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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비전을 보는 사람 [2018.05.06]

하나님아들 2019. 1. 12. 12:29

201856(주일) 낮 설교 - 부활절 제6[가정주일] -

 

비전을 보는 사람

( 사도행전 16 : 610 )

 

 

. 파노라마와 오라마

 

우리는 흔히 파노라마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사진을 찍을 때도 파노라마 기능이 있습니다. 이 기능을 사용하면 훨씬 넓게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파노라마의 기원은 과거 유럽 등지에서 둥근 모양의 건물 안벽에 전방위(全方位)로 풍경화를 그려 넣어 마치 그 건물 안에서 실제 풍경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게 한 데서 유래되었습니다. ‘파노라마라는 말은 1792년에 영국 미술가 로버트 바커가 자신의 그림을 표현할 때 이 말을 사용하면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바커는 그리스어 πν’()‘ὅραμα’(오라마)를 조합하여 파노라마라고 했고, 곧이어 런던에서 자신의 전시회를 열면서 전시회 이름을 ‘The Panorama’(파노라마)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현대에는 파노라마라는 말이 파노라마사진(Panoramic Photograph)과 거의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진기를 사용하여 360° 방향의 모든 경치를 사진 한 장에 담을 수는 없습니다. 대신 몇 장으로 나누어 촬영을 한 뒤 옆으로 길게 이어 붙여서 한눈에 볼 수 있게 만듭니다.

최근에는 파노라마 전용카메라가 많이 이용되기도 합니다. 파노라마 촬영을 할 때는 보통 카메라를 제자리에서 돌리며 찍습니다. 파노라마라는 말에는 오라마라는 말이 들어가 있습니다. 오라마(ὅραμα)라는 말은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2차 선교여행을 하면서, 1차 선교여행을 했던 곳을 중심으로 여행하려고 했으나, 예수의 영이 이를 막았습니다. 그러다가 바울은 밤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여기 환상이라는 말이 [오라마(ὅραμα)]입니다.

우리는 환상을 꿈이나 이상 등으로 이해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오라마는 [시각적으로 명확하게 본다]는 뜻입니다. 사도바울이 밤에 잠을 자는 중에 환상을 보았는지, 기도 중에 비전이 열렸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오라마(ὅραμα)아주 분명하고 명료하게 보았다는 뜻입니다. 환상(오라마)은 단순한 어떤 상상이나 추리가 아닙니다. 영적으로 분명하고 명료하게 비전을 본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오라마를 주셔서 주님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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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을 개최했던 2002년에 유행한 한 현상이 있습니다. 태극기를 들고 돌아다니고, 태극기 문양의 두건과 티셔츠를 입고 다녔습니다. 그 이전에는 태극기를 그렇게 친근하게 대하지 못했었는데, 2002년 월드컵이 상황을 바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모두 한마음으로 그리며 외쳤던 말이 있었습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꿈은 이루어진다!’ 월드컵 경기가 열릴 때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이 대형현수막에 쓰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꿈이 이루어지듯이, 우리나라는 월드컵에서 신들린 듯 16, 8강 그리고 4강에 오르는 신기록을 써내려갔습니다. 당시 대표팀 히딩크 감독은 정말 국민적 영웅이 되었고, 또한 대표팀 선수들은 세계 곳곳으로 진출해서 활동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 축구팀 실력으로만 보면 4강에 오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16강의 문턱을 넘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간절한 마음을 담아 꿈은 이루어진다고 외치면서 국민 모두가 함께 꿈꾸니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월드컵을 주최할 뿐 아니라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어떤 꿈을 꾸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가 꾸는 꿈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은 단지 우리 자신이 꾸는 꿈을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1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2차 선교여행을 떠납니다. 바울은 1차 선교여행을 했던 지역을 다시 돌아보며 선교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본문 6절 말씀처럼,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막았습니다. 바울은 아시아에서 복음 전하기를 꿈꿨습니다. 그런데 성령은 그의 꿈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드로아에 이르렀을 때, 밤에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꿈은 내가 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환상은 다릅니다. 여기서 말하는 환상이 오라마(ραμα)’입니다. 오라마는 내가 꿈꾸는 것이 아닙니다. 오라마는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비전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오라마를 주셨고,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오라마를 붙잡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여주신 오라마에 순종합니다. 자신이 생각했던 아시아지역이 아니라 오라마를 따라갔습니다.

 

Α. 사람이 꿈꾸는 것은 물거품이 될 수도 있습니다(6-7).

어릴 때 아이들은 장래희망을 갖습니다. 나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또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적어오라고 과제를 내줍니다. 장래희망은 무엇이고, 왜 그 일을 하려고 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면 자신이 원해서 장래희망을 적어내기도 하지만, 과제니까 어쩔 수 없이 장래희망을 써서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꿈꿨던 장래희망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까요? 물론 꿈대로 이루는 사람들도 없잖아 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 많은 사람은 자기가 꿈꿨던 것과 다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어릴 때 꿈만이 아닙니다. 어른이 되고, 믿음의 사람이 된 후에도 나름대로 이루고자하는 꿈을 꿀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은 아시아를 중심으로 선교하려는 꿈과 계획을 가지고 2차 선교여행을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계획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습니다. 사람이 막아섰다면 어찌해서라도 돌파하려고 애썼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아니라 성령님이 막았습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6)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7) 바울이 개인 사업을 하려고 갔을까요? 아닙니다. 분명히 복음을 들고 갔습니다. 선교의 사명감에 사로잡혀서 아시아지역의 선교를 위해 가고자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막았고,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하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주님을 위해 열심을 내는 것이 꼭 주님의 뜻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주님이 원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 열심을 낸다고 생각하지만, 주님은 그것이 내 뜻이 아니라고 말씀하실 수 있다는 점입니다.

