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에베소서 4 : 25 - 32
며칠 전에 조카가 애완견 한 마리를 안고 왔습니다. 개를 안고 예쁘다고 하는 것입니다. 개가 사람을 즐겁게 해 주기 때문에 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개가 아무리 재롱을 부리며 즐겁게 해 준다 해도 똥 오줌을 스스로 가리지 않고 아무데나 실례 한다면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화장실 문을 약간 열어놓으면 문을 밀고 들어가 변기에 올라가 볼일을 보고 물을 내린답니다. 애완견은 별 부담을 주지 않고 재롱을 부리니까 사람들이 개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집을 지키면서 주인 오기만을 기다리다가 주인의 소리만 들려도 반가워합니다. 그래서 개를 쓰다듬어 주고 옷을 입히고 하물며 발톱까지 다루어주고 목욕도 시켜주고 아프면 비싼 병원비를 대며 치료해 주고 맛있는 것도 먹여주고 따뜻하게 돌보아 줍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애완견만큼만 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좋아 하실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신앙생활이 애완견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고 은혜를 끼치게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29,30). 이 말씀은 성도들이 성령을 근심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근심’이란 마음이 불안하여 속을 태우는 것입니다. 괴롭게 애를 쓰도록 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한다는 말은 성령 하나님을 불안하게 속을 태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최초로 근심하셨던 때는 노아 시대 사람의 생각과 계획이 악함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심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습니다(창6:6).
그렇다면 오늘 우리를 보시고 근심하지 않으실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은 성령의 거룩한 뜻을 거스리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성령을 얼마나 근심하게 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돌이켜 봅시다. 어쩌면 우리가 이런 저런 핑게로 예배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라든지, 맡겨주신 직분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라든지, 말씀에 귀를 막고 졸든지 하는 것은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은 성도로서 하나님 앞에 큰 잘못이기 때문에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령은 우리에게 구원의 날에 인치심을 주시기 때문입니다(30). 구원의 날에 모든 죄와 고통에서 자유롭게 되는 인치심을 성령으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성령을 근심하게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많은 성도들이 성령을 근심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비롯한 오늘에게 까지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성령을 근심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몇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근심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첫째로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해야 합니다(25). ‘거짓’은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거짓’은 자기의 유익을 위해 남을 속이는 것입니다. 성도는 거짓을 버리고 진실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거짓을 말하지 않아야 합니다. 거짓은 중한 죄요 대단히 해로운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참된 말을 하므로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분을 내는 것’은 성령은 근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분’은 ‘속타게 함’,으로 분이 지속되면 ‘원한’이 되는 것입니다. ‘분을 내어도’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이 분을 내기가 쉽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을 내는 것 까지는 용납하셨습니다. 분를 내는 일이 있을 때 분를 내지 않으면 화병이 됩니다. 그러나 분을 억제하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분’을 오래 품고 있으면 죄에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이 말씀을 쉽게 풀이한다면 ‘만일 너희가 화를 내야 할 입장에 직면하게 되면 죄가 되지 않도록 지나친 분노는 삼가하라’는 말입니다.
분을 빨리 가라앉히지 아니하면 안되는 것은 마귀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27)고 했습니다. 분을 품는 것은 마귀를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마귀가 들어오면 내 주장을 마귀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마귀의 종이 되어 분노와 진노로 진하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은 빨리 풀어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성령을 근심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도둑질을 하지 말고 선한 말을 해야 합니다(28).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독질 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도둑질’은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도둑질’은 정당치 못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하는 것입니다. ‘도둑질’은 게으름의 결과입니다. 일하지 않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은 스스로 도둑질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둑질을 하지 않기 위해서 ‘자기 손으로 수고하라’고 했습니다. 근면은 도둑질하는 유혹에서 벗어나게 해 줍니다.
부지런해야 할 이유는 자신을 도둑질하는 유혹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선을 행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할 수 있도록 수고를 하라고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게을러 자기 먹을 것도 도둑질해야 했던 사람이 이제 다른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가난한 자를 돕기 위해서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는 말씀은 도둑질 하지 않는 소극적인 태도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남을 도우라고 하였습니다.
