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5:15-21, 카이로스를 사라
(2017.11.12. 패인초)
1.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높은 지대에 사는 사람이 낮은 지대에 사는 사람보다 빨리 늙는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서, 평지에 사는 사람보다 높은 산 위에 사는 사람이 더 빨리 늙고, 아파트 1층에 사는 사람보다 10층에 사는 사람이 더 빨리 늙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상에서 하늘로 올라갈수록 시간이 빨리 흐르기 때문입니다. 즉, 지구의 시간과 지구 위 하늘의 시간은 흐르는 속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2. 우리가 사용하는 GPS, 즉 위성위치확인시스템도 이 상대성 이론을 이용한 시스템인데, 지상 2만 100km 상공에 떠있는 GPS 위성시계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계보다 매일 0.000038초가 빨라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차이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지상에서의 차량 네비게이션에는 10m나 오차가 발생하는 차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시차를 며칠만 조정해주지 않아도 우리가 GPS를 보고 길을 찾아갈 때 무려 수십m나 다른 곳으로 가게 된다고 합니다.
3. 이러한 상대성 원리는 우리가 경험하는 일상의 시간에서도 경험할 수 있는데, 똑같은 1시간이라도 사람에 따라 느끼는 정도가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같은 1시간이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갈 것이지만, 반면에 싫어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1시간이 너무 길고 지루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같은 1시간 예배를 드려도 사람에 따라 은혜로운 예배가 될 수도 있고, 지루한 예배가 될 수도 있습니다.
4. 오늘 본문 16절,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우리는 당연히 세월, 즉 시간을 아껴야 합니다. 올 한 해도 시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1월 중순이 되었고, 이제 이 한 해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정말로 지난 한 해 동안 시간을 아끼셨습니까? 그러나 이것도 상대적입니다. 어떤 사람은 한 해가 금방 지나간 것처럼 느껴질 것이지만, 어떤 사람은 한 10년처럼 길게 느끼질 수도 있습니다. 대체로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더 빠르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5. 그런데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우리가 평생 들어온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으로부터, 혹은 우리의 부모님으로부터 잔소리를 들어가면서 시간을 아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TV나 인터넷이나 책 등을 통해서 시간을 아끼라는 말은 너무 많이 들어왔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시간을 아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사실 시간을 아끼라는 말은 꼭 성경책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6. 사실, 가정 생활이나 자녀 양육, 직장 생활, 취미 생활, 여가 생활, 공부, 운동 등에 있어서 어떻게 하면 시간을 아끼면서 살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저보다는 여러분들이 훨씬 더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보다 인생을 더 오래 사신 분들이 많고, 또한 저보다는 더 다양한 인생의 경험들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이 시간에 굳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7.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세월을 아껴야 할 이유는 때가 악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경험과는 조금 동떨어진 것 같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일반적으로 시간을 아껴야 한다고 말할 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일의 효율성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든 가능하면 빠른 시간 안에 끝내야 다른 일을 또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지런해야 하고, 불필요한 과정도 없애야 합니다. 그래야 결국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
8. 물론, 우리는 어떤 일이든지 정말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시간을 아껴야 합니다. 공부든 사업이든 무엇이든 짧은 시간을 투자해서 큰 효과를 얻어낼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시간을 아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시간을 아껴야 할 이유는 세월이 악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17절,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이는 시간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먼저 이해하라는 말씀입니다.
9. 여러분, “세월을 아끼라.”고 했을 때의 세월은 무엇입니까? 세월이 참 빠르다고 말할 때는 세월은 시간을 의미합니다. 정말 세월이 참 빠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세월은 말 그대로 시간, 즉 time을 의미하는데, 한국말로는 세월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을 기록한 헬라어에는 시간을 뜻하는 단어가 두 개가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이 두 단어 중의 하나는 크로노스이고,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입니다.
10. 크로노스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시간, 즉 시계나 달력을 통해서 그저 흘러가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오늘 날짜가 2017년 11월 12일, 일요일이며, 11시 30분인데, 이처럼 우리가 매일매일 생활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시간이 바로 크로노스입니다. 그래서 이 크로노스 시간은 갓난 아이나, 노인이나, 학생이나, 주부나, 직장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진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의 시간입니다.
