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사랑의 마음을 품는 교회 빌립보서2:1-4 2009.5.3(주일예배) 들어가는 말 5월은 어린이의 날과 어머니의 날이 들어있는 가정의 달입니다. 우리에게 가정은 귀중한 곳입니다. 가정은 우리의 안식처입니다. 가정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제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가정에 돌아오면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에게 가장 힘을 주고 격려해주는 사람은 가족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를 비난해도 가족은 우리를 응원해주고 힘을 줍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한 가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향해 형제자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국적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성품이 서로 달라도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순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는 서로를 당연히 형제자매로 인정해야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인 교회공동체는 하나의 가정과 같은 곳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교회공동체는 가정보다 더 친밀한 곳입니다. 성경에서 교회공동체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며 우리는 각 지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몸의 지체가 서로 연결되어 있듯이 우리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몸에 연결된 공동체로서 서로를 향해서 관심을 갖고 같은 마음으로 사랑하며 사단의 권세와 싸워야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교회에 편지를 띄우면서 그들이 복음을 위하여 싸울 때 공동체가 하나가 되어 잘 싸워줄 것을 기대하면서 격려합니다. 1. 교회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빌립보교회의 탄생 빌립보교회는 사도바울일행이 아시아에서 마게도냐로 전도방향을 바꾸면서 첫 번째로 복음을 전한 곳입니다. 바울일행이 안식일에 기도처를 찾다가 강가에 앉은 여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그때 두아디라 성의 자주장사를 하며 하나님을 공경하던 ‘루디아’라는 여인이 바울의 복음을 들을 때 주님이 그녀의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케 하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가족이 모두 세례를 받고 바울일행에게 자신의 집을 제공하며 머물게 함으로서 빌립보교회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한 여인의 헌신으로 빌립보지역의 가정교회가 탄생하였습니다. 기독교역사를 보면 이와 같이 여인들의 헌신이 교회를 세우는데 자주 쓰임받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복음전도사역에도 자신의 물질로 섬긴 여인들의 수고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아름다운 여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루디아의 집을 전도본부로 삼고 전도하던 바울일행은 그후에 점치는 귀신들린 소녀를 치료한 사건으로 옥에 갇히게 됩니다. 바울과 실라가 옥에서 찬송을 하다가 지진이 나며 옥터가 진동함으로 옥문이 열릴 때 옥을 지키던 간수가 죄수들이 다 도망한 줄 알고 자결하려다가 바울의 권면으로 목숨을 건지고 그 가족이 전부 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빌립보교회는 점차 확장되어갑니다. 교회가 성장하면서 여러 부류의 사람이 교회 안에 들어오게 됩니다. 유대인도 들어오고 헬라인도 들어오고 당시 야만인이라고 불리던 사람들도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귀족도 들어오고 노예도 들어오고 장사꾼도 들어오고 가난한 자도 들어오게 됩니다. 이와 같이 출신지역과 신분이 다른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점차 사람들의 생각이 서로 다름으로 마음이 하나가 되지 못하므로 인해 분열의 위험이 따르게 됩니다.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필요한 것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이런 빌립보교회에 성도들간의 유익을 위하여 말씀합니다.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던 바울은 이제 감옥에 갇히어 빌립보교회의 소식을 듣고, 그들이 복음을 위하여 자신과 동일하게 잘 싸워줄 것을 말하면서, 그들에게 동일한 마음으로 사역을 할 것을 요청합니다. 이제 바울과 한마음으로 복음을 위해 수고하게 될 빌립보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말씀합니다. 사도바울이 빌립보교회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오늘날 우리의 교회에도 동일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바울의 사역하던 때와 같이 복음을 전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오히려 더 어려운지도 모릅니다. 과학과 문명이 발달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필요없는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데 더 힘이 듭니다. 성도들이 목회자와 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복음전파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더 필요한지 모릅니다.
