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교사 교육

사도신경 (이재철 목사 성숙자반 일곱째 단원)

하나님아들 2019. 6. 15. 18:22

VII. 사도신경

사도신경의 중요성

1) 우리 믿음의 핵심 내용

- 하나님과 말씀인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 그러나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성경은 방대함.

- 우리가 믿는 것이 무엇인지 핵심을 정리하지 않으면 실은 아무 것도 믿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 사도신경에는 우리 믿음의 핵심이 들어 있음.

2)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고백

- 십계명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이며, 우리에게 순종의 의무가 주어짐.

- 사도신경은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고백이므로, 고백에 대한 인간의 책임이 뒤따름. 책임이란 고백에 대한 실천의 책임.

- 고백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함으로 사도신경의 내용은 구구절절 중요할 수 밖에 없음.

 

사도신경의 유래

1) 사도들의 신앙 고백에서 비롯됨

- 베드로의 고백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 16:16)

- 나다나엘의 고백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1:49)

- 마르다의 고백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 11:27)

 - 이와 같이 사도신경은 사도들의 신앙고백과 그들이 전해준 복음에 뿌리를 두고 있음.

2) 세례식 때 문답형으로 신앙을 고백하게 하였음.

- 핍박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배교자가 나타나기 시작하자 경각심을 가진 교회 지도자들이 세례 때 문답형으로 신앙을 고백하게 하였음.

3) 문답형 신앙고백이 자기 고백형 신경으로 발전되고 완성.

- 세례식의 문답형 신앙고백만으로는 미흡하여 표준신앙고백문을 만들어 세례 받는 사람들에게 외우게 하고, 그 내용을 자기 입으로 고백하게 함.

- 이단의 공격으로부터 교회를 지키는 과정에서 신앙고백의 내용이 점차 보완됨.

- 보완된 내용을 세례식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예배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고백하게 됨.

 

사도신경의 발전과정

  • 2세기 고대 로마신조 문답형 4세기 로마신조 고백형 750년 공인원문

  • 세월이 흘러감과 동시에 교회가 이단의 공격으로부터 신앙을 수호하면서 계속 필요한 내용을 보완한 끝에, 오늘날 우리가 매 주일 고백하는 것과 같은 사도신경이 완성됨.

     

 

고대 로마신조

(2세기) 문답형

로마신조 (4세기)

고백형

공인원문(750)

Forma Recepta

비고

1

당신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아버지를 믿느뇨?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으며

나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으며

신화 속 신들과 하나님 구별

2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

예수님 한 분만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

3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에 의해 나셨고

이는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으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셨으며

가현설(假現說) 이단주장에 대항해 참사람이심을 밝힘.

4

본디오 빌라도에게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시고 그리고 장사되어

본디오 빌라도에게

십자가에 못박혀

장사 지낸 바 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 장사 지낸 바 되시고

가사설(假死設) 이단 주장에 대항해 분명히 죽으셨음을 밝힘.

5

 

 

지옥에 내려 가셨으며

예수님의 몸이 돌아가셨을 때 영이 하신 일에 대한 대답

6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삼 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며

삼 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며

가사설(假死設) 이단의 주장에 대한 반박.

7

하늘에 오르사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하늘에 오르사 아버지 우편에 앉으시고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으시고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동일한 권위를 지니신 분이심을 강조.

8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뇨?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는 것을 믿사옵니다.

승천하신 그 하늘로부터 재림하실 것. 자칭 재림주 차단 목적.

9

당신은 성령과

성령과

(나는 믿기를) 성령과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이 믿음.

10

거룩한 교회와

거룩한 교회와

거룩한 공교회(公敎會)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교회는 공교회이어야 하고 성도 간 교제가 중요함을 강조.

11

몸의 부활을 믿느뇨?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의 부활을 믿사옵니다.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부활하는 것과 영생을 믿사옵니다.

죄 사함에 대한 확신을 강조, 궁극적 목표가 영원한 생명임.

 

사도신경의 내용

라틴어로 된 사도신경 원문은 단락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음.

1) 성부

- Credo in DEUM PATREM omnipotentem: Creatorem caeli et terrae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 성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인 첫 단락.

- Credo (끄레도): ‘나는 믿는다는 의미. 믿습니다 내가로 시작하는 사도신경.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믿는다는 것. 이후에 이어지는 모든 고백의 내용을 내가 모두 다 믿는다는 것.

