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설교 모음

경배하러 왔노라! (마태복음 2:1-11)

하나님아들 2019. 11. 27. 18:09

경배하러 왔노라! (마태복음 2:1-11)

 

어느 재상이 이스라엘 여행을 하다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귀국한 그는 늘 예수님을 전하였습니다. 그 분이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기에 우리의 영혼이 구원받았다고 전하였습니다. 왕이 재상을 불러서 물었습니다. “재상! 하나님은 못 할 것이 없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신 데 왜 말씀만 하시면 되는데 자기 아들 예수님을 베들레헴에 보내셔서 갈보리에서 죽이시고 인간을 구원하셨나?” 재상이 말했습니다. “하루만 여유를 주시면 대답하여 드리겠습니다.” 재상은 집으로 돌아와서 유능한 목수 한 명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왕의 아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목각인형을 만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왕자와 똑같이 옷을 만들어 입혔습니다. 이튿날 왕은 재상을 불러 배에 올랐습니다. 왕궁 안에 있는 연못위에 있는 배였습니다. 왕은 그 배위에서 국사를 처리할 적이 많았습니다. 배로 부를 줄 알았던 재상은 그 인형을 몰래 가지고 갔습니다. 그리고 왕과 대화를 나누다가 왕자와 똑같은 인형을 연못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왕은 생각할 틈도 없이, 옷을 벗을 여유도 없이 연못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재상이 소리 질렀습니다. “왕이시여! 왜 제게 명령하시지 직접 뛰어 드십니까?” 왕이 헤엄을 치면서 말했습니다. “안 된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남에게 맡길 수가 없어. 믿을 수가 없어. 내가 직접 건져야 해!” 그 때 재상이 왕을 물속에서 끌어 올리면서 말했습니다. “왕이시여! 어제 질문에 대답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직접 하나님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성탄절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그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직접 보내신 날입니다.

 

영원한 떡집

 

오늘 본문은 동방 박사들의 입을 통해서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으로 탄생하셨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들레헴은 어떠한 땅이었을까요? 유대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8km, 곧 20리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마을입니다. 이곳의 또 다른 이름은 ‘에브랏’입니다(창35:19). 베들레헴에는 야곱의 아내 라헬의 무덤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합니다. 또 룻이 보아스를 만나 결혼했던 곳이 바로 이 베들레헴입니다. 이곳에서 그의 후손인 다윗이 태어나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그 뒤에 베들레헴은 일명 ‘다윗의 동네’라고 불렸습니다(눅2:4). 유대 땅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뜻을 가진 아주 작은 고을입니다. 그러나 이 작은 고을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고을 중 하나가 됐는데 그것은 예수님이 그곳에서 태어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첫 번 나오는 베들레헴은 죽음과 슬픔의 장소입니다. 지명마다 첫 인상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백담사하면 전 두환 대통령이 떠오릅니다. 부엉이 바위라는 지명을 들으면 금방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이 생각납니다. 성경에서 베들레헴의 첫 인상은 죽음과 슬픔입니다. 헤롯 왕은 이곳에 메시아가 탄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두 살 이하의 어린아이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당시에 생명을 잃은 어린 아기들이 20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본래 이곳의 이름은 라마였습니다. 야곱의 아내 라헬이 베냐민을 낳다가 산후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어서 라마라고 하는 슬픈 이름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극복하러 오신 분이십니다.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구세주이십니다. 부활을 전하러 오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죽음과 슬픔의 인상을 가지고 있는 베들레헴에 오셨습니다.

 

베들레헴은 축복의 땅입니다 6절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성경은 베들레헴을 '가장 작지 않은' 땅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베들레헴은 하나님이 성육신하셔서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나신 곳이라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다른 고을들보다 훨씬 돋보이는 곳입니다. 이곳은 나그네들이 쉬어 가는 떡집이 있는 곳이라서 베들레헴이라고 붙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그네 인생들에게 진정한 쉼을 주시며 영생의 떡을 주십니다. 그래서 그곳은 축복의 장소입니다. 우리는 축복의 장소인 베들레헴에 들려서 생명의 떡을 먹으며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별을 보고 온 동방박사

 

동방박사들은 하나님을 믿고 메시아를 기다리던 믿음의 사람들로 어느 날 하늘에 이상한 별이 나타난 것을 발견하고, 그 징조가 유대인의 왕인 메시아가 나타난 것으로 확신하여, 그 별의 인도를 받아 예루살렘까지 달려오게 되었습니다. 먼저 동방박사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먼 길을 달려왔습니다. ‘동방으로부터 왔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떠오르는 곳으로부터’를 의미하는데 주석학자들은 멀리 '동방’을 페르시아 혹은 바벨론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금의 ‘이란 이라크’ 지역입니다. 그 멀리에서 그들은 아기예수께 경배하기 위해서 먼 길을 달려왔다는 사실입니다. 저들은 동방으로부터 ‘별을 보고’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별의 인도를 받고 왔다는 뜻입니다.

