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130526 우리가 선택한 생명과 축복의 길 (신명기 30:14-20)
두 친구가 살았습니다. 너무나 친한 친구였습니다. 어느 날, 이 두 친구는 조용한 저녁 강둑을 거닐며 서로의 앞날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조금 가다 보니 갈래 길이 나왔습니다. 한 길은 강둑을 따라 계속된 길로, 주위에는 과수원도 있고 산책하기 좋은 길이었습니다. 다른 한 길은 언덕 위로 난 길로 언덕 위에는 반짝이는 예배당 불빛이 보였습니다. 다정했던 두 친구는 이 갈래 길에서 그만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의 의견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한 친구는 불빛이 있는 예배당을 가자고 했지만 거절하고 강둑을 따라 계속 갔습니다. 자기 말을 듣지 않은 친구를 원망하면서, 가다가 길옆의 과수원에 과일이 주렁주렁 달린 것이 보였습니다. 갑자기 그 과일을 먹고 싶은 충동이 생겼습니다. 몰래 기어 들어가서 과일을 땄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먹어 보니 보통 때 먹던 것과는 다른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후 이 친구는 이런 일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갖고 싶은 충동이 생기면 마음대로 훔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집에 들어가 훔치다가 주인에게 들키고 말았습니다. 그만 주인을 죽이고 달아난 것입니다. 그는 결국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사형언도를 받고 죽을 날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사형을 얼마 앞둔 어느 날, 감옥 안으로 들여진 신문을 한 장 집어 들었습니다. 낯익은 얼굴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오래전 시골길에서 헤어졌던 그 친구였습니다. 언덕 위로 올라갔던 친구가 이끌려 간 곳은 조그마한 예배당의 불빛이었습니다. 그 날, 그는 거기에서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그의 생활은 즐겁게 바뀌어져 갔습니다. 그는 열심히 공부하여 교수가 되었고 총장이 되고, 하원 의원으로, 다시 상원 의원이 되었습니다. 그가 신문에 얼굴이 난 것은, 그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기사와 함께였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미국의 20대 대통령이었던 제임스 아브라함 가필드였습니다.
미래에 희망을 주는 말씀
본문 말씀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고 이제 마지막으로 가나안 땅 앞에 서게 되었을 때의 사건입니다. 모세의 나이는 이제 120세가 되었습니다. 그는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이제 자기의 역할이 끝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 모세는 마지막으로 백성들에게 유언처럼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과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저주와 사망을 주려고 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모세는 이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영적인 지도자가 되려면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를 불행하게 하려고 하는 마음이 아니라 행복을 주려는 마음입니다. 우리에게 화를 퍼부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을 주려는 마음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예레미야 29:11) “내가 내 생각을 안다. 내가 재앙을 주려고 너희를 부른 것이 아니라 너희에게 평안을 주려고 불렀다. 그리고 내가 이 백성에게 주려는 것은 내일의 미래요 내일의 희망이다!” 얼마나 멋진 구절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래요 희망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평안을 주시고, 생명으로 넘치게 하시고,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축복의 자리에 서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셨던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기 원하십니다.
모세의 5경중 마지막 성경인 신명기의 기본 주제는 약속의 갱신입니다. 구세대들 즉 출애굽 당시의 사람들과 맺어진 약속을 1.5세대, 2세대들에게 가르쳐주어 저들 스스로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도록 한 것입니다. 오늘 읽은 성경은 분명히 인간의 삶의 두 문제가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15절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19절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는 생과 사, 복과 화의 문제이며, 하나님이 인간 앞에 두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운명적으로 또는 팔자소관으로 행불행을 타고 난 것이 아니라 행복을 누릴 수도, 불행의 길로 들어설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어 스스로 경외하도록 하였고, 그렇게 경외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길로 행하고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면 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복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입니다. 행복은 자신이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는 선물입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복은 하늘이 내린다'고 했습니다.
너와 네 자손을 위해 생명의 길을 택하라!(19)
바른 선택이 생명 길로 갑니다. 지금 모세는 그의 마지막 사명 길에 온 힘을 다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강론하기를 '이스라엘의 생사 문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에 달려있음을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선택은 명령이 아니라 자유의 선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므로 축복을 받든지 불순종하므로 멸망을 받든지 선택 여하에 따라 그 결과는 나타납니다. 사람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선택의 자유는 결국 책임이 따릅니다. 어떤 것을 선택하든지 그 결과는 반드시 따릅니다. 따라서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이 선택 여하에 달려있습니다. 선택을 잘 하면 성공과 행복이 자연히 따라오지만, 선택을 잘못하면 실패와 불행이 반드시 따라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똑같은 칼이라도 의사에 손에 있으면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도구가 되어지고, 흉악한 강도의 손에 잡히면 사람을 죽이는 살인도구로 쓰여집니다.
