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설교 모음

노아 언약에 대하여 창세기 8:20-9:17절

하나님아들 2019. 6. 12. 12:37

노아 언약에 대하여 창세기 8:20-9:17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후손들과 방주에서 나온 모든 생물들과 홍수 후에 적극적으로 계시하고 약속하시는 것은 세 단계로 나아갑니다.

 

첫째는 번제로 인하여 자연 질서가 계속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창세기 8:20-22)

둘째는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한 축복과 규례들을 주셨습니다(9:1-7).

셋째는 그 언약이 확실하다는 언약의 증표를 주셨습니다((9:8-17)

 

첫째는 번제로 인하여 자연 질서가 계속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창세기 8:20-22)

창세기 8:20절에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후에 첫 행동이 나옵니다.“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습니다. 그러자 8:21-22에는 하나님께서 노아의 번제를 기쁘게 받으시고 그 중심에 말씀하신 내용이 나옵니다.‘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는 홍수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신 동기는 무엇입니까? 그 동기는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이 창세기 6:5의 표현과 매우 비슷하나 창세기 6장에서는 사람의 역사적으로 진행되어온 철저한 부패함 때문에 홍수 심판을 내리시는 것이 불가피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어려서부터라는 말이 첨가된 사실에서 인간의 마음이 본성적으로 악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악이 그처럼 인간 깊숙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인간을 심판하는 것으로는 근본적인 죄악을 치료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홍수 심판 후에도 인간 본성(죄성)은 추호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홍수 이전에도 노아와 그 후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고, 홍수 이후에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노아나 그 후손들에게는 절실합니다. 인간의 변함없는 죄성은 창세기 9장 끝에 함을 통해서 등장하고 10장에 가면 바벨탑 사건을 통해서 죄는 다시 모든 사람에게 확대되고 더 깊어집니다. 그러므로 만약에 하나님이 인간의 죄악대로 심판을 시행하신다면 홍수 심판은 수없이 이어졌을 것이며,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시사철과 심음과 거둠이 중단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과 같은 홍수로 심판하여도 인간의 죄성을 변함이 없기 때문에 다시는 홍수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어려서부터 인간이 악함에도 불구하고 심판을 하시지 않게 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21절 초반 부에여호와 하나님이 그 향기를 받으시고 중심에 이르시되 저주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노아가 앞서 드린 번제 제사의 향기를 흠향하셨기 때문에 다시는 홍수로 심판하지 않겠다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흠향하셨다는 표현은 노아가 번제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받으셨고 아브라함의 제사처럼 그와 언약을 맺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번제를 받으셨다는 것은 장차 하나님 자신을 번제로 드림으로 인생의 어려서부터 저지른 죄의 저주를 담당하실 그 일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이 미리 담겨 있습니다. 공의의 하나님이 인간이 어렸을 때부터 있는 죄악에도 불구하고 심판을 내리시지 않겠다고 하신 것은 노아의 제사를 받으심을 통해서 보여주신 것처럼 장차 중보자의 완전한 제사를 통하여 죄인들을 구원하실 뜻을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대신 그 중보자의 번제를 받으시고 하나님은 세상을 다시는 홍수로 심판하지 않고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자연적인 질서는 영원이 아니라 땅이 있을 동안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벧전 2:30, 21; 벧후 2:5). 이것이 바로 타락 이후에 하나님이 맺으신 노아 언약만이 아니라, 모든언약의 핵심 내용입니다. 아브라함의 언약, 모세 언약, 다윗 언약, 예언자들을 통한 그리스도를 통한 새언약등, 모든 언약은 근본적으로 중보자의 제사를 통한 구원에 관한 것입니다.

 

둘째는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한 축복과 규례들입니다(9:1-7).

