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교사 교육

그리스도인의 사회생활 (이재철 목사 성숙자반 열째 단원)

하나님아들 2019. 6. 15. 18:25

X. 그리스도인의 사회생활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        그리스도인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는 명제는 참으로 중요.

-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잊지 말아야 함.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인 됨은 예배당 안이 아니라 예배당 밖 사회에서 드러나는 법.

-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그리스도인이 사회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어떻게 인식하고 살아가느냐에 의해 확정됨.

 

모델로서의 그리스도인

-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세상에 보여주는 모델.

-        디자이너의 옷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사람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디자이너의 기술과 솜씨, 그의 모든 재능을 한눈에 보여주는 전문인이 모델.

-        그리스도인은 보이지 않는 주님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전문인인 모델이 되어야 함.

-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요일 1:1)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설명.

-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요일 1:2)

태초부터 계신 로고스 말씀이신 하나님을 우리가 보고 듣고 만져볼 수 있게끔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를 이 세상에 보여주시기 위한 모델이신 예수님.

-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요일 1:3~4)

자신과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모델임을 밝히는 요한 사도.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모델이 바로 그리스도인인 우리 모두가 사회 속에서 지녀야 할 정체성.

-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모델이 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고,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여주는 모델. 어설픈 모델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을 제대로 보여주는 프로 모델이 되어야 함. 철저한 훈련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프로 모델이 될 수 없음. 앉고 걸음에 있어 받은 훈련을 평소에도 적용하는 사람 중에서만 프로 모델이 나오는 법. 훈련을 통해 평상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삶을 제대로 보여주는 프로 모델이 되어야 할 것.

-        그리스도인 역시 생로병사의 고통을 피할 수 없으며, 힘든 시간이 있음. 여러 가지로 찾아오는 고통과 좌절의 상황에서도 우리가 주님의 모델이 되도록 우리를 불러주신 주님.

-        사람보다 옷이 두드러져 보이도록 마른 체격을 유지하여야 하는, 감량이 필요한 프로 모델과 같이 그리스도인의 영적 감량도 필수적임. 그리스도인의 영적 감량은 자기 부인’. 자기 부인의 척도는 하나님의 말씀.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만 드러나 보이도록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자신을 부인하는 훈련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 하나님의 말씀을 드러내는 자기 부인의 사람이 될 때, 우리는 성부 성자 하나님의 프로 모델이 되어, 우리의 삶은 하늘의 별처럼 아름다워질 것임.

 

진열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인

-        그리스도인 개인이 모델이라면, 그리스도인이 속한 가정 공동체와 직장 공동체는 세상 사람들이 들여다보는 쇼윈도 즉 진열장. 그리스도인의 가정과 일터는 세상 사람들이 누구든지 들여다 보고, 인생은 어떻게 꾸려가는 것인지, 행복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게 해야 함.

-        세례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님께 어디 계시느냐고 묻자 와서 보라고 대답하신 예수님. ( 1:35~40) 그에 따라 예수님 계신 곳을 보고 함께 거하며, 자기의 형제 베드로까지 데려옴. 예수님께서 계신 곳은 그들에게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진열장이었음.

-        메시야가 오셨음을 알린 빌립에게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날 수 없다고 나다나엘이 대답하자, 그에게 와서 보라고 권유한 빌립. ( 1:45~46)

-        우리는 그 동안 믿지 않는 자들에게 와서 보라라고 권유하는 진열장을 예배당으로만 국한해 왔으나, 가정과 일터를 진열장으로 삼고 와서 보라고 권해야 할 것. 우리의 가정에, 우리의 일터에,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보여줄 것들이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하라.

-        그리스도인의 가정이라면 세상의 것으로 인함이 아니라 서로 가족 됨으로 인해, 가족들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그런 가족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 사랑의 문자적 의미가 기뻐하다이기 때문. 부모와 형제와도 그런 사랑을 나누어야 할 것.

-        가족끼리 진정으로 귀하게 여기며 존중하는지 생각하라. 사랑은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        행복은 열심히 일하고 땀 흘려 얻은 결과에 자족하며 사는 것. 자족이 없으면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배고플 수 밖에 없음. 자족의 행복이 우리 가정 쇼윈도에 진열되어 있는지 생각해 보라. 그 쇼윈도에 그리스도인의 구별된 생각과 언행과 예의범절이 구비되어 있는지도 생각하라.