11. 시간을 나타내는 또 다른 단어는 카이로스입니다. 이 카이로스는 사람마다 다르게 체험되는 주관적인 시간을 의미합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같은 1시간이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지내는 1시간과 싫어하는 사람과 지내는 1시간이 다르게 느껴지는 시간이 바로 카이로스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 우리가 한 장소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데, 크로노스로서의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시간이지만, 개인적으로 경험하는 예배의 시간, 즉 카이로스는 각자 다 다를 수 있다는 뜻입니다.
12. 특별히 성경에서 말하는 카이로스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나주시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만나주심에는 인간의 반응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카이로스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예배하는 이 시간에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할 수만 있다면 이 시간은 그냥 흘러가는 크로노스가 아니라 카이로스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 시간은 정말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3. 그런데 인류 역사상, 인간이 가장 극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했던 카이로스는 바로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강림하신 사건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가장 극적으로 인간의 역사에 간섭하셔서 인간을 만나주신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성육신의 시간, 그리고 동정녀 탄생의 순간 자체는 단순한 시간, 즉 크로노스가 아니라,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시간, 즉 카이로스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14. 그리고 이 카이로스가 실제 인류의 역사의 시간, 즉 크로노스까지도 구분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역사의 연대를 표기할 때, 기원전과 기원후, 즉 BC와 AD로 표기하는데, BC는 Before Christ, 즉 그리스도 이전이며, AD는 Anno Domini, 즉 그리스도의 해(라틴어=in the year of our Lord/Christ)를 의미합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 자체는 크로노스 시간 안에 발생한 역사적 사실인 것은 분명하다는 뜻입니다.
15.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은, 심지어 불교신자도, 이슬람 신자도, 혹은 무신론자도 모두 BC와 AD를 사용합니다. 그들이 예수의 성육신을 믿든 안 믿든 BC와 AD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로 예수의 성육신의 의미를 믿고 깨닫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즉, BC와 AD를 설령 크로노스로의 시간으로는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그들은 카이로스의 시간, 즉 인류의 죄를 구속하기 위해 하나님이신 예수가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는 결코 안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16.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크로노스의 사건으로 믿습니까? 카이로스의 사건으로 믿습니까? 사실, 둘 다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자체는 2천년 전에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 발생한 역사적 사건임에는 분명하므로, 우리는 예수의 성육신을 크로노스의 사건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 2천년 전의 사건이 오늘 나를 만나주신 사건임을 믿는다면, 우리는 예수의 성육신을 카이로스의 사건으로 믿는 것입니다.
17. 물론, 나는 이 천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만약 오늘 내가 이 예배 시간에 예수의 성육신 사건의 의미가 확실히 믿어지게 되었다면, 오늘 이 시간 자체는 크로노스의 시간이지만, 그 크로노스가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지금 나를 만나주셨고, 내가 그 만남에 반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를 만나주시고, 내가 반응하는 그 시간이 바로 카이로스의 시간입니다.
18. 그런데 이러한 카이로스의 시간은 과학이나 철학이나 심리학이나 경제학의 법칙이나 이론 같은 것으로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닙니다. 물론, 크로노스의 시간 자체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아이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 말하는 시간은 바로 크로노스의 시간이며, 위성위치확인시스템인 GPS의 시간도 다 크로노스의 시간입니다. 실상 이 크로노스의 시간도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에 대한 과학의 발견을 통하여 우리 인간이 편리하게 살 수 있게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19. 그러나 카이로스의 시간은 내 마음대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엡1:17-1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시고, 우리의 마음의 눈을 뜨게 해주실 때에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이 카이로스의 사건으로 믿어지게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20. 그래서 지난 시간에도 말씀 드린 것처럼, 만약 우리가 예수의 몸에 대한 사건들, 즉 성육신과 사생애와 공생애, 고난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재림까지도 다 믿어진다면, 우리는 이미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오늘 이 시간에 예수 앞에 나와 경배하며, 그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을 예배한다면, 오늘 이 1시간은 단지 크로노스의 시간이 아니라 카이로스의 시간이 되는 줄 믿습니다.
