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시작
(행 2:1-4)
2005. 6. 19 늘푸른 주일 낮 설교
공익광고 영상물을 보여준다.
무슨 일을 시작하면서 잘못할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든지 처음 시작을 할 때는 잘해야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그런데 그 다짐을 지켜나가기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님을 우리는 조금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알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변질되는 사람의 마음이 문제입니다. 처음 시작할 때 그 순수함을 잃어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환경이 상황이 여건이 그래서 그래’라고 하면서 우리는 자꾸만 잘못된 모습에 길들여져 갑니다.
저는 목회를 처음 시작했을 때 그 마음을 내가 간직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저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모습이 아닌데 하는 의문 속에 늘 살아갑니다. 성경이 바른 삶의 모습을 말해주고 있고 신앙의 선배들이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고 있고 역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증거하고 있는데 늘 지금 눈앞의 것에만 급급해서 바르게 살지 못하고 있음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하며 살게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교회의 시작. 그 모습대로 교회가 서가고 있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그렇다면 초대교회의 시작은 어땠을까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주님의 마지막 말씀에 따라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사람들로 인해 시작된 예루살렘교회와 초대교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우리는 일년에 한명 전도하기도 힘든데 성령 받은 그들이 예수의 말만해도 하루에 삼천 명씩 회개하고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는데 그때는 엄청난 돈을 들여 만든 건물도 없었고, 교회의 조직이나 기관도 없었고, 예비신자 초청대회 같은 행사도 없었고, 대형 버스를 동원해서 시내 전 지역을 돌며 사람들을 실어 나르지도 않았고. DM410 과정 거치지 않으면 직분자로 세우지 않겠다고 협박하는 목사도 없었는데도 어떻게 그들에게는 엄청난 능력이 있었을까요?
초대교회에는 특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는 예루살렘교회는 간절한 기도와 강력한 성령의 역사라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이 특징이 바로 교회를 출발시켰습니다. 영광스러운 교회의 시작엔 성령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 성령의 역사는 오늘 우리가 간절히 사모해야 할, 그리고 오늘 우리교회가 회복하고 누려야할 교회의 매우 중요한 특징입니다. 힘이 있는 교회, 영향력이 있는 교회, 교회다운 교회는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성령으로 시작하여 성령의 지배를 받는 교회만이 이 시대를 끌고 갈 수 있습니다. 다음 세대를 책임질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교회 그래서 성령의 지배를 받는 교회가 초대교회의 모습이었고 특징 이었습니다.
첫째, 능력의 교회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라고 성령의 임재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급하고 강한 바람이라고 했습니다.
여름철마다 우리나라에 두세 번 영향을 주고 지나가는 태풍을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성령은 강력한 바람. 바로 태풍과 같은 것입니다. 몇 해 전 많은 피해를 입힌 매미 같은 강한 바람. 헤리케인이라고 들어보셨지요? 서인도제도에서 발생하는 강한 열대성 저기압을 헤리케인이라고 하는데 이 허리케인은 미국의 대륙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힙니다. 이 바람이 한번 지나가고 나면 남는 것이 없어요. 집도 날아가고 자동차도 나라가고 나무도 날아가고 다 날려버리는 강령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토네이도라는 것도 아시지요? 토네이도는 회오리바람의 일종인데 이 토네이도가 지나가면 모든 것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떨어지기 때문에 남아나는 것이 없습니다. 영화나 TV를 통해서 많이들 보셨을 겁니다.
성령이 바로 이와 같다는 겁니다. 그런데 태풍이나 헤리케인, 토네이도 같은 바람은 모든 것을 파괴하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 성령의 능력은 파괴의 능력이 아니라 고치시는 능력, 치유의 능력이고 변화의 능력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고치십니다. 잘못된 행동도 고치시고 잘못된 습관도 고치시고 잘못된 삶의 태도를 변화시키십니다. 그리고 잘못된 육신의 질병도 고치십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은 초대교회에 이런 역사들이 일어났습니다.
행 5:16을 보면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령의 강령한 능력으로 여러분의 삶에도 이런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길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잘못된 행도, 언어, 습관이 치유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아직도 버리지 못한 세상적인 더러운 것들이 성령의 태풍이 불어와 다 날아가 버리길 바랍니다. 음란과 방탕과 술 취함과 못된 세상적 방법과 행동들이 고침받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육신을 괴롭히는 못된 병마가 떠나가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를 넘어지게 하고 시험 들게 하는 물질의 궁핍함이 떠나가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문제는 우리가 이 성령을 거스르고 있다는 겁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데 이 변화가 싫어서 성령을 거부하고 사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 믿고 부자 되고 복 받고 출세하라고 하면목이 터져라 ‘아멘’ 하면서 잘못된 삶의 태도를 버리라고 하면 ‘노멘’ 그럽니다. 성령 받고 출세하기는 간절히 원하는데 성령 받고 변화되기를 거부합니다. 그러니 될 듯 될 듯하다가 안 되는 겁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님께 굴복하시기 바랍니다. 괜히 버티고 고집 피다가 한대 얻어터지고 쌍코피 터지지 말고 성령님이 좋은 말로 여러분을 권고하고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고 지배하기기 원하실 때 그 성령님께 여러분의 삶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렇게 보면 위태위태하신 분들이 있어요.‘저러다가 한대 크게 얻어맞지!’싶은 분들이 있다니까요?
