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림을 준비하는 사람들 (누가복음 1:8-16)
미국 사람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가운데 한 사람인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 대통령의 일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링컨이 공화당의 후보로 대통령 선거 유세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을 때에, 8살 된 한 소녀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그 편지에는 “링컨 할아버지, 수염을 길으시면 보기에 좋겠습니다.” 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링컨은 그 8살짜리 아이의 편지를 받고 고맙다는 답장을 쓰면서, ‘시간이 나면 꼭 한번 집에 들르겠다. 고 약속을 했습니다. 링컨은 키만 190cm가 넘게 껑충 컸지 비쩍 마르고 얼굴은 아주 비호감형으로 못생겼습니다. 오죽하면 어린 아이가 편지를 써 보내어 스타일을 좀 바꾸라고 했겠습니까? 그리고 그 아이의 제안처럼 실제로 구레나룻 수염을 길렀습니다. 이미지 변신을 한 것입니다. 나중에 많은 사람들이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구레나룻 수염 때문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구레나룻 수염을 기름으로 해서 사람들에게 호감이 가는 얼굴 형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 선거 유세가 한창 진행되던 도중에, 링컨이 선거운동을 하면서 마침 그 아이가 사는 동네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링컨은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일부러 시간을 내서 그 아이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링컨이 그 아이의 집을 방문하자, 그 아이뿐만 아니라 온 동네가 기뻐하고 환호하면서 링컨을 환영했습니다. 10분 동안만 그 아이의 집에 머물다 갔는데도, 그 아이의 집이나 동네로서는 여간 큰 영광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링컨 대통령 후보에게서 ‘꼭 한 번 방문하겠다’는 답장을 받아든 8살짜리 아이는 얼마나 가슴 설레며 링컨을 기다렸겠습니까? 그리고 그의 방문을 받은 그 아이는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대통령이 될 분이 자기 집에 오겠다는 편지 한 장으로도 그렇게 기쁜데, 대통령이 될 분이 자기 동네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온 동네가 그렇게 기쁘고 즐거운 일인데,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가운데 오신다는 약속의 편지를 받아든 오늘 우리는 얼마나 기쁘고 들뜬 마음으로 그분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는 자만이 그분이 오실 때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습니다.
여기 기다림의 고통을 겪었던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제사장이었습니다. 그와 그의 아내는 오랫동안 자녀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하나님의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나이가 많아졌습니다. 이제는 자식을 낳으리라는 희망조차 점점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 그는 하나님의 천사의 방문을 받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기쁜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천사가 알려준 대로 그에게서 아들이 태어났고, 그 아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년 동안 기다리던 선지자가 된 것입니다. 그가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사장 사가랴이고, 천사가 일러준 대로 그가 낳은 아들은 세례 요한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선택받은 사람
본문에서 사가랴를 소개하는 중요한 두 개의 문장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5절에 나와 있는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이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는 한마디로 말하면 아주 암담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국권을 로마에 빼앗긴 로마의 식민지였고, 왕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 출신이 자리를 잡고서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서 정적을 죽이는 포악함이 판을 치는 사회였습니다. 종교적으로는 지도자들까지 정권에 눈치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자기들의 잇속을 차리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타락한 사회였습니다. 국가 권력과 종교가 결탁하여 서로의 불의를 눈감아 주면서 지내던 시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결케 하신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종교지도자들까지도 불의에 깊숙이 개입되어 종교가 종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사회 구석구석을 둘러보아도 어느 곳 하나 희망이 없어 보이던 시대였습니다.
바로 그런 비극적이고 암울한 시대에 한 제사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사가랴입니다. 그는 정치적인, 사회적인, 그리고 종교적인 그런 비극과 암울한 상황에 절망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일에 충실했던 사람입니다. 더군다나 가정적으로는 자식이 없어서 눈물로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던 사람입니다. 당시에 자식이 많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은 것이라고 생각된 반면, 자식이 없다는 것은 축복을 받지 못한 사람이나 저주받은 사람이라고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사가랴는 이비야 반열 이였습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다윗의 시대까지 거스려 올라가야만합니다. 역대상 24장에는 다윗성전에서 봉직하던 아론의 자손의 반차가 나열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아들 중 레위지파를 성별하여 그들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게 하셨고 또 그 중에서 아론의 자손들로 하여금 제사장의 업무를 맡기셨습니다.
