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쓰시는 여인(누가복음 1:26-38)
시골에 어떤 애기엄마에게 초등학교 아들이 세 명이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나서 보니까 도시락을 놓고 간 거예요. 애들이 학교에서 배고플 생각을 하고 엄마가 도시락을 들고 학교에 갔어요. 학교에 도착을 하니까 세 아들들이 몇 학년 몇 반인지 알지 못하니까 문 앞에서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큰 아들을 부릅니다. 종철아~! 그러니까 종을 치는 급사 아저씨가 문을 열고 나와서 종을 칩니다. 아이 엄마가 둘째 아들의 이름을 부르는데 또철아 그랬더니 급사 아저씨는 계속 종을 칩니다. 엄마가 셋째를 부릅니다. 막철아 하고 부르니까 급사 아저씨는 있는 힘을 다해 종을 마구 칩니다. 얼마나 종을 쳤는지 급사 아저씨의 팔에 근육통이 왔답니다. 함께 웃음을 나누기 위해서 준비했습니다. 웃는 마음으로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말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생명의 기원과 번식은 너무도 신비로운 일이기에 다윗은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神妙莫測)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가 잘 아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시139:14). 그 중에서도 가장 신비로운 것은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구세주는 죄인을 대속하기 위해 죄 없는 사람이 되셔야만 했기에 특별한 방법으로 오셨습니다. 과거에는 동정녀가 아이를 낳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현대 과학은 처녀가 얼마든지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현미경으로 밖에는 볼 수 없는 체세포를 배아 시켜서 여인의 난소에 착지 시키면 생명체가 결성되고 태아에서 자라 태어날 수 있다는 이론을 여러 동물 실험을 통해서 입증을 하고 있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불가능은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신비로운 방법으로 처녀의 몸을 빌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게 하신 것입니다.
인생 중에서 가장 복된 사람은 하나님께 귀히 쓰임을 받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기울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리아라고 하는 시골의 지극히 평범한 처녀를 가장 고귀한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수태고지라고 한자어로 말합니다. 마리아에게 메시아가 수태할 것을 가브리엘 천사가 알려주는 장면입니다. 마리아는 어떻게 이렇게 가장 고귀한 도구로 사용되었을까? 마리아의 믿음과 더불어 메시아 예언에 대한 구약의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메시아 탄생의 예언
그리스도의 탄생은 범죄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배려에 의한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의 탄생에 대하여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사 9:2) 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증거하기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요 1:9-12)고 했습니다. 메시야를 가리켜 이사야는 “큰 빛”이라 하였고 요한은 “참 빛”이라고 했습니다. 흑암이나 어두움은 죄악 세상을 가리킵니다.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는 자들은 소망 없이 살다가 멸망에 떨어져야 할 운명에 놓인 인류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사야서 7장 14절의 예언도 중요합니다. “…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는 메시야께서 동정녀의 몸을 통해서 탄생하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으로서, 오실 메시야가 하나님과 동등한 신성을 가지신 분이심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이사야서 9장 6절은 탄생하실 메시야가 어떤 분이신지 더 분명하게 계시해 줍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성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계시를 발견합니다. 그런가하면, 이사야서 11장은 메시야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고 했습니다. (사11:1-3)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를 말합니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미가서 5장 2절에 메시야께서 탄생하실 장소가 예언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이 외에도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메시야의 탄생에 대한 예언을 더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우연히 된 일이 아니요 성경에 예언하신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근거는 성경이 그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수태고지
마리아는 어느 동네 사람일까요? 갈릴리 나사렛 동네입니다. 나사렛이 어디에 있을까요? 갈릴리 호수 남쪽 끝에서 서쪽으로 약 30 km쯤 떨어진 지점에 있습니다. 직선거리로 약 27~8 km쯤 떨어져 있습니다. 시골입니다. 경사진 산 언덕에 마을이 있는데, 예수님 당시에는 이름 없는 산골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강원도 산골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이런 이름 없는 두메산골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조금 모여 살았습니다. 그 중에 남녀 청년 둘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요셉과 마리아였습니다. 같은 동네 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은 가난했습니다. 요셉은 목수 일을 했는데, 일거리가 있으면 일하고 일거리 없으면 쉬어야 했습니다. 그러니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리아도 가난한 빈농의 딸이었습니다. 이름 없는 비천한 여자였습니다.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게 된 내역은 이렇습니다. 당시 마리아는 요셉이라는 청년과 정혼한 사이였습니다. 유대인의 정혼은 우리의 약혼과 비슷하지만 훨씬 법적인 구속력이 강합니다. 정혼한 남녀는 한 집에서 동거하지는 않지만 법적으로는 정식부부로 인정받았습니다. 정혼 기간에 남자가 죽으면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을지라도 그 여자는 법적으로 처녀 과부가 되었습니다.
