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교사 교육

사랑 (이재철 목사 성숙자반 아홉 번째 단원)

하나님아들 2019. 6. 15. 18:24

IX. 사랑

더욱 큰 은사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고전 12:28~31)

고린도 교인들이 저마다 자신이 받은 은사가 더 크다고 내세우며 대립하고 다투었음을 보여줌. 그래서 바울은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권면하였는데, 공동체에 더 큰 유익으로 드러나는 은사를 사모하라는 뜻.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더욱 큰 은사가 사랑이라고 증언한 바울.

성령님께서 은사를 주시는 까닭은 자신과 타인, 그리고 공동체를 유익하게 하시기 위함. 은사를 받고서도 타인과 공동체의 유익을 생각하지 않고 저마다 자기를 내세우며 다투고 대립하고 분열한 고린도 교인들에게 바울은 모두에게 가장 큰 유익으로 드러나는 은사, 가장 좋은 길, 그것은 사랑이라고 설파함.

 

사랑이 더욱 큰 은사인 이유

1)     사랑만이 외적 은사를 내적 은사로 승화시켜 주기 때문

  외적 은사는 반드시 내적 은사로 승화되어야 함. 그래야 은사가 자기 자신을 과시하는 도구가 아닌, 모두를 유익하게 하는 도구가 됨.

) 신유의 은사를 받은 자가 누군가를 영적 건강인으로 세워 자기 육체의 모든 문제로부터 자유 하도록 도와 주려면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할 것임.

외적 은사는 사랑 안에서만 내적 은사로 승화되고, 그 때로부터 모두를 유익하게 하는 섬김의 도구로 선용됨. 그래서 사랑이 더욱 큰 은사.

2)     사랑만이 성령님의 열매를 결실하게 해주기 때문

성령님의 은사와 성령님의 열매의 차이는 인격의 변화 여부.

은사는 인격의 변화 없이도 얼마든지 받을 수 있으나, 성령님의 열매는 인격의 변화 없이는 맺어지지 않음.

성령님의 외적 은사가 내적 은사로 승화된다는 것은 성령님의 열매로 결실되는 것이며, 곧 인격의 변화를 의미.

성령님의 은사를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격의 변화를 통한 성령님의 열매를 맺는 것.

방언은 인격의 변화나 훈련 없이도 받을 수 있으나,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인격의 변화 속에서 훈련을 통해서만 주어짐.

성령의 열매는 타인과 공동체를 위한 훈련의 결과. 자기 유익으로 귀결되지만 일차적으로는 사람과의 관계를 위한 것. 인격의 변화는 이기적 사고에서 이타적 사고로의 전환을 의미하므로 이 훈련은 인격의 변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

인격의 변화 역시 사랑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중요함.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 첫째 열매가 사랑인 까닭이 여기에 있음.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의 헬라어 원문은 복수가 아닌 단수 카르포스로 기록됨. 그 이유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아홉 종류의 다른 열매들이 아니라 사랑이란 첫째 열매가 나머지 다른 여덟 가지 형태의 열매로 드러남을 표현한 것. 즉 사랑이 오래 참음으로도, 평화와 절제, 온유로도 드러나는 것임. 그래서 사랑이 더욱 큰 은사임.

3)     율법이 사랑을 통해 완성되기 때문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너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 13:8~10)

  사랑은 하나님의 계명을 완성하는 원동력. 그리스도인에게 늘 문제가 되는 X의 아랫부분인 사람 사랑.

사랑이 있다면 X의 균형은 이루어진 것. 사람을 사랑하는 그런 사랑이 있는데 어떻게 그 사람의 소유를 훔칠 수 있으며, 어떻게 그 사람의 배우자와 불륜을 저지르며, 어떻게 그 사람을 죽일 수 있으며, 어떻게 부모를 공경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자 X의 완성. 그래서 사랑이 더욱 큰 은사.

4)     사랑하지 않으면 결국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전 13:1)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한다면 은사를 받은 확실한 증거.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그 방언과 천사의 말은 소음에 불과한 것.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고전 13:2)

  세상의 모든 비밀과 지식을 꿰뚫어보는 능력을 소유하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을 지닌 사람, 못할 일이 없을 그 사람도 사랑이 없다면 그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심.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전 13:3)

  사랑이 없이 행하는 모든 행위는 자기 과시에 불과할 뿐이고, 자기 과시는 사람들을 자기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가장 빠른 길. 그래서 사랑이 더욱 큰 은사.

5)     하나님께서 사랑이시기 때문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7~8)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므로,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임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요,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아님을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것.