아론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는데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로 하나님 전에 향을 드리다가 죽임을 당하였고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제사장의 직분을 이어갔습니다. 엘르아살에게는 16명의 아들이 있었고 이다말에게는 8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들 아론의 손자 24명이 그 후에 제사장 24반열이 된 것입니다. 그 중에 여덟째에 뽑힌 사람이 아비야였습니다. 이것이 규례가 되어 이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2년에 한 번씩 봉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혹시 그 후에 계속 자손들이 늘어나면 어떻게 할 것이냐 생각하시겠지만 이미 24 족장을 선택하여 정한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족장을 생길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세례 요한의 가문은 정말 정통 제사장의 집안의 명예를 갖고 있었습니다. 신약성경에 대제사장의 이름은 종종 언급됩니다. 그러나 제사장의 이름이 언급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 당시는 제사장이 2만 명 정도 있었고 매달 정해진 반열를 따라 해당 반열들이 제사장 직무를 감당하였고 하나님께 향을 올리는 중직을 맡을 사람은 규례에 따라 제비를 뽑아서 결정을 하였던 것입니다. 사가랴가 제비에 뽑혀서 지성소에 들어가 향을 드리게 되었는데 그때 다른 사람들은 밖에서 그가 하나님께 제사를 잘 들이고 나오기를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혹시 그가 하나님 받으시기에 합당하지 못하면 죽임을 당하였고 또 죽임을 당하여도 그 안에 누가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제사장의 두루마기 아래 자락 수술에 방울을 달고 발목에 끈을 길게 매어서 그가 봉사를 하는 동안 방울 소리를 듣고 살아 있음을 감지하고 만약 죽임을 당하면 끊을 잡아 당겨서 끌어내야 했습니다. 그들이 또 밖에서 기다리며 기도하는 이유는 제사장이 무사히 속죄의 피를 법궤의 뿔에 뿌리고 분향을 한 후에 하나님의 응답을 받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자의 출생에 대한 약속
사가랴가 성전 안에 들어가 향을 드리려 할 때 갑자기 향단 오른편에 주의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천사는 먼저 그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두려워 말라" 말하고 "너희의 간구함이 들려 네 아내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하였습니다. 천사는 엘리사벳에게 태어날 아이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하였습니다.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구역에 기록된 대로 보통 사람이 아닌 나실인으로 태어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즐거움을 위하여 술과 독주를 마시지 않을 것이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주의 사역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가랴가 이것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 중 가장 명예로운 아론의 반차를 이어온 가문으로 정말 지식과 경륜을 갖춘 명문의 자손이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알고 있었고 자신의 가문에 나실인과 같은 명예로운 자가 태어나기를 기도하는 것은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의 소망이었습니다.
천사는 계속하여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슬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로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하였습니다. 지금 천사는 인간이 알 수 없는 일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성경에 기록된 사실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말라기에 이미 기록된 것이고 말라기 이후 40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끊어진 상태입니다. 그리고 400년 만에 처음으로 하나님의 음성과 묵시를 사가랴가 받고 있는 것입니다. 천사는 사가랴의 닫힌 눈을 열어주기 위하여 “나는 하나님 앞에 섰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입었노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제 천사 가브리엘이 사가랴에게 무엇을 전하였는가! 다시 한 번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성경에 기록된 것을 전하였습니다. 그가 전한 것 중 이미 말씀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면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을 전달했다는 것입니다.
