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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영성 (누가복음 24 : 13-35) 이 중 표 목사

하나님아들 2020. 2. 4. 23:20

성서의 영성

(누가복음 24 : 13-35)

이 중 표 목사

(한신목회개발원 원장)

 

4회 전국목회자 세미나 주제는 영성 개발니다. 영성 개발은 목회자들의 관심을 끄는 주제라고 생각됩니다. 목회자들의 영성이 개발되면 교회가 크게 부흥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영성과 교회 성장과의 관계를 기능적인 면에서 본 것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목회자의 인격 성숙이라는 면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회에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인격 개발이며, 교회 발전은 인격 개발의 결과입니다. 오늘 이 시대의 목회자들은 교회 성장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격 개발에는 관심이 작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영성은 하나님 앞에서 서야 할 인격에 관한 것이요, 교역은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할 사역에 관한 것입니다. 어느 것도 소홀히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먼저 목회를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진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영성과 교역은 목회자의 삶의 양면입니다. 영성 개발과 교회 성장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대부분 영성의 개발은 교회 발전을 가져오게 됩니다. 열두 제자들의 영성 개발을 위해 예수님께서 시키신 훈련 방법을 연구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영성은 정신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령 소크라테스의 정신을 자기의 정신으로 내면화시켜 그 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스토아주의 영성이라고 지칭합니다. 부처의 정신을 내면화하여 그 인격과 삶을 본 받는 것을 불교 영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가 아닌 타종교나 철학적인 일반적 영성은 이상적인 것을 자기 정신으로 받아들여 그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자기 생명을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은 영성은 엄격한 자기 훈련과 수양을 통하여 자신의 성품을 바꾸려는 인간적인 노력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영성은 성령 안에서 우리에게 임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사실에 초점을 둡니다. 기독교의 영성은 성서적 영성입니다. 그러므로 성서에 계시된 영성입니다. 성서에 근거하지 않은 영성은 하나님의 영성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영성을 계시하여 주셨으므로 우리는 성서에서만 영성을 찾고, 만나고, 개발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와 말씀을 나누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믿지 못하고 슬픔에 잠겨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 곁에 다가와 그대들이 주고받는 이야기가 무엇이오?”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글로바라 하는 사람이 당신은 예루살렘에 우거하면서 거기서 된 일을 알지 못하시오?”라고 말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물으시자 글로바는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들 앞에서 그 하신 일과 말씀에 큰 능력을 보이신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이스라엘을 구원해줄 자로 알았으나 죽은지 사흘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인이 오늘 새벽에 무덤을 찾아가 보았더니 그분의 시체가 없어졌고, 천사들이 그분은 살아 나셨다고 일러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몇 사람이 무덤에 가보았으나 여전히 예수는 계시지 않고 빈 무덤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들으신 예수께서 미련하여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늦게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라고 하시며 모세와 많은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성경에 기록된 자신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셨습니다.

두 제자가 엠마오 가까이 이를 때에 날이 저물었습니다. 두 제자는 예수님을 강권하여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두 제자와 함께 유하며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희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인 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자, 곧 예수님은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때에 두 제자는 이런 말을 주고 받았습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여기에 예수께서 가르쳐 주시는 중요한 진리가 담겨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자신을 증거해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여기 있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모세와, 선지자의 예언과, 성경에 기록된 메시야의 수난과 부활을 증거하여 주실뿐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직 성서의 증거를 통하여 알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경 한 권의 사람이셨습니다. 오직 성경만을 통해 당신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셨고 말씀을 믿도록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바로 알기 위해서는 성경으로 돌아가라고 권면하십니다.

목회자는 언제나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받는 길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예수를 잃어버리고 엠마오로 돌아가는 두 제자처럼 슬퍼할 때가 있습니다. 어느 곳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성경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만나려면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목회자가 영성을 개발하고자 할 때도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에서 만나야 합니다. 말씀으로 뜨거워져야 합니다. 성경으로 돌아가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성경에서 예수를 만날 때 성경은 살아 있는 말씀이 됩니다. 성경에서 만나지 못한 예수는 환상에 그칠 수가 있습니다. 기독교의 영성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이라면 성경에서 케리그마를 알 때 영성이 개발됩니다. 케리그마는 케루세인(κηρυσσειѴ)에서 온 명사입니다. 케루세인은 전파하다는 뜻으로 여기서 파생된 케리그마는 전파하는 내용입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 재림의 전사건을 의미합니다. 결국 성경은 케리그마를 증언하는 것이요, 케리그마가 성경의 중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영성은 케리그마 영성입니다.