그 다음의 내용은 9: 1-7절입니다. 홍수후의 인류가 비록 어렸을 때부터 항상 죄악된 존재들이지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축복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를 통해서 이제는 심판을 내리시지 않고 번성케 하시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필요한 규례들을 제시하십니다. 이 규례들은 동물과 사람 모두에게 해당되는 생명의 번식과 생명의 보호, 그리고 생명의 유지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을 더 잘 유지하기 위하여 짐승을 음식으로 허용하신 사실에서 자연스럽게 이 문제와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이 수단들은 홍수로 인하여 인류가 내적으로 외적으로 온 땅이 황폐한 열악한 환경 속에 있었다는 점을 분명하게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창세기 1:28에 나오는 명령과 비슷한 명령이 이 단락, 처음 1절과 마지막 7절에 나옵니다.

 

[9: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9:7]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우리는 여기 창세기 91,7절에 나오는복 주심을 창세기 8장의 마지막에 나오는노아의 번제와 연결해서 살펴야 할 것입니다. 창세기 1:28절과 다른 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첫 창조 당시에는 아담과 하와가 죄가 없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상태에서 하나님의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복을 받았고 만물을 다스리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죄악된 인간들을 홍수로 심판하시고, 또 인간이 어려서부터 항상 악하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그들에게 같은 축복을 하신 것입니다. 그 복의 바탕에는 바로 노아의 번제를 기쁘게 받으신 터 위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장래 그리스도의 제사를 통하여 영원한 구원을 친히 약속하시는 바탕 위에서 이제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이 민수기 6장에서 보면 대속죄일에 제사를 드리고 백성들에게 축복을 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손을 들어 축복하시며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이렇게 노아와 그 자녀들에게 주신 그 복은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 비록 사람들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장차 하나님의 아들의 제사를 통하여 아담과 하와에게 하신 언약과 그 하나님의 구원 목적은 좌절되지 아니하고 반드시 이루어가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홍수로 인하여 황패하게 변해버린 이 세상에서 새 삶을 시작해야 할 노아의 가족에게 하나님의 이 축복은 실로 너무나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도 죄악이 관영하고 황폐한 이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야 할 백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그리스도 때문에 주시는 여호와의 축복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님은 사람과 짐승들과도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셨습니다. 창세기 1:28절에서 아직 죄가 없는 상태에서는 사람은 생육하고 번성하고 만물을 다스리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죄가 들어오지 아니했을 때에 짐승들이 사람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인간의 타락한 죄로 인해서 인간과 동물이 완악해졌으며, 그 결과 이러한 이상적인 조화가 깨어졌던 것입니다. 따라서 동물들이 오히려 인간을 해치고 자연 재해가 인간을 괴롭히는 비극적인 현상이 이 세상에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홍수 후에 하나님께서는 만물을정복하고 다스리라고 적극적으로 명령하시지 않습니다. 이제 짐승이 사람을 두려워하게 하시고 사람은 힘으로 짐승을 제압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짐승이 이제는 자발적인 아니라 두려움과 무서움으로 사람에게 굴복 당하게 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또 창초때와 달리 하나님은 사람에게 이제 살아 있는 동물을 식물로 주십니다.

9:3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특별히 하나님께서 첫 3일에 지구가 사람 살 만한 환경이 되게 하셨는데, 셋째 날에 식물 곧 사람과 짐승이 먹을 양식의 공급원을 만드셨습니다. 이는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을 정복하라는 사명을 주신 뒤에, 채소를 식물로 주신 사실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주신 온 땅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생육하고 번성하며 하나님을 대리하여 다스리라는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음식을 먹고 살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창세기 9장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에게도 언약의 명령을 내리시면서 그와 아울러 먹는 문제를 언급하십니다. 그렇다면 왜 동물의 고기를 먹도록 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홍수 뒤에 세상이 황폐했기 때문에 동물도 식물로 준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한편 제가 생각하기에는 동물을 먹는 것과 또 피를 먹지 말라고 하는 것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제사와 관련하여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화목 제사를 드리고 그 남은 것을 제사장들과 제사를 드린 사람들이 먹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동물의 고기를 먹을 때에 주의할 점도 말씀하십니다.