하루는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나사렛 동네에 사는 마리아에게 나타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라고 했습니다. 천사의 출현에 마리아는 매우 놀랐습니다. 천사가 왜 나에게 이런 인사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천사가 말하기를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고 했습니다. 은혜를 입는 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은혜를 입지 못하면 우리는 제대로 믿음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이름 없는 지극히 평범한 시골 처녀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잉태케 하는 큰 은혜를 입게했습니다.
필립 얀시라고 하는 하나님의 사람은 그의 책 겉장에 써서 강조하기를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신앙 훈련과 자기 부인에 아무리 힘써도, 의로운 싸움에 아무리 발 벗고 나서도 소용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미 그 베푸신 은혜의 값을 이미 다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베푸실 은혜를 위해서 이미 값을 다 지불하셨습니다. 갈보리 언덕에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못 박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신 것입니다. 은혜는 받는 이 에게는 값없이 주는 것이지만 주는 이에게는 모든 것을 다 아낌없이 내 주는 희생과 노고가 들어갑니다.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위대한 하나님께서 작은 여인의 몸을 빌려 이 땅에 오신 것이 큰 은혜입니다.
은혜 입음에 대한 한 예화를 소개하겠습니다. 대전에 가면 광명 감리교회가 있는데, 허집사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말이 집사지 일 년에 교회 가는 횟수가 5번도 안된답니다. 그리고 술을 엄청 좋아하는데, 자기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술 없이는 못 산다. 늘 술을 마시는 알코올 중독자 수준입니다. 조그마한 플라스틱 공장을 경영하고 있는데, 그랬던 허 집사가 아주 갑자기 싹 술을 끊어버렸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했어요. 도대체 어떻게 마누라 없이 살아도 술 없이 못산다는 허집사가 하루아침에 술을 딱 끊고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할 수 있었을까요? 아까 말씀드린 대전 광명교회 허집사는 술이 없이는 못사는데 이 허집사가 어느 날 목사님이 심방을 갔다가 돌아오시는데, 교회 앞쪽에서 허집사가 대 낮인데, 술에 잔뜩 취해서, 교회 앞에서 비틀거리고 있는 거예요. 더군다나 술에 취해서 술주정으로 노래를 흥얼거리는데 무슨 노래냐? 찬송가를 흥얼거립니다. 목사님이 심방 갔다 오시다가 교회 앞에 있는 허집사를 보면서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교회 들어오자마자 허집사 집에 전화를 합니다. 부인 집사가 전화를 받았는데, 그 집사는 신실한 그리스도입니다. 목사님이 호통을 치시면서 “세상에 집사라는 사람이 교회 앞에서 비틀거리면서 찬송가 부르면서 술주정을 하다니, 이게 하나님 망신이고 교회 망신이지. 예수 믿을 때 똑똑하게 믿어야지!” 하면서 하지 않을 말을 합니다.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공장을 경영하는 사람이 십일조가 10만원이 뭐야?” 하면서 전화를 끊습니다. 그 부인 집사가 전화를 받고 얼마나 속상합니까? 남편이 들어왔는데, 목사님 말씀을 그대로 퍼붓습니다. 평소 같으면 허집사가 그 따위 교회 안 간다며 소리칠 때 뻔 한데 이상하게 듣고만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상해서 이제나 저제나 폭발할 줄 알았는데, 너무나 불안해요. 그런데 이튿날 새벽이 됐는데, 허집사가 주섬주섬 옷을 입고 새벽기도를 갑니다. 어떻게 된 건가 물어봤더니, 남편이 뭐라고 하는고. 하니, “내가 목사님 말씀대로 제대로 예수님을 믿고 싶다.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없다.” 하면서 어쩌면 그렇게 마누라 없이 살아도 술 없이는 못산다던 사람이 술을 딱 끊습니다.
허집사는 플라스틱 공장 하청업체인데, 재료값 주고, 직원들 봉급주면 항상 돈이 쪼들려요. 그런데 거기서 또 십일조를 안 한다고 야단을 치시는데, 얼마나 힘든지! 교회 가는 것이 부담스럽기만 합니다. 그런데 이 허집사가 믿음으로 결단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드립니다. 술도 완전히 끊고 새벽기도에 빠짐없이 나갑니다. 얼마 후에, 공장에서 플라스틱 호스를 보고 있다가 호스 하나를 집어서 둥그렇게 굽힌 다음에 한 쪽을 붙였어요. 굴렁쇠처럼 됐는데, 그걸 허리에 돌려 봤는데, 재밌기도 하고 운동도 되는 것 같아요. 직원들도 같이 하기 시작하다가 학교 앞 문방구에 주기 시작했는데, 불티나게 팔립니다. 우리나라의 훌라후프가 유행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술도 은혜를 입어야 끊을 수 있어요. 복 받는 것도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위험을 감수하는 믿음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합니다. '저는 처녀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 하고 묻게 됩니다. 회의적인 발언이 아닙니다. 영어 성경을 보면 why가 아닌 how can this be? 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방법론에 대한 진지한 질문 이었던 것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아이를 갖게 될 수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이에 대해서 천사가 답변을 합니다. '성령님이 네 위에 내려오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너를 덮어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거룩한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로 알려졌으나 그처럼 늙은 나이에도 임신한 지 여섯 달이나 되었다.’
