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지혜(10)
성경: 고전3:18-23절
지식은 공부를 통해서 얻어집니다. 책으로 공부를 하고, 삶에서 체험을 통해 얻어집니다. 지식은 사물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고, 친구를 통해서도, 부모님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는 것이 많다는 것은 경험과 관계가 됩니다. 그러나 아는 것이 많은 것과 지혜가 있다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지혜는 지식을 사용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지식이 많아도 어떤 상황에 닥쳤을 때 아는 지식을 자연스럽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지혜입니다. 예전에 ‘맥가이버’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맥가이버는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발휘합니다. 그는 지혜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다 멕가이버처럼 되어야 지혜로운 것인가? 그것이 아닙니다. 오늘 참된 지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생각을 바로 하는 것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18절)
옛날에 한 공작새 부부가 예쁜 외동딸 공작새를 곱게 키워 숲으로 시집보냈습니다. 그런데 시집 간 딸이 얼마 되지 않아 잔뜩 풀이 죽은 채 친정으로 날아왔습니다. 엄마가 사연을 묻자 딸이 하소연했습니다. “엄마! 숲의 새들이 다 저를 따돌려요. 외로워 견딜 수가 없어요. 남편도 이해 못해요.” 노련한 엄마는 무엇인가 짐작하고 물었습니다. “너, 숲에서 아무 때나 꽁지를 활짝 펴서 다른 새들 앞에서 뽐냈지? 내 말 맞지?” 딸은 엄마가 자기의 행동을 알고 있자 깜짝 놀라 말했습니다. “엄마! 우리 꼬리는 하나님의 선물인데 조금 펼치면 어때요?”
엄마가 말했습니다. “얘야! 하나님이 주신 것은 남을 부끄럽게 하라고 주신 것이 아냐! 골프에는 ‘젠틀맨 골프 상식’이 있는데 그것은 주위에 골프 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절대 골프 얘기를 안 꺼내는 거야! 그 의미를 알겠니?” 딸은 고개를 끄덕이며 숲으로 날아가서 그때부터 다른 새들과 잘 어울려 지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어리석은 자가 나라고 생각을 고치라는 것입니다. 나는 부족하다, 모른다. 나는 실수 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가야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역설(逆說)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나는 너와 다르다. 나는 잘났다, 내 생각은 옳다 하는 것에서 발생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말하는 데는 열심이지만 배우겠다는 자세를 가진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문제를 만들었고, 그 사람에게 바울은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를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성경은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사람은 누군가? 하는 것입니다.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를 지혜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배우려고 합니다. 고치려고 합니다. 은혜를 사모합니다. 작은 것에도 감동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예 나는 지혜롭다 나는 안다 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가르칠 사람이 없습니다.
가장 안전한 자리가 있는데 그것은 낮은 자리에 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높은 곳은 위험합니다. 그러나 낮은 곳은 안전합니다. 높은데 있는 사람은 적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친구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을 큰 소리를 하지만 외롭고 고독합니다. 여러분 중에는 그런 사람이 없습니까? 낮은 자리로 내려오시길 바랍니다. 말을 가볍게 듣는 사람, 잘못해도 미안하다고, 잘못했다, 고 말하지 않는 사람, 다른 사람의 사랑에 감사 할 줄 모르는 사람, 말씀이 부딪치고, 성령이 역사해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 이상하게 부정적인 것이 잘 보이는 사람은 자신을 돌아 봐야 합니다.
여러분 바다의 넓이는 3억6천만㎢로 지구 전체 면적의 71%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구의 3분의 2가 바다라는 말입니다. 바다가 가장 크고 넓습니다. 바다는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가장 낮은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바다는 물이 마르는 법이 없습니다. 이유는 가장 낮은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낮은 마구간에 임하셨습니다. 낮은 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가장 비참한 십자가의 길을 우리 대신 가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에게는 적이 없습니다. 그는 가장 크신 분이십니다. 허리를 굽히고, 손을 내밀고. 미안하다, 용서하라고 말할 수 있으면, 그는 참으로 지혜가 있습니다. 귀를 열어 말을 들어주고, 자신을 딛고 설 수 있도록 남편 앞에 엎드릴 수 있다면 그 여성은 오늘의 에스더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붙잡을 것입니다. 하늘 지혜는 낮은데 처하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는 사람이 이깁니다. 몸을 낮추면 문제는 지나가는 것입니다. 미련한자가 지혜롭다. 고 오늘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능력이 있지만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알면서도 그 길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나는 부족한 사람이다. 너무 작은 존재야! 이렇습니까? 내가 뭐 나만큼 없어!