 

[9:4]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 채 먹지 말 것이니라

왜냐하면 어려서부터 철저히 타락한 사람이 만일정복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면, 과도하게 짐승의 피를 흘리고 그 결과로 사람의 피도 함부로 생각하여 흘리기 쉬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먹으면 잔인성이 드러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식을 허용하면서도 피를 먹는 것을 금하신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피가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것이며, 생명 자체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생명의 존엄성을 깨닫고 생명을 경시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그 생명을 신성하게 여겨서 정당하게 존중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명은 오직 하나님이 주권에 달려 있으므로, 사람이 그것을 사용하려면 하나님의 허락하심에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레위기 율법에서는 피를 하나님 앞에 뿌리고 피는 절대로 먹지 못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람에 대해서는 해하지 말라고 할때는 특별한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6절입니다.

 

9:6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사람의 피를 흘리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특별히 사람의 피를 무고히 흘리지 말아야 할 그 이유는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지었기 때문입니다. 죽임 당한 영혼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이며, 곧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창세기 1:27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하셨습니다.

 

14: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

3: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그렇게 사람이나 짐승을 함부로 해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은 어떤 처벌 규례룰 주셨습니까?“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생명을 찾으리라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나중에 율법에서도 동해 복수법의 원리로 규정이 되었습니다. 생명은 생명으로 갚으라는 원리가 적용이 됩니다.

 

[21:12]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21:23]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21:24]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갚으라 하셨습니다.

 

그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권세들을 세워서 함부로 악을 행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벧전 2: 13-14, 13;3-4)

 

이렇게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해하지 못하도록 하신 근본적인 의도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사람들을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하시시 위해서입니다. 비록 사람들은 죄인이지만 이제는 그리스도의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하도록 보호하시고 보존하기 위해서입니다.

 

셋째는 자신의 언약을 하시고 언약의 증표입니다((9:8-17)

 

하나님은 이와 같이 거룩한 교회를 모으시고 번성하도록 하기 위해서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지 아니하고 악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이 너무 확실하다는 엄숙한 표시와 증표를 덧붙이심으로써 그 약속이 언약(베리트)의 형태를 부여하신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은내 언약이라고 하십니다.‘우리의 언약이라고 하시지 않고내 언약이라고 하신 것은, 언약의 근본 성격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드러냅니다.

 

9:9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9:10 너희와 함께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한 새와 육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이나 심지어 동물과도 언약을 맺으십니다. 그러나 그 언약은 사람이나 짐승의 언약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 언약을 하시고 그 언약을 성취하신다는 뜻입니다. 모든 언약은 하나님의 호의와 사랑에서 나옵니다. 죄가 없던 에덴 동산의 언약도 하나님의 사랑과 호의에서 나왔습니다. 우리가 타락하지 않았고 죄가 없으니까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수 있는 자격을 갖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더욱이 타락한 이후에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우리가 그 언약에 들어갑니다. 물론 이 언약은 사람만 아니라 동물과도 맺는 것이고, 그렇다고 동물이 무슨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 언약의 목적은 인생의 구원과 온 세상의 회복에 있어서, 이 언약도 근본적으로는 은혜언약입니다.

특히 이사야서 54:8-10에서는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노아 언약으로 그 예를 들고 있습니다.

 

(54:8)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의 말이니라

(54:9 ) 이는 노아의 홍수에 비하리로다 내가 다시는 노아의 홍수로 땅 위에 범람치 않게 하리라 맹세한 것같이 내가 다시는 너를 노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기로 맹세하였노니

 

여기서는 노아의 언약이 전혀 변할 수 없는 것 같이, 이스라엘 구속에 대한 하나님의 맹세의 약속이 오히려 영원히 변치않고 계속될 것을 보여주는 한 가지 모형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노아에게 주신 약속은 땅에 종말을 가져올 그 종말의 위기가 오기까지만 실현이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대 재난이 올 때에 산이 갈라지고 언덕이 사라지지만, 그때에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구원받은 백성들을 떠나지 않을 것이요, 그의 평화의 언약도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는 하나님께서 홍수로 멸하지 않겠다고 하셔서 주신 그 언약의 증거, 증표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무지개입니다. 13절입니다.

