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설교 모음

[스크랩] 치료하시는 하나님 (출애굽기 15:22-29)

하나님아들 2019. 2. 15. 23:43

sg130609                       치료하시는 하나님 (출애굽기 15:22-29)

 

인간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세 가지 영양소가 있는데 첫 번째는 음식물에서 얻는 영양소이고, 두 번째는 가족 식구와 이웃들과의 만남에서 얻는 사랑의 영양소이며, 세 번째는 창조주 하나님과의 만남에서 오는 신비의 영양소입니다. 사랑의 영양소는 얼굴과 얼굴, 눈과 눈을 마주치면서 수 없이 많은 만남을 지속할 때 우리 마음속에 강력한 생명의 힘으로 터전을 잡게 되는 것이지 잠간 스쳐가는 대화로는 건강한 인간 형성이 어렵습니다. 사랑의 영양소가 결핍되면 인간은 정신적으로 약해지면서 성격은 병들고 맙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회문제는 사랑의 영양 부족으로 성격이 병든 사람들에 의해 일어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랑 영양 결핍증 환자들은 인생을 긍정적으로 보지 못하고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기에 소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포악하게 살아가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도 환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 중에는 겉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고 고생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알고 보면 어디라도 좋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처럼 우리 속 어느 누구라도 상처가 있습니다. 육체의 질병으로 고생하는 분도 있지만 내적인 마음의 병으로 고민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가정에서 받은 상처도 있고, 어린 시절 받았던 지울 수 없는 상처도 있고 형제간에 받은 상처, 직장에서 입은 아픔 그리고 교회에 나와서도 받은 상처가 있을 것입니다. 그 상처는 치유함 받으셔야 하는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치유하여 주실 수가 있습니다. 사람은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땅으로는 사람을 사랑하도록 창조함을 받았기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늘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시는 분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는 만병의 의사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이 인생을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고 특별히 건강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건강은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고, 사실 하나님께서도 가장 원하시는 것입니다. 병들었을 때 우리 믿는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서울의대와 고려의대, 울산의대 예방 의학 연구팀에서는 한국인 120만 명을 무작위로 뽑아서 240여 개의 질병에 대해 5년간 조사를 해보았습니다. 그 결과 “한국인의 질병 2005년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한국인이 많이 걸리는 병은 20대와 30대에는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이고, 40대는 간경화고, 50대와 60대는 각종 암 그리고 70대는 뇌졸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병이 나면 병원에 가서 진찰 받고 치료를 받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건강을 이루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모두 함께 건강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매일매일 생활하는 삶의 자세와 태도가 우리의 건강에 절대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건강은 우리 마음과 연결되어 있어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 마음을 잘 다스려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해져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면서 “모세에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고린도전서 10:2) 광야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이 사흘 길을 헤메었으나 물을 얻지 못했습니다. 광야에서 생명은 물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물이 없다는 것은 생명을 부지할 수 없는 최악의 고통입니다. 수르광야에서 일어난 사건은 앞으로 있을 40년 광야 생활의 한 단면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후 남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사흘간을 여행합니다. 이 많은 백성들이 여행하기 위해서는 하루에 많이 걸어야 약 20-25km 정도 그러니까 약 60-75km지점이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 마라라는 땅이 위치했을 것입니다. 성지 순례를 하면 수에즈 운하의 해저 터널을 통과하여 약 15km 정도를 남행하면 대추야자나무가 무성한 오아시스 마을에 도착하는데 이곳을 지금도 ‘아윤 무사’(Ayun musa) ‘모세의 우물’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지금도 우물이 있으나 바다에서 멀지 않고 쓰고 짜서 마실 수 없는 우물입니다.

마라의 쓴물

 

