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20일(주일) 낮 설교 - 성령강림절 -
예수께서 보내신 진리의 영
( 요한복음 16 : 7~15 )
Ⅰ. 「 천국과 지옥 사이 」
천국과 지옥 사이를 가로막는 담장이 있었습니다. 아침 순찰을 돌던 천국 경비대장이 담장에 구멍이 생긴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천국 경비대장이 지옥 경비대장을 찾아가서 따졌습니다. “야! 너희들이 죄인들을 제대로 단속하지 않아서 뚫린 구멍으로 죄인들이 불법 입국하잖아! 이 구멍을 어떻게 할 거야?” 그러자 지옥 경비대장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따졌습니다. “야! 우리 쪽에서 구멍을 냈다는 증거 있어?” 그러자 천국 경비대장이 화가 나서 소리쳤습니다.
“아니! 천국에서 지옥으로 가는 미친 사람이 어디 있어? 이 구멍은 너희들이 책임지고 막아!” 하지만 지옥 경비대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린 절대 못해.” 그러자 천국 경비대장이 말했습니다. “좋아! 그럼 법대로 하자고!” 천국 경비대장의 마지막 말에 지옥 경비대장이 씩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그래? 법대로 하자고? 변호사, 판검사, 정치인들이 다 여기 있는 건 알고 있지?” 웃자고 만든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 속에는 우리가 사는 사회에 대한 풍자가 담겼습니다.
1885년에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했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살까요?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무엇으로 살까요? 물론 성도 역시 사람의 범주에 속하기에 사랑으로 살아야 하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성경은 성도에게 두 가지 사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것과 이웃을 자기 몸을 사랑하듯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새 계명도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들은 사랑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수제자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의 대답은 ‘주님이 아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장담했던 베드로는 3번씩이나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부인한 전력이 있습니다.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지만, 성령님과 함께 살면 사랑의 열매를 맺습니다. 성령의 열매 중 첫째가 바로 ‘사랑의 열매’입니다.
Ⅱ.
오늘은 ‘성령강림절’입니다. 교회력 중에 가장 긴 절기가 성령강림절기입니다. 교회력은 1년 단위로 구성되어 있는데, 성령강림절기가 거의 절반 정도 됩니다. 올해는 무려 27주입니다. 52주 중에 27주면 절반이 넘습니다. 성령강림절기는 왜 이렇게 긴 것일까요? 그 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성탄절’은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것이고, ‘사순절’은 예수님의 고난을, ‘부활절’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해줍니다. 그 다음이 ‘성령강림절’인데, 성령강림절 이후에 교회가 시작됩니다.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던 예수님은 3일 만에 사망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의 예수님은 40일 동안 세상에 계시다가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지난 주일이 ‘승천주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오순절 날이 이르매 제자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자리에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이, 또 ‘불의 혀’ 같이 성령이 임하셨고, 모인 집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습니다.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 그때부터 제자들은 확실하게 달라졌습니다.
두려워서 떨던 모습이 아닙니다. 숨어 있던 제자들의 모습이 아닙니다. 담대하게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전하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교회는 성령이 역사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한마디로 “성령의 능력 안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은 어떤 존재일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을 중심으로 성령은 어떤 분인지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제자들을 떠나는 것이 유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떠나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님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워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보혜사”를 보내주실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떠나셔야 보혜사가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실 그 보혜사는 예수님이 보내시는 것이고,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실 것이며, 제자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진리의 성령’이시라는 것입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Α. 성령님은 예수님이 보내신 영(靈)입니다(7).
초대교회시대는 핍박으로 인하여 생명을 걸고 믿음을 지켜야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겨야했습니다. 많은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로마정부는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기 전까지 10명의 황제가 기독교를 지독하게 박해했습니다. 그런 박해시대가 지나고 나자 교회는 곳곳에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소위 조직신학이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인가? 예수님은 누구인가? 성령님은 누구인가? 교회는 무엇인가? 이런 문제를 다루는 학문을 조직신학이라고 부릅니다. 그때 성령에 대한 논쟁이나 삼위일체에 대한 논쟁이 치열했습니다. 성령님은 누구일까요? 조직신학적으로 어떤 존재라고 말씀드리려는 것이 아니라,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7절 중간 이후를 보면, “…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떠나가셔야 보혜사 성령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떠나가지 않으시면, 성령님이 오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은 예수님이 보내신 영이시고, 예수님을 대신하는 영이시라는 점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제외하고는 생각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삼위일체의 비밀이 있습니다. 굳이 구약시대는 성부시대, 성탄시대는 성자시대, 오순절이후 성령시대라고 구분하는 이들이 있는데, 자칫하다가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다른 분이 아닙니다. 한 분이시고, 서로 다른 일을 하지 않고 같은 일을 하시는데, 그 일은 예수님께서 이루시는 인류구원의 대업입니다. 성령은 그런 분입니다.