성경에서 케리그마를 찾을 때 영적으로 유익할 뿐만 아니라 영성도 개발됩니다 예수님 당시 서기관과 율법사들은 성경 속에 있는 케리그마를 발견하지 못하고, 탈무드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술이나 교훈을 중히 여겼습니다. 물론 성경은 예수 없이도 어느정도 유익합니다. 시편을 읽으면 시적인 지혜가 생깁니다. 출애굽기나 역사서를 읽으면 정치철학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인간 윤리의 대강령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유익함을 얻으려면 성경에서 케리그마를 발견해야 합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5 39).

 

둘째,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을 부르십니다.

 

성서는 예수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증거하는 일에 사람을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셨던 사람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할 수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쓰실 때 인물이 잘나서 쓰신 것이 아니요, 능력이 많아서 쓰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예수를 증거할 수 있는 영성을 가졌기 때문에 쓰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26절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들의 부르심을 보라. 육체에 따라 지혜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하였습니다.

비록 무능하고, 어리석고, 약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할 수 있는 영성을 가진 사람일 때 들어 쓰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영성의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외국으로 유학을 가서 신학에 대한 많은 공부를 해도 영성 개발을 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많은 활동을 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사람들처럼 영성을 개발해야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훌륭한 목사님 지도아래 신앙 생활을 한 사람은 영성에 큰 복을 받은 것입니다. 신학교에서 깊은 영성을 가진 교수에게 지도를 받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그러면 목회자에게 요구되는 영성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를 바로 알고, 예수의 마음으로 살며, 예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깊은 영성을 소유한 사람으로 아브라함과 다윗을 들고 있습니다. 마태는 신약전서의 첫 마디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1 : 1)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은 문벌이 좋고 학벌이 높은 사람이 아닙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최대의 영성의 사람으로 인정하셨던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깊은 영성과 통했기 때문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신 것은 깊은 영성을 발견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본토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지시한 땅이 어디입니까? 아브라함은 가나안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서 복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가나안 땅은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애굽으로 피난을 가기로 했습니다. 그 땅은 모리아 땅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백 세에 얻은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모리아산으로 갔습니다.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하나님께 바치려는 순간 네 아들을 손대지 말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하신 수양을 발견하고 아들 이삭대신 번제로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 땅에서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22 : 18)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는 말씀에 대한 성취로 주어진 약속이었습니다. 왜 아브라함은 이토록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케리그마 영성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모리아산은 케리그마 영성을 개발하는 정상이었습니다.

다윗은 시인이요, 용감한 군인이요, 훌릉한 정치가요, 음악가였습니다. 그는 골리앗을 물맷돌로 쓰러뜨린 용감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인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죄를 짓고 악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회개하고 하나님의 신비한 은혜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는 허물의 가리움과 죄의 사함을 주는 십자가의 구속의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51 : 14)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다윗은 죄를 지었지만 회개 하므로 큰 은혜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랑을 고백하는 케리그마 영성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성서가 보여주는 비밀입니다. 우리에게 최고의 과제는 케리그마 영성 개발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지도자로 들어 쓴 사람을 중보자라고 합니다. 중보자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 사람에게 전달하고, 사람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중보자로 제사장, , 선지자를 세우셨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축복을 전해주는 자요, 인간이 죄를 하나님께 가지고 나왔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사죄함을 받아주는 자들입니다. 왕은 하나님의 권세를 위탁받아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이며, 선지자는 하나님 말씀을 받아 백성에게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구별하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머리에 기름을 붓는 일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아 구별되었습니다. 기름부음 받은 자로 오실 그리스도를 계시하는 사람으로 성별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알고 산 사람들은 영성의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쓰셨고, 그러지 못한 사람은 거짓 제사장, 패역한 왕, 거짓 선지자로 버림을 받았던 것입니다. 기름부음 받은 것은 영성의 사람으로 은총을 입은 것입니다. 그러나 기름부음 받은 자가 뜻을 이루지 못할 때는 비참하게 됩니다.