  Credo = cre (심장) + do (드리다). 믿음은 믿음의 대상에게 나의 심장을, 나의 생명을 드리는 것. 즉 믿음은 단순히 말로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 나의 생명보다 귀하기에 나의 생명을 드리는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나의 생명이 비로소 참된 생명으로 승화되는 것.

  믿습니다, 내가 믿습니다, 나의 심장을 하나님께 드립니다라는 심정으로 고백하라.

- Credo in DEUM PATREM (데움 빠뜨렘): DEUM=하나님, PATREM=아버지,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 되심을 내가 믿는다는 것. 미물에 지나지 않는 나를 당신의 자녀 삼아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내가 믿는다는 의미. 하나님 아버지의 인격을 믿는 것. 내가 이미 그분의 자녀가 되었음을 재확인하는 고백. 그 고백을 통해 나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바른 정립을 통해 내 삶의 방향을 분명히 하는 것. 하나님의 자녀라는 나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면 결코 옛 삶을 답습할 수 없음.

- Credo in DEUM PATREM omnipotentem: (옴니뽀뗀뗌, 전능하신) 내가 믿는 하나님 아버지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라는 뜻. 클론으로 그 다음에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를 고백.

- Creatorem caeli et terrae (끄레아또렘 첼리 에뜨 떼레): ‘하늘과 땅의 창조자

- 원문의 의미: 나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 바로 천지의 창조자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

- 창조는 없음에서 있음을 가능하게 하는 것. 그 일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한 분만이 하실 수 있음. 그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의 지금 상황이 반드시 필요하기에 그 상황을 주셨을 것을 깨닫고, 내가 원하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인생을 허비하지 말라.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이심을 믿는 참된 믿음은, 그분이 주신 상황 속에서 나의 삶으로 그분의 뜻을 이루어 가는 것. 사울에 쫓겨 다니던 다윗이 결코 그 상황에서 뛰쳐나가려 하지 않고, 주어진 상황 속에서 매일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은, 바로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자신을 새롭게 빚고 계심을 알았기 때문.

-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이심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어떤 상황 속에 있든지, 그 상황에 휩쓸리거나 침몰해서는 안될 것.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강물 위의 배처럼 그 상황 위를 떠가야 함.

2) 성자

Et in JESUM CHRISTUM, Filium ejus unicum, Dominum nostrum; qui conceptus est de Spiritu Sancto, natus ex Maria virgine; Passus sub Pontio Pilato, crucifixus, mortuus, et sepultus; descendit ad inferna, tertia die resurrexit a mortuis; ascendit ad caelos; sedet ad dexteram Dei Patris omnipotentis; inde venturus (est) judicare vivos et mortuos

- 성자 하나님께 대한 고백인 두 번째 단락

- Et in JESUM CHRISTUM (에뜨 인 예숨 끄리스뚬): 사도신경의 첫 단어 Credo와 연결, 나사렛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구원자이심을 믿는다는 말.

- Filium ejus unicum (필리움=아들 에이우스=그의 우니꿈=유일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이심을 믿는다는 것.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유일한 독생자이시므로, 하나님의 모든 것과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의 것이기도 하다는 것. 그래서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얻고 누릴 수 있음.

  하나님의 아들은 역시 하나님.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당신이 어떤 분인지 보여 주시려 인간에게 주신 안경.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뵐 수 있고, 알 수 있고, 말씀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고 심화시켜 갈 수 있음.

- Dominum nostrum (도미눔=주님 노스뜨룸=우리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님이심을 믿는다는 것.

  첫째 의미: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신다는 것. 철저하게 그분의 종으로 살아가겠다는 결단. 그것만이 나의 인생을 영원히 건져 올리는 유일한 길임을 믿기 때문.

  둘째 의미: 주님을 믿는 우리는 주님 안에서 서로 횡적으로 연대하여 주님 안에서 서로 형제 자매가 된다는 것. 내가 믿는 주님과 나 사이에 종적인 관계가 이루어짐과 동시에, 우리의 주님 안에서 주님을 믿는 형제자매들과 횡적 연대도 이루어짐으로써 비로소 십자가의 삶이 완성되는 것.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할 때마다 우리 자신이 종적으로나 횡적으로나 바른 십자가의 관계를 이루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함.

