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교사 교육

성령님의 은사 (이재철 목사 성숙자반 여덟째 단원)

하나님아들 2019. 6. 15. 18:23

VIII. 성령님의 은사

은사에 대한 바른 이해

-       은사의 의미

은사를 가리키는 헬라어 동사 카리조마이는 친절을 베풀다, 호의를 베풀다, 만족케 하다는 의미. 성령님의 은사를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친절과 호의를 입었다’, 또는 성령님에 의해 만족함을 얻었다는 말. 따라서 성령님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독선적이거나 이기적일 수 없으며, 다른 사람에게 호의와 친절을 베풀고 만족을 주는 사람

은사를 가리키는 헬라어 명사 카리스마는 선물, 증여라는 뜻. 선물이나 증여는 값없이 그냥 주는 것. 은사를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거저 선물을 받은 것. 거저 받은 선물을 거저 나누어 주는 것이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신 목적임을 깨달아야 할 것.자기 형제 자기 친척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저주를 받아 버림 받을지라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바울의 고백( 9:3)이 바로 은사를 받은 사람의 고백.

 

-       은사와 관련하여 유의해야 할 점

(1)   은사는 선물이며, 선물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니다.

* 성령님 보시기에 이유가 있기에 은사를 주셨으므로 이 이유를 알지 못하더라도 은사 받은 사람을 진심으로 존중해 주어야 할 것.

* 은사를 받은 사람은 같은 은사를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빚진 마음으로 그 은사를 나누고 사람을 섬기기 위한 도구로 사용해야 함. 자신의 공로로 인해 은사를 받은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할 것.

(2)   은사는 여러가지이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고전 12:4~6)

* 본문에서 은사, 직분(디아코니아: 섬김, 봉사.), 사역(에네르게마: 성과, )이 모두 동격으로 기록됨. 따라서 은사를 직분, 사역으로 표현할 수도 있음. 즉 봉사를 위한 교회의 모든 직분도, 모든 사역도 성령님의 은사.

* 이들의 공통점이 모두 여러 가지’(디아이레시스: 그 뿌리가 하나인 채 여러 가지라는 뜻)라는 것이 중요. 은사의 뿌리는 성령님 한 분이시지만, 각 사람에게 맞도록 여러 가지 형태로 주심.

* 로마서 12장에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언급한 은사와 전혀 다른 종류의 은사를 소개.

(3)   은사를 통해서 나타나는 모든 역사의 주체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고전 12:4~6)

* 본문 속에 나타나는 성령”, ‘’(예수님),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 은사는 여러 가지 형태로 드러나지만, 그 모든 은사를 통해 드러나는 역사의 주체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심을 밝히기 위함.

* 성령님의 은사를 받은 사람에게는 그 선물을 주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인격이 배어나며, 그래서 은사를 받은 사람은 독선적일 수 없고 더 겸손하고, 더 너그러워지며, 더 이타적이어야 한다.

(4)   은사를 주시는 목적은 유익하게 사용하기 위함이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2:7)

* 먼저 은사를 받은 사람의 유익을 위함. (하나님의 인격이 배어나는 삶을 살게 되는 유익)

* 그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유익을 위함. 그로 인하여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 얻는 평화, 그가 속한 교회가 얻게 되는 은혜.

* 결과적으로 은사를 주신 성령님께도 유익하게 됨.

*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부정적인 의미의 분열을 조장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성령님의 은사가 아니다.

* 은사를 받았을 때의 체험과 감격에 머무르려 해서는 안된다. 이를 재현하려 한다면 그 신앙은 마약에 지나지 않음. 첫 감격은 거쳐가는 과정이요,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출발점일 뿐. 주신 은사로 누군가에게 봉사하고, 누군가를 섬기며 살게 하시려는 성령님의 목적을 잊지 말라.

(5)   은사는 선물이므로, 선물은 주시는 분이 결정하신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고전 12:11)

* 성령님께서는 당신의 뜻대로 은사를 나누어 주심. 각 사람에게 주시는 은사의 내용과 시기도 철저하게 성령님의 결정 사항. 따라서 특별은사집회라는 것은 불가능한 것.

* 은사를 사모할 수는 있으며, 그것이 모두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면 응답하실 수도 있음.

 

은사의 구분

-       내적 은사:

* 우리에게 내적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사이므로 주위 사람은 알기 어려우며 본인조차 모르기 쉬움.

*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배어 나옴.