사람이 똑같은 혀를 가지고도 그 혀를 잘 놀리면 남을 위로하고, 칭찬하고, 축복하는 말이 되지만, 잘못 사용하면 남을 저주하고, 탓하고, 원망하고 누명을 씌우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양편에 강도가 있었습니다. 좌편에 있는 강도는 "네가 남을 구원하고 어찌 너는 구원하지 못하느냐?" 예수님을 조롱하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우편 강도는 '주여 당신의 나라가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사 나로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여 주옵소서' 간청합니다. 죽음 일보직전에 두 강도에게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좌편강도는 천국에서 영생할 수 있는 선택이 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죄악으로 눈이 어두워 멸망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선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한쪽에는 생명과 복을, 다른 한쪽에는 사망과 저주를 두었으니 너희들이 택하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유자로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유자가 되는 길이 있습니다. 사람이 선택할 때 자유자가 됩니다. 게으르면 자유를 상실하게 됩니다. 선택하지 않으면 인생이 제대로 열리지 않습니다. 인생은 선택하는 것입니다. 선택하는 것이 자유자의 특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복의 길을 택할 것이냐? 저주의 길을 택할 것이냐? 생명의 길을 택할 것이냐? 사망의 길을 택할 것이냐?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받기 전에 먼저 결정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선택에는 기본 원칙이 있습니다. 하나를 택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런 경험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를 택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합니다. 결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여인을 택하면 수많은 여인을 포기해야 합니다. 한 남자를 택하면 모든 남자들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런데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자유자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결혼하고 나서도 이 남자, 저 남자, 이 여자, 저 여자에게 두리번두리번 거리는 것을 자유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진정한 자유는 포기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유는 포기해야 할 것을 포기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때 참 자유가 된다.” 우리 삶에 포기하지 못하고 선택해서 생기는 문제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니라” (신명기 30:17~18)
결국은 복을 받느냐 화를 당하느냐는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복을 받느냐 화를 당하느냐는 자신들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복종하라 그리하면 약속대로 자손만대에 복을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선택은 자유지만 결과는 그 약속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셨던 복을 그대로 받을 것이냐 아니면 약속에 땅에 들어가서도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즉 하나님에게서 마음을 돌이킴으로 말씀을 듣지 않는 다면 18절에 말씀대로 반드시 망하고 차지할 땅에서 길게 살지 못하리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마음이 하나님께서 멀어지면 이 자리에 앉아 있어도 약속의 말씀이 들리지 않으니까 말씀을 순종하지 않습니다. 약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문제는 우리 앞에 주신 것 중에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복종함으로 생명을 주시고 장수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주시는 복을 누리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라고 하셨습니다.
이어서 20절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새벽에 잠이 깨면 어떤 말부터 하고 하루를 살까! 그런 생각을 해보신적이 있습니까? 김동호목사가 쓴 책 중에 “크리스천 스타트”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 15번째 제목에 ‘아침에 기도하기’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김동호 목사가 수술을 받고 마취에서 깨어날 때 첫 마디가 “주여!”라는 말이었다는 얘기를 듣고 그는 하루의 생활의 시작을 그렇게 하기를 마음먹고 기도하고 다음날 아침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는 말이 나왔고 그 후로 10여년 매일 아침 첫마디를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하고 ‘지금도 아침에 일어났을 때 첫 생각과 첫 마디 말이 하나님이실 수 있기를 기도한다.’고 썼습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어떤 말을 선택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루를 평강과 복 가운데서 지내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찾을 수 있어야겠습니다. 유대인들은 어린아이가 말을 배울 때, 엄마, 아빠를 먼저 부르게 하지 않고 하나님을 부르도록 교육시킨답니다. 이 세상 태어나서 첫마디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일생을 좌우하는 첫마디가 아니겠습니까?
생명과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16절에 보면 우리가 행할 일이 세 가지가 나옵니다. ⑴하나님을 사랑하고, ⑵말씀대로 행하고, ⑶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일입니다. 즉 '사랑하고, 행하고, 지키는 것', 이 셋을 중요하게 여기면 복은 하나님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복을 다 주시겠다고 성경은 약속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삼박자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행하는 것'입니다. 생명이 어디에 있습니까? 어떤 과학, 어떤 철학에도, 어떤 종교에도 없고 오직 예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삶을 풍성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근원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생명을 선택한 자들에게 행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20).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생명을 택한 백성들에게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⑴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⑵그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라. ⑶하나님과 날마다 연합을 이루라. 그러면서 이 말씀대로 살아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소개하시면서 그들에게 주신 복을 주시겠다고 하나님이 약속을 하고 계십니다.
1). 하나님을 사랑하라!
주님 당시 유대인들이 사용했던 헬라 문화권에서 네 종류의 사랑을 얘기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지 않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파스칼은 '믿음과 사랑은 다르다'고 했습니다. 사실 세상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많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약2:19절에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귀신들도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떱니다. 세상 불신자들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다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는데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믿고 사랑해야 합니다. /믿/ 부활하신 주님은 갈리리 바다에서 시몬 베드로에게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다짐하며 묻고 사명을 맡겼습니다. 모세는 마지막 임종을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별 설교를 하면서 '하나님을 믿으라!'가 아니고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까?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신6:5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요일5:3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십니다. 출20:6절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잠8:21절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 시91:14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롬8: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러분 하나님을 아는 것은 복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더 큰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은 아브라함의 복, 샘 줄기의 복을 받는 통로입니다.