 

동방박사들은 물론 별을 연구하는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성경과 별의 연관성을 연구하였다고 보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이들은 성경을 연구하는 중에 민24:17절에 ‘한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라는 예언의 말씀에 주목하였습니다. 물론 이 내용은 발람 선지자가 모압 왕 발락 왕에게 한 말이기도 합니다. 이들이 구약 성경이 예언한 메시아가 한 별의 징조를 통해서 그 태어남을 알려 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박사들은 성경이 예언한 별이 나타나자 즉시 짐을 꾸려 별이 떠 있는 곳을 향해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이들이 여행을 하는 중에 별의 인도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자연계시의 특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연의 섭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이 자연계입니다. 어제 새벽에 눈이 많이 와서 온 천지가 눈으로 덮여졌습니다. 저는 온 세상을 새 하얗게 덥힌 눈을 보면서 이 눈은 얼마 안가면 녹아져서 없어져 사라지지만 예수님이 눈과 같이 희게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씻어준 의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성결함이라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자연계시의 힘입니다. 성도들은 자연의 섭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합니다.

 

뉴질랜드 처치크라이스트 인근 바다에서 또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지난 2월에 한국 유학생 2명을 포함하여 180명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지진이 빈번히 발생할 때마다 예수님이 오실 날이 가까워오고 있다는 계시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합니다. 동방박사들이 유대 땅에 이르러 헤롯 궁정을 제일먼저 찾았습니다. 이들 생각에는 위대한 왕이 거대한 궁궐에서 태났으리라는 상식적 생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 하는데 있어서 고정관념을 깨야 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고 여길 때 믿음생활에 벽이 생기게 됩니다.

 

70년 대에 연예인들을 전도하기 위하여 하용조 목사님이 연예인 교회를 세워 연예인들을 전도하였습니다. 그 분이 연예인을 모아 놓고 성경공부를 하고 있는데 그 때 마리아가 처녀로서 성령으로 임신하였다는 성경을 말했습니다. 연예인들은 모두 그런 것을 어떻게 믿겠느냐고 아우성이었습니다. 그 때 구봉서씨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지 남편이 가만히 있는데 니 들이 왜 야단이야?’ 그 말을 듣고 모두 믿기로 하였답니다. 처녀가 아기를 낳는 다는 말은 상식에 전혀 맞지 않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고정관념을 깨야합니다. 동방박사들은 유대 궁궐에서 위대한 왕이 태어날 것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큰 실수를 하게 됩니다.

 

동방박사들이 유대의 왕 헤롯을 알현한 다음 2절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유대인의 왕’이란 말은 당시 이방 나라에서 유대에서 탄생할 메시야를 부르는 별칭이었습니다. 사9:6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들은 미가 선지자의 예언대로 ‘베들레헴 작은 고을에서 이스라엘의 목자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로 오실 유대인의 메시야’로(미5:2) 확실히 믿었습니다. 3절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소동했다는 말은 ‘동요했다’는 뜻입니다. ‘자기의 왕위가 위태롭지 않을까?’ 라는 공포에서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동방 박사들의 출현으로 인해서 소동을 한 것은 헤롯왕뿐만이 아니라 그와 함께 온 예루살렘도 더불어 소동을 했습니다. 이들은 정말 유대인의 왕 메시아가 태어난 것인가 하는 이 중대한 사안으로 인하여 소동하게 된 것입니다. 헤롯이 소집한 종교지도자들은 전문가답게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헤롯이 원하는 바를 알려주었습니다. 5절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6)

 

길을 잃지 말라

 

2절에서 동방박사들은 헤롯에게 말하기를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십니까? 우리가 동방에서 그 분의 별을 보고 그 분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들이 페르시아로부터 유대 땅에 이르는 기간 동안 별의 인도를 받아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앞에 장엄하게 서 있는 궁궐을 보고, 별을 쳐다보는 눈이 궁궐을 향하게 되었고 궁궐 안에 들어가 헤롯 왕을 만나게 되어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신지를 묻게 된 것입니다. 인생의 길은 망망대해와 같습니다. 요즘은 여러 가지 항법장치로 길을 찾아 항해를 합니다. 옛날에는 나침반을 이용하여 방향을 정했습니다.

 