* 우리의 삶을 인격적으로 변화시켜 주는 은사이므로 받으면 받을수록 좋음.

 

-       외적 은사

* 받는 순간 외적으로,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은사

* 매우 화려해 보여서 많은 사람들이 사모하며 집착하는 경향.

 

-       내적 은사와 외적 은사에 대해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

(1)   내적 은사는 모두의 유익을 위해 사모하고 간구하는 자에게 주어지지만, 외적 은사는 하나님의 필요와 뜻에 따라 주어진다.

* 내적은사는 생필품과 같아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하여, 우리가 모두의 유익을 위하여 사모하고 간구할 때 주어짐.

* 굳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장식품과 같은 외적 은사는 간구한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님.

(2)   성령님의 은사와 관련된 모든 문제는 외적 은사에서 드러난다. 내적 은사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는 없다.

 * 내적 은사를 사모하고 간구하는 것은 당사자의 중심이 하나님께 맞춰져 있음을 의미. 주님을 더 잘 믿고, 더욱 주님의 뜻대로 살기 위하여 내적 은사를 간구하는 것.

 * 외적 은사를 갈망하는 것은 자기 과시욕일 가능성이 많음. (사도행전 8, 마술사 시몬이 성령님의 능력을 돈으로 사려고 했던 예)

 *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한, 외적 은사를 크게 받은 자들에게 그들을 내치실 것이라고 하신 예수님. ( 7:21~23) 그들이 성령님의 은사를 자기 소유욕과 과시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오용했기 때문일 터.

(3)   외적 은사는 반드시 내적 은사로 승화되어야 한다.

 * 외적 은사를 드러내려고 하면 자기 교만에 빠질 수 밖에 없음.

 * 외적 은사를 내적 은사로 승화시켜 보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려고 하는 목적이라면, 외적 은사 역시 사모하는 사람에게 주어질 수 있음.

 * 외적 은사를 내적 은사로 승화시킨다는 것은 외적 은사를 자기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삼지 않고, 모두의 이익을 위해 봉사와 헌신의 도구로 삼는 것을 의미.

 * 외적 은사를 내적 은사로 승화시키려는 사람은 그 중심이 이미 주님께 맞추어져 있기에 외적 은사도 사모함으로 받을 수 있음.

 

고린도전서가 말하는 내적 은사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 ~~’ (고전 12:8~9)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이 모두 내적 은사.

 

-       지혜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 인생을 건져 올리는 능력. 자기 인생을 건져 올릴 수 있는 말씀 적용의 능력 (application)

*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그리스도인이지만, 삶의 현장에서 문제가 터졌을 때 방대한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무슨 말씀을 붙잡을 것인지, 삶의 현장인 여기, 이 순간에 무슨 말씀을 붙잡을 것인지 알기 어려움.

* 어떤 문제에 직면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적용할 수 있다면, 지혜의 말씀 즉 주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는 은사를 성령님께서 주신 것.

* 그러므로 삶의 현장에 말씀을 적용하는 은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며, 겸손하게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구해야 하는 것임.

* 요한복음 14:26에 언급된 보혜사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또 생각나게 해 주시는 것이 바로 성령님께서 주시는 지혜의 말씀의 은사.

* 이사야서 50:4에 언급된 여호와께서 아침마다 깨우쳐 주신다는 것이 바로 아침마다 말씀 읽는 은사를 받았다는 말. 말씀을 읽으니 깨우칠 수 있고, 곤고한 자를 도울 수도 있음. 즉 말씀을 읽는 은사, 말씀을 깨닫는 은사와 말씀 적용의 은사를 받은 것.

 

-       지식의 말씀: 말씀을 해석하는 은사 (interpretation)

 * 성경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지만 말씀 해석을 그릇하는 이단. 그릇된 해석을 꿰어 맞추기 위해 더욱 열심히 성경공부. 천국을 비유로 설명하신 마태복음 13장의 한 구절을 들어, 성경은 비유로만 풀어야 한다는 궤변으로 말씀을 왜곡.

 * 모든 말과 글에는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外視의미와 그 속에 내포된 함축의미가 있음. 최소한 이천 년 전에 기록된 성경 말씀은 당시의 문화적 배경 속에서 해당 구절의 함축의미가 무엇인지 알려는 자세가 필요함. 거룩하게 입맞추어 문안하라는 고린도전서 16:20 말씀은, 당시 상류층의 인사 방법인 입맞춤을 그들끼리만 하지 말고 교회에서는 신분에 관계 없이 똑 같이 하라는 의미. 즉 누구와도 마음을 다해 인사하라는 함축의미를 담고 있음.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 5:13~14)

* 바르고도 깊은 해석을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의 지각이 동원되어야 함.

