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복음과 언약!!

[스크랩] 복음과 다른 율법(갈라디아서 강해1장)-주일저녁

하나님아들 2012. 9. 19. 00:00
 

복음과 다른 복음

(갈1:6-10)

2006년 10월 8일

 


서  론 >

  일전에 세미나 때에 만난 어떤 여성분의 이야기를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망막색소상피변성이라고 기억되는 병을 앓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병은 현대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병입니다. 약 15년 사이에 점점 시력이 약해져서 결국 실명하게 되는 병입니다. 그래서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같이 모여서 서로 위로도 하고 정보도 교환하면서 지내던 중에 자신들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이 개발되었다는 말을 듣고 6-7명이 같이 이 수술을 하기로 했었답니다. 수술 당일 날 그날 너무 중요한 문제가 있어서 아쉬움 가운데 다른 이들만 먼저 수술을 하고 이 자매님은 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수술결과가 좋지 못해서 수술한 사람들이 완전히 실명을 하고 말았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이야기 하는 동안 계속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가 몸이 아프면 약에 대해 얼마나 심사숙고하면서 약을 처방합니까? 그냥 많이 먹으면, 그냥 열심히 지속적으로만 먹으면 해결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음과 율법을 주셨습니다. 복음과 율법은 그 자체의 기능과 목적이 있습니다. 그냥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것으로는 안됩니다. 빠르게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빠르게 보다 바르게가 훨씬 더 빠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약은 약사에게 복음은 복음을 만난 자에게 물어야 합니다.


본론>

  복음과 다른 복음의 문제는, 다시 말하면 복음과 율법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 외에 어떤 것이라도 우리의 기준이 되어 있다면 그것 역시 우리가 만들어낸 율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는 복음과 다른 복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율법이란 무엇입니까?

  율법의 정의는 그 요점과 목적에 다 들어 있습니다.

  율법의 요점 '너희 마음과 뜻과 목숨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섬기며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율법을 주신 목적

  첫째, 모든 사람들의 입을 막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율법 앞에 서게 되면 자신의 의에 대해서 할 말이 없습니다.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함이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9).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하나님 영광에 이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유대인들과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시고 말씀하시되 '너희들은 온 힘을 기울여 율법을 지켜야 하며, 그럼으로써 내 앞에서 너희가 구원받을 것이다'고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죄 안에 있는 인간이 그것을 지키기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롬8:3에서 죄에 빠진 사람이 그것을 지킬 수 없는 이유를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이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레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롬8:3)

   하나님께서는 율법이 우리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신 이유는 우리에게 '죄에 대한 지식'(knowledge of sin)을 주기 위함인 것입니다.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의 가공(可恐)할 성격에 대해 알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사람들은 그 입을 닫을 수 밖에 없습니다.

  둘째로, 율법이 온 것은 범죄를 억제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더 많게'하려 함입니다.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롬5:20)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은 죄의 정욕이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율법에 의해서 죄에 대한 정욕이 일어난다는 것-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는 그런 무서운 상태에 있다는 것이며, 죄를 짓지 않도록 경고하는 바로 그 율법이 우리로 하여금 더 많은 죄를 짓게 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다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롬7:7)  다른 말로 하면 율법의 전 기능은 정죄(定罪)하며 죄의 본성을 되살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무리들이 어떠한 핑계도 할 수 없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원래 율법은 우리 마음에 있으나 그것은 충분하게 명백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밝히 드러내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정하고 그것을 새겨서 기록된 율법으로 명백하게 나타내 주셨습니다.

  셋째, 율법의 전체 대상과 목적은 사람이 자기 자신을 결코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니라”(롬7:13)

   율법은 바늘구멍만한 죄에 대하여도 정죄하고, 죄의 은밀한 면을 들추어내어 그것이 더 큰 죄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주어진 것입니다. 사람 안에 있는 죄가 어느 정도 깊은고 하니, 사람에게 도움을 주어야 할 하나님의 율법마저도 그를 더욱 악하게 만들어 그로 인하여 죄짓도록 충동질하며, 결국 율법을 죽음의 방편으로 변하게 할 정도로 깊습니다.

   율법이 행한 것만큼 죄의 넘치는 악성을 잘 보여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본성이 어리석고 비열하다는 것을 아는 것은 율법의 참된 의미를 알았을 때뿐입니다. 그 때 그는 비로소 자기가 '악한 불신앙의 마음'을 가진 것을 알게 됩니다.