우리가 구약을 분류할 때 율법서, 역사서, 시가서, 예언서로 구분합니다. 이 가운데서 개인 신앙 고백서인 욥기, 시편, 잠언, 아가서를 제외하면 율법서, 역사서, 예언서로 이스라엘 공동 문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세 오경 율법서의 중심 사상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내용입니다. 모세오경에서는 백성의 죄를 위하여 피흘리는 어린양과 이를 집행하는 제사장의 주요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가 만백성의 죄를 위하여 피흘려 죽으실 것을 계시해 주는 것입니다. 기름부음 받은 제사장은 장차 기름부음 받은 자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제사장으로 쓰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에게는 애굽 궁전에서 배운 학문적 지성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지성을 인정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지성은 결국 사람 죽이는 살인자의 지성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미디안 광야로 내몰아 40년을 연단하신 후 그에게 한 가지 지성을 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아는 지성으로서 그의 영성을 개발시켜 주셨습니다. 그 지성으로 시내산에서 율법과 제사법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낸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모세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종으로 쓰임을 받았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가 행한 많은 기적은 신적 권능을 나타내기 위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모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케리그마 영성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은 영성이 깊은 사람을 통하여 일하셨습니다. 역사서인 열왕기서와 역대서에 보면 이스라엘의 많은 왕을 기름부어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왕 중에서 영성이 있는 왕은 극히 소수였습니다. 예언서의 중심은 선지자입니다. 이사야서는 대예언서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고난과 부활을 가장 많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다른 선지자에 비해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을 가장 많이 소유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기름부음 받은 영성의 사람이었습니다. 성서에 나타난 위대한 인물들은 세상적인 지성이나 그의 탁월한 능력 때문에 쓰여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영성을 가진 사람들이었기에 하나님이 택하여 쓰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습니다. 그 중심 속에 케리그마가 있을 때 그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이 케리그마 영성에 이르도록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케리그마 영성이 있는 사람을 쓰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원하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율법적으로 흠이 없거나 윤리적으로 착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케리그마 영성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야 하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노릇하며, 귀신을 쫓아 내며,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게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 하리라” (7 : 21-23)고 하였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모른다고 하셨습니까? 그들 속에 케리그마 영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속과 분리된 금욕적인 경건한 영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귀신을 몰아낼 수 있는 영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개혁에 헌신적으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무엇보다도 케리그마 영성의 사람인가를 먼저 분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늘 성찰해야 합니다 나는 케리그마 영성이 있는 사람인가하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 13 : 5)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성경에서 영성에 유익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예수를 만납니다. 우리는 섬기는 자리에서, 작은 자에게서 예수를 만납니다. 어떤 사람들은 꿈으로, 환상으로, 입신으로 예수님을 만났다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를 만나고 천국에 가보았다라고 말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처럼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만난 예수는 온전치 못합니다. 그렇게 좋은 천국을 보았다면 다음과 같은 간청을 예수님께 했어야 합니다. “예수님, 이렇게 좋은 곳에 왔으니 이대로 여기서 살게 하옵소서라고 예수님 옷자락을 붙들고 사정했으면 그대로 천국에 있을 텐데 그런 말은 못하고 여기와서 허풍을 떠는 것을 보면 좀 잘못된 사람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천국을 보고, 성경에서 예수님을 보며, 성경에서 재림을 보아야 합니다. 체험으로 천국과 예수를 만나는 것은 위험합니다. 목회자가 교인들에게 성경을 통해 예수를 바르게 증거해 주지 않으면 시한부 종말론에 빠져 잘못된 길로 가게 됩니다. 예수님은 성경을 상고하라. 성경이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5 : 39)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을 떠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도 성경에서 자기를 만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성령께서 그리스도에게 속한 모든 비밀(3 : 4)을 알리고 나타내실 때 성경외에 다른 것을 사용치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연구하고 공부해서 영적 유익을 얻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여기에서 자라납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3 : 10) 가장 큰 소원이요, 목적이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이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안다는 것은 지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이론적인 것보다 경험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일반적인 것보다 개인적인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께서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에 대해 깨우치실 때 거듭난 자의 심령에 주시는 초자연적 지식인 것입니다. 성경은 영성 개발에 절대 유일한 책입니다. 여기에서 은혜를 얻어 더 큰 믿음에 이르러야 합니다.