아담 이후로 사람들 속에는 죄악의 쓴물이 있습니다. 이 죄악의 쓴물을 해결하지 않으면 사망의 독이 가득하여 크게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죄악의 쓴물을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볼 수 없고,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죄악의 쓴물이 해결되지 못한 사람들은 죽어서는 영원한 지옥에 들어갑니다. 죄악의 쓴물을 해결하지 못한 사람은 신앙생활을 해도 기도의 응답이 없습니다(사 59:1,2). 죄라는 쓴물을 해결하지 못하면 스스로가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힘들게 만들고 심지어 하나님까지 힘들게 합니다. 자식이 병들면 자식만 아픈 것이 아니죠. 자식 못지않게 부모의 가슴도 멍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죄가 없으시지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의 죄악으로 고통을 당하시는 것입니다. 사 43:24에 보면 “네 죄 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고 말합니다. 이 죄의 쓴물은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 할 수 없습니다. 수양과 도덕과 선행으로 쓴물을 달게 할 수가 없습니다. 고행을 해도 이 쓴물이 단물이 될 수 없고 어떤 종교를 믿어도 이 쓴물은 단물 인생을 사는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바다를 육지와 같이 건넌 후에 광야 길을 가게 됩니다. 물이 없는 광야 길을 3일 동안 헤맸는데 가지고 간 물은 다 떨어지고 덥고 메마른 땅에서 물을 얻기 위해서 그토록 헤매다가 드디어 물을 찾았습니다. 그 감격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갈한 목을 적시기 위해서 모두가 물을 마셨으나 더 이상 마실 수 없는 쓴물이었습니다. 그러자 이젠 전보다 더 큰 고통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에서부터 모세와 하나님께 대한 증오의 생각으로 충만해졌으며, 그들의 입술에는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백성들은 탄식하고 원망하고 불평했으나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음성이 듣기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신령한 눈이 열려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보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한 나뭇가지를 꺾어 물웅덩이에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지시하신 한 나무를 발견했습니다. 그 나무를 던져 넣으니 마라의 쓴물은 달아졌습니다. 당신의 눈이 열리면 지금 당신의 곁에 예비해 놓으신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문제를 만났을 때 부르짖어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주여, 도와주옵소서. 내가 이와 같은 어려움에 처해 있나이다. 이와 같은 문제 가운데 내가 처해 있나이다.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저 나무를 갖다가 그 물에 던져라.” 그래서 그 나무를 물에 던져 넣었더니 그 순간 독이 사라져버리고 쓴 물이 단 물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와서 물을 마시며 목에 갈증을 다 면하게 되었습니다. 저들이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 이 나무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쓴 물로 뒤덮여 있는 우리 마음에 던져지기만 하면 그 순간 미움의 쓴 물이 변화되어서 용서의 단 물이 되는 것입니다. 절망의 쓴 물이 변하여 희망의 단 물이 되는 것입니다. 고통의 쓴 물이 변하여 즐거움의 단 물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기만 하면 이런 기적이 일어나요. 죄에서 놓여남 받게 되고, 저주 가운데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고, 질병 가운데서 고침을 받게 되고, 여러분, 예수를 믿기만 하면 우리의 삶 속에 있는 모든 쓴 물이 단 물로 바뀌어서 주님의 축복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도덕적인 수양을 한다고 해서 쓴 물이 단 물이 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애 쓰고 힘써도 우리 인간의 힘으로 쓴 물을 달게 만들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의 결과로 다가왔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직 우리가 예수를 믿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을 의지할 때 우리의 삶 가운데 있는 모든 쓴 물이 단 물로 바뀌어 지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예수님이 피 흘려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 가운데 있는 미움과 분노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파괴하는 미움과 분노의 쓴 물

유명한 월프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분노를 느낄 때의 위장의 점막은 충혈 되고 운동이 증가되며 위산분비가 많아져서 위, 장출혈과 궤양을 초래한다고 합니다. 대장염의 96%가 분노할 때라는 보고도 있습니다. 또한 분노는 혈관을 갑자기 수축시켜서 혈압을 올리므로 뇌출혈 등의 위험을 가져옵니다. 일본 오사카에서 이런 실험을 한 것을 발표하였습니다. 개를 묶어놓고 4시간동안 팼습니다. 눈을 쳐다보며 몽둥이로 약을 올리며 쳤습니다. 개는 바짝 독이 올랐습니다. 만약 풀어 놓으면 죽일 듯이 결사적으로 덤벼들 정도로 약을 올렸습니다. 개가 독이 올랐습니다. 주사기를 꽂아 그 순간 피를 모두 빼보니 피 속에 시안이라는 독이 생겼습니다. 한 마리 개에서 나온 독을 주사하였더니 개 80마리를 죽일 양의 독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시험이 있습니다. 사람이 독이 오르면 개보다 시안이라는 독이 1.3배나 더 나온다는 시험결과입니다. 그러니까 혈기를 부리고 근심하고 걱정하고 미움을 품으면 몸이 독 때문에 망가져서 일찍 죽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말하기를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고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잠 17;22)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미움을 십자가에서 극복하였습니다. 죄 없으신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조롱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눅 23:34에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미움과 분노를 이기신 것처럼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는 사람들은 미움과 분노를 이길 수 있습니다.