 

9: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창 9:14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9:15 내가 나와 너희와 및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9:16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9:17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이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언약을 맺지만 인류하고만 맺으신 것이 아니라 모든 생물들과 땅자체와 맺어지는 것입니다(15). 하나님의 구원이 사람만이 아니라 온만물의 회복이기 때문입니다. 언약이 자연과도 맺은 언약이라는 것이 언약의 증표에서 나타납니다. 무지개는 자연의 한 현상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증표가 된 무지개는 후에 할례와 같은 경우에 해당이 됩니다. 하나님이 둘다다 그의 언약의 증표들로 거룩하게 구별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증표는 땅을 파괴시킨 바로 그 구름들을 배경으로 하여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무지개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상징으로 나타나는 태양으로부터 나오는 광선에 의하여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9:13) 고 하셨습니다. 하필이면 왜 이런 무지개 표징입니까? 무지개는 태양과 물 사이의 상호작용의 결과입니다. 땅 위에 수많은 폭풍이 있을 것이며, 심지어 국지적으로 홍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지개는 태양이 구름을 뚫고 나오고 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구름과 같이 비를 내리는 폭풍우 속에서 결코 하나님은 그 사랑과 자비의 언약을 잊지 않으신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폭풍우 같은 많은 고난과 어려움이 있을 때에도 그 폭풍우 구름을 뚫고 비추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햇빛을 통해서 나타나는 구원의 무지개를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무지개의 표징이 누구를 위해 의도되었습니까? 물론 만물에게 하신 언약입니다. 그러나 동물들은 분명히 이 표징을 바르게 평가하거나 하나님의 선하심을 무지개와 관련시키기에 합리적인 피조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표징은 인류를 위해서 의도되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둔 구름이 모여서 폭풍이 몰아칠 것입니다. 그러나 형형색색의 무지개의 찬란함은 모든 사람에게 폭풍이 분명히 지나갈 것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또한 뚜렷하게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나타날 때마다, 내가 이것을 볼 것이며 그리고 나는 땅 위에 있는 모든 종류의 살아있는 피조물들과 맺은 영원한 언약을 기억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당신의 백성인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입니다. 무지개의 증표에 관한 내용은 대개 생각하는 것처럼 무지개로 인하여 사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 자신이 -물론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으나, 혹시 그가 잊을지라도-그 증표로 인하여 친히 그의 언약을 기억하시리라는 것입니다. 마치 유월절의 피를 보신 분은 하나님이셔서 그 피를 보시고 재앙이 넘어가도록 하신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친히 언약하신 그 사랑의 언약이 그 목적에 도달하기까지 즉 새 하늘과 새 땅에 걸 맞는 당신의 모든 자녀들이 생산될 까지 최종적이고 완벽한 심판을 연기하시고 자기 백성들을 끝까지 보호하신다는 것을 이 표징으로 묶으셨습니다.

 

더 흐라프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 언약은 참으로 모든 피조물들에게, 온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중요하나, 그러나 사람이 이 언약의 주된 수혜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완전하게 모아질 때까지 이와 같은 거대한 심판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피조 세계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이 목적에 이바지해야 합니다. 모든 피조물들이 이 섭리로부터 유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목적은 현재 세상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모으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신실한 인류의 세대와 맺으신 언약 안에서 악을 제어하실 것이고, 그리고 자연을 통제하시고 보호하실 것이고, 이렇게 하여 땅이 다시 사람들로(다른 피조물도) 채워지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교회가 모아지게 될 것입니다.


