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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Re Start - 고통은 소원의 창조

하나님아들 2018. 10. 2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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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소원의 창조

(삼상 1 : 1 - 8)


2005. 7. 10 늘푸른 주일 낮

  어느덧 2005년도의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지나온 반년의 시간을 되돌아보면 우리교회가 참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정말 열심히 살고 열심히 사역하고 열심히 충성한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작년 말에 올해의 목회를 구상하며 계획을 세운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실행에 옮겼고 그때마다 성도 여러분들의 뜨거운 호응과 참여로 전반기의 목회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이제 후반기의 목회로 접어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의 가정도 이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고 올해 처음 시도한 전도팀은 완전히 정착단계에 접어들어 열매를 거두기 시작했고 교회의 틀을 서서히 잡아가며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교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의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아울러 성도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여러분들의 노고에 치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 후반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동안의 삶을 통해 경험하셨겠지만 전반기보다는 후반기가 더 빠르게 지나갑니다. 그래서 7,8월 두 달 동안은 이 후반기를 우리가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1년의 남은 절반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남은 절반의 기간동안 기도하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7,8월 무더운 여름과 싸워야 하고 또 많은 행사들로 분주한 시기에 기도의 끊을 늦추면 안 됩니다. 입맛이 없고 무더운 날씨일수록 체력적으로 견디기 위해 영양이 많은 음식을 먹듯이 이 후반기의 시작이요 여름의 시간동안에 우리가 기도의 영양탕을 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두 달 동안 기도의 여인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라는 여인을 통해 우리의 기도의 모본을 찾아 여행을 떠나고자 합니다. 크게 5가지 주제를 가지고 8주 동안 말씀을 드릴 것인데 오늘을 첫째 시간으로 ‘고통은 소원의 창조’라는 제목의 말씀을 드리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1절.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자가 있으니...”

  엘가나라고 하는 인물에 대해서 소개를 하면서 본문이 시작이 됩니다. 그런데 그 엘가나에게는 두 부인이 있었는데 첫째 부인은 이름은 한나요 두 번째 부인의 이름은 브닌나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첫째 부인인 한나는 자녀를 낳지 못하고 둘째 부인인 브닌나는 자녀를 낳았습니다.


  요즘도 자녀를 낳지 못하면 큰 걱정인데 당시는 말할 것도 없죠?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남편 엘가나가 멋진 사람인지라 본처인 한나를 끔찍이도 생각하고 사랑하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갑절로 주고 사랑도 갑절로 주고 관심도 갑절로 주고 그럽니다. 이 엘가나가 얼마나 한나에게 잘해주는지 8절에 보면 “내가 당신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않느뇨?” 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남편 되시는 분들 엘가나 정도는 되어야죠? 부인에게 있어서 남편이 최고가 되어야죠. ‘아이고 저 웬수 내가 새끼들 때문에 참고 산다.’그런 소리나 들으면 되겠습니까? 정말 요즘에 자식들 대학만 들어가면 이혼한다고 벼르고 사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아내에게 있어서 남편이 최고이고 남편에게 있어서 아내가 최고인 부부간계를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자식이 부모의 기대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자식이 남편보다 아내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것은 그래서 부부관계 때문에 아니라 자식 때문에 할 수 없이 사는 것은 건강한 가정의 모습이 아닙니다. 가정의 중심은 부부입니다. 부부간계가 최우선입니다. 부부 관계가 건강해야 부모와 자녀의 관계도 건강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세요. 부부관계에서 충족되지 못한 욕구를 자녀들에게 기대하기 때문에 부부관계가 바르지 못하면 자녀와의 관계로 바르지 못합니다.


  엘가나는 자녀를 낳지 못하는 아내 한나에게 참 좋은 남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한나는 늘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남편의 극진한 사랑을 받고는 있지만 자녀에 대한 열망을 대신할 수는 없었고 더군다나 첩으로 들어온 브닌나가 자기는 아들을 낳았다고 아들을 못 낳는  한나를 분나게 합니다. 브난나가 애 좀 낳았다고 얼마나 방정을 떨고 요란을 떠는지 임신을 하면 지방에서 낮잠이나 잘 것이지 괜히 한나 방에 건너와서 신 것이 먹고 싶다는 둥, 자꾸 졸리다 둥, 그래가며 헛구역질이나 해대고 이제 아주 한나 염장을 질러 놓고 난리를 치는 겁니다. 그러니 한나 속이 어떻겠습니까?


