되면서도 연결되는'(seperatus et continuus) '제 3의 전통'을 형성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한국 교회사에서 이러한 '제 3의 전통'을 규명하는 것이 토착교회사관의 궁극적 목적이다.
 이같은 토착교회 사관은 기존의 한국교회사 사관과 '연결되면서도 구분되는' 특징을 지닌다. 우선 토착교회사관은 교회의 역사를 복음의 선교 역사로 본다는 점에서 '선교사관'과 일치한다. 교회사와 다른 일반사와 구별할 수 있는 근거는 복음이라는 종교적 체험과 신앙의 내용이다. 교회사는 복음을 수용-해석-적용한 기독교인들의 행동과 사상을 정리하는 것으로 목적을 삼는다. 다만 토착교회사관은 그러한 복음의 수용-해석-적용의 과정을 선교사보다는 한국인들의 역할로 본다는 점에서 선교사관과 차이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토착교회사관은 한국인의 주체적인 복음의 수용-해석-적용 과정에 주목한다.
다음으로 토착교회사관은 복음의 수용-해석-적용 과정이 신앙의 내면적 형성과 그 외향적 표현이라는 점, 그리고 복음의 구체적 적용 대상이 '민족 상황'이라는 점에서 '민족교회사관'과 일치한다. 복음이 선교의 내용이라면 민족은 선교의 현장이다. 따라서 복음은 민족 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그 상황 속에서 자신을 표현한다. 특히 한국 교회사는 한민족 공동체의 정치·사회·종교·문화적 상황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토착교회사관은 민족의 정치·사회적 상황과 함께 토착 종교·문화적 상황도 중요한 요인으로 인식한다. 이 점에서 한국교회의 정치·사회적 기능에 초점을 맞추었던 민족교회사관과 차이가 있다. 토착교회사관은 한국 기독교의 정치·사회적 민족운동과 함께 토착 종교·문화 전통과 만나 이룩해 낸 토착적 기독교 문화에 같은 관심을 둔다. 
또한 토착교회사관은 복음의 사회개혁적 기능에 초점을 맞추고 기독교 복음의 관점에서 불의하고 왜곡된 가치관과 사회 구조에 저항하는 기독교의 역사에 관심을 둔다. 이 점에서 '민중교회사관'과 일치한다. 교회가 전통 사회 및 문화에 대한 기능은 통합(integration)/분리(segration)/변혁(transformation)으로 구분되는데 교회가 민족 상황에 함몰해 들어가는 통합 기능이나 그 반대로 교회가 민족 상황과 단절/배척되는 분리 기능은 역기능적인 면이 많다. 따라서 토착교회사관은 자기 주체성을 지키면서 그것을 사회와 문화에 적용하여 나타난 결과에 주목한다. 그러나 민중교회사관이 교회의 정치·사회적 저항/해방 기능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토착교회사관은 이를 포함하여 토착 종교·문화 전통에 대한 변혁 작업에도 관심을 둔다. 토착교회사관은 민중교회사관이 간과하고 있는 문화신학적 측면을 중요시한다.
토착교회 사관은 이같은 관점에서 기독교 복음이 교회를 통하여 민족 상황에 적용된 결과를 주목하여 한국 기독교인들의 다양한 신앙 양태를 분석하는데 관심을 둔다. 즉 성서/'체험/'전통이라는 '복음'의 3대 요인이 통합/분리/변혁이라는 교회의 3대 기능을 통해 정치·사회적 현실/종교·문화적 전통이라는 '민족 상황'에 적용된 결과로 나타나는 다양한 신앙 양태들을 분석하여 한국 교회 '고유'의 신앙 전통과 특징을 규명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그 결과 한국 교회는 세계 기독교 역사와 신앙 전통 및 한국 민족사와 종교·문화 전통과 '연결되면서도 구분되는' 제 3의 전통을 수립하였음을 밝히고 거기에서 한국 교회의 정체성(Identity)을 찾으려 한다. 즉 서구 기독교 역사와 신학이 보유한 '보편적'(universal) 가치와 이념을 공유하면서도 한국의 정치·문화·종교 전통 속에 뿌리를 둔 '민족적'(national) 가치와 이념과 연결됨으로 한국 교회는 '보편적' 가치를 통해 세계 기독교와, '민족적' 가치를 통해 한국 전통 문화와 사회 현실과 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3. 맺음 글

 

 최근 10년간 한국 교회사는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 왔다. 기존의 사관과 방법론을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키려는 노력들과 함께 인근 학문들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교회사 이해와 방법론 모색에서 깊이와 넓이를 더했다. 교류 확대야말로 최근 한국 교회사 연구의 가장 두드러진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같은 과정을 통해 한국교회사는 독립된 학문으로서 영역을 구축하였을 뿐 아니라 다른 학문들과 연대할 수 있는 위치를 확보하였다. 이제 한국교회사는 '역사신학자'들의 배타적 고유 영역으로 남아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최근 10년간 그 같은 '도그마'(dogma)는 계속 붕괴되었고 그 과정을 통해 한국 교회사는 보다 자유로운 상황에서 인근 학문과 교류를 확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같은 한국교회사의 '자유와 해방'은 또다른 측면에서 혼란을 가져 왔다. 사관과 방법론, 연구 주제와 시각 측면에서 전에 없던 저변 확대가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그것이 과연 인근 학문과 '동등한 위치'에서 학문적 교류를 할 수 있을 만큼 질적 성숙을 이룩했는가 하는 점에서는 오히려 후퇴한 점이 없지 않다. 한국 근현대사 전공자들의 참여로 한국 교회사와 한국사의 교류가 이루어진 점은 인정되지만 여타 '신학자'들이나 '교화사가'들의 연구가 일반 사학이나 종교학, 사회학과 교류할 수 있을 정도의 '학문성'을 구비했다고는 장담할 수 없는 실정이다. 결국 한국교회사는 '외부' 학문 전공자들의 줄기찬 '두드림'에 마지못해 문을 여는 소극적인 대응으로 형국이 되었고 교회사가들의 적극적인 '자기 개방'은 미흡한 실정이다.
 그러한 점에서 한국 교회사는 위기와 기회를 맞고 있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한국 교회사가 위치한 '경계선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한국 교회사는 사실 규명에 충실한 역사학과 해석에 초점을 맞추는 신학의 경계선, 세계 기독교 역사 전통에서 확인되는 '보편적' 가치와 한국 민족사 전통에서 강조하는 '특수한' 가치의 경계선에 위치하면서 양측으로부터 도전과 도움을 받고 있다. 이제 경계선상의 한국 교회사는 '양자택일'(either or) 개념이 아닌, '연결과 보완'(and both) 개념에서 성격이 다른 두 영역을 종합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역사신학으로서 자기 고유의 영역과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학문과 '열린' 대화, 학문적 교류를 할 수 있는 자신감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러한 점에서 한국 교회사 연구자들에게는 구별과 단절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폐쇄적 입장이 아니라 교류와 협력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인해 나가는 개방적 자세가 더욱 요청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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