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의 삶을 위하여 ③
감사의 열매 2
(레 23:42-44)
2005. 11. 20 늘푸른 추수감사주일 낮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지난주에 이어서 감사의 열매란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지키고 있는 추수감사절은 성경에서 수장절, 초막절, 장막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지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수확과 저장의 절기, 수장절의 측면에서 말씀을 드렸고 오늘은 초막절(장막절)의 측면에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초막절과 장막절은 같은 말입니다. 초막은 풀로 된 막사를 의미하고 장막은 휘장으로 된 막사를 의미하는데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집을 지를 때 이동시 설치와 철거가 간단하도록 풀이나 휘장을 이용해서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7일 동안 초막이나 장막에 거하면서 광야 40년 동안 인도하시고 보호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절기를 초막절이라고 부릅니다. 그 초막절을 지키는 시기가 1년의 농사를 끝내고 추수를 마친 시기이기 때문에 추수감사절이라고도 부르는 겁니다. 그리고 그 수확의 기쁨과 저장의 행복을 기념하는 절기라 해서 수장절이라고도 부른다고 했습니다.
지난주에 말씀을 드린 대로 이 초막절은 하나님이 만드신 절기이고 하나님을 위한 절기입니다. 이 절기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이 절기를 철저하게 지킬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이 절기의 신앙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삶을 인도해 가셨습니다. 그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해서 단순히 추수에만 초점을 맞추어 지냈던 과거의 감사절기와는 달리 초막절의 의미, 그 초막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인지 성경적인 정확한 배경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출애굽의 대한 감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초막절을 강조하신 것은 두 가지 역사적 사건에 의미를 두신 것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출애굽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시의 강국인 애굽(지금의 이집트)에서 440년간 종살이를 하다가 모세라고 하는 지도자를 통해 해방의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이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가십니다. 그때 사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었던 그 출애굽의 사건 기억하고 감사하게 하시기 위해서 초막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 출애굽사건, 애굽의 압제로부터 해방된 사건. 민족의 역사 속에서 이런 때가 있었음을 기억하게 하시기 위해 초막절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런 역사와 지금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오늘 우리가 초막절을 지켜야 합니까? 출애굽사건은 성경의 구속사적 관점에서 보면 죄와 사망의 어두운 권세로부터 우리 인간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구원사건의 모형입니다. 즉 우리가 구원 받기 이전에는 삶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압제받던 삶과 같이 죄의 노예가 되어 죄의 고통 가운데 신음하며 살았던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셨듯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죄에서 권세에서 해방시켜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직장에 다니고 장사를 하고 사업을 하면서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날을 기념하며 감사하는 절기가 바로 초막절 추수감사절입니다. 단순히 추수에 대한 감가가 아니라 그것을 뛰어 넘어 구원에 대한 감사의 절기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된 것이 그들의 군사적 힘이나 물리적 힘, 혹은 투쟁이나 반란을 통해서 쟁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시 아무런 힘도 없었습니다. 엄청난 군사력을 가지고 있는 애굽의 바로와 싸워서 이길 힘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신 5:15에. “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고 선언하고 계십니다. 출애굽사건은 전적인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구원 역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잘나고 똑똑하고 능력이 있고 대단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다 죄인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감히 설 수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은혜를 베푸시어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은혜에 감사하며 이 감사의 절기를 거룩히 주님께 구별하여 드려야 합니다. 구원은 내가 노력하고 싸워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 은혜로 얻는 것입니다. 내가 도덕적으로 완벽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롬 3:24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할렐루야. 아멘.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모든 분들은 어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무조건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신 분들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음으로 내 마음에 모셔 들이고 영접했기에 구원이라고 하는 선물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 처음 교회에 나오신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이 어떠하든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병자도, 살인자도, 강도도, 창녀도 다 용서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을 믿기만 하면 우리에게 구원이라는 값진 선물이 주어집니다. 이 선물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믿는 자, 그분을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도 주십니다. 이 권세도 받으시기 바랍니다. 뭔 소린지 잘 모르셔도 아무것도 안 주매 받으라고 하냐 그래도 그냥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엡 2:8에. "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구원은 선물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큰 선물을 받은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가 넘치는 절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위에 감사를 더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처음 교회에 오신 분들은 정말 참 잘 오신 겁니다. 수지맞으신 겁니다.