노아 언약에 대하여(원본)

창세기 8:20-9:17

날짜: 2019428일 주일 오전 예배

 

하나님께서 홍수 후에 노아와 그의 후손들과 방주에서 나온 모든 생물들에게 적극적으로 계시하시고 약속하시는 것은 세 단계로 나아갑니다.

 

첫째는 번제로 인하여 자연 질서가 계속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창세기 8:20-22)

둘째는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한 축복과 규례들을 주셨습니다(9:1-7).

셋째는 그 언약이 확실하다는 언약의 증표를 주셨습니다((9:8-17)

 

첫째는 번제로 인하여 자연 질서가 계속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창세기 8:20-22)

창세기 8:20절에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후에 첫 행동이 나옵니다. “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습니다. 그러자 8:21-22에는 하나님께서 노아의 번제를 기쁘게 받으시고 그 중심에 말씀하신 내용이 나옵니다.‘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는 홍수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신 동기는 무엇입니까? 그 동기는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이 창세기 6:5의 표현과 매우 비슷하나 창세기 6장에서는 역사적으로 진행되어온 사람의 철저한 부패 때문에 홍수 심판을 내리시는 것이 불가피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어려서부터라는 말이 첨가된 사실에서 인간의 마음이 본성적으로 악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악이 그처럼 인간 깊숙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인간을 심판하는 것으로는 근본적인 죄악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홍수 심판 후에도 인간 본성(죄성)은 추호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홍수 이전에도 노아와 그 후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고, 홍수 이후에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노아나 그 후손들에게는 절실합니다. 인간의 변함없는 죄성은 창세기 9장 끝에 함을 통해서 등장하고 10장에 가면 바벨탑 사건을 통해서 죄는 다시 모든 사람에게 확대되고 더 깊어집니다. 그러므로 만약에 하나님이 인간의 죄악대로 심판을 시행하신다면 홍수 심판은 수없이 이어졌을 것이며,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시사철과 심음과 거둠이 중단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과 같은 홍수로 심판하여도 인간의 죄성은 변함이 없기 때문에 다시는 홍수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어려서부터 인간의 악함에도 불구하고 심판을 하시지 않게 된 보다 근본적인 동기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21절 초반 부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향기를 받으시고 중심에 이르시되 저주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노아가 앞서 드린 번제 제사의 향기를 흠향하셨기 때문에 다시는 홍수로 심판하지 않겠다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흠향하셨다는 표현은 노아가 번제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받으셨고 아브라함의 제사처럼 언약을 맺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번제를 받으셨다는 것은 장차 하나님 자신을 번제로 드림으로 인생이 어려서부터 저지른 죄의 저주를 담당하실 그 일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이 담겨 있습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인간이 어렸을 때부터 있는 죄악에도 불구하고 심판을 내리시지 않겠다고 하신 것은 노아의 제사를 받으심을 통해서 보여주신 것처럼 장차 중보자의 완전한 제사를 통하여 죄인들을 구원하실 뜻을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 대신 그런 중보자의 번제를 받으시고 하나님은 세상을 다시는 홍수로 심판하지 않고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자연적인 질서는 영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땅이 있을 동안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벧전 2:30, 21; 벧후 2:5). 이것은 바로 타락 이후에 하나님이 맺으신 노아 언약만이 아니라, 모든언약의 핵심 내용입니다. 아브라함과의 언약, 모세와의 언약, 다윗과의 언약, 그리고 예언자들을 통한 새언약과 그리스도를 통한 새언약 등, 모든 언약은 근본적으로 중보자의 제사를 통한 구원에 관한 것입니다.

 

둘째는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한 축복과 규례들입니다(9:1-7).

