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설교 모음

[스크랩]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2018.04.15]

하나님아들 2019. 1. 12. 12:31

2018415(주일) 낮 설교 - 부활절 제3-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 누가복음 24 : 3648 )

 

. 자동차와 산신령

 

어느 날 목사님이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아름다운 저수지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저수지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잠시 내려서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깜빡 잊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걸어놓지 않아서 그만 저수지 안으로 자동차가 빠지고 말았습니다. 목사님은 허탈해서 말없이 저수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호수에서 깔끔한 양복을 입은 사람이 벤츠를 밀고 나왔습니다. “목사님! 혹시 이게 목사님 차예요?” “아닌데요. 제 차는 쏘나타 구형입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다시 들어가 쏘나타 구형을 밀고 나왔습니다. “이 차가 목사님 차입니까?” “, 그것이 제 차입니다.” 참 정직하신 목사님이시군요. 선물로 벤츠까지 드릴 테니 가져가십시오.” 목사님은 저는 그 차를 유지할 능력이 없습니다.”하고는 소나타를 몰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교회로 돌아온 목사님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저수지에서 경험했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다음 날, 목사님의 말을 들은 사람 중 한 명이 낡은 티코를 몰고 저수지로 향해 갔습니다.

그 사람은 차를 저수지가에 세우더니 물속으로 살짝 밀어서 빠트렸습니다. 잠시 후에 물에서 양복을 입은 사람이 나오는데, 벤츠를 밀고 나왔습니다. “혹시 이게 당신의 차요?” 그 남자는 놀라는 체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차는 낡은 티코입니다.” “당신은 정직한 사람이로군요. 선물로 벤츠까지 드릴 테니 가져가십시오.” 그 사람은 티코를 저수지에 버려두고 벤츠만 몰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사람의 집으로 청구서 하나가 날아왔습니다.

벤츠구입명세서: 6000만 원을 다음 달 말까지 납부하시기 바랍니다. 판매자: 벤츠 수입자동차상사 저수지 지점.”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보다 더 한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 국민의 가족신상명세가 보이스 피싱이나 마케팅 전문가들의 손에 팔리고 있습니다. 물에 빠진 자동차는 정상으로 유통되어서는 안 되지만, 물에 빠진 자동차의 이력을 속이고 팔아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진실을 보는 눈이 열려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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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부활절기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구약성경에 이미 예언되었고,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여러 번에 걸쳐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셨습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3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16:21,22)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흘려듣지 않았습니다. 마태 17:22, 23절을 보더라도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말씀을 듣고는 매우 근심했습니다.무슨 말일까요? 결코 잊기 어려운 말씀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막상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제자들은 주님이 예고하신 말씀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심지어 부활의 주님을 보고도 그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모릅니다.

이것은 어느 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활의 첫 목격자인 막달라 마리아부터 그랬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고 생각하여 슬피 울고 있다가 천사들을 만나고, 이어서 부활의 예수님을 만났습니다(요한복음 20). 예수님께서 그녀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을 부른 이를 동산지기라고 생각합니다. 보고도 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마리아야!”하고 불러주셨을 때 비로소 주님을 알아봅니다.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활절 당일에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과 동행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거의 세 시간 가까이 그들과 같이 걸어가셨고, 그들의 집에 들어가 음식을 잡수셨습니다. 그때까지 두 제자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있었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Α. 육체의 눈이 아니라 영의 눈이 열려야합니다(37).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오셔서 평강을 선언하셨음에도 놀라기만 할 뿐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 지라”(37) 사람들은 자신의 눈으로 보는 것은 믿을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38) 하나님을 눈으로 보면 믿겠다고 하는 말이 얼마나 허탄한 말인지 모릅니다.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사람 육체의 눈입니다. 또 시력은 세월이 지나면서 차츰 흐려집니다. 때로는 한 순간에 시력을 잃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그러니 인간의 눈은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바로 눈앞에서 보면서도 그들은 예수님을 영으로 생각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유령이라고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은 예전에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먼저 갈릴리바다 건너편으로 보냈습니다.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갈릴리바다를 건너가는데, 풍랑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어서 오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유령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6:49) 바른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바라본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육체의 눈으로는, 육적인 생각과 마음으로는 주님을 제대로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영의 눈이 열려야 합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부활의 주님을 알아본 것은 떡을 들어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셨을 때입니다(24:30). 그때 그들의 눈이 밝아져서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눈이 열려야합니다.

