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신 목적

하나님아들 2019. 2. 23. 18:25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신 목적

에베소서 2:1-10

2009.4.26(주일예배)



들어가는 말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기를 좋아합니다. 선물은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선물을 받았을 때 우리들은 자신에게 선물을 준 사람을 기억하며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선물에는 선물을 주는 사람의 마음을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지 선물을 받은 사실만을 기뻐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선물을 준 사람의 마음을 읽고 그 때문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선물을 준 사람을 만나면 자신이 그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며 다가갑니다. 만일 선물을 받고서 선물만을 자랑하고 선물을 준 사람을 잊어버린다면 그것은 선물을 준 사람의 마음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선물을 기대하지만, 무엇보다 우리에게 귀중한 것은 생명입니다. 우리가 생명을 잃어버린다면 세상을 다 얻는다고 해도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1. 하나님을 만나기 전 우리의 모습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


    그러나, 우리는 지난 일을 너무 잘 잊어버립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잊어버릴 때 우리는 교만해지고 분쟁을 일으키기 쉽습니다. 에베소교회는 사도바울이 3년동안 에베소에 머물며 모든 눈물과 겸손으로 말씀을 가르친 곳으로, 바울은 에베소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교회로 나타나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유대인과 헬라인으로 구성된 에베소교회에 분열의 조짐이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서로가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것을 자랑하고 자신들의 신앙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며 경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구원받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된 것을 잊어버리고, 자신들의 공로로 된 것처럼 생각했기 때문에 서로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자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서로를 자랑하며 분쟁하는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그들의 구원받기 전의 모습을 말해줍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과거에 그들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였습니다. 비록 그들이 지금은 자신의 구원받았음을 자랑한다 할지라도 그들의 과거의 삶은 죽었던 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죽음’은 신체적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이며 도덕적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명을 수여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단절을 말씀합니다. ‘허물’은 ‘정로에서 벗어나다’라는 의미로 부주의하여 진리에서 떠나는 것이나 잘못된 경향성을 가리키며, ‘죄’는 ‘과녘에서 벗어나다’는 의미로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생의 목표를 정확히 맞추지 못한 모든 행위를 가리킵니다. 결국 이 둘은 같은 말로서 하나님을 떠난 죄인의 모습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던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함으로, 아담과 그 후손들은 다 죽게 되었습니다. 먼저 영적으로 죽어서 하나님과 단절되고 육체도 죽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의 우리들의 모습은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에 있었기에 우리들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고 하나님을 믿을 수도 없었습니다. 영적으로 죽은 자들의 특징은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들은 하나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롬 3:11). 우리들은 지금 아무리 훌륭한 믿음을 자랑한다할지라도 우리의 과거의 모습은 누구나 다 허물과 죄로 죽은 자입니다. 그때의 우리의 삶의 모습은 세 가지로 특징 지워집니다.   


    이 세상을 좇아간 삶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전 우리의 과거의 삶은 ‘이 세상 풍속을 좇는’ 삶이었습니다. ‘이 세상 풍속을 좇는’것은 우리가 이 세대의 타락한 인간들의 풍속을 좇아가고 있었음을 말합니다. 우리들의 죄악된 행위는 하나님에게 대적하는 현세적인 세상의 기준과 가치에 따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의 우리들은 현재의 악한 세대와 이 세상에 의해서 지배를 받아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가치기준에 따라 물질과 쾌락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물질과 쾌락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려면 물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물질을 따라가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인생의 목표가 물질을 얻기 위해서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질을 얻기 위해서 가족도 친구도 버리고 오직 물질만을 추구하며 삽니다. 물질만 있으면 가족도 친구도 생기지만, 물질이 없으면 가족도 친구도 떠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돈으로 가족을 살 수 있습니까? 돈으로 친구를 살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돈 때문에 가족을 잃을 수는 있어도 돈 때문에 가족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돈 때문에 가족을 얻었다고 해도 그 가족은 진정한 가족이 아닙니다. 돈으로 얻은 가족은 언젠가 돈이 없어지면 떠나 가버리기 때문입니다. 쾌락도 마찬가집니다.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기쁨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기쁨을 얻기 위해서 특히 육체의 쾌락을 누리기 위해서 무엇을 해도 좋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진정한 기쁨은 마음으로 나옵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기쁨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먼저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합니다. 그런데 세상사람들은 자신들이 육체의 쾌락을 찾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하며 수단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죄를 짓는 것입니다.    


    사단을 따라다닌 삶


    둘째, 그때에 우리들은 ‘공중권세 잡은 자를 따랐’습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는 인간의 참된 행복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방해하는 초자연적인 악의 세력으로 '악의 영들'(6:12), 곧 '사단'(막 8:33; 눅 22:3)을 의미합니다. 우리들은 과거에 이런 악한 영의 통치(統治)하에 살았었습니다. ‘공중의 권세잡은 자’는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입니다. '불순종의 아들들'은 '하나님께 대적하여 불순종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사단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대적하여 아담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도록 유혹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적하는 것은 기독교 복음에 대하여 거절하는 것이며 이것은 오늘날도 발생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여도 믿지 않는 것은 바로 사단의 세력들이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영으로 역사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영'은 영적 세력으로서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의미하며, 불순종하는 자들은 공중의 권세잡은 자에 의하여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과거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며 하나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행한 삶 