성서를 통해 영성이 개발된 아더 핑크를 소개하겠습니다. 아더 핑크의 저서를 읽으면 영적으로 큰 유익을 얻게 됩니다. 그분의 책에서는 예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항상 즐겨 읽는 책이 성경과 아더 핑크의 저서입니다. 아더 핑크는 1886년 영국 노팅햄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가 무디 성경학원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는 미국과 호주에서 순회 성경 연구 교사로 일했으며, 1934년 영국으로 건너가 성경 연구지를 창간하여 성경 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1952년 하나님께로 부름받아 갔습니다.

아더 핑크는 성경은 언제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가라는 책에서 성경이 우리의 영성 개발에 어떻게 도움을 주는지 밝히고 있습니다.

1)성경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될 때 영적으로 유익이 됩니다.

성경은 거울과 같습니다. 인간의 죄인됨을 알려줍니다. 성경은 인간의 마음을 조명시킴으로써 자신들이 절망적 상황에 처한 죄인임과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는 허물된 인간임을 깨닫게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소망이며 그를 떠나서는 결코 하나님의 공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합니다 그러므로 영성을 개발하려면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껴야 합니다. 성경이 설교의 도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예수께로 가까이 가는 길이 되어야 합니다.

2)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와 더욱 생동감이 넘치는 교제가 이루어질 때 영적으로 유익이 됩니다.

예수께서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8 : 56)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모세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마음 때문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11 : 26)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가장 유익한 일임을 고백하는 말씀입니다.

3)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를 정열적으로 사랑하게 될 때 영적인 유익을 얻게 됩니다.

처음에는 우리의 필요 때문에 그리스도께 나아가지만, 계속 가까이 나아가면서 그리스도와 교제할수록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에게 미치게 됩니다. 마리아처럼 그의 발아래 엎드릴 때 우리는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는 분으로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스도 없이 살 수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4) 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더욱 존귀하게 될 때 영적인 유익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온전하심에 매료되면 될수록 더욱 그분을 사랑하고 찬양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1:26),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5)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이 더욱 깊어질 때 영적인 유익을 얻게 됩니다.

성경은 읽으면 읽을수록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고 그의 믿음으로 살게 합니다. 또한 성경을 보면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사모할 자 없나이다”(73 : 25)라는 심정으로 그리스도께 나아가게 됩니다. ,

6)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열망이 간절할 때 영적인 유익을 얻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살려는 마음이 충만해야 합니다. 어떻게 이런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까? 충성스러운 사람을 만나야 하고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런 충성스런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성경에 있습니다.

7)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의 재림을 갈망하게 될 때 영적인 유익을 얻게 됩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궁극적 소망은 그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재림에 대한 약속을 분명히 하셨고, 그날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14 : 3)고 약속하셨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선지자들은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라고 증거하면서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 가운데 살았습니다. 성경은 읽으면 읽을수록 하나님나라에 대한 갈망이 간절해집니다.

영국의 크리스찬 문필가인 루이스는 기독교 행위론에서 현세를 위해 가장 많이 일하는 사람들은 가장 많이 내세를 생각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사람을 많이 사랑하게 됩니다. 로마제국을 회개시키기 위해 순교한 사도들을 비롯하여 이천 년 교회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하여 얻은 그리스도에 대한 열망은 영성 개발에 가장 큰 유익이 될 것입니다.

 

넷째, 목회자 자신이 먼저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받아서 능력을 얻은 사람들입니. 이천 년 교회사에 기록된 위대한 주의 종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을 받아서 그 능력에 사로잡힌 사람들입니다.

목회자들이 자기 사역에 축복 받는 비결은 성경입니다. 성경이 최대 보화입니다. 목회자의 일터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자본이 있다면 그것은 성경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은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목회 사역에 은혜를 입고자 할 때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어떠한 계획과 일에서 실패하셨거든 성경으로 돌아가십시오. 성경으로 돌아가면 길이 열립니다. 성경을 붙들고 기도하고, 성경을 붙들고 행동하며, 성경을 붙들고 설교하십시오. 끊임없이 성경 중심으로 생각하고 모든 일에 있어서 성경으로 돌아간다면 참으로 위대한 생애를 살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통한 영적 유익을 얻기 위해서 몇 가지를 간증해 보면서 영성 개발에 도움을 받고자 합니다.