먼저는 교회공동체에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권면이 필요합니다. 교회 안에서 때로는 권면이 필요합니다. 연약한 성도들이나 믿음에서 벗어난 성도들을 권면해야합니다. 그때 그리스도 안에서 권면을 할 것을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권면은 자칫 판단으로 흐르거나 상대방에 대한 책망으로 흐르기 쉽기 때문입니다. 물론 권면을 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믿음의 회복을 위하여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생각으로 권면한다면 결국은 그를 책망하거나 판단에 그칠 경향이 높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권면해야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는 권면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권면하므로 상대방의 필요를 충분히 이해하고 그의 연약함을 이해하는 권면이 될 것입니다. 권면을 받는 자도 상대방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자신을 권면하는 것을 알고 받아들일 것입니다. 복음을 위하여 싸워야할 교회공동체가 혹시라도 서로간의 불협화음으로 전투력을 상실할지 모르는 상황에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 권면일 것입니다. 둘째 사랑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연약한 성도를 권면하면서 그 성도가 혹시라도 낙심하게 될 때 그를 위로해야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권면을 해도 연약한 성도는 권면의 말을 듣고 자신을 책망하며 낙심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낙심한 성도를 위로해야하는데, 낙심한 성도를 위로할 때 우리는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위로해야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의 마음으로 위로한다고 해도 자칫 인간적인 위로를 하기 쉽습니다. 낙심한 성도를 위로를 할 때 인간적인 위로가 아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는 위로를 말해야합니다. 인간의 위로는 들을 때는 좋은 것 같아도 듣고 난 뒤에는 그 위로가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위로하시듯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위로가 필요합니다. 셋째 성령의 교제가 필요합니다. 교회는 성도간에 더욱 친밀한 교제가 요구됩니다만, 이때 성령의 교제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인간적인 교제는 결국 서로에게 상처만 입힙니다. 성도 한사람 한사람이 성령과 교제하고 성령안에서 서로가 교제할 때 서로에게 참다운 위로가 됩니다. 성령의 교제를 통하여 서로를 깊이 이해하게 되고 복음의 동지로서 더욱 신뢰를 하게 될 것입니다. 넷째 긍휼과 자비가 필요합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문제가 생길 때 자칫 공동체는 깨어지기 쉽습니다. 이때 가장 요구되는 것은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감싸줄 수 있는 긍휼과 자비가 요구됩니다. 어디에나 문제는 있을 수가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밝히는 것보다는 그를 불쌍히 여기고 서로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긍휼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긍휼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공동체 안에서 다른 성도들을 대할 때 언제나 긍휼과 자비로 대해야할 것입니다. 2. 교회공동체의 태도 그러면 이와 같이 교회공동체에서 서로가 교회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헌신할 때, 즉 그리스도안의 권면이나 사랑의 위로나 성령의 교제와 긍휼과 자비를 행할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지 살펴봅시다.
같은 사랑의 마음을 품는 것 먼저 마음을 같이하는 것입니다. 공동체는 동일한 일에 마음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서로간의 의견과 상관없이 마음을 같이하는 것입니다. 교회공동체 안에 발생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동일하게 관심을 같고 마음을 같이하여 나갈 때 그리스도안의 권면도 사랑의 위로도 성령의 교제도 긍휼과 자비도 효과 있게 진행됩니다. 그러나 마음을 같이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지고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고자 해도 온전히 이룰 수 없습니다. 둘째, 같은 사랑을 가지는 것입니다. 마음을 같이하기 위해서는 같은 사랑을 가져야합니다. 같은 사랑이란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사랑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나타내신 사랑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와 허물로 인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동일하게 성도를 대할 때 같은 사랑을 가지고 사랑하게 됩니다. 여기에는 인간적인 사랑이 배제됩니다. 인간적인 사랑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관심을 가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는 사랑은 자신과 잘 맞지 않는 사람에게도 사랑을 나타냅니다. 셋째, 뜻을 합하는 것입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말은 가벼운 종이 한 장도 힘을 합쳐서 들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지 뜻을 합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동체가 지금 나아가는 일에 서로가 뜻을 합할 때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자신의 뜻만을 내세우면 실패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공동체에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살피고 뜻을 합치는 것입니다. 넷째, 한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마음을 같이 하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할 때한 마음을 품을 수 있게 됩니다. 사실 서로 다른 인격의 사람들이 한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인간적으로 도저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개성이 각각 다른 사람들이 한 마음을 품기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각자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다면 한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면서 공동체의 유익만을 위하여 행할 때 한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낫게 여기는 것 이처럼 교회 공동체가 하나가 되어 나아갈 때 특별히 주의해야할 일들이 있습니다. 