-        크리스천 기업인은 많으나 크리스천 기업은 드문 현실. 기업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그리스도인은 많지만 적은 이윤 밖에 거두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기업을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정직하게 운영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는 말.

-        자신의 일터로 인해 하나님께 무슨 유익이 있는지, 동료/거래처/고객들에게는 어떤 유익이 돌아가는지 생각해 보라. 자신의 일터가 경제 원칙에 의한 시스템에 불과한지, 말씀에 의한 시스템, 즉 정직과 성실의 바탕 위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구현되고 있는 곳인지, 일터의 진열장을 매일 점검하라.

 

주님의 손과 발로서의 그리스도인

-        영이시므로 손과 발이 없으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인간의 손과 발을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시므로 우리는 모두 행동하는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함.

-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내가 너희를 전도자가 되게 하리라하시지 않고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말씀하신 예수님. 우리가 복음의 증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전도를 위해서는 반드시 손과 발을 사용해야 함을 일깨워주시기 위함.

-        입으로만 하려 하는 전도가 아니라 손과 발로 하는 전도가 되어야 한다. 한 인간의 의롭고 악함은 결국 그의 손과 발이 어떤 도구로 쓰였느냐에 의해 결정됨. 우리 각자의 인생은 우리의 손과 발이 행한 것으로 하나님과 세상 사람들에게 이미 평가 받았고, 지금 현재 받고 있으며, 천국으로 가는 그날까지 앞으로도 계속 받게 될 것임.

-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다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로 말미암아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 ( 31:30~31)

여자에 대한 언약으로 끝난 지혜의 책인 잠언. 여자가 지혜롭지 않으면 한 가정이 바로 세워질 수 없음.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면 자기 손의 열매가 반드시 자기에게 되돌아옴을 아는 것. 따라서 지혜로운 여자만 자기 손을 의의 도구로 삼아 자신의 가정을 바로 세울 수 있음.

-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표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표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 52:7)

진리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기에 아름답다고 하나님께서 칭찬하신 사람의 발. 우리의 손과 발을 보시는 하나님. ‘우리의 손과 발이 무엇을 했느냐에 따라 아름다움을 평가하시는 하나님. 예수님의 손과 발이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인간의 손과 발이 범죄하기에 손과 발에 형벌을 받으셨음.

-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예수님의 손과 발이 우리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음으로,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 새로워진 우리의 손과 발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바로 주님의 손과 발이 되는 것. 당신의 손과 발로 삼으시기 위해 우리를 부르신 주님께서 당신의 손과 발이 못박혀 돌아가셨음을 잊지 말라.

 

빛으로서의 그리스도인

-        어둠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것, .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어둠을 물리치는 빛.

-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 8:12)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자체로는 불가능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접속함으로써 그 빛을 비출 수 있는 전구인 우리들.

-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 12:35)

세상적으로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 어둠 속에서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빛을 비춰주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

-        세상이 어둡다고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아직 빛이 되지 못하였음을 회개하라.

세상이 어둠이란 것은 빛만 있으면 세상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말.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그 빛이다.

 

이정표로서의 그리스도인

-        그리스도인은 인생이 가야 할 궁극적 목적지가 어딘지 일러주는 이정표가 되어야 함.

-        법정 스님이나 성철 스님, 김수환 추기경과 같이 타 종교에서 초지일관한 이정표 역할을 한 지도자들이 있으나 개신교에 그러한 분이 드묾.

-        변화산에서 신비롭게 변형되신 주님과 모세, 엘리야의 대화하는 모습이 황홀하여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살기를 요청한 베드로의 간청에 대해,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예수님께서도 일언반구도 없으셨음. ( 17:1~7)

-        도리어 제자들을 데리고 내려오신 예수님. 예수님의 사역지는 산 위가 아니라 산 아래, 곧 인간이 모여 사는 속세이었기 때문.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 내려와야 한다. 가정과 사회 그리고 역사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책임과 의무를 어렵더라도 이 세상 현실 속에서 이정표로, 일평생 초지일관한 이정표로 살아야 한다.

