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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행복한 인생의 선택 (신 10:12- 20)

하나님아들 2019. 2. 15. 23:41

 

sg130714      행복한 인생의 선택 (신 10:12- 20)

 

 

사람은 그가 무엇을 가졌느냐 무엇을 행하느냐 보다는 그 사람이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서 평가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 윤리학에 '오직 사랑만이 그 사람의 행동방식을 정당화 할 수 있다'는 유명한 명제가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사람은 알고 있는 것에 의하여 평가될 것이 아니라 그가 사랑하는 것에 따라서 평가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난 20년간 가장 많이 발달한 학문이 <행복학>입니다. 행복학자도 생겨났습니다. 행복학자 데이비드 마이어 박사님은 한 마디로 말하고 있습니다. <행복은 주관적인 자기 만족이다> 많이 가지고, 높이 올라갔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은 주관적이라는 것입니다. 영국 행복 연구소에서 세계 150 국가 국민들의 행복도를 조사하였더니 온 세계에서 가장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는 나라가 방글라데쉬였습니다. 가장 어려운 나라중에 하나입니다. 방글라데쉬 하면 두 가지가 떠오릅니다. 가난과 에이즈입니다. 그런데도 세계에서 가장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34 위였습니다. 태평양을 끼고 사는 나라 18 국가 가운데 가장 행복을 느끼지 못 하고 사는 나라가 한국이라고 발표하였습니다. 행복은 외적 조건이 아니라 내적 만족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많이 가지고 불행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적게 가지고 행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높이 올라가고 불행한 사람이 있고, 낮게 살면서도 행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 까요? 오늘 본문은 이렇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12-13) 오늘 본문이 말해주고 있는 깊은 내용이 있습니다.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행복을 위하여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면 행복은 부산물로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신명기 10:12에 "이스라엘아 너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늘 하나님을 믿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12절에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며 그 모든 도를 행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6:4-5에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라는 것입니다(12절).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 22:37-39에 인간이 행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도리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네 자신같이 사랑하는 것이라 이것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랑 속에 행복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의 품속에 아기의 행복이 있습니다. 남편의 사랑 속에 아내의 행복이 있고 하나님의 사랑 속에 인간의 행복이 있습니다. 일본의 우찌무라 간조는 말하기를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을 아는 데 있다. 하나님을 알므로 불행도 행복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면 행복도 불행인 것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 행복의 출발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며 더 사랑하고 섬기는 것은 더 행복해 지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행복의 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우물에서만이 행복의 물을 길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속에 행복이 있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 여호와를 사랑하며 섬기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 사랑받아 행복해지는 일은 서로 정비례합니다.

 

 

더 행복하기를 원합니까? 하나님의 더 큰 사랑을 받으십시오. 하나님의 더 큰 사랑을 받기를 원합니까?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더 섬기십시오. 부모를 잘 섬기는 자식, 남편을 잘 섬기는 아내, 아내를 잘 섬기는 남편은 분명 더 큰 사랑을 느끼고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시기 위한 모든 것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모든 만물의 주인 되시고 우리에게 사랑과 섬김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따라 순종하므로 주시는 행복을 소유하는 복된 성도가 됩시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신 10:12b) 여기서 ‘섬기다’라는 말은 히브리어에 보면 ‘엎드리다, 경배하다, 복종시키다’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엎드려 경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킬 때에 모세를 바로 왕에게 보내어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7:16)라고 하라고 시켰습니다.

 

 

