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주변의 사람들
마태복음 15:16-47
이맘때쯤 유럽이나 미국을 여행하다 보면 클래식 방송 채널을 통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곡이 바하 의 마태 수난곡입니다. 원래 바하는 사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수난의 모습을 모두 곡을 부쳐 수난곡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수난곡은 종려주일에, 마가와 누가의 수난곡은 화요일과 수요일에, 그리고 요한의 수난곡은 성금요일에 연주하였다고 합니다. 이 중에서 마가와 누가의 수난곡은 없어 졌고, 마태의 수난곡과 요한의 수난곡만이 보존되어 오늘날에도 종려주일과 성금요일에 연주되고 있습니다.
바하의 마태 수난곡을 들어보면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 가롯 유다로 부터 배신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됩니다. 총독 빌라도의 아내가 어제 밤 꿈속에 나타난 그분은 무죄한 분이시니 그분을 재판할 때 당신이 상관하지도 말고 처형하지 말라고 부탁합합니다. 그러면서 "여보 무죄한자를 절대로 죽이면 안되요 하고 말하여 줍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아내의 말을 무시하고 예수에게 사형선고를 내립니다. 사형언도를 내린 빌라도는 나는 무죄하다고 하면서 손을 씻습니다. 이와 같은 극적인 요소들이 많이 연출 되기 때문에 마태의 수난곡은 엄숙하고도 장중한 종교적 분위기를 낸다고 합니다. 또한 이 수난곡은 다섯 개의 코러스로 되어 있는 데 인간의 무지와 죄를 드러냄과 동시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군중들의 고백의 합창으로 절정을 이루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읽어보면 수난 당하시는 예수님의 주변에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정확히 12종류의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2,000년 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얼굴 속에서 바로 나의 얼굴을 오늘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오늘 읽어 드린 마가복음 15장 말씀에 보면, 몇 가지 재미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은 분명 예수님의 수난 이야기이지만 그 수난 자체보다 그 주변에 있었던 사람의 반응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고 그리고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마가는 십자가의 수난이 단순한 수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 놀라운 진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예수님을 조롱하고 있는 자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저들은 예수를 조롱하기 위해 말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 사람들의 말속에는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마가복음 15:16-20을 보면, 로마군병들이 예수님에게 가시면류관을 엮어 머리에 씌웁 니다. 자신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도 않으면서도 조롱하기 위하여 무의식적으로 왕이 쓰는 면류관을 만들어 씌웠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쓰신 가시 면류관은 아주 혹독한 고통을 주는 굉장히 길고 단단한 가시로 만든 것으로 머리에 씌우면 가시가 머리에 박히면서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에게 자색옷을 입힙니다. 동서 고금을 통해서 자색옷은 왕이나 고귀한 자가 입는 옷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이 자색 옷을 입혀 드립니다. 로마 군병들은 비록 가시로 만들기는 했지만 왕이 쓰는 면류관을 그 머리에 씌웠습니다. 또 왕이 입을 옷을 입혀 드림으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을 왕으로 상징하는 계시적 사실을 보여 주었습니다.
십자가 주변에서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그들은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 있지만 사실상 그들은 자기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진리를 증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진리란 예수님은 홀로 면류관을 쓰시고 모든 사람에게 경배를 받기에 합당한 분이라는 것과 자색옷을 입으신 왕이라는 사실입니다.
15장 29절에서 십자가 형장을 지나가던 행인들은 예수님을 조롱하여 말하기를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라고 모욕을 하였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심문을 당하실 때 거짓 증인들이 그에게 퍼 붓었던 말입니다. 그 말은 예수님을 우스꽝스러운 아니 정신 이상자처럼 생각되어 조롱의 말로 사용하였겠지만, 그 말이야말로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실 것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또한 15장 31절에서 대제사장들은 서기관들이 함께 예수님을 조롱하여 말하기를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 도다"라고 소리 칩니다. 이 말속에서도 예수님의 진리는 드러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서기관들이 말한 바와 같이 예수님은 실제로 "남을 구원하는 자" 즉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온 구원자입니다. 진실로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조롱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어야 한다고 고발하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그들 자신이 모르는 가운데 진리를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진리를 증거 하면서 십자가 주변을 감돌고 있는 이 사람들이 과연 누구였는가를 차례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수많은 군중들입니다.
마가복음 15장:11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13절에는 저희가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박혀야 하겠나이다‥‥고 소리치는 수 많은 군중들의 외침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십자가 주변에는 '무리'라고 표현된 불특정 다수가 등장합니다. 그들은 이름도 없고 직책도 없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으로는 그야말로 오합지졸에 불과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무리가 되어 함성을 지르면 빌라도의 권위도 협박할 수 있고, 자신들의 이성도 마비시킬 수 있습니다. 다수의 소리가 모두 진리는 아닙니다. 그들은 소수의 선동에 따라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집단적으로 부화 뇌동하고 있는 무리들입니다.. 때로는 교회마저도 사단의 선동을 받은 다수의 무리가 진리를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언제나 무리는 무지하고 선동에 약합니다.
철학도 없고 신념도 없이 확고한 원칙도 없이 다수에 끌려 부화 뇌동하는 무리들입니다. 예수를 죽여야 한다고 말하는 소수의 대제사장의 말만 믿고 따라가는 어리석은 무리들입니다. 다수라는 군중심리에 싸여서 그리스도를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근본 뜻을 모르는 채 예수를 죽이자고 외치는 맹종하는 무리가 바로 내가 아닌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2. 제자들입니다.
