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카이로스
성경본문: 전도서3:1-13‘
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9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10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12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1. 카이로스
실생활의 필요를 중심으로 발전한 영어에서는 시간을 Time으로만 표현한다.
그러나, 사상과 개념을 중요하게 여겼던 그리스어에서는 시간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크로노스(Kronos) : 양적인 시간
카이로스(Kairos) : 의미와 질적으로서의 시간.
인생(시간)을 크로노스적으로 사는 사람은 소유, 학벌, 외모, 성공을 중요하게 여긴다.
카이로스적으로 사는 사람은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그 의미와 가치를 추구한다.
2. 지혜 - 전도서는 구약의 지혜 문학에 속한다.
지금은 지혜라는 말의 의미가 격하되어 있다.
생활에 아이디어가 있다, 위기를 극복하는 임기응변을 잘 한다거나, 언어에 재치가 있다는 정도의 뜻으로 사용하지만, 성경에서 지혜는 이런 단순한 지혜가 아니라, 구원에 이르는 길이었다. 언제나 구원의 지혜였다.
오늘 지혜 문학의 보고인 전도서에서 말하는 지혜는 한 마디로 '때를 구별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때'는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표를 의미한다.
1) 자연의 흐름은 창조주 하나님의 거대한 시간표다.
옛날에는 자연(태양)의 리듬에 맞추는 것이 삶의 기준이었다.
자연이 인간의 행동 때를 결정한다 -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일손을 놓고 잔다.
인간도 거대한 자연의 일부로서 산다 - 인간과 자연 모두에게 무리가 없다.
2) 인간의 지식이 쌓이면서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문명이 발생한다.
역사의 모든 문명은 근본적으로 폭력성을 지니고 있다.
이집트의 피라밋을 보면, 그 거대함에 놀라면서도, 그 속에 보이지 않게 희생당한 사람들, 자연의 파괴를 알 수 있다. 문명은 폭력적이다.
근대 과학 시대에 시계와 전구를 발명하면서, 인간은 '때'를 조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시간을 지배하며, 밤을 낮으로 바꾼다.
올빼미 족이 늘고 있다.
양계장에서는 밤에도 불을 켜서 닭들이 계속 알을 낳게 한다.
21세기에 인류는 드디어 복제 인간을 탄생시켰다.
이브라고 이름 붙인 복제 인간의 시작은 처음 인간 아담과 이브처럼 또다시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한 인간의 비참한 운명을 예고하고 있다.
3) 사람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일부로 살아갈 때는 불편하긴 했어도 인간과 자연 모두에게 부담이 없었다.
그러나, 인간이 시간과 빛을 지배하며, 자연의 흐름에 역행하면서, 인간과 자연 모두 힘들어졌다.
자연에 던지는 인간의 폭력은 반드시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올 것이다.
4) 구원에 이르는 지혜는 하나님의 때로 돌아가야 한다.
세상에서 성실하게 열심히 사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중심에 하나님의 시간표가 없다면 그것은 헛된 것이다. 허무하다.
전도서의 전체적인 허무주의는 하나님 없는 삶의 공허함이다.
5) 예수 - 때를 분별하신 주님
마가 10:32에 보면,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주님과 제자들이 나온다.
이미 주님은 예루살렘에서 죽임 당할 것을 예고하신 다음이다.
제자들은 놀라고 두려워하는데 예수님은 앞장서서 가신다.
왜? 주님은 당신이 죽어야 할 때를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주님은 일해야 할 때,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을 피하고 살아야 할 때, 그리고 십자가를 향해 돌진해야 할 때를 알고 계셨다.
지금은 신의 제물이 필요한 때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
제물은 본래 신을 위해 인간이 드리는 희생이다.
그러나, 지금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 신이 제물이 되어야 할 때라는 것을 주님은 알고 계셨다.
이것이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의 차이다.
3. 하나님의 시간표에서 밀알 교회는 2003년도에 무엇을 할 때인가?
올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교회를 교회 되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교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신령하신 몸이다.
주님의 신령한 몸이 병들었거나, 분열되어 있거나, 기운이 없거나, 타락해 있거나, 사명감 없이 그냥 저냥 살고 있다면 이미 주님의 부활하신 몸이 아니다.
교회를 바로 세워야 한다.
교회를 교회 되게 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에는 두 가지 구성 요소가 있다.
사람도 마음(정신, 영혼)이라는 내면성과 육체라는 외면성으로 구성되는 것과 같다.
1) 올해 우리 교회의 내면성은 주님의 은혜가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기도한다.
교회의 기초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흘리신 십자가의 은혜다.
이 은혜 없이 교우들의 친교 위에 세운 교회는 친목 단체다.
사회 봉사 위에 세운 교회는 사회 봉사 단체다.
사회 개혁 운동 위에 세운 교회는 시민 운동 단체다.
친교, 봉사, 시민 운동 모두가 중요하고, 우리 교회는 이런 분야에 참여해 왔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가 마땅히 펼쳐나가야 할 사업이지, 교회의 기초는 분명 주님이 십자가에서 이룬 구원의 은총이다.
루터는 일찍이 이것을 강조했다 - 오직 은총으로!(Sola Gratia)
우리 올해는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사모하자.
주님 십자가만 생각해도 멍해지는 가슴이고 싶다.
주님 십자가만 바라보아도 눈이 아파 오는 심령이고 싶다.
2003년 우리 밀알교회는 이 은혜를 사모하고 받아야 할 때다.
2) 2003년 밀알 교회의 때는 외면적인 교회를 강건하게 하는 것이다.
교인 수, 재정, 건물 등 시대적, 역사적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서 필요한 현실적인 힘을 갖추는 것이다.
마음 없는 선물을 유치하나, 마음만 가지고는 행복할 수 없다.
열심히 전도하자,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돌리자, 교회의 성장을 위해 기도하자.
2003년 밀알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를 내 삶의 최우선에 놓자.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자.
우리는 그 동안 한국 교회의 교회 지상주의, 무한 성장주의, 물량주의에 대해 그 위험성을 비판해 왔다.
그것은 정당하며 앞으로도 유효하고 지속할 것이지만, 그렇다고 대안 없는 비판에 머물러서는 안될 것이다.
정당하고 건강한 방법으로 그리스도 몸의 외형을 만들어가야 한다.
하나님의 교회,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몸이 온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그 교회에 속한 이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
올 한해는 정말 하나님 앞에서 실험해 보자.
내 삶에서 교회 중심으로 살아보자.
하나님 말씀이 내 상식에 맞지 않는다 해도 절대적으로 순종해 보자.
신앙의 길이 힘들어도 기뻐하며 최선을 다해 보자.
진정으로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최선을 다한 1년 후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고백을 준비하고 계실 것이다.
2003년 밀알 교회의 카이로스는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것이다.
출처: 박영락 목사(밀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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