김용문이라는 여자 집사님의 간증을 소개하겠습니다. 남편은 도박에 빠져있고, 늘 술에 취해서 생활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인이 행상을 하면서 연명을 했습니다. 너무나 고생이 심해서 골반이 삐뚤어져서 절름발이로 18년을 지냈습니다. 골반 뼈가 옆으로 손바닥만큼 튀어나왔습니다. 왼쪽다리가 끌려서 발을 절게 되었습니다. 다리를 끌면서 머리에 바구니를 이고 장사를 하니까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육신의 고통이 심했지만, 남편에 대한 원한과 미움으로 눈물 속에 살다가 그 미움과 분노 때문에 심신이 병들어 버렸습니다. 그런 괴로운 삶을 18년 동안 살다가 견디다 못해서 나도 교회에 나가야 되겠다 생각하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는 중에 남편에 대한 모든 원한을 예수님 십자가 밑에서 다 회개하고 용서하고 미움을 청산하게 되었습니다. 분노와 미움을 처리 하고나니 몸이 치유되기 시작했습니다. 속이 시원해지고 그동안의 소화가 되지 않고 신물이 늘 가슴속에서 솟구쳐 올라서 속앓이 많던 것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성령도 받고, 은혜도 받고, 기뻐하며 신앙생활하는 중에 하루는 잠을 자고 일어나니 18년간 튀어나왔던 골반뼈가 싹 들어가 버리고 다리도 깨끗하게 나아버리고 말았습니다. 미움과 원한과 분노가 그 영혼을 병들게 하고 그 위장을 병들게 하고 속앓이를 가져오고, 골반 뼈가 튀어나오게 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끌어않고 그 남편을 용서하고 미움과 분노를 삭이고, 사랑하자 마음도 몸도 고침을 받게 된 것입니다.

 

잠12:16절에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는다”고 했는데 오늘날 미련하니까 당장 분노하고 미워하고 분을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미움의 씨앗이 되고 분노로 폭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미움과 분노의 쓴물을 달게 하지 아니하면 그 독이 우리 영을 죽이고 마음을 죽이고 육체를 죽이고 생활을 파탄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라파

 

오늘 본문 26절의 마지막 부분을 보십시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이 말씀이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입니다. 마라의 기적은 이 말씀 하나에 그 의미가 집약되어 있습니다. 병든 마라의 세계에서 건강한 엘림의 세계로 옮겨가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조건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아는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그분은 당신 자신을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다른 번역본에는 '나는 너희를 만지는(touch) 여호와다' 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것은 그저 먼 발취에서 바라만 보고 계시는 절대자가 아니라, 직접 오셔서 우리의 상한 마음과 몸을 직접 만져주시는 우리의 삶속에 함께 하시는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이 땅에 내려오셔서 그리고 직접 고통받는 자들을 만지신 것처럼, 말입니다.

“여호와 라파”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하나님이다”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야훼 라파 라고 할 때 이 ‘라파’라는 말은 옷이 찢어지거나 잘못됐을 때 기워서 완전하게 만드는 것, 집이 무너졌을 때 완전하게 만드는 것, 그와 같은 불완전한 것을 완전하게 만드는 것을 ‘라파’라고 합니다. 우리가 병이 들었을 때 주님께서 고치시고 건강하게 만들어 주시는 그 라파의 역사가 오늘 이 시간 우리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고 의지하기만 하면 병든 사람을 고쳐서 온전하게 건강한 사람으로 바꿔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모든 병을 고치시고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데 죄사함의 은총을 통해서 이와 같은 축복을 주십니다. 시편 103편 3절에,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예수님의 세 가지 중요한 사역은 복음을 전파하시고(preaching), 말씀을 가르치시고(teaching), 병자들을 치료하시는(healing) 일이었습니다. 그중에 예수님은 치료하시는 일에 상당히 많은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의사도 예수님만큼 환자를 치료하신 분은 없습니다. 누가복음 5장 15절에 보면 “허다한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나음을 얻고자 하여 모여 오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만 구원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도 구원하시어 가난을 철폐하고 부요를 주시는 분이시며, 또한 우리의 질병을 고치시므로 우리의 육체도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만 병자들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열 두 제자들에게도, 칠십 인의 제자들에게도 병든 자를 고치는 사역을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 16장 17절에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받는 것도 믿습니다. 우리는 병을 치료하고, 병에서 고침 받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와 구세주 예수님의 뜻인 것을 분명히 믿습니다.

