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엘세바에서의 언약
창 21:22-34
22 그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23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아니하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네가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24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맹세하리라 하고
25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일에 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
26 아비멜렉이 이르되 누가 그리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노라 너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나도 듣지 못하였더니 오늘에야 들었노라
27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가져다가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우니라
28 아브라함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으니
29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음은 어찜이냐
30 아브라함이 이르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
31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 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
32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갔고
33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34 그가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냈더라
창 21:22-34 /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계약을 맺다] 그때에 아비멜렉이 그의 군대 사령관 비골과 함께 아브라함을 찾아와 말하였다. `그대가 하는 일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내가 잘 알고 있소. 23) 자, 그러니 이제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시오. 그대가 나와 내 아들과 내 후손들에게 거짓되이 행동하지 않겠노라고 말이오. 나는 지금까지 그대에게 잘해 주었다고 생각하고 있소. 서운하게 대해 주었다고는 생각지 않소. 그러니 그대도 나에게 잘해 주겠다고 약속해 주었으면 하오. 또한 그대가 살고 있는 이 지방 사람들에게도 잘해주겠다고 약속해 주시오' 24) `내, 그리하리다' 하고 아브라함이 대답하였다. 25)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종들이 자기의 우물을 빼앗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였다는 이야기를 하며 불평하였다. 26) `아, 그런 일이 있었소? 그 얘긴 내가 처음 듣는 얘기요 도대체 어느 녀석이 그런 짓을 했었는지 알 수가 없구먼. 그런 일이 있었다고 그대도 나에게 말한 적이 없지 않소? 나 역시 종들한테 그런 일이 있었던 일을 듣지 못하였소. 참으로 미안하게 생각하오. 그런 일이 앞으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소' 27) 아브라함은 양과 소 몇 마리를 끌고 와 아비멜렉에게 주었다. 두 사람은 이렇게 서로 가까이 지내자는 뜻으로 계약을 맺었다. 28) 또 아브라함은 자기 가축 떼에서 새끼 암양 일곱 마리를 따로 떼어 놓았다. 29) 아비멜렉이 `어쩐 일로 새끼 암양 일곱 마리를 따로 떼어놓소?' 하고 묻자 30) 아브라함이 대답하였다. `이 암양 일곱 마리를 받아 주시오. 그리고 내가 이 우물을 판 사람이란 것을 분명히 해 주시오. 이 암양 일곱 마리는 그 사실을 분명히 하는 증거가 되는 셈이오' 31) 그래서 그곳 이름이 ㄱ) 브엘세바가 되었다. (ㄱ. `맹세를 맺은 우물' 또는 `일곱 우물'이라는 뜻이다) 32)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이렇게 계약을 맺고 나서 아비멜렉과 그의 군대 사령관 비골은 블레셋 사람이 사는 땅으로 돌아갔다. 33) 아브라함은 그곳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는 거기서 영원히 살아 계시는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다. 34) 아브라함은 한동안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살았다.
본 단락은 아브라함과 그랄 왕 아비멜렉이 브엘세바에서 상호 불가침 조약과 화친 동맹을 맺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누구라도 세상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비멜렉과 아브라함(22-26) 아브라함은 그저 믿음을 따라 살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이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정확하게는 아브라함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함께 하는 하나님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이는 지금도 모든 믿는 사람들의 삶의 내용이어야 합니다. 그랄 왕을 섬기는 군대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 동안 그들이 지켜보았던 아브라함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의 형통이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았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자신과 자신의 후손과 잘 지낼 것을 제안합니다. 그 동안 자신들이 아브라함에게 호의를 베풀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종들이 자신의 우물을 빼앗았던 것을 거론하며 아비멜렉을 책망합니다. 꾸짖었다기보다는 사실관계를 조목조목 따져 보았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던 나그네의 서러움이 아브라함에게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일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에게는 사소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누가 보더라도 하나님으로 형통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물분쟁의 종식(27-31) 아브라함은 암양 새끼 일곱 마리를 가져다가 언약을 체결하려 합니다. 우물의 소유권도 돌려받고 확약을 받으려 합니다. 언약을 어긴 사람은 언약을 체결하기 위해 죽임을 당한 일곱 마리의 암양 새끼들처럼 죽을 것입니다. 그리고 관례를 따라 언약을 체결한 사람에게 선물을 보냅니다. 아브라함은 이전에도 마므레 형제들과 동맹을 맺은 적이 있습니다(14:13). 아브라함은 유랑하는 나그네였지만 지역에서 세력을 가진 토착민들에게 힘과 존경으로 신뢰받는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의 축복입니다.