   마음은 탐심과 비열과 어리석음 즉, 수치와 죄로 가득찬 것인데, 율법 이외에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을 알게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율법은 결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준 것이 아니고, 다만 구세주에게로 사람을 데려다 주는 몽학선생으로서 주어진 것입니다. 사람이 율법과 그것의 영적인 내용을 이해하기만 한다면 그는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우리의 전적인 무능력과 절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을 성경에서는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에게서 난 것,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1:1)

 요란케 하는 것입니다.(7)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는 것입니다. (7)

본래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7)

누구라도 전하면 저주를 받습니다.(8-9)

 사람들에게 좋게 하는 것으로(10)-인간의 의와 인간의 영광의 성격입니다.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이들이 전하는 것입니다.(10)

 사람에게 배우거나 받은 것이 아닙니다.(12)

 유대교에 있을 때의 바울이 교회를 심히 핍박하고 잔해했던 모습입니다.(13)

유대교를 동갑자들 보다 지나치게 믿었고, 조상의 유전에 더욱 열심을 냈던 바울의 모습입니다.(14)


그렇다면 복음에 대해 성경 본문에서는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것입니다.(1:1)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자기 몸을 드리신 것입니다.(4)

 영광이 하나님께 영원히 있는 것입니다.(5)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6)

 하나님께 좋게 하는 것으로(10)-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종이 전하는 것입니다. (10)

 그리스도의 계시로 된 것입니다.(12)

 어머님의 태로부터 택정하신 방식입니다. (15)

 은혜로 부르신 이가 주신 것입니다.(15)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바울에게 전하신 분이 주신 것입니다(16)

 바울은 이를 위해 사람(혈육)과 의논하지 않았습니다.(16)

 사도들을 만나러 예루살렘에 가지 않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메섹으로 돌아갔으므로 시간과 장소가 증명합니다.(17)

 3년 만에 예루살렘에 올라가 게바를 만났고 15일을 머물렀습니다. 크게 영향 받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18)

 주의 형제 야고보외에는 보지 못했습니다. (19) 그만큼 복음이 사람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이후,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러 복음을 전했습니다.(21)

 핍박자가 도리어 복음전함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23-24)


 다른 복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예수를 이야기 합니다. 많은 사람이 ‘다른 복음’을 가르치는 교회에 가면 처음부터 이상하게 들릴꺼라고 생각하지만 극단적인 이단을 제외하고는 다 예수를 말하고 십자가를 말합니다.

혼란하게 합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교회는 불신자에게 전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몇 마디만 던져주면 금방 혼란에 빠져 넘어가기 쉽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근본을 왜곡(歪曲)시켜 버립니다.

  이런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갈라디아서 4장 17절에 지적한 것처럼 열심이 대단합니다. 이 열심으로 사람들을 끌어내므로 바울은 1장 6절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났다"고 했습니다.


 ‘다른 복음’이 무엇입니까?

 1)예수님에게 다른 것을 보태는 것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지역에 여러 교회를 개척해 놓고 떠난 다음에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의 신자들은 유대인이 예수 믿고 신자가 된 그룹과 이방인이 예수 믿고 신자가 된 사람들이 같이 한 교회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들 중에서 유대인 신자들은 예수 믿는 것 외에 할례를 받아야 하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쳤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이방인 신자들이 혼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바울이 '저주를 받으라'고 크게 노했습니다. 이렇게 예수의 복음에 보태는 것은 복음을 변질시키는 무서운 누룩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것 외에 다른 것을 보태는 것은‘다른 복음’입니다.

2)예수의 복음에서 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이 전형적인 예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뽑아 버립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사의 우두머리로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인 피조물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도 빼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말합니다. 이것도 「다른 복음」입니다.

3)예수의 복음을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 복음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축복인데, 이것은 강조하지 아니하고 엉뚱하게도 세상에서 예수 믿으면 잘산다는 것만 강조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라 사람이 좋아하는 ‘다른 복음’입니다.


참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가르쳐 준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나타내는 「복음」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예수 외에는 구원할 다른 어떤 것도 없습니다. 예수의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썩어져 가는 사회의 밑바닥을 수술하며, 이 험악한 세상에서 우리를 보호해 주며 하나님 나라까지 들어갈 수 있도록 지켜줍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요, 결국은 하나님 나라가 이 땅 위에 임하게 할 것입니다.