- qui conceptus est de Spiritu Sancto (꾸이=그분을 뜻하는 관계대명사, 꼰셉뚜스 에스뜨 데= ~에 의해 잉태되다, who was conceived, 데 스삐리뚜 상또=거룩한 영으로)

예수님께서 성령님에 의해 잉태되셨다는 뜻.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셨다는 의미. 성자 하나님께서 성령 하나님에 의해 인간 세상 속으로 잉태되어 들어오신 것 그것이 기적.

그 주님께서는 우리 삶의 현장, 역사의 현장에 계심.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던 주님께서는 항상 그 상황 속에 잉태해 계심. 이것이 진정 우리의 신앙고백이라면 우리에게 어떤 두려움도 어떤 절망거리도, 이 세상에 넘지 못할 산도 없을 것.

- natus ex Maria virgine (나뚜스=태어나다, 엑스=~로부터 마리아 비르쥐네=동정녀 마리아)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신 성자 하나님. 하나님께서 당신을 인간으로 낮추시고, 인간이 겪는 희로애락을 친히 겪으셨기에, 우리의 처지를 아시고, 이해하시고, 도와주실 수 있음.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 2:18)

우리의 신앙을 고백할 때마다 우리의 처지를 아시는 그분의 위로를 받으며 그분과 함께 동행할 수 있음.

- Passus sub Pontio Pilato, crucifixus, mortuus, et sepultus (빠수스 숩 뽄띠오 삘라또, 끄루치픽수스, 모르뚜우스, 에뜨 세뿔뚜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도신경에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에 대한 신앙고백은 단 한마디도 없음. 우리 눈에는 그것이 이적이나 하나님이신 주님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일.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인간으로 비하하셨다는 것, 하나님께서 하찮은 인간의 죗값을 대신 치르시기 위해 십자가의 제물로 돌아가셨다는 것, 하나님께서 죽음을 깨뜨리고 부활하셨다는 것, 이런 것이 바로 기적. 각각의 기적을 강조하기 위해 사도신경 원문에는 각 단어마다 쉼표로 끊어 그 의미를 강조.

  * Passus sub Pontio Pilato: 신앙고백 속에 나오는 두 사람의 이름 마리아와 본디오 빌라도. 하나님께 순종하여 가장 존귀한 여인이 된 마리아, 성자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가장 저주받은 인간이 된 본디오 빌라도.

  30냥에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보다, 실제로 예수님을 못박은 로마군병보다, 권력을 남용하여 예수님께 사형을 결정하고 선고한 빌라도의 죄과가 더 큰 것.

  아담과 하와 중 먼저 범죄한 하와가 아니라, 아담에게 죄를 물으신 하나님. 그 명령을 아담에게 내리셨기 때문. 하와에게 명령을 전할 책임을 소홀히 한 아담의 죄.

  본디오 빌라도 역시, 하나님께서 그에게 권세를 위임하셨기에 예수 고난의 책임을 유다나 군병이 아닌 그에게 물으신 것.

  우리에게 주어진 권세나 직책, 그리고 물질은 우리 홀로 누리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정의와 진리를 구현하라고 우리에게 위임하신 것. 그러므로 이 신앙고백 앞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하나님 앞에서 정당하게 사용하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함.

 * crucifixus: ‘십자가에 못박히다는 의미.

  나의 죗값을 치르시기 위해 큰 고통을 당하며 죽어가는 십자가형을 당하신 예수님. 구속을 뜻하는 atonement한 상태를 이루는 것’.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당하신 예수님의 아픔과 고통이 나와 한 상태를 이루어 나의 아픔과 고통이 될 때, 비로소 나는 그분 안에서 바른 삶을 살 수 있음. 사도신경을 통해 이를 매 번 확인하는 것.

 * mortuus: ‘죽다라는 의미.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우리를 대신하여 실제로 죽으신 예수님. 예수님의 죽음으로 우리의 죗값을 완전히 치를 수 있었고, 죽으심으로 죽음을 깨뜨리고 부활하실 수 있었으며,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건지시어 부활하신 당신 안에 영원히 살게 하실 수 있었음.

  예수님의 구원이 추상적인 사변이나 이론이 아니라 구체적인 생명의 행위임을 사도신경을 통해 고백하는 것.

* et sepultus: ‘장사 지내다는 의미.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에 안치됨으로 무덤의 의미까지 새롭게 해주심. 무덤은 우리의 종착역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임을 재확인.