Β.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13).
성령은 분명히 예수님이 보내신 영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무슨 일을 하실까요? 성령님은 우리를 위하여 하시는 일이 있고, 또 본래 이루시려는 일이 있습니다. 먼저 우리를 위해 하시는 일은 13절에 기록된 것처럼,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다함께 13절을 읽어볼까요?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이스라엘의 광야시대를 생각해보면, 우리를 위한 성령의 사역을 이해하기 좀 쉽습니다. 광야 당시 이스라엘은 구름기둥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구름기둥이 멈추는 곳에 진을 쳤고, 구름기둥이 떠오르면 진을 철거하여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구름기둥이 떠나면 이스라엘도 떠났고, 구름기둥이 머물면 이스라엘도 머물렀습니다. 구름기둥이 광야 이스라엘의 가이드였습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인도하는 분은 누구일까요? 진리의 성령이라 불리는 보혜사라는 것입니다.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러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 가장 좋은 가이드가 성령이십니다. 어떤 경우 내비게이션만 믿고 가다가 낭패를 당하기도 합니다. 전혀 엉뚱한 곳으로 인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럴 염려가 전혀 없습니다. 성령께서는 아주 정확하게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스스로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들은 것을 말하신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들은 것일까요? 당연히 보내시는 예수님께 들은 말씀입니다. 성령께서는 철저하게 주님의 말씀을 하십니다.
Γ. 성령님은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영이십니다(14-15).
성령께서 우리 성도들을 위하여 가이드 역할을 하신다면, 또 다른 역할은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사역입니다. 성령님은 철저하게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14)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중심이 되고, 자신이 영광을 받고, 자신이 원하는 위치에 올라가는 것을 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 자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마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일을 한다고 말씀하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원하는 대로 말씀하시거나 행동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고 하셨습니다. 15절을 보면 좀 더 확실해집니다.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이 부분에서 성령에 대한 우리의 오해를 수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권능은 무엇에 쓰는 권능일까요? 그 권능을 ‘두나미스’라고 하는데, 이것은 세상에 주는 능력이 아닙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능력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능력을 주시는 것일까요? 어떤 부분에 능력을 발휘하라는 것일까요? 한마디로 ‘증인이 되는 일’에 능력을 발휘하라고 주시는 하늘의 능력이 ‘두나미스’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는 이유는 비교적 간단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성령을 체험하고 무슨 일에 집중했습니까? 예수님을 증언하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므로 임하는 두나미스는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능력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카리스마도 마찬가지입니다. 두나미스와 카리스마를 나 자신을 위해 쓴다면 그것은 주님을 거역하는 일입니다.
Ⅲ.
미국의 동기부여 연설가로 저명한 ‘노먼 빈센트 필’ 목사에게 한 중년 남자가 찾아와 상담을 청했습니다. 실의에 빠진 듯 힘이 다 빠져 있는 그는 말했습니다. “목사님, 평생 노력한 제 사업이 한순간 부도가 났습니다. 제 인생의 모든 것을 잃어버려 이제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와 가족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노먼 빈센트 필 목사는 종이와 팬을 꺼내고 말했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셨다고요? 그럼 부인은 있습니까?” “네, 항상 제 뒷바라지를 해주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습니다.” 목사는 종이에 ‘훌륭한 아내’라고 적었습니다. 목사는 그 남자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당신에게 자녀들은 있습니까?” “네, 항상 함박웃음을 짓는 착하고 귀여운 세 아이가 있습니다. 가족들을 생각하니 더 마음이 아픕니다.” 목사는 종이에 ‘착하고 귀여운 세 아이’라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 남자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에게 소중한 친구는 있습니까?” “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의좋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목사는 종이에 ‘좋은 친구들’이라고 적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 남자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건강은 어떤가요?” “건강은 자신 있습니다. 아주 좋은 편입니다. 목사님, 그런데 저는 이런 게 아니라 모든 것을 잃은 제 처지를 상담하고 싶습니다.” 그러자 목사는 종이에 ‘건강한 몸’이라고 쓰고, 지금까지 적은 리스트의 맨 위에 ‘모든 것을 잃었다는 당신이 아직 가지고 있는 귀한 것’이라고 제목을 적었습니다. 순간 그 남자가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제게는 아직 귀한 것들이 남아 있었네요.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요? 여러분에게 정말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요? 여러분이 정말 실패한 것은 무엇일까요? 혹시 성령님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성령님이 여러분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성령님이 여러분을 승리로 이끌어주십니다. 성령님을 찾으시기를 축복(祝福)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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