  7절에 보면 브닌나 때문에 한나가 식음을 전폐했다고 하잖아요? 한나에게는 이런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기억하세요. 한나는 이 고통 때문에 더 잘된 여인입니다. 고통을 통해 소원을 성취한 여인입니다. 한나에게 이 고통이 소원을 창조케 했습니다. 한나는 고통스러운 인생을 역전시켜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한나의 고통을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을 기대해야 합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들의 삶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있다면 한나의 삶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한나의 모습을 통해 얻을 중요한 교훈은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 개입하신 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을 향한 강렬한 소원을 창조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통의 절정에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그 고통 속에서 세상의 방법 세상의 철학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그 기막힌 고통의 절정에서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통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도록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고통의 절정에 있으십니까? 오늘 여러분의 현실이 고통스럽습니까? 힘들고 어렵습니까? 그러나 아직 절망하지 마세요. 좌절하지도 마세요. 포기하지도 마세요. 하나님께서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도아주십니다.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들어 주십니다. 이 여름의 기간에 한나를 통해 고통 가운데 소원을 성취하는 비결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사실 우리가 겪는 고통에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우연이란 없습니다. 다 오묘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그 고통 속에 숨겨져 있는 겁니다. 고통 때문에 더 잘된 사람이 성경에. 인류역사에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고통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겪는 고통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우리가 고통을 당할 때 그 고통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면 그 인생은 불행해지지만 긍정적으로 반응하면 창조적으로 반응하면 그 인생은 행복해 집니다. 그 긍정적 창조적 반응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래서 고통에 처하면 기도해야 합니다.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부르짖어야 합니다. 엎드려 울어야 합니다. 한나를 보세요. 그는 고통 때문에 금식하며 울며 기도했습니다. 이런 적극적인 그녀의 반응이 소원을 성취하게 했습니다. 이 여인의 신앙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기도하면서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에 고통 찾아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첫째, 고통을 피하지 않고 직면해야 합니다.

  인간은 고통을 싫어하고 쾌락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이 찾아오면 도피합니다. 그런 수단의 일환으로 술을 마십니다. 요즘 드라마나 영화가 사실 우리의 삶에 배우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꼭 드라마에서는 고통스러운 일이 생기면 고통을 잊기 위해 필름이 끊기고 몸을 가누지 못하도록 술을 마시는 장면을 연출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대로 따라합니다. 특히 청소년들이 따라합니다. 고통을 긍정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방송이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방송이 사회를 병들게 합니다. 맥주회사 소주회사 협찬 받아서 프로그램을 만드니까 술 마시는 장면을 넣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인재를 키워야 합니다. 믿음의 인재 신앙의 인재를 키워서 그들이 방송사를 장악하고 광고회사를 장악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교회의 사명이고 다음세대를 책임지는 비결입니다.


  하여튼 사람들은 고통을 피합니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마약을 하고 성적인 타락으로 몸을 내던지고 그런데 문제는 그런다고 해서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 다는 겁니다. 술에서 깨면, 마약에서 깨면, 성적 쾌락에서 나오면 고통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래서 또 술을 찾고 마약을 찾고 여자를 찾고 그러다가 인생이 망가지고 맙니다. 극단적으로 자살을 합니다. 여러분 명심하세요. 이것이 결코 고통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고통은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고통을 피하지 말고 친구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피할 수 없는 것은 받아 들여야 합니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은 즐기라고 했습니다. 고통을 피하지 말고 직면하세요.


  둘째, 고통을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야 합니다.

  사단 마귀는 고통을 통해 우리의 마음에 죄책감을 심어주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절망하고 좌절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 고통 속에 마귀만 찾아오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그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고통을 통해 그전에는 듣지 못하던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고통은 죽어 있는 세상을 깨우는 하나님의 확성기’라고 c. s. 루이스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 당신께 관심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조금만 편하면 조금만 잘살면 조금만 잘 되면 하나님을 향한 관심을 자꾸만 다른 곳으로 돌리니까 하나님은 고통이라는 것을 통해 우리의 관심을 하나님께 집중하게 하길 원하십니다. 기도하길 원하십니다. 마귀의 음성을 듣고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일어서길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이 찾아오면 하나님께 가까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면 고통으로 인해 차갑고 쓸쓸한 마음으로 고독한 우리의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역전의 복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우리의 고통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셋째, 하나님과 친밀한 연합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사람은 강하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구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대상을 찾지 않습니다. 현대인들이 독신주의자들이 많아지고 신앙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들 돈벌이하니까 자기일 가지고 있으니까 결혼하기 싫은 겁니다. 진정한 사랑의 대상을 찾을 이유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개하고 살고 고양이하고 살고 이구아나하고 살면서 사랑의 대상을 찾지 않고 하나님 없이도 잘 산다고 착각하며 하나님 없이 사는 겁니다.


  그러나 고통을 통해 연약함을 깨달을 때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고 진실 된 사랑의 대상을 찾게 되고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그래서 약함이 축복입니다. 그래서 고통이 축복입니다. 고통을 통해 주님을 만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고통을 통해 주님이 나의 보배라고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 약할 때 강한 되시네 나의 보배가 되신 주

     주 나의 모든 것

     쓰러진 나를 세우고 나의 빈 잔을 채우네

     주 나의 모든 것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


  인간은 능력이 있으면 자기 힘으로 성공을 만들어 냅니다. 무엇인가 성취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오래위에 지은 집과 같습니다.