교회는 사랑이신 하나님의 몸이며 우리는 그 교회를 이루는 지체. 만약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가 아님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

모든 지체가 서로 사랑하고 위하고 돌보아 주도록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  한 몸에 붙어 있으면서 다른 지체를 해코지한다면 지체가 아니라 암 덩어리. 해코지하는 사람을 죽이고 자신도 죽고 말 것. 그래서 사랑이 더욱 큰 은사.

6)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로운 계명이 사랑이기 때문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내 제자인 줄 알리라” ( 13:34~35)

  주일에 교회에서 예배 드리고, 봉사하고 헌금하는 것 그 자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것. 예수님께서 그것만이 당신의 제자 된 증거라고 하심. 그래서 사랑보다 더 큰 은사는 없음.

 

사랑의 종류와 문자적 의미

-        헬라어의 4가지 사랑

1)     에로스: 남녀, 이성 간의 사랑

2)     필리아: 친구 간의 사랑. 우정, 형제애.

3)     스토르게: 가족, 혈육 간의 사랑

4)     아가페: 무조건적인 사랑, 어떤 조건도 전제되지 않는 사랑. ( 3가지 사랑은 조건적 사랑)

 

-        성경의 사랑인 아가페의 동사형 아가파오의 뜻

1)     기뻐하다

  사랑은 기뻐하는 것. 언제든 어디서든 누군가를 생각하기만 해도 기쁘다면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 사랑은 마음 속에 기쁨을 품고 다니는 것.

2)     잘 되기를 바라다

  마음 속에서부터 잘 되기를 바라는 것. 사랑하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 진심으로 잘 되기를 바라면서 사람을 계속 대하면 그 마음이 상대에게 전해짐. 기적을 낳게 됨. (첫만남에서 꼭 안아준 설리반의 마음을 사랑으로 이해한 헬렌 켈러)

3)     귀하게 여기다

  사랑의 대상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사랑. 상대의 소유를, 상대의 생각과 계획을, 상대가 살아가는 방법과 행하는 일을, 상대가 자신과 다르다는 사실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사랑. 사랑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것. 참된 사랑은 상대방과 자신의 거리, 즉 다름을 귀하게 여기는 것.

 

성경이 정의하는 사랑

-        사도 바울의 정의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 13:4~7)

부정문을 사용한 소극적 정의 8가지와 긍정문을 사용한 적극적 정의 7가지로 사랑을 설명한 바울.

 

-        소극적 정의

1)     사랑은 시기하지 않는다

  사랑을 깨뜨리는 첫 출발점이자 원인이 그릇된 경쟁의식의 산물이어서 상대적인 우월감이나 열등감으로 인한 고통을 안겨주는 시기라는 뜻. 경쟁의식 자체가 아니라 그릇된 경쟁의식이 문제.

2)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다

  자랑하다는 헬라어 페르페류오마이는 허풍선을 뜻하는 페르페로스에서 파생. 자랑은 과장하는 것. 사람이 자기를 칭찬해 주기를 열망하는 마음에서 비롯됨. 자기의 우월성을 과시하거나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자신의 행위를 계속 과장하게 됨.

  나의 행위를 자랑하고 과장하는 한, 나와 관련된 사람들은 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음. 그래서 사랑은 불가능하게 됨.

  누군가를 시기하면 반드시 자신의 행위를 자랑하게 되어 있다는 점이 중요.

3)     사랑은 교만하지 않다

  교만하다의 헬라어 휘시오오는 부풀리다, 부풀게 하다는 뜻. 과장이 반복되다 아예 자기 자신을 부풀리게 되는 것이 교만. 실제의 자기보다 자신을 훨씬 높고 큰 사람으로 착각하는 것. 자신이 앉아야 할 자리보다 훨씬 높은 자리에 자신을 앉히는 것. 부풀려진 허상의 자리에 앉아서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음.

  사랑은 상대에게 자기를 맞추어 주는 것인데, 교만의 자리는 상대가 자기에게 맞추어 주기를 요구하므로 사랑은 불가능함.

4)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는다

무례하다는 헬라어 아스케모네오는 상대방에게 돌아가야 할 존경과 명예를 인정하지 않는 것을 의미. 즉 상대를 이치에 합당하게 대우해 주지 않는 것. 이는 자기 교만으로 인하기에 상대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할 존경과 명예를 인정하지 않음.

사랑은 수고한 사람에게 정말 수고했다고, 감사를 표해야 할 대상에게 대단히 감사하다고 존경과 명예를 돌려주는 것.