                         율법과 은혜의 대조법

1. 율법은 금지하지만 은혜는 권하고 내어줍니다.
2. 율법은 죄인을 정죄하지만 은혜는 죄인을 구속합니다.
3. 율법은 행하라고 요구하지만 은혜는 그것이 이미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4. 율법은 “항상 거룩하라”고 요구하지만 은혜는 “다 이루었다”고 합니다. 
5. 율법은 죄인을 저주하지만 은혜는 죄인을 의인으로 축복합니다.
6. 율법은 죄인을 죽게 하지만 은혜는 죄인을 살게 합니다. 
7. 율법은 모든 사람의 입을 하나님 앞에서 닫게하지만

   은혜는 입을 열어 하나님을 찬양케 합니다.
8. 율법은 가장 선한 사람도 정죄하지만  은혜는 가장 악한 사람도 구원합니다.
9. 율법은 “네가 빚진 것을 갚아라”고 말하지만

   은혜는 “내가 네 진 모든 빚을 대신 갚았다”고 말합니다.
10. 율법은 “죄의 삯은 사망이다”라고 말하지만

    은혜는 “하나님의 은사는 영생이다”라고 말합니다. 
11. 율법은 “범죄한 그 영혼은 죽으리라”고 말하지만 은혜는 “믿으면 살리라”고 말합니다.

12. 율법은 죄를 드러내지만 은혜는 죄를 속합니다.
13.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지만 은혜를 통해서 죄에서 속함을 받습니다.
14. 율법은 모세에 의해서 주어졌지만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습니다.
15. 율법은 순종을 요구하지만 은혜는 순종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합니다.
16. 율법은 돌판에 새겨졌지만 은혜는 마음의 심비[心魂]에 새겨져 있습니다.
17. 율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됨으로써 끝났지만 은혜는 영원히 지속합니다. 
18. 율법은 우리를 종노릇하게 만들지만

    은혜는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의 자유 안에 거하게 합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기독교 복음을 폭넓게 이해하고 증거했던 사명자였습니다. 그는 교회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으며 영성 계발에 몰두했습니다. 특히 그는 성경을 탁월하게 해석했습니다. 이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그의 설교와 강의를 듣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어느 날 성경연구 모임에서 한 사람이 마르틴 루터에게 “복음의 핵심과 은혜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이 그 대답”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 진리를 설명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하나님이=가장 위대하신 사랑.

△세상을 =측량할 수 없는 무한한 넓이.

△이처럼 사랑하사=최고의 깊이.

△독생자를=최상의 선물.

△주셨으니=최고로 위대한 섭리.

△저를=크신 주.

△믿는=최고의 단순성.

△자마다=최대의 초청.

△멸망치 않고=최대의 구출.

△영생을=영원히 변치 않는 약속.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가장 큰 확신.” 


결론>

  종교 개혁자 루터는 단순히 기도나 금식, 궁핍, 탐욕의 흉내만 내었던 것이 아니라 정말 진지하게 그것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는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세상과 가족, 그리고 자기 자신을 버렸습니다. 루터는 만년에 병 때문에 매우 고생을 하였는데, 이것도 아마 자신의 육체적 요구를 너무나 엄격하게 거부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엄격한 수도원의 규율을 거의 완벽하게 이행하여 그렇게도 빨리 정식 사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루터는 영적으로 여전히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양심은 지속적으로 죄책감에 시달렸으며 이 죄를 사함받기 위해 지극히 작은 것까지도 가슴 아파하며 끊임없이 고해성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통해 루터는 인간이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거나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킬 수 없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행위는 자기사랑과 자기이익에 기초한 한정된 사랑이기 때문이다.  루터는 자신 안에도 이와 동일한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부분적이고 이기적인 사랑이 흐르고 있음을 예리하게 간파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 흠도 점도 없는 완전한 헌신을 하나님께 드려 의롭고 거룩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단 말인가? 그 방법을 도무지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절망하고 또 절망하였습니다.

  루터는 관심을 고행이나 금욕에서부터 성경으로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비텐베르크의 성경신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가르치고 기도하면서 "오직 신앙만으로"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로만"구원 얻고 의롭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로 살아감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복음을 통하여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천국에 들어섰다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더하지도 말고 빼지도 말고 오직 주의 복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설교와 예화 모음
글쓴이 : 시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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