그 다음의 내용은 9: 1-7절입니다. 홍수 후에도 인류가 비록 어렸을 때부터 항상 죄악된 존재들이지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축복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를 통해서 이제는 심판을 내리시지 않고 참으시며 그 계획을 가능케 하고 안전하게 하기 위하여 구체적으로 필요한 규례들을 이제 제시하십니다. 이 규례들은 동물과 사람 모두에게 해당되는 생명의 번식과 생명의 보호, 그리고 생명의 유지에 관한 것입니다. 생명의 유지에 대한 내용에서 짐승의 생명 보호에 대한 약속이 삽입 된 것은, 생명을 더 잘 유지하기 위하여 짐승을 음식으로 허용하신 사실에서 자연스럽게 이 문제와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이 수단들은 홍수로 인하여 인류가 내적으로 외적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 있었다는 점을 분명하게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먼저 창세기 1:28에 나오는 명령과 비슷한 명령이 이 단락, 처음 1절과 마지막 7절에 나옵니다.

 

[9: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9:7]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우리는 여기 창세기 91,7절에 나오는복 주심을 창세기 8장의 마지막에 나오는노아의 번제와 연결해서 살펴야 할 것입니다. 창세기 1:28절과 다른 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첫 창조시 당시에는 아담과 하와가 죄가 없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상태에서 하나님의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복을 받았고 만물을 다스리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죄악된 인간들을 홍수로 심판하시고, 또 인간이 어려서부터 항상 악하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그들에게 같은 축복을 하신 것입니다. 그 복의 바탕에는 바로 노아의 번제를 기쁘게 받으신 터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장래 그리스도의 제사를 통하여 영원한 구원을 친히 약속하시는 바탕 위에서 이제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는 대제사장들이 민수기 6장에서 대속죄일에 제사를 드리고 백성들에게 축복을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손을 들어 축복하시며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이와 같이 여기에서 노아와 그 아들들 곧 남자들에게 복 주셨습니다. 이렇게 노아와 그 자녀들에게 주신 그 복은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 비록 사람들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장차 하나님의 아들의 제사를 통하여 아담과 하와에게 하신 언약과 그 하나님의 구원 목적은 좌절되지 아니하고 반드시 이루어가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홍수로 인하여 황패하게 변해버린 이 세상에서 새 삶을 시작해야 할 노아의 가족에게 하나님의 이 축복은 실로 너무나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도 죄악이 관영하고 황폐한 이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그리스도 때문에 주시는 여호와의 축복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님은 사람과 짐승들과도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셨습니다. 창세기 1:28절에서 아직 죄가 없는 상태에서는 사람은 생육하고 번성하고 만물을 다스리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죄가 들어오지 아니했을 때에는 짐승들이 사람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인간의 타락한 죄로 인해서 인간과 동물이 완악해졌으며, 그 결과 이러한 이상적인 조화가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동물들이 오히려 인간을 해치고 자연 재해가 인간을 괴롭히는 비극적인 현상이 이 세상에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홍수 후에 하나님께서는 만물을정복하고 다스리라고 적극적으로 명령하시지 않습니다. 이제 짐승이 사람을 두려워하게 하시고 사람은 힘으로 짐승을 제압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짐승은 자발적이아니라 두려움과 무서움으로 사람에게 굴복 당하게 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이 명령은 피채 먹지 말라는 명령과도 연결됩니다. 왜냐하면 어려서부터 철저히 타락한 사람이 만일정복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면, 과도하게 짐승의 피를 흘리고 그 결과로 사람의 피도 함부로 생각하여 흘리기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적극적으로 정복하라는 말씀보다 생육 번성하라 하시고 짐승을 피채 먹지 말라 하시며 창초 때와 달리 하나님은 사람에게 이제 살아 있는 동물을 식물로 허락하여 주십니다.

9:3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특별히 하나님께서 첫 삼일에 지구가 사람 살 만한 환경이 되게 하셨는데, 셋째 날에 식물 곧 사람과 짐승이 먹을 양식의 공급원을 만드셨습니다. 이는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을 정복하라는 사명을 주신 뒤에, 채소를 식물로 주신 사실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주신 온 땅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생육하고 번성하며 하나님을 대리하여 다스리라는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음식을 먹고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창세기 9장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에게도 언약의 명령을 내리시면서 그와 아울러 먹는 문제를 언급하십니다. 그렇다면 왜 동물의 고기를 먹도록 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홍수 뒤에 세상이 황폐했기 때문에 동물도 식물로 준 것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한편 제가 생각하기에는 동물을 먹는 것과 또 피채 먹지 말라고 하는 것에서 볼 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와 관련하여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짐승을 화목 제사로 드리고 그것을 제사장들과 제사를 드린 사람들이 먹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동물의 고기를 먹을 때에 주의할 점도 말씀하십니다.