-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영원한 생명을 가리키는 이정표로 택함 받은 그리스도인.

-        죽든지 살든지 자기 몸을 통하여 그리스도만 존귀하게 되면 그만이라고 하며 생사를 초월한 바울. ( 1:20~21)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었으므로, 육신이 죽는다고 죽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

-        개인적인 소망은, 그의 삶의 궁극적 목적인, 당장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나라에서 주님을 모시고 사는 것임에도, 육신을 지니고 이 세상에 좀더 살라시는 주님의 뜻에 순종한 바울. ( 1:22~24)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 세상에 좀더 살게 하시는 것은 자기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너희즉 빌립보 교인들, 나아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 영원한 생명의 이정표가 되어 주는 유익을 주기 위함이라고 하였음. 참수형으로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영원한 이정표로 산 바울.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영원한 생명의 초지일관한 이정표가 된 성경의 신앙인물들을 본받아 우리 역시 이 땅에서 그 이정표가 되어야 할 것.

-        영생을 믿는다면서도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깨끗한 퇴장도, 멋진 재등장도 불가능함. 우리에게 개인적인 소망을 말하라고 하면, 사도 바울처럼 지금 천국에 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함.

-        삶과 죽음에 대한 분명한 신앙관이 확립되어 있지 않으면 초지일관한 이정표가 되기는 불가능하다.

-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 47:9)

나이가 들어서야 인생은 나그네길임을 알았기에 그때까지 이 땅을 영원한 본향으로 삼았던 야곱의 인생에 험악한 곡절이 많았음. 인생을 살고 보니 뒤늦게 인생은 나그네길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음. 누구든 때가 되면 이 세상을 반드시 떠나야 함을 깨달을 때에만, 죽음의 상황에서마저 초지일관한 이정표가 될 수 있다.

-        죽음은 내가 하던 일을 다른 사람이 하는 것, 다른 사람이 내 책상을 여는 것, 아침에 출근한 집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것, 죽음은 내가 오늘 퇴근한 회사로 내일 아침 다시 출근하지 못하는 것.

그러므로 남은 자가 내가 저질러 놓은 일 때문에 고생하지 않도록 날마다 일을 깨끗하게 매듭지으며 살게 되고, 남은 자가 내 서랍을 들여다 볼 때 부끄럽지 않도록 모든 것을 정리하며 살게 되며, 출근할 때마다 귀가하지 못할 수 있음을 인식하고 가족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살게 되고, 퇴근할 때마다 다시 못 볼 것처럼 따뜻한 말로 동료의 수고에 감사하며 사무실을 나서게 될 것.

-        항상 떠날 때를 준비하고 살면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이정표로 삼으실 것.

 

이웃으로서의 그리스도인

-        좋은 이웃 그리스도인. 공간적으로 가까이 있는 사람이 이웃. 넓고 넓은 세상에서 내가 하필 이곳에 있는 이유는 이곳에있는 사람들을 이웃으로 섬기며 그들과 더불어 살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두신 것.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1:8)

땅끝에 대한 채무감으로 살아가는 신실한 모든 그리스도인. 자신이 서있는 곳에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에, 지금 자신이 두 발 딛고 서있는 곳이 바로 땅끝.

현재 자신이 위치한 곳의 이웃에게 좋은 이웃이 되지 못하는 사람은 어디에 가더라도 좋은 이웃이 될 수 없음. 이런 의미에서 자신이 지금 두 발 딛고 서있는 곳에서 땅끝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각자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할 것.

-        우리가 현재의 동네에 거주함으로 이웃에 어떤 유익이 돌아가고 있으며, 무슨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가? 스스로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하여 애쓰지 않으면 사는 동네에 평생 쓰레기만 배출하다가 끝나는 무익한 인생을 살게 될 것.

-        천만 명의 그리스도인이 좋은 이웃으로 산다면 이 세상은 살만한 땅끝이 될 것임.

 

친구로서의 그리스도인

-        공간적으로 가까운 사람이 이웃이라면, 공간을 초월하여 가까운 사람이 친구

-        그리스도인은 좋은 친구이어야 한다. 내 친구가 모두 구원을 받았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먼저 구원해 주신 것은 내가 친구들보다 더 깨끗해서가 아니라, 친구들에게 진리와 생명을 전하는 좋은 친구로 살게 하시기 위함이다.