21. 그러면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사도 바울이 시간을 아끼라고 했을 때의 시간은 크로노스입니까? 카이로스입니까? 이미 답을 다 말씀 드린 셈입니다. 당연히 카이로스의 시간을 아끼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크로노스의 시간을 아끼라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카이로스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그 이유는 시간에 담긴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시간에 담긴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크로노스의 시간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22.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크로노스의 시간을 카이로스의 시간을 만들 수 있습니까? 18절,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이 말씀은 단지 술을 먹어도 되는가, 안 되는가의 문제 이전에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사는 삶의 방식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즉, 술에 취해서 살지 말고 성령에 취해서 사는 것이 카이로스의 삶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술은 세상 방식, 특히 방탕한 세상 방식을 대표하는 개념입니다.
23. 물론, 술 자체도 문제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술을 마시고 취해 있는 그 시간은 분명 크로노스의 시간입니다. 그렇다면, 그 시간을 어떻게 카이로스로 만들 수 있습니까? 만약, 그 시간을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카이로스로 만들 수만 있다면 우리는 술을 마시고 취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가 살던 당시나 지금이나 술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제공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시간을 빼앗아가기가 더 쉽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24. 이는 다른 모든 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일이든지 행할 자유가 있습니다. 어떤 것에서도 기쁨을 누릴 수 있고, 어떤 것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시간이 다 카이로스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루 24시간, 1년 365이라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졌지만, 사람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더 많은 시간을 카이로스로 만들 것이며, 어떤 사람은 아주 적은 시간만 카이로스를 만들 것입니다.
25. 결국 성령의 방식대로 사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경은 세월을 아껴야 할 이유가 때가 악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 살수록 때가 더 악해지면 악해졌지, 더 선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이는 불신자들도 다 아는 사실인데,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성령의 충만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악한 세상일수록 악한 세상의 방식대로 살도록 사탄은 우리를 더 많이 미혹하기 때문입니다.
26. 그런데 오늘 분문에서 세월을 ‘아끼라’고 했을 때의 아끼다는 말은 본래 ‘사다’(buy, purchase)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시간을 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것을 뿐, 시간은 돈 주고 살 수도 없고, 돈을 받고 팔 수도 없는데, 어떻게 시간을 살 수 있습니까? 바로 크로노스의 시간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만드는 것이 시간을 사는 것입니다. 즉, 매 순간의 시간을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시간으로 만드는 것이 시간을 사는 것입니다.
27. 그런데 왜 ‘산다’는 표현을 했습니까? 여기에는 반드시 지불해야 할 대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카이로스의 시간을 사기 위해서는 술에 팔아야 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술을 마셔야 기쁘며, 그 기쁨을 위해 다른 대가를 지불할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기쁨을 아는 사람은 성령충만을 통한 기쁨을 알기에 성령 충만을 위해서 술을 팔아 대신 성령을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을 아낀다는 것은 값을 지불하고 적극적으로 카이로스를 사는 것입니다.
28. 이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제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불해야 할 대가가 있습니다. 막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그리고 우리가 지불한 대가에 대해서 장차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보상해주실 것입니다. 계2: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리라.”
29. 19-21절,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이것이 바로 대가를 지불하고 카이로스를 삼으로써 성령 충만한 자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그렇다고 항상 예배 드리고, 찬송하고, 기도만 하고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카이로스의 시간을 산 사람은 이렇게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30. 그래서 우리에게는 지혜, 즉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고전10: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그러므로, 결국 지금 내게 주어진 이 시간을 그저 크로노스로 살아갈 지, 아니면 카이로스로 살아갈 지는 자기 자신이 선택하며 결정해야 하는데, 그것을 잘 분별하려면 그만큼 지혜가 필요합니다.
31. 15절,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다시 17절,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그런데 이 지혜는 어디에서 얻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계시와 지혜의 정신을 받은 자, 눈이 밝히 떠진 자는 시간을 사용함에 있어서 뭔가 달라도 다를 것입니다.
32. 이제 이 한 해도 한 달 반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크로노스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성령충만하여 지혜로운 사람은 더 많은 카이로스를 살 것이며, 어리석은 자는 조금 밖에 카이로스를 사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1시간도 카이로스를 사지 못하고 그저 크로노스의 시간으로만 흘려 보낼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바라기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17년의 시간을, 아니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우리 인생의 시간을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카이로스를 사는 일에 힘쓰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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