여러분의 가정에 어떤 문제가 있든지 성령을 사모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고침 받고 변화되길 축원 합니다. 초대교회의 처음 모습은 능력의 교회였습니다.
둘째, 순결한 교회
성령은 능력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순결함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우리가 성령을 ‘비둘기 같은 성령’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비둘기 같이 온유한 성령의 능력 오셔서♪ 그런 찬송이 있잖아요? 비둘기는 순결하고 깨끗함을 상징하는 새죠? 성령은 우리를 깨끗케 하시고 순결하게 합니다.
오늘 본문 3절에도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라고 했는데 성령을 불에 비유하고 있는데 성령은 불순물을 제거하는 힘도 있습니다. 우리가 바늘 소독할 때 어떻게 합니까? 불에 한번 달구지요? 그게 세균 같은 불순물 제거하는 거 아닙니까? 금광에서 금덩어리 캐면 그거 그냥 습니까? 용광로에 넣어서 불순물 제거하고 순금 만들어 쓰죠?
성령이 마치 불과 같아서 우리를 깨끗케 하십니다. 예루살렘교회는 깨끗한 교회였습니다. 교회의 시작은 깨끗했습니다. 순결했습니다. 더럽지 않았습니다. 이물질이 섞여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교회는 깨끗해야 합니다. 교회는 순결해야 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교회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된 저와 여러분은 깨끗해야 합니다. 순결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간음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세상적인 것들을 가까이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술, 담배, 유행가 이런 것들 자체가 나빠서가 아니라 그 안에는 세상의 더러운 것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가까이 하면 우리가 더러워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담배 피워서 우리의 몸과 영혼이 맑아진다면 피워야지요. 술 먹어서 우리의 삶이 깨끗해진다면 매일같이 고주망탱이 되도록 마셔야지요. 그런데 술 먹고 담배 피워서 깨끗해진 사람이 있습니까? 있으면 좀 모셔와 봐요.
행 5장에 보면 성령 받고 부흥하기 시작한 예루살렘 교회에 이해할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이 하나 등장을 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라고 하는 부부가 땅 팔은 돈을 교회에 다 안 드리고 일부를 숨겼다고 해서 부부가 한날 교회에서 직사하는 무시무시한 사건입니다. 아니 교회가 지금 성령의 능력으로 한창 부흥하고 있는데 이런 사건이 왜 일어납니까? 왜 성경은 좋은 말만 쓰지 이런 겁나는 말을 기록했습니까? 그 이유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땅 판돈 일부를 숨긴 그 마음이 순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순수하게 땅 팔아서 헌금해야지 했는데 막상 땅 판 돈을 손에 쥐고 보니까 그 마음에 사단의 마음이 들어와서 사도들을 속이고 성령을 거슬렀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교회 안에는 더러운 것이 설 수 없음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는 죄 없는 사람만 오는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 있는 사람이 나와서 죄 사함 받고 변하된 삶을 살아가는 곳이 교회입니다. 죄 있는 사람이 죄 없이 되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러나 한번 죄 사함 받은 사람은 죄와 공존해서 살 수없습니다. 지금 죄 사함 받은 여러분은 순결합니까? 깨끗합니까? 아직도 예수 믿는 다고 하면서 죄와 함께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현대인들의 병중에 하나는 순결에 대한 무감각증입니다. 도무 지 깨끗하게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대충 대충 눈속임 해가며 나의 이익을 채우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오늘 우리의 삶의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교회도 지배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삶도 지배하고 있습니다. 정직이라는 말을 찾아보기 힘든 사회입니다. 죄에 대해서 무감각합니다. 죄인 줄 알면서도 죄를 짓도 살아갑니다. 그래서 능력이 없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녔습니다. 이 말은 처음엔 예수 믿는 사람들을 비웃는 말이었습니다. 조롱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이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은 초대교회 성도들의 트레이드 마크게 되었고 점점 세상 사람들 속에 그리스도인처럼 각인이 되면서 진실하고 참된 신앙인을 부를 때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그당 시에는 그리스도인이라 불리 우는 것이 초대교회의 최고의 영광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비슷했습니다, 처음 조선 땅에 복임이 들어왔을 때 예수 믿는 사람들을 놀리기 위해 ‘예수쟁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조선 기독교인들의 자랑이 되었습니다. 예수쟁이라고 불리 우는 것이 영광이 되었습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이 호칭이 영광스러운 호칭이 되고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진정 예수쟁이입니까? 싸움쟁이, 놀음쟁이, 술 쟁이, 연애쟁이, 변덕쟁이, 수다쟁이, 거짓말쟁이 그렇게 불리 우고 있지는 않습니까? 당당하게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나는 예수쟁이다. 말할 수 있는 순결하고 깨끗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오순절 불같은 성령이 초대교회 성도들을 정화시켰습니다. 깨끗케 했습니다. 순결하게 했습니다. 구별된 성도로 만들었습니다. 처음 교회의 시작은 순결함이었습니다.