마태복음 26 : 56에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 하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로마의 군인들에게 잡히어 끌려갈 때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이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누가 더 높으냐를 가지고 다투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의 나라에 임하실 때 예수님의 좌 우편에 앉아야 하겠다고 자리다툼을 하는 경쟁까지 벌였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예수님의 수난이 다가오자 저들은 모두 도망을 갑니다.
우리는 제자들의 얼굴에서 나의 얼굴을 발견합니다. 예수님이 고난 당하실 때 제자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그 시간에 어디 있었습니까? 살든지 죽든지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 제자라면, 우리도 주와 함께 능욕의 십자가를 지고 영문 밖으로 나아가는 순교적 삶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러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디에 갔습니까? 또 예수님으로부터 병고침을 받았던 사람들, 죽었다가 다시 산 나사로와 나인 성 과부의 아들, 귀신들렸다가 고침받은 사람들, 이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럴 수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라면 마지막까지 예수님의 편에 서서 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3. 가야바입니다.
가야바는 대제사장입니다. 마가복음 15 : 10의 말씀을 보면, 빌라도가 가야바를 비롯한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자신에게 송사한 이유는 시기(請忌)라고 알고 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영적인 무능에 빠지면 형식에 집착하게 됩니다. 그래서 위선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종교란 모름지기 인간을 재창조할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삶 에 고통당하는 자를 도을 수 있는 사랑의 능력이 있거나, 타락한 사회를 정화시킬 수 있는 높은 도덕적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상실한 사람들이 가는 길은 형식주의와 시기뿐입니다. 그래서 종교인이 차마 할 수 없는 살인을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것입니다.
저들이 예수를 고소한 죄목은 신성 모독죄 였습니다. 예수님 께서는 너희가 예루살렘 성전을 헐면 내가 사흘만에 짓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 : 21에서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사장들이 예수님에게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고 심문하자 예수님은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마 26 : 64-67)고 대답하셨습니다. 제사장들은 옷을 찢으며, 예수님을 정죄 하고 많이 때렸습니다. 이사야 52장의 말씀과 같이 예수님의 얼굴은 너무 맞아서 그 모양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4. 빌라도입니다.
빌라도는 자신 양심을 속이는 재판관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죄질이 나쁜 사람을 꼽으라면 자기 이익 때문에 거짓 판결을 내리는 재판관과 거짓 증언을 하는 증인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피해자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고통스럽고 억울하겠습니까?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죽을죄를 짓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자기 입으로 여러 번 시인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매질했습니다. 당시 로마의 매질은 끔찍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두 손을 쇠사슬로 높이 매달고 발은 바닥에 겨우 닿을 정도로 하면 온 몸이 경직되는데 그 위에 끝이 뼈 조각을 단 채찍으로 내리치면 숨이 끊어지는 듯한 고통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을 씌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히게 내어 주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오직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였습니다. 빌라도는 무엇이 옳은가 하는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세상의 이익만 생각 할뿐이었습니다. 사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석방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빌라도의 책임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빌라도는 그 죄 값을 톡톡히 받고 있습니다. 아마 모든 인류 중에 빌라도 만큼 저주를 많이 받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2000년동안 모든 성도들은 예배 때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았다고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저 지옥에서 이 소리를 듣는 빌라도는 어떻겠습니까? 스위스에 가면 빌라도가 자살했다는 '필라 투스 라는 높은 산이 있어서, 무책임한 자의 최후가 어떤 것임을 우리로 깨닫게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이 참으시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죄를 짓고 불 신앙적인 생활을 해도 그럭저럭 괜찮다고 하나님을 만휼히 여겨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그러나 참으시고 계십니다. 이 죄 많은 세상일을 보면 하나님이 안계신 것 아닌가하고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죄 짓는 자가 벌을 받기는 커녕 잘되는 경우도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금 참으시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참으시는 것입니까? 그 목적은 분명합니다. 곧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벧후 3:8-10 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더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회개하고 정신 바짝 차려서 믿음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은혜받을 때입니다. 회개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우리의 죄를 참아 주시는 때입니다. 일할 수 있는 때입니다. 그러나 이제 곧 또 다른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는 회개할 기회도 없습니다. 주께서 맡기신 귀한 달란트를 땅에 숨겨 둔 자가 되어있는 자신을 느끼고 이래서는 안되는데 하면서도 결단을 자꾸 미루고 있는 분은 안 계십니까? 때를 놓치지 말고 회개하고 사명에 충실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하나님의 참으시는 때가 지나면 무서운 책망을 받게 될 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나를 참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을 때 바로 서야 합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은혜 설교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예수님을 섬긴 여인들 (0) | 2019.02.23 |
---|---|
[스크랩] 십자가 주변의 사람들! (요 19:23-27) (0) | 2019.02.23 |
[스크랩] 여호와께서 구하시는 세가지(미6:6-8) (0) | 2019.02.14 |
[스크랩] 감사절을 지키는 이유 (신명기 16:13-17) (0) | 2019.02.14 |
[스크랩] 하나님이 하시면? 됩니다! (막10:27-31) (0) | 2019.0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