37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천사의 설명을 들었을 때 마리아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였고, 천사는 떠나갔습니다.
결혼 전에 처녀가 누구의 씨인지도 모를 아기를 임신한다는 것은 유대 사회의 관습에 의하면 돌에 맞아 죽기를 각오해야 할 만큼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인 신명기 22:23-24 “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한 후에 어떤 남자가 그를 성읍 중에서 만나 동침하면 너희는 그들을 둘 다 성읍 문으로 끌어내고 그들을 돌로 쳐죽일 것이니...” 마리아가 성령의 능력으로 임신했다고 말해 보았자 그 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한 여자의 생사가 걸린 심각한 문제입니다.
정혼한 여인이 임신한다는 것은 요셉을 배신하는 일이었습니다. 만일 요셉이 그의 약혼녀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다면 마리아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요셉은 배신감에 치를 떨 것이고 둘의 혼인 언약은 깨어지고 말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생활을 꿈꿨던 두 사람의 바램은 물거품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약혼자에게 버림받은 마리아의 일생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것은 한 여자의 일생이 걸린 심각한 문제입니다.
처녀가 임신한다는 것은 가문에 수치를 안겨주게 될 것입니다. 이 사실이 밖에 알려지면 마리아의 부모와 형제들, 일가친척은 그 사회에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근래에 런던에 살던 16세의 쿠르드계 소녀가 부엌칼로 11번이나 찔려 잔인하게 살해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무슬림인 아버지가 레바논 출신의 기독교인과 사귄다는 이유로 딸을 무참하게 살해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명예살인이라고 부릅니다. 마리아의 부모 형제는 이처럼 잔인한 행동을 할 리가 없다 할지라도 가문에 수치를 안겨준 마리아는 가족과 친지로부터 외면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외에도 마리아가 겪어야 할 고초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 같은 사실을 사려 깊은 마리아가 몰랐을 리가 만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하나님의 뜻에 절대 복종하기로 결심하고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목숨과 가족과 사랑과 명예와 행복을 송두리째 희생할 각오가 없이는 내릴 수 없는 결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한 여인
마리아의 순종은 사랑하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했음을 보여 줍니다. 아기를 잉태하면 언젠가는 정혼한 요셉이 그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자기의 약혼자가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잉태했다는 것을 알고서도 모른 척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실재로 요셉은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대단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마태복음 1장 18절 이하에 보면,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고, 이를 안 요셉이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하여 이 일을 생각했다고 증언합니다. 요셉의 태도는 너무나 신사적입니다. 그 역시 사람인지라 마리아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을 리 없을 텐데도 소문내지 않고 가만히 파혼하기로 했습니다. 이로 보건대, 요셉이 얼마나 훌륭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마리아 역시 사태가 어떻게 진전될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마리아는 메시야를 잉태하는 편을 택했습니다. 이는 마리아가 요셉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했음을 보여 줍니다. 성경을 보면 성공과 실패가 하나님께 순종을 했는지 불순종 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을 하는 것은 그 분의 권위 까닭에 그분의 사랑 까닭에, 하나님이 이루시는 그 모든 일의 결과 까닭입니다. 자녀들이 부모님께 순종을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생각의 차이도 있고 원하는 바도 다를 수 있지만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은 그분이 날 사랑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리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은 그가 진실한 마음으로 순종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예수님의 생애도 그랬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우셨다"(히5:8)고 기록합니다. 반항이나 비판은 저절로 되지만 순종은 배워야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앤드루 머레이는 "반항은 죄인의 체질이다. 그러나 순종은 고된 학습이다"고 했습니다. 어떤 어려움과 희생이 따른다 해도 순종하고자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이요, 복음의 큰 역사를 이루어 갈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그 누구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하여 마리아처럼 온갖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주님의 도구로 쓰임 받으며 순종하기를 원하십니까? 대강절과 성탄절을 맞이하여서 주님의 영광과 뜻을 이루기 위해서 죽기까지 순종하는 믿음을 갖고자 하는 결단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 말기 많은 영국군 포로들이 독일군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었습니다. 썩은 빵조각을 얻어먹으며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수용소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 영국군 포로들 가운데 기술이 좋은 사람이 이것저것 주워 모으고 부품을 구하여서 '라디오'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밤마다 그 라디오를 아주 작게 듣는데 그가 라디오 방송을 듣다가 자기 동료포로들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그는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성공하여서 지금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오고 있다." 이 소식은 순식간에 수용소 내 포로들에게 전파됩니다. 어느새 포로들은 얼굴이 환하여 지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먹을 것이 형편없고 여전히 고난과 고통이 그들에게 있었지만 이제 곧 우리를 이 지긋지긋한 포로수용소에서 해방시킬 아군이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이 그들의 얼굴을 환하게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크리스마스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가 얼굴에 생기가 돌고 마음이 들뜨고 삶에 소망을 갖게 되는 성탄절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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