  여러분 김우중씨 그의 어머니는 굉장히 신앙이 좋으신 분입니다. 감리교 권사님입니다. 월남해서 남대문시장에서 야채 팔며 고된 일 가운데도 새벽기도 한번 안 빠지시고 기도하마자식을 키웠습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세게는 넓고 할일은 많다고 해가며 일 년의 2/3 가까운 시간을 비행기 안에서 보내면서 일은 참 열심히 했는데 그의 마음에 하나님은 없었습니다. 지금 대우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지금 그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현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 신화를 만들어 내고 중동 산막의 신화를 만들어 내고 그런데 그 정주영시의 자녀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삼성? 지금은 저렇게 잘나갈지 모르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합니다.


  하나님 없이 자신의 능력으로 세운 집은 모레위에 세운 집입니다. 그러나 약할 때 하나님 안에 거함으로 세운 집은 반석위에 세운 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연합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연합하기 전에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복들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고통이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게하고 하나님과 연합하게 합니다. 이 고통을 통해 잃는 것 보다 얻는 것이 더 많음을 알아야 합니다. 고통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체험할 수 있기에 고통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고통 중에 하나님과 연합함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소원입니다. 꿈이라고도 하고 이것이 구체적으로 그려진 그림은 지전이라고 합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소원 꿈 비전은 같은 말입니다. 이 소원이 없는 사람은 비참한 사람입니다. 소원은 의욕이고 에너지고 변화의 원동력이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에 소원이 있어야 우리가 움직이게 됩니다. 하나님도 마음에 소원을 가진 자를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빌 2:13에서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든지 그 마음에 소원을 담아두셨는데 우리가 그 소원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에 참된 삶을 살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담아두신 그 소원을 발겨하게 하시기 위해 고통을 주십니다. 고통 가운데 우리 마음에 있는 소원을 불타게 하십니다. 그래서 삶의 변화를 일으키십니다. 주저 않아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십니다.   소경 바디매오가 예수님께서 내가 무엇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실 때 “내가 보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강열한 소원을 말할 때 그의 눈이 떠진 것처럼 내 마음의 강렬한 소원이 나를 움직이게 하고 나를 일어서게 합니다.


  한나에게도 브난나로 인한 고통의 절정이 그녀로 하여금 아들을 갖고 싶다는 강렬한 소원을 품게 했고 그 소원이 그녀를 움직이게 했습니다. 그래서 매일 하나님 전에 나와 기도하게 했습니다. ‘남편의 지극한 사랑을 받고 있느니 됐지 뭐!’하고 현실에 안주하거나 불가능한 일 앞에 포기한 것이 아니라 그는 마음에 강렬한 소원을 품고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고통이 있다면 하나님이 주신 소원을 발견하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변화를 위해 움직이시기 바랍니다. 역사를 움직인 사람들은 보세요. 그들은 한결 같이 고통을 통해 새 역사를 창조한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외모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었지만 노예를 해방시키고자 하는 강렬한 소원이 그를 움직였습니다. 결국 숫한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대통령이 되어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간디는 영국 사람들에게 당한 수모 때문에 인도를 독립시키고자하는 소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인도를 해방시켰습니다. 나의 소원을 물으신다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조선의 독립이라는 김구 선생님의 강렬한 소원대로 해방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고통을 통해 성숙해지고 마음의 강렬한 소원을 품게 됩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한나의 가슴을 격동케 하는 브닌나와 같은 사람이 있으십니까? 오히려 그 사람에게 감사하고 그 고통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움직이시기 바랍니다. 요즘 저에게도 저의 마음을 격동시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새로운 결심을 합니다. 새로운 소원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그 소원을 이루고 당당히 말씀드릴 날이 올 것입니다.


  저는 역전이란 말을 좋아합니다. 스포츠도 일방적인 경기보다는 짜릿한 역전극이 더 재미있습니다. 요즘 인생역전이란 말이 로또 때문에 좀 안 좋은 이미지를 가져와서 안타깝지만 우리의 인생은 역전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반드시 역전되어야 합니다, 로또 1등 당점 되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역전 되어야 합니다, 로또 1등 당첨 비율은 1/800만 이지만 하나님의 복원은 100%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우리의 인생은 역절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아직 게임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끝나기 전까지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우리의 인생을 역전시키시는 분입니다. 고통을 피하지 말고 직면하세요. 고통을 노려보세요. 고통을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나오세요. 그리고 하나님과 친밀한 연합을 이루세요. 하나님께 집중하세요. 그러면 역전할 수 있습니다. 기억하세요. 하나님은 고통을 통해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우리 마음의 소원을 창조하십니다. 고통을 고통스러워하지 마시고 고통을 감사하며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고통을 통해 새 역사를 창조하고 고통을 통해 인생의 역전을 경험하세요. 지금 고통스럽다고 쉽게 포기하지 마세요. 끈기를 가지고 다시 일어서세요. 그리고 힘차게 움직이세요. 그래서 이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큰 은혜와 복을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출처 : 홍이석목사
글쓴이 : 홍이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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