언약체결과 아브라함의 평안(32-34) 아브라함은 언약이 체결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에셀나무를 심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공식적인 예배를 드렸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일어난 것임을 알았습니다. 브엘세바의 뜻이 약속의 우물이고 에셀나무도 재질이 단단하고 수명이 긴 나무입니다.
적용: 성경에는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이삭, 요셉, 다니엘 등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 이방민족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한 간증을 가지고 있습니까?
인간은 모두 목마름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육적, 영적 목마름입니다. 육적인 목마름은 세상적인 목마름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잘 살고, 성공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육적인 목마름이 있습니다. 반면, 영적 목마름은 영원을 사모하고, 하나님께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둘 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균형이 맞아야 하며 영적 목마름이 육적 목마름보다 조금 더 앞서가게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 설 교 >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
아브라함은 그가 살고 있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해지자 굶어죽지 않기 위하여 이집트로 내려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곳 사람들이 자기의 아내 사라가 너무 예뻐서 그녀를 빼앗기 위해 자기를 죽일 것이라는 불안 때문에 그녀가 자기의 누이동생인 것으로 알려지게 하여 자기를 죽일 필요가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꾀는 자기 아내를 다른 사람이 데려가기도 쉽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이집트 왕이 그녀를 자기의 후궁으로 삼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잃고, 사라는 한 남자의 아내로서의 순결을 잃게 된 위기상황에서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다 살리신 일이 있습니다. 그 사건을 통해 아브라함은 한 남자로서 나약하고 겁 많고 졸렬함을 드러냈으며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보호에 대한 믿음이 없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와 꼭 같은 사건이 반복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사해의 중간지점과 위도상으로 비슷한 지중해 연안의 그랄 땅에 거류할 때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습니다. 전에 이집트에 내려갔을 때처럼 그랄 사람들도 사라가 너무 예뻐 아브라함이 그녀의 남편인 줄 알면 아브라함을 죽이고 사라를 빼앗아 갈까봐 아브라함이 그녀를 자기 누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창20:1-2). 그런데 아비멜렉이 사라를 데려간 바로 그날 밤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꿈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창20:3) 하신 것입니다. 아직 사라에게 가까이하지 않은 아비멜렉은 대답하기를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그가 나에게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했습니다(창20:4-5). 하나님께서는 또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창20:6-7)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지자라 하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기보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중재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아브라함은 뒤에 하나님께 기도해서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시고 출산하게 하시도록 했음을 봅니다(창20:17). 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많은 민족이 복을 받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는 의미로 그를 선지자라 하신 것입니다.