5)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

이 때의 자기의 유익이란 경제적인 유익이 아님. ‘타 헤아우테스는 본래 자기의 것이란 뜻. 자신의 기분, 감정, 몫 등 무엇이든지 자신의 것만 일방적으로 구하지 않는 것이 사랑. 사랑이 없으면 자기 것만 생각하고 자기 것만 집요하게 구함. 자기만 기분 좋고 자기 배만 부르면 그만인 지극히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사람이 됨. 사랑은 그 반대로 사랑의 대상에게 무엇이든 자기의 것을 구하지 않음. 사랑은 주는 것이기 때문.

남겨진 한 알의 사과에서 다른 공동체 구성원의 몫이 보인다면 그것이 바로 사랑.

6)     사랑은 성내지 않는다

의 헬라어 파록쉬노는 본래 날카롭게 하다는 뜻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내는 화가 아니라 발작적인 분노를 뜻함. (발작의 영어 단어 paroxysm의 유래.) 발작적으로 분노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뿐 아니라 타인에게 날카로운 흉기가 된다는 뜻. 자기 것에만 집착하는 사람은 자기 것이 해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발작적으로 반응. 사소한 것으로 살인에까지도 이르게 하는 원인.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 4:26~27)

   그리스도인들도 정직한 분노, 의로운 화를 낼 수 있다. 다만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고 성경은 권면하고 있음. 즉 자신을 흉기로 만들지 말라는 뜻.

  아침에 분을 내었는데 잠자리에 들기까지 계속 분을 품고 있다면, 하루 종일 주님을 한 번도 바라보지 않았다는 뜻. 한 번이라도 주님을 생각하며 주님의 말씀을 자신을 추슬렀다면 잠자리에 들기까지 분을 품고 있지는 않을 것.

  잠자리에 들기까지 분을 품고 있다는 것은 또한 마귀에게 틈을 준 것. 분을 품고 있는 동안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바르게 이루어졌을 리가 없기 때문.

7)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란 한 마디로 공동선을 해치는 것.

생각하다의 헬라어 로기조마이는 숙고하다, 계산하다는 뜻. 공동선을 해치는 악을 심사숙고하고 어떻게 해칠지 계산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자신의 유익만을 구하는 독선적인 인간이기 때문.

사랑은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기에 공동선을 해치는 악을 생각할 수조차 없으며, 우리가 정말 사랑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항상 공동선을 앞세워야 함.

자신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유익이 돌아가고 있는지,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생각해야 함.

8)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다

기뻐하다의 헬라어 카이로는 매우 기뻐하는 상태를 뜻함. 불의를 기뻐하는 이유는 불의를 저지를수록 자기에게 더 유익하다고 여기기 때문. 불의를 저질렀을 때 죽음과 같은 손해를 본다면 아무도 불의를 저지르지 않을 것.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이 불의를 통해 더 많은 유익을 누리지만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 결코 그냥 넘기시지 않을 것.

사랑은 모두를 생각하는 힘이기에, 설령 자기에게 유익해 보인다 해도 불의를 기뻐할 수 없음.

9)     전개 순서가 중요한 사랑의 소극적 정의

  시기하면 자랑하게 되어 있고, 자랑하면 교만에 빠지게 되며, 교만하면 타인에게 돌아가야 할 존중과 명예를 부정하고, 자기의 유익만 구하는 독선적인 인간이 되고, 그런 인간은 자기의 유익이 침해 당할 때 발작적으로 분노하며, 공동선을 해치는 악한 길에 누구보다 밝은 사람이며,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불의를 저지르고도 기뻐한다.

  이런 전개 순서는 사랑하기 위한 관건은 시기하지 않는 것임을 일깨워 줌. 사랑과 관련한 모든 문제가 사실은 시기에서 시작함.

  시기하다는 헬라어 동사 젤로오는 명사 젤로스(열심, 열정)에서 나온 것. 열심이 없는 사람, 열정이 없는 사람은 시기하지도 않음. 그러므로 우리의 열심과 열정을 조심해야 함.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열심을 낼 때, 이 열심과 열정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누구를 위한 열심과 열정인지, 자신의 열심인지 하나님의 열심인지 생각해야 함. 인간은 이기적이기에 자기 열심으로 일하면 일할수록 자기 교만에 빠져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힘.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고후 11:2)

  바울은 자신의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으로 일했음.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하나님의 열심은 언제나 사랑과 생명의 열심. 우리가 겸손하게 하나님의 열심으로 일하려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당산의 열심으로 사랑과 생명의 열매를 거두실 것임.