  * 귀에 듣기 좋고 마음에 드는 말씀만 사모하는 사람은 젖먹이 아이와 같음.

  * 어려워 보이고 이해하기 힘든 딱딱한 말씀까지도 먹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각 (아이스데테리온: 모든 의식 기관)을 사용하여야 함. 말씀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성, 지성, 오성(悟性)을 모두 동원해야 함.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 11:33)

*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을 인간이 헤아리지 못하므로,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사모하여 간구하여, 모두에게 유익을 끼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

 

-       믿음: 산을 들어 옮길 만한 특별한 능력을 행하는 믿음(고전 12:10에서 능력 행함의 은사를 별도로 소개)이 아니라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믿음.

 * 성령님의 선물, 즉 은사인 믿음.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존재가 믿어지는 것이 믿음의 은사.

 * 성경을 읽으며 믿기 어려운 구절을 만나면 그 말씀을 믿을 수 있는 은사를 간구하여야 할 것.

 * 헬라어 피스티스는 믿음, 신실, 충성의 의미. 즉 믿음이란 단어에 신실, 충성을 대체하면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있음.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 21:22)신실하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충성하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로 대체. 신실한 사람은 헛것을 구하지 않음. 충성된 종은 자기 욕망의 것을 구하지 않음. 오직 주인의 뜻을 위해, 더욱 신실하고 충성되이 살기 위해 기도하므로, 그들의 기도는 모두 이루어지는 것.

 * 믿는다고 말할 때, 그것이 나의 욕망이 원하는 것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포장하여 믿음이라 믿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닌지 잘 살펴야 함.

 * 믿음의 은사를 받아야 하나님의 말씀에 신실해져서 자기를 부인하고 말씀을 믿으면서 말씀에 충성하게 되는 것. 한자풀이를 하면 충성(忠誠)은 중심을 다하여 말씀을 이루다는 뜻. 주일에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럽고 괴롭지만 삶 속에서 중심을 다하여 말씀을 이루기 위해 울면서도 행하는 것이 충성.

 * 피스티스의 또다른 의미 입증’. 믿음은 스스로 입증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신실하게 충성을 다한다면 그의 믿음이 그의 삶을 통해 입증될 것임.

 

-   세 가지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내적 은사는 모두 말씀과 관련되어 있음. 하나님이 말씀이시기 때문. 내적 은사들을 통해 하나님과 내적으로 깊이 교통하고 외적으로 동행할 수 있음.

 

-   내적 은사는 구하고 사모할수록, 말씀이신 하나님의 영, 성령님께서 더욱 주심.

 

-   이 은사를 사모하고 구하는 것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

 

고린도전서가 말하는 외적 은사

‘~~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 어떤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고전 12:9~10)

 

-       병 고치는 은사와 이 은사에 대해 유의해야 할 사항

(1)   신유의 은사는 만병통치가 아니다.

신유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병원과 의술, 의약이라는 은사를 인간에게 주시기 전에 강하게 나타났음. 지금도 이런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오지에서는 이런 은사가 강하게 드러나나, 21세기 문명 세계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신유의 은사는 만병통치를 의미하지 않음.

(2)   치유 받지 못해 신앙의 실패자로 인생을 마감하지 말라.

병에 시달리며 육체의 연약함으로 인해 더욱 겸손하게 주님만 의지하게 하였기에 바울은 누구보다 강인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었음. 이는 병이 주는 유익. 병들었을 때에만 누릴 수 있는 주님의 은혜를 먼저 누리라. 치유의 실패가 인생의 실패로 연걸되지 않도록 하여야 함.

(3)   치유 받은 자에게 발설하지 말라고 예수님께서 명령하셨음을 잊지 말라.

예수님의 명령은 인간들이 병 낫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기 때문에 주신 것.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목적을 병의 치유에 두기 때문.

(4)   병 고치는 은사 역시 내적 은사로 승화되어야 함.

* 육체의 치유 뿐 아니라, 영혼이 강건해져서 결과에 자유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기도해 주어야 함. 영혼이 강건해지는 것보다 더 큰 신유의 은혜는 없음. (지병을 안고 살았으나 영적 건강인으로 살았던 바울의 예.)