- descendit ad inferna (데스첸디뜨=내려가다, 아드=~, 인페르나=음부, 지옥) 지옥으로 내려가셨다는 말. 한국 개신교의 사도신경에만 이 문구가 빠져있음. 초기의 사도신경에는 이 문구가 들어있었으나, 미국 감리교의 영향을 받아 1908년 출간된 합동 찬송가에서부터 이 문구가 삭제되어 수록. 그러나 미국 감리교는 1989년 이 문구를 다시 복원한 사도신경을 사용하고 있으나, 성공회를 제외한 한국 개신교는 아직도 불완전한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드리고 있음.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께서는 장사되시어 지옥으로 내려가셨다가 사흘째 되는 날 부활하시어 다시 하늘로 승천하신 것. 그 결과 찬상과 천하, 그리고 지옥, 이 모든 세계가 온전히 그분의 통치권 속으로 들어간 것.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알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술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 2:10~11) 예수의 통치가 하늘이나 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지옥에까지 확장되어 있음을 분명하게 말해주는 성경 말씀.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벧전 3:19~20)

  예수님의 영이 가셔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셨음. 그 영들이란 노아 방주 때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외면하다가 멸망 당해 죽은 영들이며, 그 영들이 갇혀 있는 옥, 즉 지옥에 예수님의 영이 복음을 선포하셨다는 것.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벧전 4:6)

  예수님께서 지옥에 내려가셔서 그곳의 영들에게도 복음을 선포하셨음을 증언하는 성경 말씀.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결정 사항이므로, 예수 믿지 않고 지옥에 간 사람들도 하나님의 결정에 따라 구원 받을 수도 있을 것. 사도신경의 이 문구를 알고 있다면, 불신자의 상가에서 죽은 자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 줄 수 있을 것. 살아있는 유족들을 위해서라도 죽은 자의 영혼을 위해 따뜻하게 기도해 주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정신일 것.

- tertia die resurrexit a mortuis (떼르치아=세 번째, 디에=, 레수렉시뜨=다시 살다, =~로부터, 모르뚜이스=죽은 자)

  금요일 오후 세 시에 돌아가셔서, 주일 새벽에 부활하신 예수님. 72시간이 아니라 만 이틀도 지나지 않아 부활하심. ‘사흘 만에보다 사흘째 날에가 정확한 번역.

  예수님께서 시신이 되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육체가 시체가 되었을 때에도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음. 이 구절을 고백할 때마다 그 어떤 절망의 벽도 소망 속에서 넘을 수 있음.

- ascendit ad caelos (아스쩬디뜨=올라가다, 아드=~, 첼로스=하늘) 성령님의 능력으로 하늘에서 인간세상으로 잉태되어 오셨다가 구원사역을 마치신 후 다시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 구원이 철저히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임을 강조하는 구절.

 구원은 결코 옆의 사람으로부터나 아래 땅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우직 위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만 내려오는 것 우리가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임을 믿는다면 언제나 위의 것을 구해야 함을 이 고백이 천명하고 있음. ( 3:1~3 참조)

- sedet ad dexteram Dei Patris omnipotentis (세데뜨=앉다, 아드 덱스떼람=오른쪽에, 데이=하나님, 빠뜨리스=아버지, 옴니뽀뗀띠스=전능한)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른쪽에 앉아계신다는 뜻.

우리말 번역에서는 아버지가 빠져, 하나님께서 아버지이심을 재강조한 의도를 살리지 못함.

오른쪽은 동등한 권위를 의미.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과 본체가 같으신 성자 하나님이심을 다시 강조. 승천하신 그때만이 아니라, 지금 이 사간에도 성자 하나님이시라는 말.

- inde venturus (est) judicare vivos et mortuos (인데=거기로부터, 벤뚜루스=오다, 유디까레=심판하다, 비보스=산 자, 에뜨=와 모르뚜오스=죽은 자)

 * inde: 거기로부터.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바로 그 하늘로부터 다시 오신다는 것. (24:30),

   예수님의 초림이 모두 구약성경이 예언한 대로 문자적으로 이루어진 까닭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어떤 거짓 예수도 설 자리가 없게 하시기 위함.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하늘로부터 오시리라는 말씀도 반드시 문자대로 이루어질 것. 누구든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인간은 결코 재림주가 아님.

