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섬긴 여인들
누가복음 8:1-3
2009.3.29(주일예배)
들어가는 말
현대사회를 특징짓는 말 가운데 하나가 ‘여성 상위시대’ ‘우먼파워’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현대의 여성들이 이전과는 다르게 남성들에 못지않은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나타내고 있음을 말합니다. 사실 요즈음 여성들 중에 남편보다 수입이 더 많은 전문여성들이 많이 나타나면서 더욱 실감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광고물은 거의 대부분이 주부들을 겨냥한 광고 카피입니다. 아이들이나 남편의 옷을 고를 때나 집안의 가구를 살 때는 물론 집을 구할 때도 남편보다 아내의 취향에 맞는 것을 고르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이사를 할 때 남편이 아내가 기르는 애완견을 안고 있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혹시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갈까봐 아내가 사랑하는 애완견을 안고 있어야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여성분들의 파워는 교회 안에도 영향력을 미칩니다. 교회들마다 남자성도들보다는 여자성도들이 더 인원도 많고 활동도 더 활발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과거에는 여성들이 남자들의 지배속에서 살면서 때로는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아무리 가문이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도 여자라는 이유로 학문을 배울 수도 없고 관직에 나가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일반가정에 태어나는 여자들은 학대를 받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여성들은 남자들에 의해 무시를 당하였습니다. 인구조사에서 조차 제외되는 것이 여자들과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런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예수님을 따르는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이 여인들이 어떤 모습으로 교회공동체를 섬겼는지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합니다.
1. 예수님을 따른 사람들
본문의 배경
본문의 배경은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셨을 때의 일입니다. 아마 이 지역들은 갈릴리지방에 있는 고을들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 나라를 전하셨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사역이 멈추지 않고 계속 진행되었으며, 성읍이나 촌, 또는 집이나 회당에서, 심지어는 노천이나 길 등에서든 할 수만 있으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치셨음을 말해줍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사역은 각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 나라의 반포하시며 복음을 전파하신 것입니다(4:43).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이루어지는 곳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7:22,48) 죄의 결과로 인해 영적, 정신적, 육체적으로 왜곡된 인간의 모습이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땅에 예수님이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음을 선포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시각적으로 보여주시기 위하여 병든 자 악령에 시달리는 자들을 치료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죄로 인하여 고통당하던 사람들이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인격의 온전한 회복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인간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으로 하나님과 다시 화목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가정이 회복되고 직장과 사회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완성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복음을 전파하실 때 항상 열두제자가 함께 있었습니다. 열 두 제자는 누가복음 6:12-16에서 예수님의 정규 제자로 선택된 자들이었으며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선택함에 있어서 밤을 세우며 기도하기까지 하셨습니다. 이제 이들은 공적인 예수님의 수행원(隨行員)으로 언급되고 있는 바 이들은 예수님의 선교를 수행하면서 스승의 사역을 계승할 수 있는 진정한 사도로 설 수 있기 위하여 훈련을 받아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오순절 성령강림이후 제자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확장될 것입니다. 열두제자이외에도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예수님을 따른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와 병 낫기를 소원한 사람들, 귀신들인 가족을 치료하시 위해서 데리고 나온 사람, 오병이어의 체험을 하고 먹을 것을 구하러 나온 사람들, 자신의 죄의 문제를 해결 받기를 원한 사람들, 영생의 문제를 해결받기를 원한 사람, 죽은 딸을 살기를 원해서 나온 사람 등 수 많은 사람들이 항상 예수님의 뒤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그룹은 예수님을 만나서 자신의 병을 치료받고 죄의 문제나 인생의 문제를 해결받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은혜가 감사하여 따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단순히 예수님을 따를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공동체를 섬기면서 따른 여인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여인들