* 영적 건강의 시금석은 죽음의 의미와 가치를 아는 것. 죽음의 의미와 가치를 알아 두려움 없이 죽음의 관문을 통과하는 것이 진정한 신유의 은사를 받은 것.

 

-       능력 행함

* 마술적인 능력이 아니라, 능력의 체험을 통해 삶의 변화가 있어야 할 것. 성령님의 인격이 배어나는 변화가 수반되지 않으면 단순한 최면술일 뿐.

* 내적 은사로 승화될 때에만 진정한 하나님의 선물이 됨. 자신의 능력으로 끊지 못하던 것을 끊게 되고, 할 수 없던 것을 하게 되는 것이 진정한 능력 행함. 그리스도인으로서 끊을 것을 끊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 그러나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기도하라. 이것이 능력 행함의 은사를 구하는 것.

 

-       예언

 * 점쟁이식 예언기도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

① 하나님의 예언에도 반작용을 위한 예언이 있다.

  에스겔 33:14~16 말씀. 악인에게 죽으리라 말씀하셨을 때, 그가 돌이켜 회개하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울례를 지켜 행하면 그가 반드시 살 것이라고 하심. 하나님께서 하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하신 예언은 정말 죽으라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반드시 살라는 의미.

②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그런 예언을 하는 사람의 노예로 전락하게 됨.

  예언이 어긋나 인생이 망가져도 그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음. 예수님께서도 큰 방향과 틀을 제시해 주셨을 뿐 족집게식 예언을 하신 적이 없으심.

③ 그런 예언에 의존할 경우 자율적인 삶은 실종되어 버리게 됨.

  성경이 없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필요에 따라 그런 예언을 해주시기도 하였으나, 그런 경우는 성경 전체의 0.001%도 되지 않음. 이런 경우를 절대화하여 족집게 예언을 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는 비성경적 사람.

 * 예언의 참된 의미

   예언자의 히브리어 나비는 점쟁이처럼 미리 말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람. 예언의 한자는 미리 예()가 아니라 맡길 예()를 사용. 즉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말씀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해석하는 사람이 예언자.

   허랑방탕하게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계속 그렇게 살면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 말씀대로 살고자 애쓰는 사람에게 그 중심을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이야기 해 줄 수 있으며, 이렇게 말씀의 토대 위에서 현실을 해석하는 것이 예언.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하여, 이삭을 통해 가나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절대로 이삭을 죽이지 않을 것이라고, 설사 이삭이 죽더라도 다시 살려내실 것이라고 확신하고 순종한 아브라함이 바로 하나님 주신 말씀으로 자신의 상황을 바르게 해석한 예언자.

 * 예언의 본뜻을 알아 실족하지 말고, 예언의 은사 역시 내적 은사로 승화시켜야 할 것.

 

-       영들 분별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요일 4:1)

 * 사도 요한이 이 본문을 기록할 때는 신약 성경이 확정되기 전으로 도처에 자칭 그리스도, 자칭 선지자가 있어 참과 거짓을 분별하기 어려웠기에 성령님께서 영들 분별의 은사를 주신 것.

 * 오늘날에는 영들을 분별할 수 있는 명확한 근거인 성경이 있음.

 * 말씀의 토대 위에서 경계해야 할 영의 모습들

  ① 회개를 말하지 않는다.

    성령님은 우리를 회개하게 하시는 영이심.

② 심판과 회개만 강조한다.

  하나님의 사랑 없이 심판과 회개만을 줄곧 강조하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가 아님. 회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인간의 응답임.

③ 사랑과 용서만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하나님의 공의가 함께 감.

하나님의 공의를 결여한 사랑은 마약일 뿐.

④ 기도나 찬양만 하게 한다.

  기도와 찬양은 성령님과는 무관한 인간 감정의 산물일 뿐. 기도와 찬양이 말씀의 토대를 벗어나면 얼마든지 잘못될 수 있음.

⑤ 그리스도인의 의무는 말하지 않고 복과 권리만을 강조한다.

  성령님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도록 인도하시는 진리의 영이심.

⑥ 욕망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성령님은 우리 욕망의 허무함을 비춰 주시는 거울. 특정 집회에 참석하여 도리어 욕망이 분출한다면 그것은 성령님의 역사가 아님.

  휴거 소동을 일으킨 이단의 행태는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었음을 증명.