 

Β. 오라마는 주께서 보여주시는 비전입니다(9-10a).

그래서 우리는 환상을 보아야합니다. 내가 꿈꾸는 나의 비전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오라마를 보아야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시기 위하여 오라마를 보여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울일행은 다른 것도 아니고 복음전파를 위해서 무던히 노력했습니다. 바울은 사명감에 불타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믿음을 갖기 전부터 책임의식이 강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이 맡은 일은 무슨 일이 있어서 꼭 이루고야 말겠다는 신념의 사람입니다. 그런 그이기에 아시아지역 선교를 위해 정말 헌신적으로 애썼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그 길을 막았습니다. 바울이 하려는 선교를 막으신 것이 아닙니다. 선교지역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드로아에서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내용은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입니다.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내용입니다. 바울은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 그런 것이었구나. 아시아가 아니라 유럽을 향해 선교하라는 것이구나!이것이 주께서 보여주시는 환상입니다. 바울은 환상(오라마)을 보고 확신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오라마가 필요합니다. 오라마를 본 사람은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주님이 기뻐하시는 비전의 사람이 됩니다. 만약 그 어떤 비전도 없다면, 주님께 구하시기 바랍니다. 구하면 얻을 것이고, 찾으면 찾을 것이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입니다(7:7-8). 주님의 영광을 위해 구하는데 하나님이 모른 척 하실 리가 없습니다. 비전이 없다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미 우리교회는 1050 프로젝트를 선포했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비전입니다. 이 비전이 오라마가 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비전은 아주 분명하고 명료해야 하는 것입니다.

 

Γ. 오라마를 본 사람은 지체하지 말아야 합니다(10).

10절을 보면, 바울이 얼마나 결단력이 강한 사람인가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바울은 무엇을 하든지 힘써서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바울에게 오라마를 보여주시자, 그는 지체함 없이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썼습니다. 바울 혼자서 간 것이 아닙니다. ‘우리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최소한 두 사람이상입니다. 바울은 실라와 함께 있었고,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만나 함께 떠났습니다. 그러니까 최소한 3명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동행자들은 모두 바울의 지시에 순종했습니다. 바울이 결정하는 대로 함께 유럽을 향해 떠나갔습니다. 10절 하반절을 보면,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라마를 본 사람은 머뭇거리거나 지체하지 말아야합니다. 갈멜 산에서 엘리야는 3년 반의 가뭄을 해소할 비를 내려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정말 간절히 기도합니다. 엘리야의 기도하는 자세를 보면 이랬습니다. “엘리야가 갈멜 산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왕상 18:42) 이 자세로 기도한다는 것은 정말 힘듭니다. 그렇게 7번 기도하고 사환을 통하여 손 만 한 작은 구름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는 엄청난 비가 쏟아지리라 확신하고 산에서 뛰어 내려갑니다. 정말 3년 이상 내리지 않았던 비가 한꺼번에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엘리야에게 손 만 한 작은 구름은 오라마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라마를 본 사람은 지체함이 없어야합니다. 주님이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하여 전진해야합니다. 이것이 비전의 사람 모습입니다. 이것이 오라마를 본 사람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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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인도 뭄바이의 베르소바 해변 인근 아파트로 이사 온 아프로즈 샤라는 청년은 해변을 보고 경악했습니다. 2.5km에 달하는 해변에는 유리병, 플라스틱, 버려진 옷가지 등등. 수많은 폐기물들이 쌓여서 높이가 150가 넘었습니다. ‘비공식 쓰레기처리장으로 여겨지는 해변 모습에 충격을 받은 그는 즉시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21개월에 걸친 청소작업 끝에 그의 노력은 결실을 보았습니다. 해변에서 처리한 쓰레기의 무게는 무려 530이었습니다. 또한 해안선 정리 작업과 공중화장실 52곳을 청소했고, 50그루의 코코넛 나무도 심었습니다. 물론 이 모두가 한 사람의 손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몇 개월 동안 꾸준히 청소에 매진하는 아프로즈의 노력은 지역 회사직원, 학생, 발리우드 스타들을 포함해서 1천여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큰 성과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유엔 환경계획(UNEP)은 인도인 최초로 해변 정화작업을 통해 공동체조직까지 달성한 그의 공로를 인정해서 그에게 지구환경 상을 수여했습니다. 두렵고 엄두가 나지 않아 시작도 못하던 일이 있습니까? 해봤자 안될 거로 생각해서 방치한 일이 있습니까? 하지만 시도하지 않으면 이뤄낼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모든 도전의 성공 가능성은 첫발을 내디뎠을 때 비로소 생겨나는 법입니다. 오라마를 보고 비전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비전을 향해 전진하는 것입니다. 첫 걸음을 떼기 시작해야 마지막 걸음까지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오늘 여러분에게 오라마를 보여주시고, 그 오라마로 인하여 비전을 갖게 하시기를 축복(祝福)합니다.

출처 : 덕교교회 사람들
글쓴이 : 아브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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