 

-        적극적 정의

1)     사랑은 오래 참는다

오래 참다의 헬라어 마크로뒤메오는 대항하고 싶지만 힘이 부쳐 체념하는 참음부터, 능히 상대를 제압할 수 있음에도 스스로 억제하는 참음까지 모두 포함하는 단어. 이것이 적극적인 사랑의 출발점.

참지 못하면 사랑은 끝이다. 사랑은 일단 참고 보는 것. 성령의 열매에 있는 오래 참음과 같은 단어.

잘 참는 사람은 참는다고 말하지 않음. 그 말조차 참기 때문.

참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오래 참는다고 생각. 자신이 많이 참는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은 평소에 참지 못하는 성격의 사람.

2)     사랑은 온유하다

  온유하다의 헬라어 크레스튜오마이는 친절하다는 뜻. (cf. 산상수훈의 온유는 프라우테스로 조련 받은 야생동물이 야생성을 자신이 아니라 주인을 위해 사용한다는 의미) 일단 참으면 또다시 상대를 만나도 친절하게 대해 줄 수 있으나, 참지 못해 분노를 터뜨려버리면 예전 관계로 되돌아가기 어려움.

참아야 평상심 속에서 계속 친절할 수 있고, 친절하게 대하는 한 사랑은 지속됨.

3)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

  헬라어 슁카이로는 ‘~와 함께 기뻐하다는 뜻. 사랑은 진리 자체를 기뻐하는 차원을 넘어 진리 때문에, 진리로 인해 기뻐하는 것.

  진리 자체를 기뻐하는 것은 쉬운 일. 그 진리로 인해 기뻐하는 것이 어려운 일. 불의가 잘못되었음은 지식적으로 모두 알고 있으나, 불의한 이득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은 진리로 인해 기뻐하는 사람만이 가능한 일.

  그리스도인들이 진리 자체만을 기뻐하는 것으로는 결코 이 세상이 새로워질 수 없음. 오직 진리로 인해 기뻐할 때만 모두를 살릴 수 있음.

  그래서 사랑은 진리로 인해 기뻐함. 사랑과 진리는 모두를 살리는 힘.

4)     사랑은 모든 것을 참는다

참는다의 헬라어 스테고는 덮어주다는 의미. 스테고에서 파생된 스테게는 지붕.

사랑은 상대의 추함, 약함, 허물을 덮어주는 지붕이 되는 것. 노아의 허물을 덮어준 셈과 야벳의 행동이 사랑. 밖에 나가 아버지의 허물을 떠벌린 함은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은 것.

상대의 허물을 공개적으로 떠벌리는 것은 허물로 보이는 상대의 결점과 약점이 나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 사랑하는 사람의 허물을 덮어주는 것은 그의 허물에 지배당하지 않는 것. 그래서 상대의 허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음.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 10:12)

자식의 허물에 지배 당하는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기 어려움. 자식의 허물이 부모를 지배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보기에 허물투성이인 자식이라도 부모는 자식의 허물을 덮어주는 지붕이 됨.

5)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다

믿다의 헬라어 피스튜오는 하나님을 믿다할 때의 믿다와 동일.

사랑은 여러 가지 미흡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귀하신 뜻이 이뤄질 것을 믿는 것.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가 확립되지 않고서는 사람을 사랑하기 어려운 것.

6)     사랑은 모든 것을 바란다

  바라다는 헬라어 엘피조는 내가 욕구하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뜻이 아니라소망하다는 뜻.

  사랑은 그 대상의 과거와 현재는 말할 것도 없고 미래까지 사랑하는 것. 지금은 절망스러운 그의 현재가, 미래에는 보다 나아지기를 소망하는 것. 상대의 미래에 대해 소망을 가지면 상대를 대하는 자신의 표정이 달라지고 건네는 말의 내용과 말투가 달라짐.

7)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딘다

견디다의 헬라어 휘포메노는 휘포 (~밑에, under) + 메노 (머물다, stay)의 합성어.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아래에 거한다는 말로서, 상대의 아래에 서면 그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으므로, 상대방 입장에 선다는 의미.

목사가 불륜 스캔들로 시끄러웠던 어느 교회에서 목사 지지파 가운데 목사님이 불륜을 저질렀어도 설교만 은혜롭게만 하면 좋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설교만 은혜롭게 하면 목사가 무슨 짓을 해도 상관 없다는 말, 즉 설교만 취하고 그 나머지는 취하지 않겠다는 주장. 그것은 그 목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목사에 대한 최악의 모독.

