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구원 얻는 믿음에 대한 성경의 정의(김경규 교수)

하나님아들 2012. 9. 18. 17:12

구원 얻는 믿음에 대한 성경의 정의

김경규 교수

 

 

1. 예수님의 Concept :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자, 그리스도께 붙어 있는 자

 

주님께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에 삶의 열매를 맺느냐의 문제는 구원 여부와 직결됨

 

1) 예수님의 포도나무 비유 (근본적으로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말씀)

? 포도나무의 원 줄기와 가지와의 유기적 관계 예수님과 성도간의 신비적 연합

15:1~2 '구원 받을 자''구원 받지 못할 자'는 그들이 열매를 맺느냐 여하에 달려 있다.

(15:1~2)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15:4 사람이 과실을 많이 맺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께 붙어 있는 것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15:10 그리스도께 붙어 있기 위해서는 주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 (그리스도와의 연합)

(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5:5 예수님께서는 주님 안에 있기만 하면 그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는다고 말씀하신다.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헬라어 원어, 'meno'의 의미 [연합의 의미]

주님께 붙어있다 = 주님 안에 거한다 = 주님 안에 있다

 

2) 열매의 의미 (요한복음 15포도나무 비유에 나타난 열매)

박윤선 박사 성령의 은혜로 행실을 바로 행함 / 열매 = 성도로서의 올바른 행실

강병도 목사 열매 = 그리스도를 믿고 새 사람이 됨에 따라 나타나는 신령한 변화를 총칭

/ 성도들의 변화된 행위, 성도들의 선한 삶

'과실을 맺지 못하는 가지'는 주 밖에 있는 자로서, "그리스도를 주로 믿다가 배교하는 자들과 명목상으로 신자이면서 실제적으로는 충실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소위 가라지 신자들" (강병도,호크마 주석)

3) 과실을 맺는 일과 제자가 되는 일은 일시적인 아닌 계속적인 일

(15: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이것으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이것으로 = '엔 투토' 가 가리키는 것

NKJV : by this My Father is glorified) '열매 맺는(perete) ' '제자가 되는 (genesde) '

열매 맺는 것, 제자가 되는 것 '현재 능동태 가정법' 으로 기록

 

헬라어에서 현재 능동태는 계속적인 진행의 의미를 나타낸다. 따라서 '열매를 맺는 일'이나 '제자가 되는 일'은 어느 한 순간에 이루어진 것이거나, 또는 일시적으로 이루어질 성질의 것이 아님을 나타내 주고 있다. , 열매 맺는 일이나 제자가 되는 일은 모두 계속적으로 진행되는 일이라는 것.

 

(15:8, 원어에 충실한 번역) 너희가 계속적으로 과실을 많이 맺고 계속적으로 제자가 되고 있다면, 이로 인하여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참된 제자 : 계속적인 삶의 열매를 맺는 자

 

 

2. 바울의 Concept : 그리스도와의 접붙임 사상

 

1) 바울의 경고

바울이 쓴 로마서의 독자들 '너희' = 믿는 성도들 ? 하나님 안에 거하지 않는 자들은 찍힘 당할 것

(11:22)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

 

구원받은 자라도 육신의 정욕을 좇아 죄를 짓고 살면, 결국 구원을 놓치게 될 것을 경고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살다, 죽는다 영적인 것, 영적으로 죽는다는 것은 구원 받지 못하고 그 영혼이 지옥에 간다는 의미

 

택함 받은 이스라엘 백성도 불순종하여 버림 받았으므로, 접붙임 당한 신자들도 조심하라고 경고

(11:20)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11: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11: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바울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사상

(자료출처: ‘Pauline Christianity’ , John Zeisler, 1999 & ‘Union with Christ’, Lewis B. Smedes, 1993)

 

  (1) 바울의 선택교리 [교회 / 신자들의 공동체 = ]

 바울의 선택교리는 개인이 아니라 그리스도 공동체와 관련이 있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자기를 섬길

한 백성의 선택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묘사함에 있어서 바울이 가장 즐겨 쓰는 표현은 그리스도 안에라는 표현이다. Deissmann이 문구가 바울 서신에 164회 등장한다고 한다.