 

Β. 말씀을 듣는 귀가 열려야 합니다(40).

제자들의 반응을 보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39) 제자들의 믿음 없음이 얼마나 안타까우셨으면 예수님이 이렇게까지 말씀하셨을까요? 우리는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까지 말씀하시고, 모두 확실하게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놀라기만 할 뿐 믿지 못하는 제자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41) 너무 기쁘긴 한데 아직도 믿지 못했다니요? 올바른 믿음을 가진다는 것이 이다지도 힘들다는 말인가요? 주님 앞에서 직접 말씀을 들어도 곧이곧대로 믿지 못하는 제자들을 진정 제자라고 해야 하는 건가요? 그렇다면 이들만 그랬을까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제자들은 결국 예수님을 확실히 믿고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농담으로 하는 말 중에 귀가 막혔냐?”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범죄 하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후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가 막혀버린 것입니다.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에는 신속하게 반응하여 세상과 같이 죄를 짓지만,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은 전혀 듣지 못합니다. 아무리 간절하게 불러도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쇠귀에 경 읽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에게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려주어도 그것을 알아듣거나 깨닫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제자들의 귀를 열어 듣게 하신 주님이, 오늘 여러분의 귀를 열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깨닫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도록 결단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인생이 달라질 것입니다.

 

Γ. 주님과 함께 먹을 때 증인이 됩니다(42, 48).

초대교회는 모일 때마다 함께 먹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최후의 만찬을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 보면,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내내 제자들과 함께 잡수셨습니다. 초대교회의 예배에는 반드시 성만찬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마지막 만찬자리에서 성찬예식을 거행하시면서,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초대교회는 철저하게 이를 지켜나갔습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은 잘 보여주는 마름이 있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2:42, 46) 초대교회는 모일 때마다 함께 음식을 나누어먹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 후에 공동애찬을 나누듯, 초대교회는 모였다하면 함께 먹었습니다. 무슨 말일까요? 한 식구(食口)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본문을 보아도 그랬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잘 믿으려하지 않는 제자들 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41) 제자들이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렸더니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잡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45). 그리고 최종적으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은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48)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과 함께 먹을 때 증인의 삶을 살게 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3:20) 우리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주님의 식솔(食率)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야 증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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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가 고양이에게 잡힐 듯 말 듯 아슬아슬한 레이스 끝에 막다른 길에서 쥐구멍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습니다. 다 잡은 쥐를 코앞에서 놓친 고양이는 쥐구멍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잠시 숨을 고르더니, 강아지 흉내를 냈습니다. “멍멍! 멍멍멍!” 쥐는 이 고양이 녀석은 벌써 갔나? 왜 강아지 짖는 소리가 나지?’하면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쥐구멍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습니다. 그 순간 날쌘 고양이 발톱에 걸려들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쥐가 씩씩거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비겁하게 사기를 치냐?” “사기라니! 요즘 같은 불경기에 먹고 살려면 2개 국어는 기본이지그렇습니다. 우리 귀에 들리는 말이 모두 진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듣는 것도 생각하면서 가려 들어야합니다. 분별력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사기꾼은 절대 어설픈 말을 하지 않습니다. 사기꾼에게 사기를 당하는 것은, 사기꾼이 하는 말이 사기 치는 것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기 치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면, 누가 사기를 당하겠습니까. 예전에 보이스 피싱을 당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왜 보이스 피싱을 당할까요? 전화에서 들여오는 말이 사실이라고 믿기 때문에 당하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가장 확실한 말씀을 하십니다.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46-48) 이 말씀이 여러분의 귀와 마음에 울림으로 들려지기를 축복합니다. 그리하여 부활의 증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 덕교교회 사람들
글쓴이 : 아브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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