초막절의 의미는 구원의 역사에 대한 감사의 의미입니다. 이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날을 잊지 말고 영영히 기억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농경사회를 벗어난 오늘도, 농사와는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도 초막절, 즉 추수감사절을 거룩히 지켜야합니다.
둘째, 광야생활을 인도하신 것에 대한 감사.
초막절의 의미 두 번째는 40년 광야 생활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에 있습니다. 그래서 수 천 년이 지난 지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절기가 되면 집집마다 이 앞에 있는 것 같은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7일 동안 생활을 하던 지 아니면 최소한 식사라도 이 안에서 하고 있습니다. 더 전통적인 사람들은 정말 7일 동안 광야에 나가 초막을 짓고 살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서의 40년은 초라하기 작이 없었습니다. 늘 이동을 해야 했기 때문에 변변한 집 한 채 없이 살았습니다. 그저 밤이슬이나 막아주고 싸늘한 바람이나 막아주는 천막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민족의 아픔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후손들에게 영원히 기억하게 하라는 것이 초막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의 중요한 의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걸어간 광야는 어떤 곳 입니까? 그곳은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입니다. 농사도 못 짓고,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고요. 전갈 같은 독충들과 맹수들의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고요. 도적떼들이 약탈을 일삼는 곳입니다. 정말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 광야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단 한달도 살 수 없는 곳이 광야입니다. 이 광야는 길도 없습니다. 다 거기가 거기 같습니다. 낮에는 40도 이상으로 기온이 올라가 덥고 밤에는 10도 이하로 떨어져 춥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기둥 선선하게, 밤에는 불기둥으로 따뜻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신 것입니다. 또 이 불기둥이 해충과 맹수들, 도적떼의 접근을 막아주기도 했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사막에서 물을 내어 갈증을 풀어주셨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두려운 광야에서 40년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초막절을 지키며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모세는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이렇게 노래합니다. “11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같이 12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바로 광야와 같습니다. 거칠고 메마른 곳을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길이 보이지 않는 곳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광야와 같은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인정하세요. 하나님의 도우심을 인정하세요.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인정하세요.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고 교만하지 마시고 지금 그 하나님의 인도하심 밑으로 들어오세요. 하나님 품으로 들어오세요. 가지고 있던 미천 다 나리고 세상의 풍파에 시달려 갈길 못 찾아 방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삶이 힘들고 고달프고 매일 매일의 삶에 스트레스를 받고 늘 긴장의 연속에서 살고 있으십니까? 그러나 길은 있습니다. 탕자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자 그리고 과감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삶은 회복 되었고 아들의 자격으로 그 아버지의 풍성함을 누리며 살 수 있었던 것처럼 지금 돌아오세요.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세요. 그러면 살길이 열립니다. 참 만족이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회복됩니다.
여러분 이 민족의 역사를 한번 봅시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 살게 된 것이 몇 년이나 되었습니까? 불과 30년 전만 해도 간난해서 대통령이 직접 외국으로 돈을 꾸러 다니는 나라였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들판에서 찔레 꺾어 먹고, 뱀 딸기 따먹고, 아카시아 진달래 따먹고 살았습니다. 불과 30~40년 전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흥청망청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 힘들었던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시절 까맣게 잊어버리고 우리가 대단히 부자나라이고 잘사는 나라인줄 알고 살고 잇지 않습니까? 우리는 지나간 우리 민족아픔을 너무 쉽게 잃어버렸습니다.
오늘 우리 젊은 세대들이 우리민족의 그런 아픔은 아랑곳 하지 않고, 우리나라를 이만큼 살수 있는 나라로 만든 분들의 공로는 전혀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구세대는 빨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습니까? 이 작은 나라. 지구상 어디에 붙어 있는 나라인지 잘 알지도 못했던 우리나라가 그 숫한 어려움 속에서 세계 속에 우뚝 설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새벽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신앙으로 살려고 발버둥쳤던 분들로 인해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는데 그 은혜를 망각하고 그 순수한 신앙 다 잃어버리고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고 믿음 없이도 살 수 있다고 교회 떠나고 신앙 져버리고 말씀과는 무관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느냐는 겁니다.