예수님을 따르면서 섬기던 여인들은 모두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고침을 받은 여인들이었습니다. 여인들은 예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감사하여 예수님을 따르게 된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여자들은 남자와 동등한 지위를 갖지 못하고 온전한 인격으로 대우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인들이 남자들과 같이 있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공생애 초기부터 몇몇 신실한 여인들을 전도 여행에 합류(合流)시킴으로써, 천국의 일꾼될 자격이 외적 조건에 달려있지 않음을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1)막달라 마리아
그 여인들 중에 첫 번째는 일곱 귀신이 나간 여인 막달라 마리아가 소개됩니다. 마리아라는 이름은 매우 흔했으므로 이 특정한 마리아를 구별하기위해서 '막달라'라는 지명을 이름 앞에 붙였습니다. '막달라'는 갈릴리 바다의 서해안 가버나움 남쪽에 위치한 작은 성읍입니다. 이 마리아를 특징지워 주는 또 하나의 사실은 그녀가 과거에는 일곱 귀신에 들려서 극심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당하였으나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 주어 지금은 온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일곱 귀신은 최악의 상태를 묘사하는데 사용되기도 했다는 점에서도(마 12:45) 이 여인에게 임한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어릴 때부터 귀신들려서 고통을 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다른 집 아이들처럼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항상 홀로 외롭게 있으면서 귀신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녀에게 미래는 없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어른이 되어서 좋은 신랑을 만나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서 행복하게 살겠다는 소박한 꿈도 꿀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꿈을 귀신들로 인하여 다 빼앗긴채 고통을 당하면서 숙명처럼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난 순간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마리아는 지금까지 귀신들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하는 것을 숙명처럼 포기한 채 있었는데 예수님이 일곱 귀신을 쫓아내주심으로 모든 고통에서 풀려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마리아의 기쁨은 너무나 컸습니다. 자신의 고통에서 해방된 기쁨은 무엇이라 표현 할 수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예수님께 어떻게 감사해야할지 몰랐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열어주신 예수님께 무엇을 해드려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단지 마리아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작은 일이라도 하겠다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따른 것입니다.
이렇게 큰 은총을 입었으므로 그녀가 예수님께 전적인 헌신을 하였을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따랐던 여성들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짐작됩니다. 사실 그것은 그녀가 예수님의 수난사에서 독보적(獨步的)인 증인이 된 점에서 충분히 짐작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운명할 때 그 자리에 있었으며(마 27:55,56;막 15:40;요 19:25), 예수님의 시신이 매장되는 현장에도 있었고(마 27:61;막 15:47;눅 23:55), 주일날(안식 후 첫날)이른 아침에 예수님의 시신에 기름을 바르려고 무덤을 찾았고(마 28:1;막 16:1;눅 24:10),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으로 목격한 자도 바로 그녀였던 것입니다(막 16:9;요 20:1-18).
2)요안나
또 다른 여인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입니다. 여기서 헤롯은 당시 갈릴리를 지배하던 헤롯 안티파스로 보이며, 구사라는 이름은 이곳에서만 나오므로 그 인물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의 직업을 말해주는 청지기는 '넘겨준다'는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재산을 넘겨받아 관리하는 재정 담당관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직책을 가진 구사의 아내 '요안나'는 매우 부유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여자였음에 틀림없습니다. 고뎃(Godet)과 같은 학자는 '구사'라는 관리가 다름 아니라 그 아들을 예수님께서 낫게 하였던 요한복음 4:46이하에 나오는 왕의 신하일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하는데, 만약 그럴 경우 그의 아내 요안나가 예수님을 따르며 섬겼던 이유는 각별한 셈입니다. 부유한 요안나이지만 자식이 병들어서 거의 죽게 되었을 때 예수님이 자신의 아이를 살려주신 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놀라운 은혜입니다.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아이의 생명을 구원해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갚을 수 있겠습니까? 요안나는 즉시 예수님을 믿고 따랐을 것입니다. 그녀는 다른 여인들과 함께 예수님을 섬기는 일에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요안나는 누가복음 24:10에서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들을 때 그곳에 함께 있게 된 것입니다.
