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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인생을 변화시키는 산 (마가복음 9:1-9)

하나님아들 2019. 2. 15. 23:43

 

sg130616        인생을 변화시키는 산 (마가복음 9:1-9)

 

오늘 본문의 사건이 매우 중요하기에 공관복음에서 똑같이 취급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많은 산들이 나옵니다. 구약의 에덴동산에서부터 신약에 겟세마네동산까지 크고 작은 산들이 있습니다. 호렙산 혹은 시내산으로 알려진 모세의 산도 있습니다. 그가 죽은 '느보 산'도 있습니다. 엘리야의 산으로 알려진 갈멜산도 있습니다. 이런 산들에서 성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굵직한 사건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산이 되었고, 이 산들은 이런 역사를 간직한 채 지금도 시내반도나 팔레스틴 땅에 우뚝 서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한 산이 나오는데 그저 높은 산으로 나왔기 때문에 확실한 이름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학자들의 견해를 보면 가버나움에서 가장 가까운 다볼산이라고 하는 학자도 있고, 가이사랴 빌립보성에서 가장 가까운 헬몬산으로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헬몬산이라고 합니다. 이 산은 해발 약2,850M도 그 산봉우리에는 항상 눈이 덮여있어 그 눈이 녹아 요단강을 통하여 이스라엘지역에 물을 공급해주는 산으로써 이스라엘에게 특별한 산입니다. 그러나 그 산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모릅니다. 그저 '높은 산'으로 알면 됩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산중에서 이 산만큼 유명한 산도 없습니다. 이 산에서는 구약을 대표하는 모세와 엘리야 뿐 아니라 예수님도 함께 계셨습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산에서 예수님은 그 용모가 변화하셨습니다.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습니다. 이제까지 제자들이 보지 못했던 찬란한 모습으로 변화하신 것입니다.

 

야고보는 12사도 중 첫 번째 순교자이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는 못난 모습을 보였지만 로마 황제 앞에도 굴하지 않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였습니다.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되었고, 요한계시록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왕래가 없는 높은 산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신비한 영적 체험을 갖게 하시고자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성령은 한분이시나 은사는 여러 가지이듯이 여러분에게 역사되는 영적체험들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에 이끌리는 영적체험들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 사건은 당시 주님의 십자가 예언 때문에 혼란과 불안에 사로잡혀 있던 제자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기 위한 사건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메시야직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습니다. 주님의 영광스런 모습으로의 변형을 통해 ‘주님의 십자가는 죄인의 구원을 위해 자발적으로 받으시는 고난’이라는 사실을 확증해 주신 사건입니다. 오늘 우리는 변화산에서 큰 체험을 하게 된 제자들에게 초점을 맞춰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뜻하지 아니하게 엄청난 체험을 하게 되었는데, 이날의 경험은 이들의 일생에 큰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부활과 천국의 영광을 미리 맛보게 하셨습니다(J. P. Lange).

2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변형되사’의 원형(메타모르포오)은 외적, 내적 성질이 변화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육신을 입으셨지만 이때 죄 없는 내면의 본질적 영광이 외부로까지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태양과도 같은 강렬한 빛이 얼굴에서 빛났습니다. 그 빛이 몸 전체에서 나와 옷을 투과하여 감히 근접할 수 없는 거룩한 신성을 나타내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광채는 모세의 얼굴에서 빛났던 광채(출 34-29-35)와 비교해보면 그 정도를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경우 얼굴의 광채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까이 봄으로 그 얼굴에 투영된 것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모세가 얼굴을 수건으로 덮었을 때 그 빛은 가리워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광채는 주님의 몸 자체에서 빛났던 영광의 광채였습니다. 이 광채는 두터운 옷을 투과할 뿐 아니라 그 빛이 겉옷을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더 새하얗게 보이게 할 정도로 강렬하였습니다. 2절에 보면 예수님은 ‘저희 앞에서’ 변형되셨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보고 예수께서 메시야 이심을 확신하도록, 또한 확신 가운데 제자의 길을 걷도록 도우시고자 하신 것이었습니다. 세 제자는 예수님의 본래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들이 목격한 예수님의 모습은 성육신하기 전의 영광스런 하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훗날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우리 모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독생자의 영광을 믿음의 눈으로 목격하는 은혜를 체험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에, 그 곳에 구약의 대표이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더불어 말씀하고 있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구약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었고, 유대인에게 있어 정신적인 지주와 같은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이 세상에 나타나 보이셨다는 것은 종말이 도래하였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3제자들의 눈에 보이는데, 구약의 모세와 엘리야 그리고 예수님이 함께 서 있어 말씀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모세는 율법의 대표자이며, 엘리야는 예언의 대표자로 이스라엘 역사에 아주 중요한 인물들이었습니다. 지금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가 더불어 말씀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전해지지 않았지만,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별세하실 것을 가지고 말씀하신 것만이 전해졌습니다. 눅8:31 “그들은 영광에 싸여 나타나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그의 떠나가심에 대하여 말하고 있었다.” 모세와 엘리야는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곧 그의 떠나가심, 별세에 대하여, 십자가에서의 죽음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고난을 받으시고 어떠한 죽음을 죽으실 것이며, 예수님이 이루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별세로 번역되었으나 헬라어는 엑소도스, 출애굽이란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직역을 한다면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님과 함께 장차 우리 예수님께서 출애굽할 것을 예언했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께서 육신의 장막을 벗으시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영광스런 출발을 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십자가 사건으로 출애굽 사건이 연결되었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역사적인 사건을 꼽으라면 뭐니, 뭐니 해도 출애굽사건입니다. 그런데 그것과 대응되는 신약의 사건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다시 말하면 출애굽 사건은 십자가사건의 모형입니다.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구원할 사건이 바로 출애굽 사건입니다. 마찬가지로 십자가 사건은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 성도들을 죄악의 도성인 세상에서 구원하는 사건입니다. 이 표현은 신학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용어입니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단순한 죽으심이 아니라 선민 이스라엘, 영적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고 하는 출애굽사건의 완성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엘리야와 모세를 보내셔서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시고, 죽임을 당하시는 것은 모세와 엘리야, 곧 율법과 선지자의 글에 기록된 예언의 성취임을 시청각적으로 확실하게 가르쳐 주시고자 그들을 변화산에 체험을 주신 것입니다.