2).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가 있습니다. 순서가 사랑이 먼저요, 그 다음이 순종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 자는 순종하지 말라고 해도 기쁜 마음으로 순종합니다. 순종 속에는 희생, 헌신, 열심, 충성, 봉사, 모든 것이 다 들어갑니다. 순종도 축복의 비결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라고 하는 것은 하는 것이고,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쉽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셨으니 하나님을 바로 믿으면 됩니다. 기도하라고 하셨으니 깨어 기도하면 됩니다. 충성하라고 하셨으니 죽도록 충성하면 됩니다.
미국의 한 청년이 군대를 마치고 직장이 없어서 큰 회사 사장을 찾아 갔습니다. "사장님, 나에게는 강한 체력과 고동치는 맥박이 뜁니다. 나에게 어떤 일을 시켜도 할 것이니 일은 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사장은 그 용기와 의욕은 마음에 들어서 당장에는 자리가 없으니 이력서나 두고 기다려 보게나!" 했습니다. 그런데 청년은 "아닙니다. 지금 당장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그랬더니 사장은 밖에 있는 벽돌을 나르게 했습니다. 이 벽돌들을 저쪽 마당으로 옮겨 쌓겠나" "네! 알았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하루종일 다 옮겨 쌓았습니다. 그 다음날 나갔더니 사장은 말하기를 이번에는 어제 옮겼던 벽돌을 다시 제자리로 옮겨 쌓으라고 합니다. 아마 웬만한 사람 같으면 "여보시오 사람 놀리는 것입니까? 하고 그만 두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하라는 대로 무조건 순종하여 열심히 일했습니다. 사장이 그만하면 되었네 하더니 특채입니다.
3). 그에게 부종하라!
여기 부종하라의 원 뜻은 '다바크'로 '굳게 연합하라, 착 달라붙다, 밀접히 결합하다'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안에 들어 오라, 연합을 이루라, 하나님과 함께 하라, 하나님을 따르라' 즉 하나님과 일치, 연합을 이루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에 누가 가장 강한 자입니까? 대통령을 따르는 사람입니까? 재벌을 따르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과 날마다 동행했더니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높여 주셨습니다.
1973년 부활절 아침이었습니다. 이디 아민 대통령의 독재에 시달리던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셈판기 목사님이 목회하시는 교회에서 7천여명의 신자들에게 부활절 설교를 하였습니다. 부활절 절기를 잘 지키고 싶어서 강력한 설교를 하였습니다. <부활의 주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산다. 정의의 편에서 끝까지 싸우자> 셈판기 목사님이 설교를 마치고 목양실로 돌아와 앉아 있는 데 괴한 5명이 복면을 하고 총을 들고 들이 닥쳤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에게 총을 겨누었습니다. 이제 목사님은 벌집 쑤신 듯이 총으로 난사당할 순간이었습니다. 이 때 셈판기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날입니다.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다만 당신들을 위해 2분 동안만 기도하게 해주십시요> 그들은 마지막이라고 허락을 하였습니다. 죽을 사람에게 2분 허락은 아무리 강도라 할지라도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셈판기 목사는 괴한들 앞에서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주님.저들은 자신이 범하고 있는 죄를 알지 못하나이다.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잠간 기도를 하고 눈을 떠보니 괴한들의 표정이 부드럽게 변해 있었습니다. 괴한 우두머리가 총을 거두며 말했습니다. <목사님.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기도가 괴한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들은 살그머니 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는 승리합니다. 순서상에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을 순종할 수 있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고 순종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일이 생명으로 가는 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떨어져서는 살 수 없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죽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면 죽습니다. 여기서 죽음은 영혼의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그분과 꼭 밀착해 있어야 합니다. 틈이 멀어지면 사탄이 들어오고 틈이 멀어지면 애정이 식어집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 비유에서 포도나무와 가지가 붙어있어 연합해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찰스 스펄전 목사님이 어떤 농가에 갔습니다. 거기에는 바람의 방향을 알려주는 풍향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풍향계의 끝에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 집 주인인 농부에게 물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풍향계처럼 변한다는 뜻입니까?” 그랬더니 그 농부가 하는 말이 “그런 말이 아니고 바람이 어떤 방향을 가리키든지 간에 하나님은 여전히 사랑이라는 뜻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바람에 의해서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환난이나 고난의 바람에 의해서도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의 아들을 아낌없이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이 부분을 표현할 때에 ‘하나님의 상처’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고통도 당하지 아니하시고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최고의 고통을 당하시면서 아들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우리를 사랑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을 이야기할 때에는 십자가의 사랑에 뿌리를 내려야 그 사랑이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바람이 불어오든 순풍이 불어오든 환란의 역풍이 불어오든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신 다는 것을 확신하고 하나님께 속한 삶을 살 수 있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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