저들이 위대한 왕을 찾아오는 길의 나침반은 바로 별이었습니다. 그런데 별의 인도를 받지 않고 자신들의 생각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의 판단에 따라 헤롯 궁궐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잘못된 길로 가게 된 이일로 말미암아 베들레헴의 두 살 이하의 20여명 어린 아기들이 목숨을 잃었고 아기 예수도 죽음의 위협에 노출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진리의 길을 따르지 않고 세상 길을 갈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 대로 길을 갈 때도 있습니다. 그것을 신앙인의 외도라고 합니다. 외도의 길을 짧을수록 좋습니다. 다행히 동방박사들은 외도의 길을 버리고 다시금 동방에서부터 인도했던 별의 인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9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동방에서 나타났던 그 별이 사라졌다가 문득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 별은 동방 박사들을 앞서 가면서 그들을 인도했습니다. 그 별은 아기 예수님이 계신 곳 위에 머물러 섰습니다. 10절을 보면, 동방 박사들이 메시야의 별을 다시 보게 되자 얼마나 기뻐했는가 보세요!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이사야 48장 17절에는 㰡’…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㰡“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따라 가야 합니다. 마귀를 따라 가서는 안 됩니다. 정욕, 교만, 탐욕을 따라 가서는 안 됩니다. 돈을 따라 가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고 하나님과 함께 하면, 우리의 영혼과 육체와 삶이 잘되고 축복과 은총도 받게 됩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14절에서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다는 것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를 받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하나님,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도 인도하시고 함께 하신 하나님, 앞으로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내 가정, 내 직장, 내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옵소서.㰡‘ 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몸무게가 44킬로밖에 안 나가는 삐적 마른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너무 말라서 빈혈로 간혹 쓰러지기까지 했는데, 어떤 때는 길에서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한 여자를 사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민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연약한 몸을 가지고 장가를 가도 될까?㰡‘그는 결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제가 이렇게 연약한 몸으로 장가를 가도 되겠습니까?" ‘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그래서 그는 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몸이 약한데 어떻게 걱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걱정하지 말라고만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겠습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마."  하고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그는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결혼을 했습니다. 정말로 결혼 후에는 몸이 점점 건강해졌습니다. 이 청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진리 가운데 거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책임져 주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경배하러 왔노라

 

동방박사들이 먼 길을 달려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2절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즉 예배드리기 위해 왔다는 고백입니다. 아주 귀한 신앙입니다. 경배라는 말은 ‘입맞춤으로 존경을 표하다’, ‘엎드려 절하여 존경심을 표하다’라는 뜻입니다. 크리스마스의 뜻은 Christ(클라이스트)와 mass(미사)의 합성어로 미사는 예배라는 뜻입니다. 즉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구주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동방박사들은 11절에서 ‘엎드려 아기께 경배’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기 위해서 단순히 무릎만 꿇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대었습니다. 아기 예수님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하면서 경배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에게 경의만 표한 것이 아니라, 경배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서 경배는 언제나 하나님에게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천주교에서는 마리아를 신성화해서, 마리아를 예배의 대상으로 삼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그림이나 동상을 보면, 예수님보다는 오히려 마리아가 위주입니다. 천주교가 그렇게 된 이유는 마리아에 대해서 잘못된 교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주교는 마리아에 대해서 다섯 가지의 교리를 세우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교리들입니다.

 

첫째, 마리아는 인간의 원죄에 오염되지 않고 태어났다. 둘째, 마리아는 일생토록 단 한 번 도 죄도 짓지 않았다. 셋째, 마리아는 평생토록 동정녀로 지냈다. 넷째, 마리아는 죽지 않고 승천했다. 다섯째, 마리아는 하늘의 여왕이 되어서 모든 것을 통치한다. 만일 이러한 주장들이 사실이라면, 마리아는 예배하는 자가 아니라 당연히 예배를 받아야 할 대상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에 대한 그들의 다섯 가지 교리 가운데 그 어느 하나도 성경에서 타당한 근거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께만 경배하는 것이 진리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마리아 우상 숭배의 길로 인도하는 천주교회에는 참 예배와 경배가 없습니다.

 

예물을 드림(11절)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고대세계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자나 왕 앞에 나아갈 때 존경과 사랑과 신뢰의 표로, 여기에 나타난 세 가지 예물과 같은 것들을 가지고 가는 풍습이 있었습니다(삼상9:7-8) 이 세 가지 예물이 단순한 예물에서 끝남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영적,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황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우 값지고 불변하는 성질의 귀중품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전통적 해석에 따르면 황금은 메시야 왕권을 상징합니다. 그들이 황금을 드린 것은 왕으로서 그리스도께 대한 신뢰와 그 통치에 대한 완전한 순종과 복종과 감사를 나타내는 증표입니다. 유향은 값비싼 향유로써 제사장들이 제사를 집례 할 때 사용하는 향료로써 그리스도의 영원한 제사장직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제물을 가지고 연결하여 주는 가교(교량)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결정적인 사역 중에 하나가 우리의 영원한 제사장으로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제물이 되어 완전한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몰약은 시체를 염할 때 사용하는 방부제로서, 매우 귀한 신분을 가진 사람이 죽었을 때만 그 시체에 바르는 고가의 값비싼 물품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몰약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예물로서 매우 합당한 예물입니다. 우리가 성탄절에 드리는 예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왕 나의 주로 모시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동방박사들이 드린 황금예물보다 더 값진 예물입니다. 베드로는 금보다 더 좋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유향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내가 하나님 앞에 나가갈 수 있으며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의 예물입니다. 이 예물이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주님께 드릴 가장 갚진 예물입니다. 몰약은 예수님이 나의 허물과 죄를 위하여 죽으심을 믿는 예물입니다. 이 예물들을 주님은 오늘 이 성탄절에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도 동방박사들처럼 황금과 유향과 몰약과 같은 믿음의 예물을 드리며 경배하는 성도들, 하나님이 기뻐이 받으시는 예물을 드리는 축복된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