윌리암 부스(William Booth) 대장은 구세군을 창설하기 전에 몸이 참 약했습니다. 그는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에게 건강조사할 때 “당신이 과로하는 것이 그치지 아니하면 1년 이내에 죽는다”고 그랬습니다. 이런 몸으로 1년 계속해서 목회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윌리암 부스는 필사의 각오로 전도에 몸을 던져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더욱 헌신했습니다. 그런데 1년 있어도 죽지 않고 계속해서 하나님이 힘을 주셔서 83살까지 살았습니다. 그렇게 힘이 약한 사람도 착한 일을 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사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여 붙들어 주니까 죽지 않아요. 자기 명대로 살아요. 저도 그것을 종종 느낍니다. 굉장히 지치고 피곤하고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 될 때라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성령이 충만하면 새로운 생명이 가득해지는 것입니다. 사망이 물러가고 생명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만 의지하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노인이 된 부스는 “의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의사를 버렸고,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 의지했다.”고 했습니다. 의사가 나를 버렸으니 나도 의사를 버렸다. 그러니 나는 오직 주님만 의지하고 살았는데 이렇게 오래까지 살 수 있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 지는 그가 하나님께 얼마나 삶을 드렸는지에 따라 설명될 수 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엘림의 축복

 

27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자, 이 정도면 사막의 광야에서는 환상의 오아시스라 할만하지 않습니까? 사막에서는 물 샘 하나도 귀한데 물샘이 무려 열두 개, 그늘을 만드는 한 그루의 종려나무도 귀한데 무려 일흔 그루의 나무들. 자, 이런 놀라운 오아시스가 불과 10km지점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전 마라에서 그들은 불평했습니다. 원망했습니다. 왜 입니까? 단순합니다. 엘림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엘림이 보이지 않아도 엘림은 우리를 위해 예비되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엘림을 우리는 몰랐어도 하나님은 미리 엘림을 아시고 우리를 그리로 인도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엘림은 마라를 통해서만 비로소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마라에 주저앉아 계신 성도들이 계신가요? 조금만 참으십시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곧 우리는 엘림에 도달할 것입니다.

 

먼저 엘림의 의미를 살펴보십시다. 엘림이라는 말은 '나무숲이 있는 곳'(Place of Trees)이라는 뜻으로서 사막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는 안식처와 같은 낙원이었습니다. 엘림에는 물샘 12개가 있어서 12 지파가 물 때문에 다툴 일이 없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70 장로들(출 24: 9)을 상징하는 종려나무 70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늑한 그늘을 제공했습니다. 사막 여행길에 지친 나그네들에게 엘림은 오아시스요 낙원이었던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알 수 있듯이, 엘림의 샘물은 '구원'을 상징하며, 엘림의 종려나무들은 '축복'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또한 엘림은 '건강한 세계' '건강한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어서 엘림을 만난다는 것은 참된 축복에 이르는 길이며 건강한 삶을 사는 길인 것입니다. 저는 먼저 오늘 여기에 계신 여러분 모두가 엘림으로 갈 수 있게 되기를, 엘림을 만나게 되시기를, 아니 우리가 섬기는 우리교회가 엘림이 되기를 축복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라에서 경험했던 것은 어떤 일이었습니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곳에서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마라의 쓴 물을 단물로 치료하시고 인간의 상한 육신과 심령을 touch 하시는 '실제적인'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청교도들의 인사법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들이 믿음 때문에 많은 고난을 견디고 당시의 사회 속에서 오해당하고 핍박당하고 소외당하고 고통의 삶을 견디던 시절 저들은 이렇게 인사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The Best is yet to come) 우리가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 자신에게 외쳐보십시오.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 말을 오늘의 본문 식으로 바꾸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아직 엘림에 오지 않았습니다.” 마라의 쓴 물을 믿음으로 극복한 후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엘림의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여러분이 종종 인생의 고통스러운 마라의 쓴물을 만나게 되면 “아 ! 엘림의 축복의 동산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위로를 얻으시고 믿음으로 정진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 : 지저스보이(Jesusboy)
글쓴이 : 물맷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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