 

[9:4]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육식을 허용하면서도 피를 먹는 것을 금하신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피가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것이며, 생명 자체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생명의 존엄성을 깨닫고 생명을 경시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그 생명을 신성하게 여겨서 정당하게 존중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명은 오직 하나님 주권에 달려 있으므로, 사람이 그것을 사용하려면 하나님의 허락하심에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레위기 율법에서는 피를 하나님 앞에 뿌리고 피는 절대로 먹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특히 사람에 대해서 해하지 말라고 할 때는 특별한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6절입니다.

 

9:6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사람의 피를 흘리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특별히 사람의 피를 무고히 흘리지 말아야 할 그 이유는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지었기 때문입니다. 죽임 당한 영혼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이며, 곧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창세기 1:27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하셨습니다.

 

14: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

3: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그렇기 때문에 무고히 짐승이나 사람의 피를 흘린 사람은 어떻게 처벌하라고 하셨습니까?“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생명을 찾으리라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나중에 율법에서도 동해 복수법의 원리로 규정이 되었습니다. 생명은 생명으로 갚으라는 원리가 적용이 됩니다.

 

[21:12]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21:23]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21:24]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갚으라 하셨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권세들을 세워서 함부로 악을 행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벧전 2: 13-14, 13;3-4)

 

이렇게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해하지 못하도록 하신 근본적인 의도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사람들을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비록 사람들은 죄인이지만 이제는 그리스도의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도록 보호하시고 보존하기 위해서입니다.

 

더 흐라프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 언약은 참으로 모든 피조물들에게, 온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중요하나, 그러나 사람이 이 언약의 주된 수혜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완전하게 모아질 때까지 이와 같은 거대한 심판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피조 세계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이 목적에 이바지해야 합니다. 모든 피조물들이 이 섭리로부터 유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목적은 현재 세상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모으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신실한 인류의 세대와 맺으신 언약 안에서 악을 제어하실 것이고, 그리고 자연을 통제하시고 보호하실 것이고, 이렇게 하여 땅이 다시 사람들로(다른 피조물도) 채워지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교회가 모아지게 될 것입니다].

 

셋째는 자신이 언약을 하시고 자신의 언약 증표입니다((9:8-17)

하나님은 이와 같이 거룩한 교회를 모으시고 번성하도록 하기 위해서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지 아니하고 악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이 너무 확실하다는 엄숙한 표시와 증표를 덧붙이심으로써 그 약속에 대해서 언약(베리트)의 형태를 부여하신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은내 언약이라고 하십니다.‘우리의 언약이라고 하시지 않고내 언약이라고 하신 것은, 언약의 근본 성격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드러냅니다.

 

9:9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9:10 너희와 함께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한 새와 육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이나 심지어 동물과도 언약을 맺으십니다. 그러나 그 언약은 사람이나 짐승의 언약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 언약을 하시고 그 언약을 성취하신다는 뜻입니다. 모든 언약은 하나님의 호의와 사랑에서 나옵니다. 죄가 없던 에덴 동산의 언약도 하나님의 사랑과 호의에서 나왔습니다. 우리가 타락하지 않았고 죄가 없으니까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수 있는 자격을 갖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더욱이 타락한 이후에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우리가 그 언약에 들어갑니다. 물론 이 언약은 사람만 아니라 동물과도 맺는 것이고, 그렇다고 동물이 무슨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 언약의 목적은 인생의 구원과 세상의 회복에 있으므로 이 언약도 근본적으로는 은혜언약입니다.