1) 성경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 말씀도 사랑하게 됩니다. 따라서 성경을 사랑하게 됩니다. 저는 성경 말씀이 너무 좋아 손에서 놓기가 싫어 항상 들고 다녔습니다. 성경을 가슴에 얹고 잠을 자는 때도 많았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은혜를 받아 울기도 많이 했고,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때는 성경 구절이 너무나 은혜롭고 신기해서 천하보다 더 소중한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말씀이면 이 세상에 더이상 욕심 낼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한번도 꿀을 먹어 본 일이 없었습니다. 전도사 시절에 한 교인이 꿀을 갖다 주어 처음 먹어 보았습니다. 참으로 달고 맛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을 때 주의 말씀의 맛이 어찌나 단지 꿀보다 더 달게 느껴졌습니다. 주의 말씀을 정금(보화)보다 더 사랑하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편지보다는 전화로 의사 소통을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요즈음 청소년들처럼 손잡고 놀지 못했고, 벤치에 앉아 입맞출 줄도 몰랐지만, 밤을 새우며 애타는 심정으로 편지를 써서 뜨거운 사랑을 전했습니다. 편지라는 것은 깊은 사랑의 진액이 묻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편지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임을 실감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종을 지극히 사랑하셔서 친서로 써 주신 것처럼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시골 전도사로 일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커서 울며 전도하러 다녔습니다. 그때는 결혼전이었으므로 애인에게서 편지가 매일 오다시피 했습니다. 어느날 석양이 비치는 심방 길, 산언덕에 앉아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된 것이 너무도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그 때 마침 우체부가 지나다가 편지 하나를 전해 주고 갔습니다. 연인에게서 온 편지였습니다. 그 편지를 읽는 순간 눈물이 났습니다. ‘바위 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님이 그리워 눈물납니라는 노래가 흘러 나왔습니다.

그 순간 성령이 저의 마음을 감동시키셨습니다. ‘이 종아, 네 가방속에 든 성경은 내가 너에게 보낸, 피로 얼룩진 사랑의 편지임을 알지 못하느냐?’ 저는 즉시 무릎을 끊고 가방속에 든 성경을 펼쳤습니다. 하나님의 친서인 성경을 펼쳤습니다. 석양 노을의 붉은 빛은 성경을 붉은 피로 쓰여진 글자처럼 보이게 했고 말씀은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 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3 : 16).

하나님의 피로 적셔진 사랑의 편지를 손에 들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제가 성경을 사랑하여 가슴에 품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성경이 저를 신비한 은혜로 사로잡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성경 전체가 저의 복음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 처럼 나의 복음’(16 : 25)임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2) 영성을 개발하려면 성경을 정확무오한 하나님 말씀으로 확신하여야 합니다.

기독교는 한 권의 책으로 이루어진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성경이라는,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반석 위에 세워졌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절대무오한 하나님 말씀입니다. 그런데 확신이 없으면 모든 것이 흔들리게 됩니다.

성경은 참으로 신비한 책입니다. 성경은 1600년에 걸쳐 40여 명의 저자들에 의해서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각각 다른 환경과 장소에서 다양하게 쓰여진 책입니다. 이 책을 기록한 사람들은 왕으로부터 선지자, 목자, 군인, 의사, 어부에 이르기까지 여러 계층이 있습니다. 그런데 각각 다른 저자들이 다른 장소에서 썼는데 하나의 교리 체계, 하나의 도덕률, 하나의 구원 계획, 통일된 신앙 법칙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40여 명의 기록자들에게 성령의 감동을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제로 삼아 쓰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신비한 책입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기록한 책입니다. 저자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깊은 신앙 체험 가운데 성경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는 자도 성령의 도움을 받아 성경의 저자들이 도달했던 높은 신앙의 수준에 이르러 성경의 깊은 뜻을 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저는 한신대학과 한신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그러므로 한국기독교 장로회의 토박이입니다. 그런데 저는 원래 기장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태어난 전북 부안군은 기장 교회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조국을 사랑했고, 한국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였습니다. 그런 심정에서 한국이라는 명칭 때문에 한국신학대학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국신학대학에 입학하지 말라고 만류하는 시골 목사님 말씀을 듣지 않고 끝내 입학을 했습니다. 그래서 추천서를 받지 못했고 그 교회를 떠나야 했습니다.