의인의 가정에 주신 아들
본문 13절에 보면 천사가 사가랴에게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라고 말씀한 것을 보면, 사가랴는 자식을 달라고 하나님께 많이 기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가랴는 다른 제사장과는 달리 아주 성실하게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했습니다. 본문 8절에 보면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 새”라고 말씀합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섬김을 인정하셨다는 뜻입니다. 사가랴를 소개하는 두 번째 문장은 6절에 나와 있는 “하나님 앞에 의인이었다”는 말입니다. 사가랴가 하나님 앞에 충성스럽게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의인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두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6)『의인』이란 말은 히브리인에게 있어서 세계최고의 칭찬이었습니다. 그런데 의인이란 말을 들을 때 그것이 사람들에게 의로운 자라 칭찬 들을 때 있고,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라 칭찬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당시 제사장들은 국가로부터 녹을 먹으며 거의 무의도식하며 살았기 때문에 자신의 신변이나 제사장으로서 받는 특별한 혜택 누리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 현실에 안주하고 국가나 통치자들이 요구하는 대로 따라가는 무기력한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사가랴만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가랴는 현실과 타협하면서 세상의 방식을 따라 사는 그런 제사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의인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고 바르게 살기 위해서 몸부림치던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2만 여명이나 되는 제사장 가운데 오직 사가랴의 이름이 성경에 언급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의인’이라는 말은 원래 율법에 온전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물론 사람은 어느 누구도 율법에 온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이 따라가던 세상의 방식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하는 사람을 성경은 의인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인격으로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고 인정받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인격이 뛰어나고 아무리 경건훈련과 인격수양이 잘 된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인격으로는 하나님의 기준에 맞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의인이냐 아니냐 하는 기준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는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지 않으시면 그는 의인일 수 없습니다. 반대로 사람들이 ‘뭐 저런 사람이 있어?’라고 말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의인이라고 인정하시면 그는 하나님 앞에 의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의인이라고 인정해 주시느냐?’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려고 하는 우리의 믿음과 마음을 보시고 의인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가랴 역시 율법을 완전히 지키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당시 사회의 타락한 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인’이라고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의인 사가랴를 통해서 세례 요한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직무에 충실했던 사가랴, 온통 불의로 가득한 세상에서 말씀을 따라 정직하게 살아가는 의인 사가랴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자를 보내시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사가랴 부부가 오랫동안 기도했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아들을 낳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태어날 아들의 이름까지 지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신 경우는 단 두 번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과 요한입니다. 살아가면서 이름을 바꾸어주신 경우는 종종 있었습니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어주셨습니다. 그런데 태어나기도 전에 그 부모에게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이렇게 지어라’라고 말씀하신 경우는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과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 단 두 명뿐이었습니다.
기쁨을 주는 자
그리고 그의 태어남은 부모에게만 기쁨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도 기쁨이 될 것입니다. 본문 14절입니다.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라.”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아이가 될 것이란 말씀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크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는 주 앞에서 큰 자가 되며.” 하나님께서 인류 구원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과정에서 그를 크세 쓰실 것입니다. 그를 크게 쓰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17절입니다.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이런 기도 끝에 태어난 아이가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태에서 난 자 중에 세례 요한처럼 큰 자가 없다고 칭찬할 정도였습니다. 주님이 태어나시기 전에 세례 요한을 보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누가복음 3장 4절과 5절에서는 이사야 말씀을 인용하여 세례 요한의 사역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마을에 원님만 행차해도 그 길을 정비하고 정리하느라 야단이 납니다. 인간의 행차도 이러할 진대 하나님은 더하셔야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이사야의 이 말씀은 바벨론 포로로부터 해방되어 돌아올 때의 모습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바벨론에서 이스라엘까지 오는 길은 비옥한 초승달 지역이라 부릅니다. 마치 그 길이 초승달처럼 돌아서 가야 합니다. 그 가운데는 광활한 사막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직접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오는 영광스러운 길이고, 또 급히 그곳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막에 대로, 곧 고속도로를 내는 일을 시작하라는 명령입니다. 주님 오시는 길에 골짜기가 있으면 메워야 합니다. 높은 산이나 작은 산이나 솟아 있는 것이 있으면 깎아서 평탄하게 해야 합니다. 굽은 것이 있으면 곧바로 펴서 직선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험한 길이 있으면 잘 다듬어 걸려 넘어지지 고르게 다져야 합니다.
이것을 길을 닦는 이미지로 표현했지만은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 준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골짜기와 같이 낮은 곳에서 신음하던 가난하고 약한 자들은 좋은 옷을 입히고 대접을 받아야 합니다. 산처럼 교만하게 솟아 있는 부분은 깎아서 겸손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굽은 마음은 펴주어야 합니다. 상처받은 심령은 다독이고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이 해야 할 사역이 오늘 말씀 16절과 17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세례 요한의 사역은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사명도 세례 요한의 사역과 같습니다.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돌이키게 하고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14절 보십시오.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남을 기뻐하리니” 세례 요한은 기쁨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예수님도 기쁨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시던 날 밤 이렇게 찬양하지 않습니까?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우리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존재로 선택을 받았습니다. 대강절 기간입니다. 우리도 이 기간 중에 사가랴 부부와 같은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에 들어오는 인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시대의 사가랴 부부에게 아주 특별한 선물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기도를 들으시고 크고 놀라운 응답의 선물을 준비해 주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로운 길을 향해 한발자국씩 발걸음을 옮겨야겠습니다. 대강절을 보내며 주님을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늘 기뻐하며 살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 기쁨을 가지고 성탄을 맞을 준비를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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