3)수산나와 다른 여인들
그리고 수산나와 이름이 나오지 않는 다른 여인들도 예수님께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수산나라는 이름의 뜻은 '백합'인데, 그 이름대로 매우 친절한 여인이었을 것이라는 추측 외에는 그녀에 대해 알 수 있는 자료가 없으나 병에서 치료받았을 것입니다. 이들 여인들은 모두 예수님께 은혜를 받고서 그 은혜에 감사하여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귀신들린 자리에서 치유받은 막달라 마리아도 아이의 병을 치유받은 요안나도 그리고 자신들의 병을 치료받은 수산나와 다른 여인들도 모두 환경을 조금씩 다르지만 예수님께 은혜받은 것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간 것입니다. 그녀들은 처음부터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따른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해서 예수님을 따른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들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을 만나기전의 삶은 죄로 말미암아 심히 고통당하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은혜가 감사하여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서 무엇인가 거창한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구원받은 은혜가 너무 귀해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예수님이 너무 소중해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때로는 예수님을 위해서 일한다고 한 것이 오히려 예수님의 일을 방해거리가 되어도 단지 예수님 곁에 있는 것으로 만족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시간을 예수님과 함께 사용하는 것입니다. 여인들이 항상 예수님을 따라 섬겼던 것처럼 우리의 시간을 항상 주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주님과의 시간을 가지면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를 하고, 하루의 생활 속에서 모든 일에 주님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매 시간마다 주님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처음에는 어렵지만 계속하여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면, 분명히 우리에게 성령께서 항상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기도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시간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며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을 섬긴 여인들
함께 섬김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을 보면서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낮은 계층의 여성과 요안나와 같은 부유한 계층의 여성을 모두 제자로 받아들이셨다는 사실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는 신분의 격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예수님을 따라며 섬긴 것입니다. 그리고 수산나와 다른 여인들이 함께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이름이 언급된 세 명의 여인들 외에도 수명의 여자들이 함께 하였다는 사실도 전하여 줍니다. 이것은 여인들이 자신들이 예수님을 따르게 된 동기가 모두 같다는 데서 함께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신분이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그녀들의 과거가 어떠하든지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실은 모두 동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녀들은 모두 예수님께 받은 은혜 한가지만 기억하고 자신들의 신분의 격차를 상관하지 않고 서로 다투거나 누가 더 잘 났는가 경쟁하지도 않고 겸손하게 함께 예수님을 따라간 것입니다.
여기서 ‘함께’라는 단어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마음이 하나가 된 것을 말합니다. 마음이 하나가 되지 못하면 함께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이 어릴 적에 운동회를 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게임이 있습니다. 이인삼각달리기입니다. 두 사람이 다리 하나씩을 자신의 짝의 다리에 묶어서 세 다리로 뛰는 것입니다. 이 경기에 승리하려면 힘이 좋은 것도 빨리 달리는 것도 소용이 없습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 호흡을 맞추어서 달리는 것뿐입니다. 교회공동체는 마치 이인삼각달리기를 하듯이 서로가 마음을 같이 하여 호흡을 맞추어서 섬기는 것입니다. 누가 더 봉사를 잘한다고 해도 혼자만 잘해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공동체 전체가 한마음이 되어야합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도 빌립보교회에 편지하면서 무슨 일이든지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빌 2:2) 하라고 권면합니다.
‘함께’라는 말의 두 번째 의미는 힘을 합하여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속담에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작은 일 하나라도 힘을 합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공동체는 어느 몇 사람의 수고로만으로 움직여지질 않습니다. 소수의 인원이 수고해도 일시적으로는 움직여지겠지만 결국 무리가 오게 됩니다. 한사람 한사람이 마음을 합하고 힘을 합할 때 주님이 그 속에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합력하는 곳에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의 앞구절(19절)을 보면 “두사람이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은 단지 두사람이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15절이하의 교회 안에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처리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나온 말씀이므로 교회공동체가 힘을 합하여 일을 할 것을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가 힘을 합치려면 결코 다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다툼이란 서로 경쟁의식을 가지고 상대방과 비교하며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공동체 안에서 문제는 서로 잘해보려고 하다가 다투는 것입니다. 다툼은 교회공동체의 힘을 합치는 데 방해가 되며 교회를 분열시키는 데까지 갑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빌립보교회에게 마음을 같이하여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라”(빌 2:3)고 말씀합니다.
