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부활의 예수님이 찾아오심

하나님아들 2019. 2. 23. 18:25

부활의 예수님이 찾아오심

요한복음 20:11-18

2009.4.12(주일예배)


들어가는 말


    우리에게 가장 기쁜 소식은 어떤 것일까요? 복권에 당첨되는 것입니까? 물론 그것도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기쁜 소식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소식을 듣는 것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갑작스럽게 행방불명되었을 때 사람들은 당황하며, 그 사람을 찾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수고합니다. 지금도 북조선 공작원에 의해 납치된 가족들을 찾고 있는 가족들에게는 어떤 실마리가 있다면 그것을 잡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습니다. 만일 납치되었던 사람이 어떤 경로를 통하여 살아서 돌아온다면 그 가족들은 기쁨에 넘칠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이런 사람들의 기쁨보다 더 기뻐하는 사람의 모습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죽은 줄로 알았던 사람이 돌아온 것보다 더 기뻐하게 된 소식은,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었던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져서 슬퍼하고 있었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1. 무덤에서 예수님을 찾는 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온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는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에 왔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사랑하는 예수님의 몸에 바를 향품을 준비해온 것입니다. 사랑하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렇게 비참하게 돌아가실 것을 생각지도 못했는데, 유대인들에게 붙잡혀서 종교지도자들의 엉터리 재판을 받고 빌라도에 넘겨졌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죄를 발견하지 못하고 풀어주려고 했으나,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백성들을 충동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치게 했습니다. 빌라도는 할 수없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로마병사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로마병사들은 예수님을 혹독하게 심문하며 채찍질하고 예수님께 십자가를 지게 하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다른 두 강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죄도 없으시지만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죄인의 모습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 도망치고 사랑하는 제자인 요한만이 모친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과 함께 예수님의 곁에서 사랑하는 예수님이 고통을 당하시며 죽어가시는 모습을 지켜보아야했습니다. 예수님이 운명하시기 직전에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하나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절규는 아직도 마리아의 귀에 쟁쟁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는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체를 빌라도에게 요청하여 세마포에 싸서 자신의 무덤에 장사지내는 것을 보고 돌아가서 향품을 준비했다가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예수님의 시체에 바를 향품을 갖고 왔는데 예수님의 시신이 보이질 않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 중에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 따랐던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가서 이 일을 보고하고 그들과 함께 무덤에 돌아왔습니다. 제자들도 무덤에 와서 보니 정말 예수님이 시신은 온데간데없고 예수님을 쌌던 세마포와 머리를 쌌던 수건만이 개켜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제자들은 집으로 돌아갔으나 마리아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슬퍼하는 마리아


    제자들이 돌아간 뒤에도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습니다. 마리아에게는 예수님의 사랑이 각별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귀신들려서 고통을 당하던 자신을,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시고 악령들을 물리쳐서 건강을 회복시켜주심으로, 마리아는 그때부터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함께 전도여행에 참석했고 예수님의 천국복음을 배우면서 행복했습니다. 마리아는 특별히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오해를 살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에게는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시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곳이 천국이었습니다. 그곳이 들판이라도 허름한 집안이라도 제자들과 함께 계신 예수님을 다른 여인들과 함께 시중을 들면서 있을 때 마리아는 정말 행복했고 바로 그곳이 천국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종교지도자들의 계략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시다니 정말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 마리아는 정말 너무 슬퍼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의 율법에 따라서 안식일을 지키고 그 다음날 새벽에 예수님의 몸에 바를 향품을 가지고 왔는데 예수님의 시신은 보이질 않으니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슬픔도 다 씻어지질 않았는데 이젠 예수님의 시신마저도 보이질 않으니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신을 누가 옮겨놓았을까 걱정을 하면서 울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슬플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슬퍼할 때가 있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분하여도 그것을 어찌할 수 없어 슬퍼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슬픔을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어 혼자 가슴앓이를 해야만 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때야말로 우리가 예수님을 찾아야할 때입니다.

    마리아는 울면서 무덤 밖에서 구푸려 안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그때 흰옷입은 두 천사가 예수님의 시체가 놓였던 머리편에 한 천사가, 발편에 다른 하나가 앉아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마리아는 ‘이게 어찌 된일인가’ 마음에 생각하는데 천사가 말합니다. “여자여 어찌 우느냐?” 천사는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전하고자 이렇게 묻습니다. 마리아는 혹시 그 천사들이 예수님의 시신의 행방을 알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대답합니다. “사람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마리아는 자신의 슬픈 마음을 이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마리아에게 지금 무엇보다 예수님의 시신을 빨리 찾아서 자신이 준비한 향품을 바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그 천사가 자신의 소망을 들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11-13절). 천사는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전해주려고 하는데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신을 찾으려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2. 부활의 주님이 찾아오심


    부활의 주님을 알아보질 못한 마리아


    그런데 마리아가 이 말을 하고서 뒤를 돌아보니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이 보입니다. 아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곳에 서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에게 아직 그분이 예수님으로 보이질 않습니다. 마리아는 아직도 예수님이 죽으셨고 그분의 시신이 어디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고, 예수님이 성경에 예언한대로 다시 살아나실 것을 생각하지도 못하였기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질 못합니다(14절).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히면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질 못하고, 때로는 자신들의 환상 속에 빠지기도 하고, 현실을 보고서도 그것을 보질 못한채 아무런 감동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리아는 지금 전혀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감각이 없습니다. 마리아의 생각에는 예수님은 시신으로 누워 계실 존재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자신 앞에 와 계신 것은 꿈에도 상상하질 못할 일입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후 3일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으나, 마리아는 아직도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 앞에 계신 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이신 것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현실의 문제에 너무 집착하여서 때로는 자신에게 주님이 말씀을 하셔도 그 말씀을 듣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으로만 모든 일을 판단하며 낙심하며 좌절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야말로 부활하신 주님이 가까이 와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합니다.