아비멜렉은 그 다음날 아브라함을 불러 따져 물었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하였기에 네가 나와 내 나라가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느냐? 네가 합당하지 아니한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네가 무슨 뜻으로 이렇게 하였느냐?”(창20:9-10). 이에 아브라함은 대답하기를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또 그는 정말로 나의 이복 누이로서 내 아내가 되었음이니라. 하나님이 나를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 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창20:11-13) 했습니다. 당시에는 이복 오누이 사이에는 결혼이 허락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모세 때 와서야 그런 관행이 금지된 것입니다(레18:9, 11, 20:17).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사라를 돌려줄 뿐 아니라 양과 소와 종들도 주며 말하기를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네가 보기에 좋은 대로 거주하라” 하고 사라에게는 “내가 은 천 개를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그것으로 너와 함께 한 여러 사람 앞에서 네 수치를 가리게 하였노니 네 일이 다 해결되었느니라”(창20:14-16) 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셔서 출산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사라를 데려간 일 때문에 닫으셨던 아비멜렉의 집의 모든 태를 다시 여셔서 해산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창20:17-18).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아들 이삭을 잉태해야 하는 사라의 태 속에 다른 씨가 잉태되는 일을 근원적으로 봉쇄하심으로써 당신의 언약에 신실하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고는 응답하심으로써 아브라함을 선지자라 하신 그 말씀도 이루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한 남자로서 나약하고 겁 많고 졸렬함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보호에 대한 믿음 없음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습니다. 놀라운 방법으로 자기를 지키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고서도 여전히 그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약의 자녀들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의 목숨도 지키셨고, 사라의 순결도 지키셨으며, 나중 태어날 이삭의 출생의 정결함도 지키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 언약의 백성의 삶이 성결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잘 보여주는 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갖게 해주시리라 하신 언약을 마침내 지키셔서 이삭을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심으로써 아들이 없기 때문에, 또 하나님의 언약이 24년이나 지나고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나이가 이미 지났기 때문에 허전하고 불안하며 의심에 젖을 수 있었던 아브라함의 마음을 평화롭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밖으로도 평화를 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웃 나라 그랄의 왕 아비멜렉과의 관계를 평화롭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아비멜렉이 그의 군대 장관 비골과 함께 아브라함에게 찾아왔습니다. 아비멜렉은 사라를 데려갔다가 그날 밤 꿈에 나타나신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말씀 때문에 혼비백산했던 사건을 통해 아브라함에 관해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한 것 같습니다. 첫째는 그의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내를 데려오자 하나님이 당장 자기의 꿈에 나타나서 자기를 죽이겠다고 위협하신 사실이 그것을 확신케 했던 것입니다. 둘째는 아브라함의 말을 전적으로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비멜렉이 사라를 데려왔던 것은 아브라함이 그녀를 자기의 누이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는데 그것은 그녀가 아브라함의 아내임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래서 온전한 사실이 아닌 절반의 거짓말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은 그로 하여금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첫째는 아브라함과 잘 지내야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자라는 사실을 무섭게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와 대적했다가는 그의 하나님으로부터 무슨 경을 칠지 모를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둘째는 그와 평화협정 또는 불가침조약을 맺되 그가 딴말하지 못하게 단단히 약조를 받아두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전에도 반 거짓말을 해서 자기를 죽을 뻔하게 만든 일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브라함을 찾아와서 말한 것입니다. 본문 22절 하반절과 23절을 봅니다: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아니하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네가 머무는 이 땅에서 행하여 보이라”. 아브라함은 맹세했습니다(본문 24절).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기도 해결해둘 문제 하나를 해결해놓으려 했습니다. 그것은 우물의 소유권문제였습니다. 사라를 데려갔다가 혼이 났던 아비멜렉은 사라를 돌려보낼 뿐 아니라 양과 소들을 내주며 자기 땅 어디서든지 거주해도 좋다는 허락까지 했었기에 아브라함은 거기서 지냈고 있었는데 가축들을 기르자니 물이 필요했고 그래서 문제가 된 우물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아비멜렉의 종들이 그 우물을 뺐는 일이 발생했던 것입니다(본문 25절). 