 

  (2) ‘그리스도 안에의 의미

다이스만에게 바울의 그리스도 안에성령 안에있는 존재며, 그것은 도덕적인 변화를 의미한다.마스칼에게 있어서 바울의 그리스도 안에교회 안에있는 존재며 (= 그리스도께 붙은 존재 / 지체), 그것은 본체론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고전12: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바르트(Karl Barth)에게 있어서, “그리스도 안에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행동이 계속되는 존재를 의미한다. 바르트에게 그리스도의 실재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 안에있는 존재이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주권의 영역 내에 사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바르트에게 있어 그리스도 안의 존재라는 것은 행동과 상응한다.

 

  (3) 육체와 죄 [그리스도 밖에 = 죄 안의 삶]

 바울에게 있어서 죄는 인격적인 하나님께 대한 인격적인 대적이며 그 인격적인 하나님으로부터의

 이탈이다 (1:21). “죄 안에 있다는 것은 죄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죄는 전제 군주이다 (5:21).

 죄 아래 있는 인간은 죄 아래 팔린 인간이다(7:14). 따라서 죄의 통제 하에 사는 인간들은

죄 안에있는 것이다.

바울이 육신 안의 존재성령 안에있는 것과 하나가 될 수 없으며 또한 그가 그리스도 안에있는 사람이 동시에 죄 안에있을 수 없다고 말할 때, 바울은 이러한 표현들을 통해서 동일한 상황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4) 죄로부터 해방

 결국 육체는 다른 세력에 의해 정복당해야 한다. 이 해방의 수단은 믿음과 은혜인데 이는 죄악 된

 옛 권세에서 자유의 생명의 새로운 권세로 전환하는 능력이며 이는 믿음에 의해서만이 이루어진다.

 

 믿음은 하나님이 제공하시는 것을 붙잡는 것 즉, 그의 은혜로운 활동에 라고 말하고 실천하는

 것이며 은혜에 대한 반응이다. 'Yes' 는 보상이며 하나님을 영접해야 하며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서

거하는 지속적 삶이어야 그리스도의 통치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존 지슬러)

 

 

2) 믿음과 연합 (루이스 B. 스미디즈)

 

믿음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들어가시는 연합 안에 있는 우리의 의식적이며 의지적인 삶을 지적해 주는 단어이다. 믿음이 없이는 연합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없이는 거기 계시며 우리 안에 계시는그리스도의 실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믿음 안에서 반응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을 사는 사람이 없다면, 주 되신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의미 없는 것이 된다.

 

그리스도가 주시라는 말은 자신이 대표가 되시고 다스리는 머리가 되시는 새로운 상황을 창조하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런데 그 상황은 그분 자신과 동일시되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의 상황의 부분이 될 때 우리는 그분 안에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믿음으로 그의 새 창조에 속한 시민들로 위탁된 사람들과 연합으로써만 주가 된다.

 

그러나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예수님이 실제로 주가 아니시라면 믿음의 실재는 존재할 수 없다.

믿음의 실재와 그리스도의 실재는 그리스도와 우리의 연합의 창조 안에서 결합한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 말 그리고 무엇보다도 행동을 통해서 나타내는 그리스도와 우리의 연합에 대한 살아 있는 확신이다. 이런 이유로 하여 믿음은 지식, 사랑, 소망, 순종 그리고 그 이외의 많은 이름들로 불리워진다.

이것들은 믿음의 차원들, 곧 주이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사람들의 총체적인 반응이다.

 

믿음과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별개이다. 그러나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한 우리는 믿음 안에 산다. 우리는 우리 속에 계신 그리스도를 발견키 위해 우리의 삶의 내부를 조사할 필요도 없다.

그 시험(test)은 성령의 효력과 우리의 도덕적인 삶의 능력에 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체험하는 것은 그 모든 윤리적인 명령들과 존재론적인 확신들에 대한 믿음이다. 그렇다면 믿음은 정통적인 사고와 동등 시 되어서는 안 된다. 믿음은 주님과의 연합 안의 삶 만큼이나 광범위하다. 믿음은 도덕적인 삶의 동력과 동등 시 되어서도 안 된다.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새 창조에 대한 우리의 동의이며 우리 안에 계신그리스도의 실재에 대한 반응이다.

 

 

 

 

3. 야고보의 Concept : 믿음의 외적 표현 사랑과 행함의 열매

 

사랑의 행위가 따르지 않는 믿음은 아무 쓸데없는 죽은 믿음 / 행함 = 사랑의 실천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 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23 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2:14-21)

 

 

출처 : 너희가 그러고도 천국 갈 줄 아느냐!
글쓴이 : 생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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