  성령의 검은 하나님의 말씀. ( 6:17) 하나님의 말씀을 검으로 지닌 사람만 성령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거짓된 영을 분별하고 격퇴할 수 있음.

 

-       방언

 * 방언이 은혜로운 까닭은 성령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심을 확인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

* 방언 기도는 성령님과의 교감이 있기 때문에 오래 기도해도 지루하지 않음. 방언으로 기도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루해 지면 자신이 억지로 꾸며 기도하는 것.

 * 방언을 자기 과시의 수단으로 삼고 방언 받지 못한 사람을 영적으로 열등한 사람인 것처럼 업신여기기 쉽다는 문제점. 방언을 외적 은사로만 여기기 때문.

 *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고전 14:14~15)

   방언기도는 방언하는 사람조차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영적 기도이기에 방언기도만으로는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그래서 방언과 더불어 자기 이성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마음으로 기도하도록 한 바울.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외적 은사인 방언을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내적 은사로 승화시키라는 말. 그런 기도가 기도하는 사람과 기도에 참여한 모두의 유익으로 귀결되기 때문.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전 14:18~19)

 * 외적 은사인 방언을 내적 은사로 승화시킨다는 것의 구체적 의미

   오순절 다락방에서 처음 임한 방언을 통해 열여섯 개 다른 지역의 사람이 제자들의 말을 알아 듣게 되었음. 말이 통하지 않던 사람과 말이 통하게 되는 것이 방언의 은사를 내적으로 승화시킨다는 것임.

   말이 통하지 않던 상대의 말이 이해되는 것, 서로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는 것, 서로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내적으로 승화된 방언의 은사. 어떤 경우에도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문제를 야기하지 않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담을 허물고 그 양자를 한데 엮어주는 능력이기 때문.

 

-       방언 통역: 다른 사람의 방언을 알아 듣도록 통역해주는 은사.

 * 방언 통역은 아무도 검증하지 못한다는 문제점.

 * 우리 믿음의 대상은 미몽의 대상이 아니라 로고스 즉 말씀이신 하나님이시므로 방언 통역의 은사 역시 내적 은사로 승화되어야 함.

 * 말이 통하지 않던 사람과 말이 통하게 된 그의 말 (방언)을 제3자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주는 것. 예를 들면 배고픈 사람의 고통을 자신이 이해하고 다른 사람도 이해하게 하는 것. 방언 통역의 은사를 지니고 살아갈 때 하나님의 자녀답게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될 것. ( 5:9)

 

결론

-       모든 은사는 내적 은사로 승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모두의 유익으로 드러난다.

 * 은사가 내적으로 승화되었는지 확인하는 방법: 외적 은사로 인해 더불어 사는 사람과 속한 공동체 모두에게 유익이 미치고 있는지 점검함으로.

 

-       모든 은사는 X의 삶을 구현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고전 12:31)

  크고 작은 은사, 열등하고 우월한 은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더 큰 유익으로 드러나는 은사를 사모하라는 뜻. 그 은사가 바로 사랑 (고전 13)

 * 성령님의 은사도, 하나님의 말씀도, 십계명도, 모두 우리로 하여금 X의 삶을 살게 해주시려는 하나님의 은혜.

 

-       이 세상에 속박 당하지 않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은사는 영생이다.

 *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 6:23)

   죄의 결국은 사망이지만 하나님의 은사 즉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으로 귀결.

 * 서로 사랑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나 영생과 무관한 사랑은 무의미.

 * 하나님께서 은사로 주신 영생,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사람임을 잊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지향할 때 순식간에 끝나버릴 이 세상의 삶을 바르게 살다가 깨끗하게 퇴장할 수 있음. 인생의 퇴장은 곧 재등장을 의미.

 * 퇴장했던 그 모습대로 재등장하여 살아있는 사람들의 뇌리 속에 살아남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어떻게 퇴장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 영생의 토대 위에서 살아갈 때에만 깨끗하게 퇴장할 수 있고 깨끗하게 퇴장할수록 더욱 멋있게 재등장할 수 있음.

 * 미리 가족간, 특히 부부 간에 확고하게 약속하여 퇴장하는 사람의 생명의 존엄성을 가족이 지켜주어야 함. 무의미한 생명 연장, 후손이 찾지 않을 묘소에 대한 문제 등을 미리 정리해는 것이 영생을 은사로 받은 사람이 가질 죽음에 대한 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