상대방에게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취하려 하지 않고 상대의 전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이 상대를 사랑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의 입장에 설 뿐 아니라 상대의 아래에 거할 수도 있어야 함. 그 자체가 이미 사랑이기 때문.

8)     참는 것에서 시작하는 사랑

바울의 사랑의 적극적 정의에서 사용한 일곱 단어 중 첫 단어가 오래 참는 것. 사랑은 참는 것에서 시작하여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음. 참으면 계속 친절할 수 있고, 진리로 인해 그를 사랑할 수 있으며, 그의 허물을 덮어주는 지붕이 될 수 있고, 그를 믿어줄 수 있으며, 그의 미래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을 수 있음. 그의 입장에 서고, 그의 아래에 거할 수 있음.

그래서 소극적 사랑은 시기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하지만 적극적 사랑은 참는 것에서 시작.

오래 참다의 헬라어 마크로뒤메오 = 마크로 (길다) + 뒤오 (희생하다). 자신을 희생 제물로 삼지 않고는 오래 참을 수 없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사랑의 대상으로 내 곁에 두셨기에 나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그를 위해 오래 참아야 함.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해 주시는 것은 나로 하여금 바로 그 사람을 사랑하게 하시기 위함.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어 우리는 참을 수도 있고 사랑할 수도 있으며, 결과적으로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의 X를 완성해 갈 수 있음.

 

결론

1)     사랑은 서로 하는 것

  사랑은 우리 모두의 의무. 적어도 그리스도인이라면 서로 사랑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사랑의 의무를 다하는 사람. 만약 누군가에게 사랑 받기 원한다면 그에게 사랑 받기 원하는 만큼 자신이 먼저 사랑해야 할 것.

2)     사랑은 반드시 공동체의 유익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공동체의 일원이 공동체에 큰 해악을 끼칠 때, 그를 진정 사랑하는 것은 그의 행동을 무조건 참는 것이 아니라, 그의 행동을 바로 잡아주는 것. 무조건 참는다면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에게 큰 피해가 돌아가게 될 것. 중독자가 있다면, 그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며 다른 구성원들이 힘들어 할 것이 아니라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그 과정이 힘들다 해도 그 중독을 치료하는 것이 그에 대한 사랑이며 공동체에 대한 사랑.

  자식에 대한 사랑이 국가 공동체에 대한 해악의 결과를 가져온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자식과 자신을 멸망으로 밀어 넣는 행동일 뿐.

  한 개인에 대한 사랑은 관련 공동체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생각할 때만, 그 사랑이 주님 안에서 바른 사랑일 수 있음.

3)     사랑은 어떤 경우에도 실패하지 않는다

  내가 예수님의 말씀을 좇아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했는데도 그가 나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았다면, 그것은 그의 문제일 뿐 나는 실패자가 아니다. 그는 내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을지라도 주께서 나를 사랑하신 만큼 내가 그를 사랑함으로써 주님과 나의 관계가 더 깊어졌기 때문. 그래서 사랑 그 자체에는 실패가 없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고전 13:8)

  예언, 방언, 지식의 은사는 언젠가는 모두 필요 없어지지만,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않는다. ‘떨어지다의 헬라어 에크핍토는 소멸하다, 실패하다는 의미. 사랑은 소멸하지도 실패하지도 않는다는 말.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상대방의 반응에 상관 없이 내 사랑의 행위는 소멸하지 않고 주님 앞에 영원히 남는다.

4)     사랑의 동인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가능. 우리는, 사랑의 발광체이신 하나님의 빛을 받아 그분의 사랑을 이 세상에 방출하는 사랑의 복사체.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계신 예수님을 찾아와 눈물로 발을 적시고 그 발을 머리털로 닦고 향유를 부은 여인에 대해 품은 시몬의 생각에 대한 예수님의 질문, “많은 돈을 탕감 받은 자와 적은 돈을 탕감 받은 자 중 누가 더욱 탕감해준 채권자를 사랑하겠느냐?” ( 7:37~46)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 7:47)

  자신이 하나님께 사함을 받은 일이 적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하나님께 용서의 은혜를 적게 받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자신이 그만큼 죄를 덜 지었다고, 자신이 그만큼 의롭다고 생각한다는 것. 이런 사람은 아직도 자신을 전혀 알지 못하며 자신을 죽음에서 구해주신 하나님의 사랑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기에 사랑의 복사체가 될 수 없음.

  죽어 마땅한 자신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하고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만, 바로 그 사랑의 복사체가 될 수 있음.

하나님의 사랑은 지금 우리와 함께 있으니, 그 사랑의 복사체가 되라. 우리 삶의 의미와 가치가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