부산 게제교회 모 장로님은 80순 노인입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손수레를 끌고 골목을 다니며 폐지를 주워 그것을 팔아 어려운 교회를 돕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신의 먹을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돕기 위해 남들이 자고 있을 때 폐지를 줍는 것입니다. 성도는 자신을 위해서 열심히 일해야 하지만 나아가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것에서 이제 구제하기 위해 일하는 성숙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연말연시를 통해서 신문지상에 기부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사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기부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큰 부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돕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 이였습니다. 자신들 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사용해 달라고 하면서 기부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구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해서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강도 만난 사람이 유대인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사마리아 사람을 멸시했습니다. 사마리아 땅도 밟지도 않았습니다. 처다 보지도 않았습니다. 어쩌다 사마리아 사람이 스치고 지나가면 부정하다고 했습니다. 그렇게도 멸시하는 유대인이 강도에게 빼앗기고 매를 맞고 죽게 된 것을 사마리아 사람이 도와주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어떤 사람을 도와주어야 하는 가를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비록 나를 해롭게 하던 사람이라도 그가 어려워한다면 도와주는 것이 성령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선교헌금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우리가 가장 쉬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도 없는 마지못해 한다면 덕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도 어려운데 알지 못하는 외국까지 도와주어야 하느냐는 마음으로 하는 것은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쓸 것을 아껴 구제하고 선교 헌금하는 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내 손으로 수고하여 구제하고 선교 헌금하는 성도를 성령은 기뻐하실 것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구제하는 것을 ‘선한 일’이라고 했습니다(28). 생명을 살리는 일이며 나아가 구원하는 일이 됩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부자가 가난한 거지 나사로에게 구제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불속에 던져지는 불행을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금년에는 구제와 선교헌금을 힘껏 해서 성령을 기쁘시게 해드리도록 합시다.
네 번째로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더러운 말을 버려야 합니다(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더러운 말은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더러운 말’은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해를 끼치는 말입니다. 더러운 말은 썩어 냄새나는 고기와 같이 독이 있고 다른 사람까지 오염시킵니다. 더러운 말은 더러운 마음에서 나옵니다. 더러운 말을 하는 것은 그 마음속에 더러운 것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줍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더러운 말을 버릴 뿐 아니라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선한 말’을 해야 합니다. ‘덕을 세운다’는 말은 ‘지어진 집’과 같이 ‘넘어지고 쓰러지는 자를 일으켜 세운다’는 의미로 낙심된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덕이 되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대화의 특징은 상대방을 교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러운 말을 버릴 뿐 아니라,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해야 합니다. 듣는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더러운 말은 아무 유익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듣는 사람을 넘어지게 하지만, 덕을 세우는 말은 그 사람을 일으켜 세워주는 말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근심하게 하는 더러운 말을 버리고 덕을 세우고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로 성령을 근심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악독과 분냄과 비방하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은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악독’은 ‘날카롭고 독기가 있는 마음씨’를 가리킵니다. ‘노함’은 일시적인 분노를 가리킵니다. ‘분냄’은 ‘진노함’의 뜻으로 일시적인 분노가 마음에 자리 잡아 오랫동안 품고 있는 것입니다. ‘떠드는 것’은 마음에 분노를 밖으로 터뜨리는 고함입니다. ‘비방하는 것’은 모욕적인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모든 것을 한 마디로 ‘악의’라고 했습니다. 악의는 타인에게 해를 가하도록 음모를 꾸미며 또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뿌리 깊은 분노이기 때문에 성도는 마땅히 이 모든 악의를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악의를 버릴 뿐 아니라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32).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모든 것을 버리고 성도다운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근심하게 하지 않아야 할 뿐 아니라 성령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애완견이 똥 오줌을 가려 주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이제 주인 앞에 재롱을 피우고 주인을 즐겁게 해 주기 때문에 주인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성도는 ‘친절’해야 합니다. ‘친절’은 정답고 고분고분하다는 뜻입니다. 은혜 받은 성도는 고개가 뻣뻣하고 힘주는 고자세가 아니라 친절해야 합니다. 그리고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어려움에 대한 연민을 느끼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동정심이 많은 부드러운 마음씨입니다. 그리고 ‘서로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을 용서하심’ 같이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주기도문에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라는 기도문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종합해 보면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들을 하지 말고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고, 분을 내어도 죄짓지 말며, 도둑질하지 말고 구제하며, 더러운 말을 하지 말고 선한 말을 하고, 모든 악의를 버리고 친절하며 불쌍히 여기며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인치심을 받아 구원 받은 성도는 성령을 근심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성령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성령을 기쁘시게 해 드리면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와 사랑으로 축복해 주십니다. 재롱을 피우며 즐겁게 해 주는 애완견이 달라고 하지 않는 것까지도 주인은 다 해 줍니다. 주인을 즐겁게 해 주니까 고기도 먹여주고, 추울까봐 따뜻한 방에 잠재워주고, 품에 앉아 주고, 주인이 가는 곳마다 데리고 다닙니다. 성령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성도에게는 하나님께 이것을 주세요, 저것도 주세요, 하지 않아도 됩니다. 구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알아서 필요한 모든 것을 넘치도록 주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자가 되지 말고 성령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성도들이 되도록 합시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넘치는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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