 

이 때 베드로는 정신을 차리고 하는 말이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지금 모세가 나타나고 엘리야가 나타나고 이런 놀라운 일이 자기 앞에 펼쳐지고 있는 이 일로 몹시 무서웠습니다. 그가 지금 말하는 것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초막 셋을 짓자고 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구름이 와서 예수님과 세 제자들을 덮으면서 구름 속에서 들려진 말씀은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말씀이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도 들려진 말씀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직접 경험한 베드로가 베드로후서 1:17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1장에는 베드로가 변화산에서 겪은 일을 회고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벧후 1:17) 하늘에서 음성이 난 것은 예수님은 과연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이시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였습니다. 바로 그런 음성이 들려진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신 분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구약을 대표하는 모세와 엘리야를 보내셨지만,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오직 예수님의 말씀만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변화의 극치를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12명인데, 9명은 산 아래 남겨두고 세사람만 따로 데리고 가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도 편애하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하나님앞에 더 많이 헌신할 그릇됨을 보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요21:18-19) 그러면, 높은 산에서 3명의 제자들에게 신비한 영적체험을 갖게 하신 예수님은 어떻게 변화 되셨나요?

첫째로, 얼굴이 해같이 빛났습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고 시내산에서 내려왔을 때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나므로, 백성이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자 모세는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습니다.(출34:29-33) 모세의 사건은 예수님 사건의 모형이요, 예표요,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계21:21-25절에서 해나 달보다 더 밝은 등불되시는 예수님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얼굴에서만 광채가 난 것이 아니고 몸 전체에서 나옴으로 그 옷을 투과하여 감히 근접할 수 없는 거룩한 신성을 나타내셨습니다. 만약 그 당시 해(ἥλιος)와 빛(φως)보다 더 밝은 대상이 있었다면 마태복음의 저자는 그 표현을 사용했을 것입니다. 내면으로부터의 영적 상태가 외적으로는 빛으로, 흰색으로 표출되는 신령한 광경은 평생 제자들을 사로 잡았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신령한 체험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모세와 엘리야로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주전 1500년경, 엘리야는 주전 800년경의 사람들인데, 3명의 제자가 어떻게 알아보았는지 성령은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는 자로, 엘리야는 최고의 선지자(예언자)로 등장시켜 선지자 보다 귀한 예수, 율법보다 귀한 예수를 깨닫게 하려 함이었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율법에 매여 있던 제사장, 서기관, 사두개인들 보다 귀한 예수로, 예수는 율법이나 예언의 단절자이시자 완성자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3명의 제자는 너무 황홀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요구합니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초막셋을 지을까요?”(4절). 그때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소리가 들여왔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5절). 할렐루야!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5절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이때 하늘에서 두 가지 음성이 들렸습니다. 하나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이 음성은 예수님이 두 번 들었습니다. 본문에서 한번,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입니다. 그러니까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이 음성을 들으셨고, 이젠 십자가를 지려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이 음성을 들으신 것입니다.

 

이 음성은 바로 하나님의 확인입니다. '정말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그렇게 사랑하고 기뻐하는 내 아들을 너희를 위하여 지금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려고 한다.'는 뜻입니다.

또 하나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저희 말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지금 우리를 향하여도 주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바로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의심하지 말고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을 특별히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수난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길 십자가의 길을 갈 때 도망가지 말라, 그분이 3일 후에 부활한다고 했을 때 그 말을 의심하지 말라, 그분이 다시 오신다고 했을 때 그것을 분명히 믿으라'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까지 믿지 못했습니다. 이 음성을 들었을 때 제자들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6절 "제자들이 듣고 엎드리어 심히 두려워하니" 심히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이제야 제자들이 정신이 바짝 났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경외의 대상입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하나님 앞에 서야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두려워하고 떨고 엎드릴 줄 알아야 합니다.

7절 "예수께서 나아와 저희에게 손을 대시며 가라사대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하신대"

두려워 떨고 있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이는 예수님의 다함이 없는 사랑과 연민의 정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두려워 말라, 무서워 말라,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하나님이 늘 함께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출처 : 지저스보이(Jesusboy)
글쓴이 : 물맷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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