    마리아에게 자신을 알리신 예수님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마리아에게 예수님은 현실을 깨닫도록 마리아의 본질적인 문제를 말씀하십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예수님은 마리아가 울고 있는 이유가,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것 때문이고 당신의 시신을 찾고 있는 점을 지적하면서, 실제는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습을 그녀에게 확인시켜주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을 동산지기로 알고 부탁합니다. “주여 당신이 옮겨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마리아는 지금 오로지 예수님의 시신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동산지기로 알고 그 시신을 부탁하는 것입니다(15절). 마리아는 예수님의 부활을 아직도 믿질 못하기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자신의 앞에 나타나셔도 보질 못합니다. 오늘날 성도들중에도 마리아처럼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만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을 한번도 찾으려고 하질 않습니다. 물론 우리가 십자가의 주님을 묵상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십자가의 주님이 없으면 우리의 죄의 문제가 해결되질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으로 끝났다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우리의 죄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해결될지는 몰라도 부활의 생명이 없다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에게 부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오셔서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을 부어주실 때 우리는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이 일은 거의 동시에 일어납니다.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마리아가 아직도 당신의 부활에 대해서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녀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마리아야” 예수님은 사랑하는 자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여제자인 마리아가 자신을 사랑하여 안식일이 끝나자마자 새벽에 달려나온 모습을 보시고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예수님께 그대로 전달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다른 어떤 제자들보다 마리아에게 당신의 부활의 모습을 나타내신 것인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은 슬퍼하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셔서 그녀의 이름을 부르셨듯이, 지금도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현실의 문제에 눈이 어두워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자하는 소망조차 잊어버리고 있던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고 계십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부르심에 정신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마리아는 꿈에서 깨는 듯한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분명히 십자가의 고난을 당한 후 3일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는데 왜 그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예수님의 시신만을 찾고 있었을까 라고 깨닫고 보니 정말 예수님이었습니다. 마리아는 “랍오니여”라고 부릅니다. 랍오니는 히브리말로서 ‘선생님이여’라는 뜻입니다. 마리아는 평소 예수님을 불렀던 것처럼 부르면서 반가움에 예수님의 발을 만지려합니다. 예수님을 부활하신 그리스도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나사로가 살아났을 때처럼 이전의 예수님이 다시 살아 돌아오신 것으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과의 새로운 관계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당신을 만지지 말 것을 말씀하십니다.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예수님은 마라아가 당신을 만지지 말아야할 이유로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마리아의 행동을 제지한 것은 그녀가 주님을 보았을 때 생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여기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생전의 삶으로 복귀하는 것으로 오해되는 것을 막아야 했습니다. 아무튼 이제 마리아는 생전의 랍비로서가 아니라 죽고 부활하신 영광의 주님으로서 예수님과 새롭게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했습니다(17절). 우리는 예수님을 단지 역사적인 예수님으로서만 생각합니다. 즉 2천년전 유대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서 나사렛에서 자라난 예수님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신 후 하늘에 오르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영광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시고 성령을 통하여 오늘도 우리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기에 힘써야합니다. 



3.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


    부활의 소식을 전하라


    예수님은 계속하여 마라아에게 당신의 부활의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내 형제라고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십자가의 구속으로 이미 당신을 믿는 제자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으므로 그들을 ‘내 형제’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 된 형제자매가 한 마음이 되어야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실을 공유해야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도 은혜도 함께 나누어야합니다. 교회 안에 가장 나쁜 모습은 자신만이 은혜를 받으면 되지 다른 사람들까지 신경을 쓰는가하는 태도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된 공동체이고 우리 성도는 각 지체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지체가 아파하면 같이 아파하고, 다른 지체가 슬퍼하면 같이 슬퍼하고, 다른 지체가 기뻐하면 같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부활의 기쁜 소식을 자신만 즐거워 할 것이 아니라 다른 제자들에게도 알려서 지금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슬퍼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희망의 빛을 던져주어야 합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 즉시 달려가서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내가 주를 보았다 그리고 마리아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그대로 제자들에게 전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실은 마라아의 증언과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통하여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서 슬퍼할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기쁜 마음으로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한 것처럼 우리들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전해야만합니다.



나가는 말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무슨 슬픈 일이 있습니까? 부활의 주님을 찾으십시요. 그러면 부활의 주님을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를 만나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부활의 모습을 눈으로는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성경에 기록된 사실을 믿고 영의 눈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아직 부활하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부활하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해달라고 주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의지하여 말씀을 묵상할 때, 기도할 때 주님의 음성을 우리의 심령으로 들으면서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부활하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한 사람은 날마다 그 주님과 교제하며 사는 삶을 살면서, 마라아가 부활하신 주님을 기쁨으로 전한 것처럼 우리도 부활하신 주님을 전해야할 것입니다.


출처 : 센다바중앙교회
글쓴이 : kaporet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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