추사감사절기는 바로 이런 잘못된 우리의 신앙을 바로잡고 광야와 같은 우리 민족의 삶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여러분 명심하세요.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에 가능한겁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셨기에 가능한겁니다. 누가 뭐라 해도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입니다. 우리가 무슨 힘이 있습니까? 자원이 풍부하길 합니까? 인구가 많길 합니까? 여러분 우리보다 훨씬 못하는 중국이나 인도 같은 나라가 세계무대에서 큰소리치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간단합니다. 인구가 많아서 그렇습니다. 물건을 하나 팔아도 우리나라에 팔면 잘 팔아야 4000만개이지만 중구에 팔면 못 팔아도 1억 개 팔 수 있습니다. 인구가 12억이 넘으니까 인구의 10%만 사도 1억 개. 그런데 우리나라는 온 국민이 다 사줘도 4000만개밖에 안됩니다. 그러니 여러분 같으면 어디에 가서 장사하시겠습니까? 예, 중국요. 그래서 중국이 힘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세계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이름을 날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금도 알게 모르게 나라와 민족을 위해 새벽을 깨우며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 때문에 애굽이 복을 받은 것처럼 이 추운 날씨에 새벽 공기를 가르며 열심히 기도하신 분들 때문에 20일 동안 한번도 새벽기도 나오지 않은 분들도 복 받은 줄 아시고 그분들께 감사하시고 예배 끝나면 업어드리세요. 그리고 이 감사의 절기에 우리의 지나온 과거를 힘들고 외롭고 처절했던 우리민족의 역사속에 함께하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감사절을 지키는 이유입니다.
셋째, 영원한 처소에 대한 약속입니다.
초막절은 출애굽사건에 대한 감사. 그리고 광야 40년의 삶을 기억하는 절기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 초막이 주는 매우 중요한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초막이 상징하는 중요한 의미는 초막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단 한번도 견고한 집을 짓고 살지 않았습니다. 초막에서 살았습니다. 쉽게 만들고 쉽게 걷을 수 있는 것이 초막입니다. 광야에서의 초막은 영원한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일시적으로 머물던 곳일 뿐입니다.
무엇을 위미합니까? 이 땅에서의 삶은 모든 것이 일시적인 것이라는 겁니다. 이 땅위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우리가 뿌리를 내리고 영원히 거할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야할 곳은 따로 있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거할 세계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곳을 향해 달려가는 나그네일 뿐입니다. 나그네가 집이 필요합니까? 재산이 필요합니까? 명예가 필요합니까? 나그네는 그냥 나그네일 뿐입니다. 재물도 명예도 지식도 필요치 않습니다. 우리는 나그네입니다. 우리는 그저 이 땅을 거쳐 갈 뿐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걸 할 곳은 이 땅이 아니라 천국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 투자를 해야 합니까? 잠시 머물다갈 이 땅에 투자를 해야 합니까? 아니면 영원히 거할 천국에 투자를 해야 합니까?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투자하며 살고 있으십니까? 어디에 소망을 두고 살고 게십니까? 마 13:44-46에서 주님은 이와 같은 비유를 하십니다. “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이 사실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고, 헌금을 많이하고, 교회를 위해 충성 봉사를 잘 하는 것도 좋은 믿음이지만 더 중요한 믿음, 우리가 정말 가져야할 좋은 믿음은 영원한 나라에 대한 소망입니다. 천국에 대한 확신입니다. 여러분은 이 소망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은 천국을 확신하십니까? 이런 소망 이런 확신을 가진 사람은 이런 좋은 믿음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서의 소유를 초월하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돈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소유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보람되게 살 수 있습니다. 자신과 타인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유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 소망, 이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초막절의 의미입니다.
우리를 죄 가운데 구원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지금까지 역경과 고난의 순간순간 간섭하시고 보호하여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영원한 나라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 드리는 복된 추수감사절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맺어야할 감사의 열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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