'섬기다'라는 말은 영어로 서비스라는 말입니다. 서비스는 봉사하다는 말도 있지만 종교적인 의미로서는 "경배하다", "예배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만 경배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생활은 하나님의 분명한 요구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우리의 중심을 받으시고 기뻐하시고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신앙생활의 핵심은 예배입니다. 예배생활이 실패하면 신앙은 실패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주일예배를 드리기가 매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믿음을 지키는 지름길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영광중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신약에 와서 예수님은 이렇게 권면하셨습니다. 구약의 제사가 아무리 많아도 그 제사는 일종의 그림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3-24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같은 육체를 가지신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으로 드려야 합니다. 진리로 드려야 합니다. 이처럼 온전히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과 하나되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경외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의식하는 영혼의 태도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믿어야 합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의 임재의식이 분명하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경외한다는 말은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신 것을 믿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존경하고, 그 분의 말씀에 의지해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나온 신앙의 태도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특징은 하나나님을 두려워하되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시고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에 그 어떤 일도 능히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뿐 만 아니라 모든 일의 결론도 압니다. 그러므로 환경이나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믿음의 사람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젊은 여호수아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몇 번이고 두려워하지 말라, 강하고 담대하라고 권면하신 것을 여호수아 1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을 갖게 되어 질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12절을 계속해서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연결되어 있는 말씀이 바로 그의 모든 도를 행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것이 바로 경외하는 자의 태도라는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도를 알아야 합니다. 도를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생깁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말씀을 얼마나 듣느냐에 결정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신 10:13)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또한 여호와를 바라고 그의 도를 지킬 때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에 실현되는 것을 반드시 보게 됩니다(시 37:34). 하나님이 주시는 명령은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하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명령을 잘 지키면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명령은 수용하기에 곤란 한 명령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명령을 따르면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행복을 위하여 하라는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순종하면 결국은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가령 가장 기본적인 주일을 지키는 일이 잘 안 되는 분들이 있다고 합시다. 자신들이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일들 때문에 주일을 어쩔 수 없이 지킬 수 없을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행복의 열쇠를 찾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세상에서 중요하게 생각되는 그 어떤 일들도 그런 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합니다. 주일을 지키는 데서 행복해 진다는 것입니다. 내가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속한 백성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기에 명령을 들을 의무가 있고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행복할 특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기에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지키는 것입니다.

 

불쌍한 사람을 돕고 나그네를 사랑해야 합니다(18-19절).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며 떡과 옷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시고 뇌물을 받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며 부정한 방법으로 행복을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께서 마 7:12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하셨습니다. 대접을 받고자 하면 먼저 남을 대접해야 한다면 내가 행복해지고자 하면 먼저 남을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기독교의 황금률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꾸시고 섭리하실 때 다른 사람을 대접하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어서 행복하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를 더욱 행복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를 보시고 판단하시거나 뇌물을 받으시고 마음이 흔들리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고 마음을 감찰하시고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시면서 특별히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고 나그네에게 떡과 옷을 주실 때 어떻게 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떨어뜨려 주시겠습니까? 누군가를 통해서 불쌍히 여기게 하시고 떡과 옷을 주게 하시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내게 주시고 떡과 옷을 줄 수 있는 마음을 내게 주셔서 내가 불쌍히 여기고 떡과 옷을 주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 행복을 내가 느끼고 내가 누릴 수 있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가 천국에 관한 설교를 하였습니다. 다음 날 한 성도를 만나게 되었는데 “천국의 메시지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목사님은 천국이 어디 있는지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그때 목사는 이렇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당신을 만나게 되어 다행입니다. 저는 지금 어느 오두막집에 심방을 하고 왔습니다. 그 집에는 가난한 성도가 열병으로 앓아누워 있습니다. 당신이 좋은 음식을 가지고 가서 시편 23편을 읽은 후 기도해 주신다면 천국이 어디 있는지 알게 되실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 이 사람이 목사님을 찾아와 말합니다. "목사님, 천국이 어디 있는지 알았습니다. 목사님 말씀대로 행하고 15분 동안 천국에서 지내다 왔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천국이 예비 되어 있지만, 땅에서도 사랑을 베풀며 섬길 때 천국을 체험할 수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이웃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 중에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 주위에 우리보다 더 어렵게 살고 있는 이웃을 사랑하고 그들을 돌보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고 또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위해 정의를 행하시는 분입니다. 또한 나그네를 사랑하시고 그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시는 분이라고 소개하십니다. 그러면서 너희도 나그네를 사랑하라 하십니다.

여기 고아와 과부, 나그네는 누구를 말합니까? 힘없는 자, 버림받은 자,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기 어려운자, 그리고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자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돌보고 사랑하라고 우리에게 명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시는 것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누굽니까? 네 이웃이 누굽니까? 제일 먼저는 여러분 아내나 남편이 이웃입니다. 여러분 주변의 일가친척 중 어려움 없이 잘 사는 분들이 이웃이 아니라 어렵고 힘들게 사는 그 분들이 내 이웃입니다. 그들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입니다. 또 누가 이웃입니까? 내게 찾아와서 손을 벌리는 사람도 내 이웃이지만 내가 싫어하는 사람도 이웃입니다. 내 맘에 안 드는 사람도 이웃입니다. 특별히 나와 상관없어 보이는 사람도 이웃입니다.

 

 

그리하면 11장 8절 하반절과 9절에 보면 "그리하면 너희가 강성할 것이요 너희가 건너가 차지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할 것이며 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이냐 하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에 순종하면 하나님이 강하게 해주실 것이고 땅도 주시고 장수의 복도 주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필요한 것을 채우시겠다는 것입니다. 약 1:27에도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했습니다.