아브라함은 그 일을 거론하며 아비멜렉에게 항의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아비멜렉은 대답하기를 “누가 그리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노라. 너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나도 듣지 못하였더니 오늘에야 들었노라”(본문 26절) 했습니다. 금시초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은 서로 언약을 세웠습니다. 이를 위해 아브라함은 양과 소를 가져다가 아비멜렉에게 주었는데(본문 27절) 그것은 아마도 관습에 따라 조약을 맺은 후에는 그 조약을 확정하는 뜻으로 양과 소를 잡아 조약 당사자 간에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일곱 마리의 암양 새끼를 따로 놓았습니다(본문 28절).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물었습니다: “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음은 어찜이냐?”(본문 29절) 아브라함이 대답했습니다: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본문 30절). 아비멜렉에게 암양 새끼 일곱을 주고 그 우물의 소유권이 아브라함에게 넘어왔음을 완전하게 확인시킨 것입니다. 우물 문제에 관해 두 사람은 거기서 서로 맹세함으로써 해결했기에 그 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게 되었습니다(본문 31절). 브엘세바는 “맹세의 우물”이란 뜻입니다. 브엘세바에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세운 아비멜렉은 그의 군대 장관 비골과 함께 그랄로 돌아갔습니다(본문 32절).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본문 33-34절). 에셀 나무는 네게브 사막지대에서 자라는 나무로서 작은 잎사귀를 갖는 가지가 많은 상록수입니다. 높이가 6미터에서 9미터 이상도 자라는 이 나무는 그 그늘 밑에서 쉬기에 좋은 나무로서 풍요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거기에서 예배를 드렸음을 의미하며 또 그곳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소유하게 하신 땅의 경계선임을 밝혀두는 행위였다고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누리게 하신 그랄 왕 아비멜렉과의 평화로운 관계를 그 아들 이삭의 세대에까지 누리게 해주셨습니다. 이삭이 장성하여 아내를 맞았고 아브라함은 죽은 후에 이삭이 살고 있던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기근을 피해 이집트로 내려갔듯이 이삭은 그랄로 가서 거주하게 되었습니다(창26:1-6).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복 주심의 약속을 이삭에게 재확인해주셨습니다.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창26:3-4)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과 어쩌면 그렇게도 판박이인지 모릅니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도 어머니 사라 못지않은 미인이어서 그랬는지 이삭은 그랄 사람들이 자기 아내에 대하여 묻자 “그는 내 누이라” 했습니다. 그 곳 백성이 리브가 때문에 자기를 죽일까봐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의 찌질이 DNA를 확실하게 물려받았던 것입니다(창26:7), 그러나 이삭과 리브가의 비밀은 끝까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고 있는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을 통해 보게 된 것입니다(창26:8). 아비멜렉은 이삭을 불러 “그가 분명히 네 아내거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하고 따져 물었고 이삭은 그에게 대답하기를 “내 생각에 그로 말미암아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창26:9) 했습니다.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다시 말하기를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할 뻔하였도다.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으리라”(창26:10) 하고는 모든 백성에게 명하기를 “이 사람이나 그의 아내를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 했습니다(창26:11). 이렇게 아비멜렉의 확실한 보호에 힘입어 이삭은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수확을 했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심으로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양과 소의 떼와 종이 심히 많은 거부가 되었습니다(창26:12-14). 또 아브라함에게 그랬듯이 이삭에게도 그랄 왕 아비멜렉이 군대 장관 비골과 더불어 와서(창26:26)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창26:28-29) 했습니다. 이삭은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어 함께 먹고 마셨으며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평안히 헤어졌습니다(창26:30-31). 상호불가침조약을 맺은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때와 마찬가지로 이삭 때에도 이웃나라와 평화로운 삶을 살게 해주신 것입니다. 복 주시겠다고 하신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언약의 백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복된 삶이 있습니다. 그를 믿는 믿음 안에 있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어리석음과 연약함과 비겁함과 온전치 못한 믿음을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온전히 신실하십니다. 당신의 언약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용서와 사죄와 구원과 복된 삶과 부활과 영생의 언약을 온전히 지키실 것입니다. 그 믿음을 지키며 우리 또한 하나님 앞에 신실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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