첫째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툼이라는 경쟁하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일은 경쟁하는 것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 성도를 자신의 라이벌로 생각하는데 결코 교회공동체의 성도는 동역자이지 경쟁자가 아닙니다. 교회공동체는 한 몸이기 때문에 서로가 연합하고 의지해야할 대상이지 결코 견제하거나 무시할 상대가 아닙니다. 허영이라는 것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입니다. 교회일은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공동체는 한몸이기 때문에 서로가 협력해서 외부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빛을 발해야합니다. 한가족이 서로에게 잘 보이려고 경쟁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잘 보여야하는 대상은 외부사람들입니다. 발이 손더러 너보다 내가 잘 낫다고 말한들 그것은 정말 잘 난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우스운 모습만 보일뿐입니다. 우리의 대적은 다른 성도가 아니고 원수마귀입니다. 둘째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교회공동체의 구성원인 성도들이 경쟁자가 아니기 때문에 서로에게 겸손해야합니다. 자신이 우월성을 나타내보려는 태도를 버리고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어야합니다. 그때 요구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낫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교회공동체는 한 몸이므로 서로가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고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길 때 서로가 존경하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밖의 사람들에게도 존경을 받게 됩니다. 셋째 각각 자기 일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아야합니다. 이제 교회공동체가 보다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은 각각 자기일 을 돌아볼뿐더러 각각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성도는 자신의 일을 돌아봅니다. 여기서 ‘돌아보다’는 말은 살펴본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영적상태가 어떠한지 살피고 부족한 면이 있으면 좀 더 기도하여 성령의 공급하여주신 힘으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영적 상태만을 보는 것이 아니고 다른 성도의 영적상태도 돌아보아 그가 믿음 위에 굳게 서서 영적 전투를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이와같이 교회공동체가 한 마음을 품고,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서로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봄으로 공동체가 영적으로 성장해갈 때 목회자는 그 모습을 보면서 기뻐합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교회에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행할 것과 그 때 어떻게 행하여야할지 권면하며, 그처럼 행함으로 자신의 기쁨이 충만케 하라고 말씀합니다. 빌립보교회는 이제 복음을 위하여 하나가 되어서 싸울 것입니다. 옥중에서는 바울이, 옥밖에서는 빌립보교회가 싸웁니다. 같은 복음의 동역자로서 빌립보교회가 하나가 되어 잘 싸우게 될 때 비록 옥중에 있지만 빌립보교회의 승전보고를 통해서 사도는 기뻐할 것입니다. 사도는 빌립보교회가 영적으로 성장하여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믿음으로 굳건하게 서서 복음을 위하여 수고를 하게 될 때 기뻐할 것입니다. 목회자는 성도의 믿음이 성장할 때 기뻐합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승리의 삶을 살게 될 때 기뻐합니다. 성도여러분이 믿음으로 잘 살아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을 보면 그처럼 기쁠 수가 없습니다. 나가는 말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사도바울이 빌립보교회를 위하여 쓴 편지를 통하여 교회공동체가 어떤 모습으로 행하여야할 지를 배웠습니다. 교회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해야 할 일들을 알았고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알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공동체의 하나 됨을 위하여 해야 할 일을 한 가지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같은 마음으로 같은 사랑을 가지고 행하는 것입니다. 교회공동체의 하나됨의 가장 중요한 것은 같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성도들이 마음을 같이하고 같은 사랑을 갖는 것입니다. 이 마음은 그리스도의 마음이며, 이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요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를 위하여 먼저 우리가 그리스도께 받은 사랑을 다시 한번 확신해야합니다. 자신이 사랑을 받은 확신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 수 없고 그 사랑도 알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베푸신 사랑을 회상하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에서 손과 발에 못을 박히시고 고통속에서도 하나님 아버지께 “저들의 죄를 용서해주소서” 구하시던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사랑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십자가에 죽으심은 우리와 함께 살기 위함입니다(살전 5:10). 우리와 하나가 되기를 원하시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생각하면 우리가 같은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주님이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사랑하라”(요 13:34)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의 사랑을 품고 서로 사랑하게 되면 그리스도안에서 우리가 하나 될 것이고 그때 우리의 모습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비쳐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는 것을 보면 이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며 우리를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 받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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