 

 

오래 전에 버클리 대학에서 사랑과 생명의 관계성을 연구하였습니다. 쥐를 가진 실험이었습니다. 첫 번째 쥐 한 마리는 먹이만 주었을 뿐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다섯 마리 쥐를 모이게 해서 먹이를 주었습니다. 세 번째는 사람의 손에 쥐를 올려 놓고 쓰다듬어 주면서 사랑을 주면서 먹이를 주었습니다. 그 결과 첫 번째 쥐는 600 일을 살았습니다. 두 번째 쥐는 700 일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쥐는 무려 950 일을 살았습니다. 해부하여 보았습니다. 사랑을 받고 자란 쥐는 다른 쥐들에 비하여 뇌가 무겁고 컸음이 발견되었습니다. 사랑을 받으면 오래 삽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이 오래 살기를 바라면 사랑하여야 합니다. 잠언 기자 솔로몬은 말했습니다.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잠15;17) 사랑하고 사랑을 받는 이는 행복합니다. 행복의 비결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떤 형편에든지 자족하고 감사할 때 행복이 옵니다.

 

여기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겨울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겨울이 좋다. 흰 눈을 볼 수도 있고, 사람을 강하고 진지하게 만들어주니 겨울이 좋다." 봄이 오면 또 이렇게 말합니다. "온갖 아름다운 꽃들이 피고 따뜻하니 봄은 봄대로 좋다." 여름에 대해서도 "초목이 우거지고 활기에 넘치는 여름은 또 그 나름대로 시원해서 좋다. 하지만 가을도 좋다. 가을은 우리들에게 겸손을 가르쳐주고 풍성한 열매를 맺어 주니까." 이런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의 사람도 있습니다. "겨울이 되면 춥고 게을러져서 싫다. 여름이 되면 덥고 땀이 나서 싫다. 가을이 되면 처량하고 허무해져서 싫다. 봄이 되면 꽃샘바람이 불고 노곤해서 싫다."하고 '싫다', '싫다' 소리를 연발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겨울이면 '아, 어서 여름이 되었으면' 하고, 여름이면 '아, 어서 겨울이 되었으면' 하는 어디에 갖다놓아도 불행한 사람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여건에 관계없이 항상 행복합니다. 일이 생기면 기회가 주어졌다고 좋아합니다. 건강하면 일할 수 있다고 좋아하고, 병들면 조용히 기도할 수 있다고 좋아합니다. 하는 일이 순탄하면 만사를 형통케 해주심에 대하여, 역경에 처하면 자신을 단련시키고 정화시켜주심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런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4:11,12) 물론 이런 자족하는 행복의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주님에게 이런 자족하는 마음을 달라고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국에 있으나 캐나다에 있으나, 봄이나 여름이나 가을이나 겨울이나 사시사철 행복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그 불행을 전파하게 되고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교회까지도 불행으로 몰아갑니다.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하는 마음을 얻어 짧은 인생을 기왕이면 행복하게 살고, 다른 사람들도 더욱 행복하게 만드는 행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4세기 의사 밀레투스가 쓴 <인간의 특성>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웃음은 그리스어로 겔로스(gelos)입니다. 그런데 이 말의 어원은 헬레(hele)인 데 그 의미는 건강(health)라는 것입니다. 고대인들이 웃음은 건강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솔로몬은 말했습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17;22)  누구에게나 하루에 300-400개 암세포가 생긴다고 의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암세포가 뭉치면 암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 발생하는 암세포를 그 때 그 때마다 죽이면 암이 되지 않습니다. 그 암 세포를 죽이는 요소가 바로 엔도르핀입니다. 엔도르핀은 즐겁게 살 때 우리 몸속에서 많이 만들어 집니다. 그래서 암세포를 생기는 대로 잡아먹습니다. 그러니까 암 세포가 뭉쳐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됨으로 인하여 건강한 삶을 살아 갈 수 있게 됩니다. 한 번의 폭소는 막힌 혈관을 뚫어 줍니다. 암 세포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뜨거움입니다. 그러므로 뜨겁게 기도하고, 뜨겁게 찬송하고, 뜨겁게 운동하면 암세포는 뜨거움 속에서는 저절로 녹아내리게 됩니다. 암세포는 뜨거움에는 정신을 못 차리게 되는 세포입니다. 그러므로 즐겁게 사는 사람은 늘 엔도르핀을 많이 배출함으로 건강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즐거움은 마음의 양약이라고 말했습니다. 벌써 3000년 전에 솔로몬은 이런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행복하게 사는 성도는 이처럼 영육 간에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 지저스보이(Jesusboy)
글쓴이 : 물맷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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