   예수님께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하늘로부터 임하실 것이기에 지구는 둥글지만 어느 곳에 있든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예수님의 재림을 동시에 볼 수 있음.

 * venturus: 미래형 동사. ‘오시리라’. ascendit (과거형 동사 올라가셨다’), sedet (현재형 동사 앉아 계시다’)와 함께 사용되어, 과거/현재/미래를 통틀어 언제나 변함 없이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설명.

 * judicare vivos et mortuos: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기 위해, 심판주로 재림하실 예수님.

   믿지 않는 자에게 심판은 영원한 멸망이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사람에게 심판은 하나님의 셈하심과 상주심.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달란트를 우리가 어떻게 사용했는지 셈하시고 상주시는 것.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 11:6)

   바른 믿음을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계신 것과 하나님께서 셈하시고 상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함.

매 순간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하나님께서 항상 나와 함께 하심을 믿으면서 살고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을 수 없을 것. 이 사실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사는 모습이 너무 많이 보이고 있음.

하나님이 말씀하신 상이 우습고 유치하게 여겨진다면,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크게 여기는 사람. 오늘날 한국 교회가 타락한 이유 중 하나는 하나님의 복과 사랑을 세상에서 세상의 것으로만 얻고 누리려 했기 때문.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야 영적으로 나태하기 짝이 없는 우리를 매사에 성경적인 윤리 위에 서게 해 줌.

3) 성령

 Credo in SPIRITUM SANCTUM: sanctam eccelesiam catholocam; sanctorum communionem; remmisionem Peccatorum; carnis resurrectionem; vitam aetenam

- 성령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인 세 번째 단락

- Credo in SPIRITUM SANCTUM (끄레도 인=내가 ~을 믿는다. 스삐리뚬 상뚬=성령, 내가 성령님을 믿는다) 대문자로 기록된 라틴어 성령. 앞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뜻하는 DEUM PATREM도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는 JESUM CHRISTUM도 모두 대문자로 구별되게 표기. 그 구별을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구별된 분이시며, 그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는 우리 역시 구별된 마음과 생각을 지녀야 함을 확인시켜 주고 있음. 성령님을 믿는다는 것은 성령님께 내 심장을 드린다는 것. 그 믿음의 구체적 내용이 이어짐.

- sanctam eccelesiam catholocam (상땀=거룩한 에끌레시암=교회 까똘리깜=보편적인)

  거룩한 공회를 믿음.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조에서 정의한 교회는 하나의 교회, 거룩한 교회,보편적 교회, 사도적 교회. 보편적 교회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나 한데 어우러질 수 있는 교회를 말함. 수준 높은 사람들이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과도 주님 안에서 격의 없이 어우러질 수 있어야 진정한 교회.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내가 먼저 보편적 인간이 되어야 가능. 성령님의 도우심 속에서만 보편적 교회를 이루는 보편적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다는 의미. 이 고백은 내가 성령님의 도우심 속에서 보편적 교회를 이루는 보편적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겠다는 결단.

- sanctorum communionem (상뜨룸=성도 꼬무니오넴=교통, 성도의 교통)

 성도의 교통의 의미

 성도가 함께 행하는 것.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끼는 세 제자에게 함께 기도해 줄 것을 당부하셨음에도 잠에 곯아 떨어진 그들을 일어나라, 함께 가자시며 깨워 그들과 함께 행하신예수님.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통을 받으시는 그 순간에 줄행랑을 친 제자들임에도, 그들을 먼저 찾아가셔서 승천하시기 전까지 40일을 그들과 함께 행하신예수님.

  내 주변에 나보다 수준이 높은 사람도, 비슷한 사람도, 낮은 사람도 존재하지만,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들 모두와 함께 행하는 것이 성도의 교통. 성령의 도우심 속에서 함께 행하여야 할 사람들과 함께 행하겠노라고 고백하는 것.

함께 사귀는 것, 성도의 교제

  성도는 말씀, 기도, 봉사, 권면을 통해 함께 사귀는 가운데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이 받지 못한 것을 채움 받음으로써 각자의 신앙 경지가 확장됨. 공예배만 아니라 소그룹 모임에 참여해야 할 필요성.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 4:12) 두 사람이 맞서는데 겹줄이 아니라 세 겹 줄인 이유는 두 사람 사이에 성령님이 개입해 주시기 때문. 성도의 교제도 하나님 안에서만 가능.