자기들의 소유로 섬김
함께 예수님을 따르던 그 여인들은 자기들의 소유로 섬기었습니다. 그 여인들은 예수님을 만난 환경은 각각 다르지만 저마다 아픔이 있었던 여인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의 육체의 고통이나 가족의 고통의 문제를 예수님을 만나면서 해결받고 나서 그 은혜가 감사하여 예수님을 따르면서, 자신들의 소유를 가지고 예수님을 섬겼던 것입니다. 여인들은 단지 예수님을 따라간 것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소유를 가지고 예수님과 제자들의 필요를 충당한 것입니다. 이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필요한 물질적 재원을 어떻게 얻었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답을 줄 수 있는 일부분의 자료가 된다는 점과 예수님의 선교 사역 배후에는 이와같은 여인들의 헌신적인 섬김이 있었음을 밝혀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요한복음 13:29에 의하면 예수님과 제자들 일행에게는 공동의 '돈 궤'가 있어서 그 돈으로 필요한 것들을 구입하거나 가난한 자들을 도왔던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러한 돈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이와같이 예수님께 은혜를 입은 여인들이 그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자신들의 소유를 헌금한 것에 의해 충당(充當)되었을 것입니다. 여인들이 예수님을 헌신적으로 섬긴 것은 그들이 예수님께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와 예수님과의 참된 영적 만남을 가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인들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택하여 자신의 소유로 예수님의 공동체를 섬긴 것입니다. 더구나 이들의 행위를 묘사하는 동사 '섬기더라'라는 말은 여인들의 재정적인 섬김은 일회적이 아니라 연속적이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도움은 예수님의 사역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였을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성도
초대교회 공동체를 섬긴 여인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승천하신 후 오순절 성령 강림과 함께 교회가 탄생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이 오시기를 기다리며 기도하던 곳은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알려진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입니다. 예수님은 이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드시면서 빵과 잔을 나누며 새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마리아의 헌신으로 교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의 복음전파로 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 들어오면서 교회공동체를 위하여 수고하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처음 예루살렘교회에 사도들을 돕는 일군들이 일곱명 사도행전 6장에 등장한 이후 사도들을 돕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관심에서 언제나 소외를 당하던 여성들이 교회공동체를 위하여 수고하는 모습들도 나타납니다. 로마서 16장에 보면 사도바울을 도왔던 동역자들 중에 여성들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뵈뵈집사, 브리스가, 마리아 등의 이름이 나옵니다. 뵈뵈집사는 고린도지역의 겐그레아 교회의 집사로서 사도바울의 보호자라고 소개합니다. 뵈뵈집사는 겐그레아 항구에 들어오는 여행자들의 보호자로서도 헌신한 사람입니다. 브리스가는 사도바울이 아테네에서 전도를 성공적으로 하지 못하고 고린도지역으로 왔을 때 오갈 때 없는 바울에게 거처할 곳을 제공한 아굴라의 아내입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가는 바울의 전도사역에 동역자로서 수고한 사람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자신을 위해서 목을 내어놓을 정도라고 소개합니다. 마리아는 로마교회를 위해 헌신한 여성으로서 다른 설명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 로마에 있는 사람은 그녀의 이름을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녀들은 다 사도를 도와서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수고한 자들로서 바울의 기억 속에 항상 남아있었기에 로마교회에 보내는 편지속에 그 이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여성분들이 남자들 못지않게 얼마나 헌신적으로 수고하였는가를 보여줍니다. 사실 초기 한국교회도 여성분들의 희생이 많았습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왔을 때도 전도부인이라는 명칭이 있었답니다. 이분들은 예수님을 믿고 나서 선교사들을 도와서 복음을 전하는데 열심을 내었던 분들입니다. 그분들의 복음전도로 한국에 복음이 빨리 정착했던 것입니다.
교회공동체를 섬기는 성도
오늘도 성도들이 교회공동체를 섬기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이 예수님의 공동체를 섬기는 것과 동일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고전 12:27; 엡 4:12; 5:23). 그러므로 성도가 교회공동체를 위하여 자신의 재능과 소유로 섬기는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부은 여인처럼 성도들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소유를 사용하여 교회공동체를 섬기는 것은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몸을 교회공동체를 섬기기 위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구원하신 예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예수님을 위하여 우리의 가진 것을 다 드려도 아깝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몸인 교회공동체를 위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물질과 몸을 가지고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청지기와 같이 우리의 몸과 물질을 가지고 주님이 원하시는대로 교회공동체를 위해 섬겨야합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힘을 합하여 섬겨야할 것입니다. 또한 교회공동체의 지체인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예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나가는 말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렇게 성도들이 교회공동체를 위하여 섬겨야할 이유는 우리도 여인들처럼 각자 예수님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만난 환경은 각각 다르지만 예수님을 만나고서 우리의 삶이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세상을 향하여 죄의 속에서 살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어 예수님을 따르며 섬기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중심으로 봉사하며 서로 사랑하는 삶을 통하여 예수님을 섬겨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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