2. 사람을 자랑하지 않는 것
히스기야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그는 눈물의 기도로 15년의 수명을 연장 받은 거인입니다. 그런 그가 넘어진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이 이사야 39장에 나오는데 이렇습니다.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가 나았다는 소식을 들은 바벨론 왕이 친서와 예물을 갖추어서 축하 사절단을 보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그들에게 궁중의 보물창고와 무기고와 궁중의 소유와 전 국내 모든 것을 다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그 모든 쌓아둔 보물을 바벨론 사람들이 다 빼앗아 가고 남는 것이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또 그의 자손은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얼마는 환관이 되어 그들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히스기야가 자랑할 것은 금은 보물이나 무기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을 통해서 적군을 물리치고 또 눈물의 기도를 통해서 생명을 15년 연장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당연히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자랑하고 나라를 지키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도 금은보화가 있다, 무기도 엄청 많이 있다. 우리도 힘이 있다고 그것을 과시한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개척자 바울이나 수제자 게바나 또는 부흥사 아불로를 핑계 삼아 자신들의 그룹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내세웠습니다.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파벌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분은 있나요? 혹 여러분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을 차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 통하는 사람과만 교제가 깊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같이 밥 먹고, 시장가고, 매일 전화하고, 그리고 선물하고, 돈 꾸어주고 이렇게 되다 보면 이상한 현상이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 편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편이고. 교회 편입니다.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21-22절)
이 말씀은 바울이나 아불로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사람을 내세우고 신앙 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을 따르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고백은 이렇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부모가 자식을 통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자 자식의 뜻과 상관없이 자신의 소망을 이루려는 것을 대리 만족이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 사람을 앞장세우고, 영웅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그 대상을 통해서 자신이 한을 풀고 위로를 받으려고 합니다. 큰 교회에 다닙니다. 이것은 명품입니다. 선생님에게는 과중한 것입니다. 형편에 맞는 것을 고르시죠. 이러면 금방 감정을 잃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이요, 우리모습입니다.
3.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
“미국의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하루는 북군의 최고 지휘관 링컨의 사무실에 참모들이 모여 전략회의를 했습니다. 당시 전세는 북군에게 불리했습니다. ‘노예해방’이라는 명분은 좋았지만 실제 전투에서는 북군이 남군에게 밀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장시간 참모회의를 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회의를 마치는데, 참모 하나가 링컨에게 다가와 말을 건넵니다. “각하,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자 링컨이 정색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여보게,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세.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편이 될 수 있나 하는 점이야.”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21-23절)
이 말씀의 요지는 네 사람을 만들지 말라, 네 편을 만들지 말라,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언제든지 네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면 모든 것이 네 것이 된다. 그런 말씀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중심에 서서 나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항상 나를 하나님에게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입니다. 그러면 답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려움이 있을 때 아이는 엄마의 이름을 부릅니다. 모든 해답은 하나님 중심으로 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자신의 생각이나 입장을 주장하면 문제는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이때는 그분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결론
여러분 태어난 모든 것은 한번은 꽃을 피우고 가게 되어 있습니다. 열매를 맺고 시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발거나 꺾어 버리면 꽃이고 열매고 없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참된 지혜는 하나님의 품으로 기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속담에 짚을 지고 불로 들어간다, 는 말이 있습니다. 어떻게 됩니까? 죽습니다. 분명히 알 것은 자신을 바로 아는 것이나,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은 그냥 끝나지 않습니다. 열매를 맺기 전에 죽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우리 가정은 전부 단명합니다. 다 50대를 넘지 못하고 죽습니다. 예수 믿으면 내려오는 저주가 어디 있어요? 예수의 이름으로 새 역사를 쓰는 것입니다. 우리 집은 유전병이 있습니다. 유전병이 어디 있어요, 예수 믿는데? 다 끊어지는 거예요. 세상 저주는 믿음의 성을 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지키고 보호하는데 그걸 넘어설 자가 없는 거예요.
교회는 뭐예요? 피난처예요. 뭐 하러 교회 나오는 거예요? 세상이나 교회나 똑같을 거 같으면 뭐 하러 나오는 거예요? 십자가가 가는 곳에 저주가 떠나가는 거예요. 우리 민족이 5천년동안 이 저주를 벗어나지 못하다가 교회가 들어오면서 이 땅을 덮고 있던 어두움의 저주가 다 물러갔습니다. 여러분의 개인이나 가정에도 모든 저주가 떠나갈 줄로 믿습니다. 죽음이 찾아오지 못합니다. 생명의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하십니다. 멸망이 여러분을 찾아올 수 없습니다. 만복의 근원되시는 부유하신 주님이 나를 지키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더욱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더욱 믿음으로 주님을 가까이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지혜입니다.
조영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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