    셋째, 그때 우리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았습니다. '우리'라는 말은 바울 자신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을 의미하는 것으로, 에베소교회 성도들뿐만 아니라 사도바울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대적할 때는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행하였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이제 자신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과거에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냈음'을 상기시킵니다. ‘욕심을 따라 지낸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인간의 이기적인 욕구(慾求)에 따라 사는 삶을 가리킵니다. 이는 성령 안에서의 삶과 대조적으로 육체의 열매를 내는 삶이요(갈 5:19, 20),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 삶이요(롬 8:8) 사망에 이르는 삶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신의 욕심을 따라 살았습니까? 심지어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도 자신의 욕심을 따라 사랑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그 사람을 괴롭히기도 합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


    그러므로 이 세상의 풍속을 좇고 공중권세 잡은 자를 따르며 육체의 욕심을 따라서 살던 우리의 모습은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은 '본질상' 진노의 대상이었습니다. '본질상'이란 말은 태어나면서부터 있던 천성적인 것을 나타내는 말로, 바울은 개종하기 이전의 그리스도인들의 상태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와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노의 자녀'는 '진노를 받기에 마땅한 자들'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진노'는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키며, '하나님의 진노'는 모든 죄악에 대해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거룩성을 증거 하고 있습니다(롬 1:18;2:5, 8).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때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만했던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면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영원한 형벌에 떨어져야 했던 것입니다.



2.  우리를 살리신 하나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사랑


    그런데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출 34:6; 시 103:8;145:8; 욘 4:2). '긍휼'은 히브리어 '헤세드'('인애')와 상응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언약을 충실히 지키며 사랑을 베푸시는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본질인 사랑을 통해서 우리에게 구속의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이 사랑에 대해서 바울은 로마서 5:8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증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과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해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우리의 허물과 죄를 어떻게도 할 수 없었는데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


    그리고 하나님께서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되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허물로 죽은 자리에서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누군가가 우리를 대신하여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위해서 죽을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모두 아담의 후손으로서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우리의 죄도 하나님께 심판을 받고 소멸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으로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거듭났다’ ‘구원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할 때 성령께서 우리의 심령속에 들어오셔서 새 생명, 그리스도의 생명을 부어주심으로 우리는 영적으로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로 주신 구원


    그러므로 사도는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고 밝힙니다. 성도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새 생명을 소유함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즉 죄로 인해 진노를 받아 마땅한 죄인에 대한 구원은 하나님의 주도적인 행위인 은혜로 된 것입니다. 우리들이 구원을 얻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주신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것입니다. ‘믿음’은 스스로 자신을 의롭게 하려는 행위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기대하는 것으로 구원이 인간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구속의 은총(恩寵)을 받아들이고 응답함으로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주어지는 것으로 그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구원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이며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할 존재이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신 것과,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주이심을 믿음으로 고백할 때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우리 스스로 갖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구원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구원을 자랑하지 못함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구원을 자랑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행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누구도 결코 자랑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롬 3:20, 28;4:1-5; 갈 2:16; 딛 3:5). 여기서의 행위는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행하는 인간의 윤리적인 노력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것은 인간의 행위가 하나님을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인간은 그것에 대해 더 이상 자랑할 수 없습니다(롬 3:27;4:2). 우리는 선물을 주신 분을 자랑하지 선물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구원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자랑하지 결코 구원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이 자신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방적인 은혜로 베풀어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구원을 자랑할 수 없는 이유는 구원은 우리의 공적(功績)에 의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재창조의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구원을 얻은 것은 선한 일을 해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재창조 사역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피조물입니다(고후 5:17; 갈 6:15; 엡 4:24; 골 3:10).



3.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신 목적


    하늘에 앉히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신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 우리를 하늘에 앉히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때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셨습니다. ‘함께 일으키는 것’은 ‘부활’을 말하며, 죄로 인해 초래된 영적 죽음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생명을 공유하는 영적부활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케 하시고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십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단순히 부활시키신 것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하늘에 앉히셨다고 선언합니다. 바울의 이 선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시키신 것이 이미 이루어진 것이듯이, 하늘에 앉히신 것도 비록 현재 참여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없다 할지라도 이미 이루어진 것임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민권은 땅이 아니라 하늘에 있음을 나타냅니다(빌 3:20). 그러므로 우리들은 항상 하나님의 존전에 서있으며 그 앞에서 즐거워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풍성한 은혜를 나타내기 위해서


    둘째,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구원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풍성한 은혜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1:3-14).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보여주신 구원의 자비(慈悲)하심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시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풍성함을 오는 세대에 나타내려하심입니다. '오는 여러 세대'는 시간적인 것으로 미래에 '오는 시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목적은 다가오는 미래에 자신의 은혜의 광대함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모든 삶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도록 살아야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해서


    셋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고 재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선한 일'은 구원을 얻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구원에서 비롯된 열매로서 하나님과 인간관계의 목표입니다. 또한 '선한 일'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에서 비롯되며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입니다(롬 2:7;13:3; 고후 5:10;9:8; 갈 6:10; 살전 5:15).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 우리들로 하여금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도록 예비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는 잠재력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선한 일’은 성령의 은사를 통해서 가능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한 것입니다(롬 8:4; 엡 6:6). 선한 일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요 6:40).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보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서 구원받아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나가는 말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은, 우리가 무슨 선한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인하여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선물로 받은 성도들은 구원의 선물을 귀하게 여기고 선물을 주신 하나님을 자랑해야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아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심을 받았으므로, 비록 이 땅에 살고 있지만 항상 하늘 보좌 앞에서 살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선물을 주신 분의 뜻을 헤아려서 행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입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하여 날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일에 더 열심을 내야할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하여 기도해야합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복음전파에 힘써야할 것입니다.

출처 : 주님을 더 알기 원하는 사람
글쓴이 : kaporet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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