셋째, 열정의 교회
예루살렘교회, 초대교회의 시작은 열정이었습니다.
본문 4절에 보면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천하시자 시름에 빠져있던 제자들, 예수 믿는 놈들은 다 잡아 죽인다고해서 다락방에 숨어들어 숨죽여 기도하던 그 사람들이 성령의 능력을 받고 거리로 뛰쳐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도저히 입을 벌리지 않고는 참을 수 없어서 복음을 증거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당시 예루살렘에 몰려든 여러 나라의 사람들에게 사도들의 말이 자기나라 말도 들려지는 겁니다. 이때를 기점으로 사도들의 입은 쉬지 않았습니다. 멈추지 않았습니다. 복음에 대한 열정에 사로 잡혀 정말 속된 말로 물불 안 가리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베드로는 그 겁쟁이 베드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고 고향 고기 잡는 일에 돌아간 베드로가 성령 받고 나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잡혀갔습니다. 공회에 끌려가서도 복음을 전합니다. 그 공회의 사람들이 베드로는 무식한 어부인 줄 알았는데 얼마나 똑 소리나고 당당하고 말하던지 할 말을 잃었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예수를 전하지 말라고 한번만 더 그러면 그냥 안 놔두겠다고 그러니까 베드로가 뭐라고 한지 아십니까?
행 4:18-20에 보니까 “18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성경이 완곡하게 표현 되서 그렇지 당시 시대적 배경으로 보면 한번만 더 예수얘기 하고 다니면 죽인다겁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눈 하나 끔적하지 않고 내가 너희들 말 듣는 것 보다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이 옳다. 나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 겁쟁이 베드로가 완전히 예수에 미친 사람이 되었습니다. 복음의 열정에 사로잡혔습니다. 얼마나 담대합니까? 얼마나 자신 있습니까? 얼마나 당당합니까? 이것이 성령의 힘입니다. 성령 받으면 당당해 집니다. 담대해집니다. 그리고 복음의 열정에 사로잡힙니다.
이 성령의 능력을 체험한 초대교회 성도들은 더 이상 핍박을 피해 숨지 않았습니다. 오리려 더욱 당당히 핍박과 맞서 싸우면 복음을 전했습니다. 영혼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고,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불타는 심정으로 가득차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혼구원에 대한 열정이 초대교회의 특징이교 교회의 시작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예비신자 초청대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과연 우리는 그들을 향한 불타는 심정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냥 목사혼자 애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냥 몇몇 사람들만 수고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은 이 행사를 위해 얼마나 기도하고 있으면 얼마나 관심 갖고 있으며 얼마나 사모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은 육신의 질병을 고치기 위해서 물질을 아끼지 않고 씁니다. 그런데 영혼의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물질을 투자하고 있습니까?
성령으로 시작한 교회는 열정이 차고 넘쳤습니다. 여러분은 이 열정으로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장사를 하고 고객을 만나고 직장을 다니고 공부를 하듯 교회를 위해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까? 열정적으로 주님을 섬기고 있으십니까? 신앙생활의 재미를 느끼고 있으십니까?
오순절기를 맞이하여 우리교회가 성도 여러분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초대교회에 모습 처음 시작된 교회의 그 모습을 우리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 발견할 수 있길 축원합니다. 사람을 변화시키고 치유하는 능력 있는 교회, 순결한 교회, 주님을 향한 영혼구원을 향한 열정이 넘치는 교회, 처음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이 오늘 우리교회의 모습되어 불신자를 구원하여 그들을 행복하게 하고 그 행복한 사람들이 모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 다음세대 그 다음세대 또 그다음 세대를 책임질 수 있는 교회 만들어가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시 길 축원합니다. 교회의 처음 그 모습으로 돌아갑시다. Back to the Jerusa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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