입학 면접 당시 학장님이셨던 장공 김재준 목사님이 무엇 때문에 추천서도 받지 못하고 교파를 떠나서 한국신학대학에 지원했느냐고 물으시기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한국을 사랑해서 그랬다고 대답했습니다. 목사님은 별난 사람이 하나 왔다고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별난 길로 나아갔습니다. 당시 한국신학계의 거성들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신학생들의 긍지가 대단했습니다. 서울대학생조차도 시시하게 아는 자부심이 있었고 모두 똑똑하게 보였습니다. 영어, 독일어, 헬라어를 공부하는데 그 열의가 대단했습니다. 교수님들은 세계적인 신학을 소개하는 데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쉬웠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살아 계신 하나님 말씀이라는 확신을 주는 데 빈약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학생들은 신앙적으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선배들 입에서 1학년 때는 목사, 2학년은 장로, 3학년은 집사, 4학년은 평신도, 졸업할 때는 무신론자가 된다는 말이 나을 정도였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학교(신학교)에서 하나님의 시험에 학점을 따는 심정으로 하나님 말씀만 붙들고 있었습니다. 저는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학점은 거의 60점 수준이었습니다. 실력 없는 신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졸업생 사은회 석상에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저는 임마누엘 동산에서 4년간 임마누엘을 배웠습니다. 이제 주께서 부르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지체없이 갈 것이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기에 복음을 전하는 데 이 생명을 바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을 들고 역사 현장으로 나아가겠습니다그리고 전북 고부에 가서 전도사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 말씀이 실력이 되어주었습니다. 신학적으로 실력이 없었던 무명의 종이 목회현장에서 실력자(?)가 된 것입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하나님 말씀이 저에게 실력이 되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실력은 무엇입니까? 모세의 실력은 무엇입니까? 베드로와 바울의 실력은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에게는 세상 지식이 실력이 되지만 하나님의 종의 실력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 말씀이 실력이 되고 능력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갖도륵 기도하십시오. 이것은 영성 개발에 큰 유익이 될 것입니다

3) 영성을 개발하려면 성령의 감동을 겸손히 기다리면서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감동에 민감해야 합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책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감동없이는 말씀을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성경을 읽을 때 성령께서는 우리와 성경 사이에서 역사하십니다.

진리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은 우리와 함께 있으면서(14 : 16-17)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도록 도와주십니다(14 : 25-26). 진리의 성령은 예수님을 증거하십니다(15 : 26).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진리의 성령은 우리 앞에서 그 성경 말씀을 깨닫게 하시며 그 말씀으로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또한 바른 길로 인도하시고 깨우치시며 변화시키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가는 가운데 임재하시는 성령께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일 때 그분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하시고 우리 마음을 슬프게도 하고, 근심하게도 하며, 눈물을 흘리게도 합니다. 또한 회개하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이 레마가 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레마는 하나님 말씀인 성경이 살아있는 말씀으로 임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말씀을 레마로 기록한 구절이 많습니다. 성경 말씀이 수원지의 물이라면 들리는 말씀(레마)은 마시는 물과 같습니다. 역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전 생애를 헌신하며, 그의 인격을 본받아 살려고 했던 수많은 종들은 거의 모두 살아있는 말씀으로 큰 변화를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성경 말씀이 살아있는 말씀으로 임할 때 영성은 말씀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마태복음 44절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말씀(레마)으로 살 것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마가복음 1472절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레마)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부인하리라하심이 기억되어 생각하고 울었더라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의 마음속에 기억된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이 되어 베드로의 심령을 찔러 쪼개어 회개케 했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137절에 말씀(레마)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기록되어 있고, 38절에 주의계집종이오니 말씀(레마)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마리아에게 임한 하나님 말씀으로 아기 예수를 잉태케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또한 누가복음 55절을 보면, 베드로가 말씀 (레마)에 의지하여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릴 때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가 잡혔다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57절에서는 내 말(레마) 이 너희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의 이 말씀(레마)은 살아있는 말씀으로 기도의 응답이 됩니다.

로마서 1017절을 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레마)으로 말미암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는 사람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성경 안에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받는 사람처럼 말씀 안에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의 한 귀절 한 귀절, 한 사건 한 일화를 읽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이 말씀으로 나를 채우소서 이 말씀으로 나를 가르쳐 주소서. 이 말씀을 읽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라고 기도를 드리며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