  성령의 도우심 속에서 성도의 교통을 통해 서로 신앙 경지를 넓혀 가겠다고 고백하는 것.

성찬식을 통한 주님과의 연합

  성찬식에서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써 주님과 내가 종적으로 연합. 성찬식에 참여한 모든 형제 자매들과 횡적으로 연합. 이 모든 것이 성령님의 역사 속에서 가능함.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2:20)

  성령님의 도우심 속에서 주님과의 이 신비스러운 연합이 가능함을 사도신경을 통해 고백.

- remmisionem Peccatorum (레미시오넴 뻬까또룸, 죄를 사하여 주심)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셨음을 믿음은 오직 성령님의 역사 속에서만 가능. 죄 사함을 믿는다는 것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임을 자각한다는 전제. 스스로 의인이라 생각하는 자는 죄 사함도, 복음도 필요 없을 것.

 성령님의 거울을 통해서만 자신의 죄인 됨과 그리스도 안에서 미음으로 의롭다 인정받은 자신을 동시에 볼 수 있음.

 사도신경의 이 고백을 통해 죄 사함 받은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인.

- carnis resurrectionem (까르니스 레수렉치오넴, 몸의 부활)

 몸의 부활은 원래 상태로의 회복을 의미. 구원은 성령님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본래 아담과 하와에게 입혀주신, 영원히 죽지 않는 우리 몸으로 회복됨으로써 완성.

 몸의 부활은 우리에게 육체의 소중함에 대한 깨달음을 줌. 육체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 되면 허망한 것이 되나 육체를 영혼을 담는 그릇으로 소중히 다루면 비로소 전인적인 존재가 됨. 우리의 영적 상태는 결국 우리의 몸을 통해 드러남. 몸은 영혼을 가두어 두는 감옥이 아니라 우리 영혼의 아름다운 옷이 됨. 우리 생전의 몸으로 우리를 기억할 세상 사람들. 몸을 바르게 가꾸고 지키는 것의 중요성.

- vitam aetenam (비땀 에떼르남, 영원히 사는 것)

 아멘을 제외하면 사도신경에서의 마지막 고백. 영생 즉 영원이라는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면 무엇이 진정으로 크고 작은지 확연하게 보일 것. 영원의 안경을 통해 죽음은 죽음이 아니며 자신이 뿌린 진리의 씨앗은 영원 속에서 반드시 결실할 것을 확실하게 보았기 때문에 참수형도 감수할 수 있었던 사도 바울.

 우리가 천국에서 하나님께 보여 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포기한 것들이다’ (가브리엘 엑셀) 이 땅에서 포기한 만큼 천국에서 되돌려 받음. 영원의 안경을 쓴 사람만 포기해야 할 것을 미련 없이 포기할 수 있고, 이는 성령님의 도우심 속에서 가능.

 사도신경의 고백을 통해 성령님의 빛 속에서 영원, 영생의 안경을 쓰고 이 세상을 넉넉히 이기며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

4) 결어

- Amen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사람이 하나님, 이 고백이 모두 진실입니다. 제가 그냥 한 번 해본 말이 아닙니다. 저는 이 고백의 내용을 모두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고백이 제 삶의 열매로 결실되게 도와주실 것을 믿습니다.’라는 심정으로 고백을 끝맺는 것.

 고백을 받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도신경의 모든 내용을 온전히 믿고 하나님께 믿음을 신실하게 고백하기를 반복한다면 그 고백은 반드시 삶으로 이어질 것.

 

결론

① 사도신경을 통한 신앙고백은 날마다 반복되지만 그 의미는 날이 갈수록 더욱 새로워지고 깊어짐.

② 더 이상 눈에 보이는 기적을 구하려 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본질을 믿어야 함. 보이는 것은 인식의 대상일 뿐 믿음의 대상은 아님. 보이지 않기에 믿고,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 믿음. 보이는 것은 지극히 제한적이지만 믿음은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수용함.

③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믿음의 바탕은 하나님의 말씀. 그 말씀에 대한 믿음의 핵심이 사도신경. 사도신경이라는 창을 통해 성경을 들여다보면 성경의 의미가 새로워질 것.

④ 바로 그 하나님의 말씀에 ‘Credo’라며 나의 심장을, 생명을 드리면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생명을 영원히 책임져 주실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