-        이 세상에서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함을 인식한다면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만 친구로 사귀려는 생각을 버리고 자녀에게도 그렇게 가르쳐야 함. 그리스도인은 자기보다 잘난 사람과도, 못한 사람과도 친구가 되어야 함.

-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 15:15)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은 우리를 당신의 친구로 여기시기 때문. 우리를 종으로만 간주하신다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지 않았을 것. 죽어 마땅한 죄인인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 그분을 주인으로 모신 우리 역시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친구가 되어 주어야 한다.

우리의 자식을 저보다 못한 친구들과 기꺼이 놀아 주도록, 그런 친구를 위해 헌신하도록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키우면 세상은 달라질 것. 저보다 못한 친구와 놀지 못하도록 가르친다면 세상은 그리스도인인 우리로 인해 더 이기적이고 악해질 수 밖에 없다.

-        누군가를 위해 좋은 친구로 살아간다면, 그 사람 역시 주님 안에서 누군가를 위한 좋은 친구가 될 것.

 

그늘로서의 그리스도인

-        그리스도인이 이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최후, 최고의 역할은 자기 인생, 자기 가정, 자기 일터를 누군가가 쉴 수 있는 생명의 그늘이 되게 하는 것.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11:28)

주님께서는 특정인만 초청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불러주셨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위한 생명과 쉼의 그늘이셨기 때문. 그렇기에 우리 또한 누군가를 위한 그늘이 되어야 할 것.

-        크리스천 기업인은 기업을 통해 많은 사람을 위한 그늘이 되는 사람. 크리스천 교육자는 학생들을 위한 그늘을 강단에서 구현하는 사람. 그리스도인은 무슨 일을 하든 상관 없이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누군가를 위한 그늘이 되는 사람.

-        나이를 먹을수록 더 큰 그늘이 되기 위해 염두에 두어야 할 두 가지

1)     확고한 청지기 의식을 지녀야 함.

스스로 청지기라 고백하는 것은 자신의 소유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믿기 때문. 헌금은 꼬박꼬박 잘하면서 타인을 위한 그늘이 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물질 중에 타인을 위한 몫이 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 모든 물질에 포함된 타인의 몫에 대한 바른 청지기 의식을 지닐 때에만 누군가를 위한 그늘이 될 수 있음.

2)     몸과 마음이 함께 나이 들어 가야 함.

나이 들어 가는 것은 자기중심적이던 마음이 후덕해 지는 것을 의미. 이해할 수 없던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포용할 수 없던 사람을 포용하게 되며, 인색하던 지갑을 풀어 다른 사람을 위해 베풀 수 있게 되는 것이 나이 들어감의 자산. 마음이 같이 나이를 먹어가야 젊은 자식세대 의 그늘이 될 수 있음. 몸과 마음이 함께 나이 들어 가는 것은 젊은이들이 흉내도 낼 수 없는 푸근한 그늘이 되어 가는 것.

우리가 나이 들게 하셔서 날이 갈수록 더욱 푸근한 그늘이 되게 하심은 하나님 주신 복 중의 복.

-        젊은 자의 영화는 그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움은 백발이니라” ( 20:29)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며 연륜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 젊은이는 왕성해서 아름답지만 늙은이는 푸근한 그늘이 되어서 더 아름답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푸근한 그늘,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다.

 

결론

-        그리스도인에게 이 세상은 하나님 사랑사람 사랑 X를 구현하는 삶의 현장. 이 세상은 그리스도인인 우리의 삶이 X의 균형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주는 실험장. 이 세상이 있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우리가 진정한 X의 사람임을 스스로 입증하며 살아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        사람에 따라 X의 크기가 다름.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X가 확장된 사람. 우리의 X가 확장되는 만큼 이 세상은 더욱 새로워질 것.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확실한 나라 사랑, 민족 사랑, 인류 사랑은 X를 최대한 크게 구현하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조국과 인류를 사랑하는 최선의 길. 우리가 함께 나아가야 할 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