 

특히 이사야서 54:8-10에서는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노아 언약으로 그 예를 들고 있습니다.

 

54:8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의 말이니라

54:9 이는 노아의 홍수에 비하리로다 내가 다시는 노아의 홍수로 땅 위에 범람치 않게 하리라 맹세한 것같이 내가 다시는 너를 노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기로 맹세하였노니

 

여기서는 노아의 언약이 전혀 변할 수 없는 것같이, 이스라엘 구속에 대한 하나님의 맹세의 약속이 오히려 영원히 변치않고 계속될 것을 보여주는 한 가지 모형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노아에게 주신 약속은 땅에 종말을 가져올 그 종말의 위기가 오기까지만 실현이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대 재난이 올 때에 산이 갈라지고 언덕이 사라지지만, 그때에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구원받은 백성들을 떠나지 않을 것이요, 그의 평화의 언약도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는 하나님께서 홍수로 멸하지 않겠다고 하셔서 주신 그 언약의 증거, 증표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무지개입니다. 13절입니다.

 

9: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창 9:14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9:15 내가 나와 너희와 및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9:16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9:17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이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언약을 맺지만 인류하고만 맺으신 것이 아니라 모든 생물들과 땅자체와 맺으시는 것입니다(15). 하나님의 구원이 사람만이 아니라 온만물의 회복이기 때문입니다. 언약이 자연과도 맺은 언약이라는 것이 언약의 증표에서 나타납니다. 무지개는 자연의 한 현상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증표가 된 무지개는 후에 할례와 같은 경우에 해당이 됩니다. 하나님이 둘다다 그의 언약의 증표들로 거룩하게 구별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증표는 땅을 파괴시킨 바로 그 구름들을 배경으로 하여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무지개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상징으로 나타나는 태양으로부터 나오는 광선에 의하여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9:13) 고 하셨습니다. 하필이면 왜 이런 무지개 표징입니까? 무지개는 태양과 물 사이의 상호작용의 결과입니다. 땅 위에 수많은 폭풍이 있을 것이며, 심지어 국지적으로 홍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지개는 태양이 구름을 가르고 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구름과 같이 비를 내리는 폭풍우 속에서 결코 하나님은 그 사랑과 자비의 언약을 잊지 않으신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폭풍우 같은 많은 고난과 어려움이 있을 때에도 그 폭풍우 구름을 뚫고 비추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햇빛을 통해서 나타나는 구원의 무지개를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무지개의 표징이 누구를 위해 의도되었습니까? 동물들은 분명히 이 표징을 바르게 평가하거나 하나님의 선하심을 무지개와 관련시키기에 합리적인 피조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표징은 인류를 위해서 의도되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둔 구름이 모여서 폭풍이 몰아칠 것입니다. 그러나 형형색색의 무지개의 찬란함은 모든 사람에게 폭풍이 분명히 지나갈 것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또한 뚜렷하게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나타날 때마다, 내가 이것을 볼 것이며 그리고 나는 땅 위에 있는 모든 종류의 살아있는 피조물들과 맺은 영원한 언약을 기억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당신의 백성인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입니다. 무지개의 증표에 관한 내용은 대개 생각하는 것처럼 무지개로 인하여 사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 자신이 -물론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으나, 혹시 그가 잊을지라도-그 증표로 인하여 친히 그의 언약을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마치 유월절의 피를 보신 분은 하나님이셔서 그 피를 보시고 재앙이 넘어가도록 하신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친히 언약하신 그 사랑의 언약이 그 목적에 도달하기까지 즉 새 하늘과 새 땅에 걸 맞는 당신의 모든 자녀들이 생산될 때 까지 최종적이고 완벽한 심판을 연기하시고 자기 백성들을 끝까지 보호하신다는 것을 이 표징으로 묶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이 얼마나 큰 은혜로 사람과 만물에 작용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배우고 진정으로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