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복음을 위하여 (롬1:2~7)

하나님아들 2012. 9. 18. 13:52

복음을 위하여

 

롬 1:2~7

 

   옛날 시골에서 추운 겨울날 양지바른 마루에 앉아 녹아내리는 눈을 보고 있노라면 이파리 하나도 남지 않은 감나무 위에서 까치가 노래를 하는 소리를 듣곤 했습니다. 그럴 때면 어르신들 하시는 말씀이 “오늘 편지가 올려나, 무슨 좋은 소식이 있을까”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사람들은 좋은 소식을 기다리며 삽니다.

 

   중동에 나가서 땀 흘리고 고생하는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던 부인에게 전보 한 장이 날아왔습니다.

   “여보! 나는 잘 있소. 가족들은 모두 평안하오? 잠언 11장24절로 인사를 대신하오.” 부인은 얼른 성경을 찾아 읽었습니다.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부인은 충격으로 잠시 졸도했습니다. 이혼을 결심하고 부랴부랴 서둘러서 답장를 보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랑하는 남편에게서 왔던 전보에 큰 미스가 있었습니다. 남편이 말하려고 했던 말씀은 잠언 11장25절이었는데 한절 위를 본 것입니다. 25절 말씀은 이것입니다.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와 같으니라.”

 

   여러분 무슨 좋은 소식을 기다립니까? 군대 간 아들에게서 편지가 오는 것입니까? 시험보고 기다리던 합격 통지서가 날아오는 것입니까? 문자메시지로 프로포즈하고 기다리던 애인에게서 ‘결혼 승낙’이라는 메시지가 날아오는 것입니까? 백화점 경품에 당첨됐다는 통보를 받는 것입니까? 아니면 로또복권 구입하고 당첨되기를 바라며 대박맞는 돼지꿈을 꾸는 것입니까?

   여러분, 예수님 믿고 구원 받아 은혜로 사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이 가장 좋은 소식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만 생각하면 행복해지고, 예수님만 바라보면 즐거워지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좋은 소식은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늘로부터 어느 날 갑자기 종이 한 장이 날아들어 반갑게 펴 보았더니 “아무개야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글이 있습니다.

   어느 날은 하늘에서 커다란 선물 꾸러미가 날아들었습니다. 펴 보니 세상에서 보지 못했던 가장 빛나는 보석이었습니다. “아무개야, 너에게 주는 나의 선물이란다.” 이쯤 되면 해외 토픽감이겠지요.

   그 후 이번에는 하늘에서 사람인데 사람과는 또 어딘가 다른 어떤 분이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집에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사랑하는 아무개야, 내가 너를 구원하러 왔단다. 천국 비자를 네게 주마. 내가 부를 때 너는 이것만 가지고 오거라 천국에서 만나자꾸나!”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보다 더 좋은 소식이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사도바울은 사랑하는 로마의 교인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보았던 대로 편지글에는 먼저 발신인의 소개가 들어갑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로 부름 받은 자이며,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은 자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복음을 위하여 산 사람이었습니다.

 

1. 편지를 받는 대상은 이방인인 로마인입니다.

 

   이제 편지를 받는 대상이 언급됩니다. 그것은 7절에 있습니다. 2절부터 6절은 하나의 삽입구입니다.

   (7절)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 가 편지를 받는 대상입니다. 편지로 복음을 전하려는 대상이 로마인입니다. 당시 로마라고 하면 세계 최강대국입니다. 정치, 군사, 도로, 상업, 문화의 본산지입니다. 그 자존심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미국 사람들이 이런 자존심과 교만함을 갖고 있다고 보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쉽겠습니까? 과연 그런 로마인에게도 복음이 필요할까요?  ]

 

   요즘 전도하기가 힘들다고 하지요. 전도하려들면 대뜸 하는 말이 “당신이나 잘 해!”하는 말을 듣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불신자들이 교회의 분열과 종종 일어나는 도덕적인 문제를 더 잘 알고 있고, 그런 것으로 물고 늘어지기 때문에 할 말이 없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전도하려는 대상이 나보다 부자이거나, 지식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면 더욱 기가 죽어 전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가장 콧대 높은 로마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이 들어야 합니다. 복음의 시각으로 보면 가난하거나 병들어서 불쌍한 것이 아니라 예수 안 믿어서 불쌍한 것입니다. 복음 안에서 자기 정체성이 분명하면 담대하고 행복할 뿐 아니라 믿지 않는 자를 보면 불쌍해서 웁니다. 이런 복음의 확신이 있기를 바랍니다.

 

2. 복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럼 이 복음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입니까?

   (2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 복음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미리 선포하신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사도들이나 천사들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계시하시고 맡기신 것입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고,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부활하셨습니다. 죄와 사망, 율법의 저주와 사단의 노예가 되어 영적으로 죽은 죄인들을 예수님의 보혈로 의롭다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은 성경입니다.

   (2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하나님이 사도들에게 계시하신 복음은 이미 구약 성경에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일은 구약에 예언된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기에 복음을 알고 누리려면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의 부흥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부흥을 사모합니다만 교회 역사를 보면 부흥회의 핵심은 말씀에 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이렇게 지적합니다. “교회사에 있어서 쇠퇴기는 언제나 말씀의 선포가 약했던 시기였다.”

   구약시대의 부흥회는 아주 단순했습니다. 율법책을 낭독했을 뿐입니다.

   느헤미야 8장에 나타난 에스라 선지자의 부흥회는 나무 강대상을 만들어 놓고 연일연야 율법 책을 낭독하는 부흥회였습니다. 새벽, 곧 이른 아침부터 정오까지 하루 여섯 시간씩 말씀을 읽고 해석해주었습니다. 말씀 축제였습니다. 말씀 부흥회, 거기에 성령님의 강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규장출판사의 여운학 장로님은 평생을 말씀 묵상으로 살아오셨습니다. “말씀이 너무 좋아서”라는 그분의 저서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살아온 30년은 마치 꿈길 같은 시간들이었습니다. 나의 혈관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흐르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눈만 뜨면 달고 오묘한 말씀을 먹고 싶어서 안달이었던 시간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성경을 암송하고 묵상하는 시간은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한 시간이요, 다른 무엇에 행여 빼앗길까 두려운 복된 시간입니다.”

   이런 말씀의 회복이 여러분에게도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부흥은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부흥의 역사는 한 개인의 새롭게 됨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사회, 국가 그리고 역사를 새롭게 하는 능력입니다. 심령의 부흥, 교회의 부흥은 나라를 부흥케 하는 원동력이 되었음을 역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1894년 청일전쟁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평양은 기생과 환락의 도성이었답니다. 그런데 1907년 평양은 거룩함으로 불타는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놀라운 변화가 가능했을까요? 부흥운동이 일어나면서 일본의 식민 통치 하에서 가난과 상처로 멍든 민족을 치유하고, 꿈을 회복시켜 주었던 것입니다.

   그 때 평양에서 부흥회를 하면 한 주간, 아니 어떤 때는 한 달간도 했답니다. 전라도, 경상도에서 쌀자루를 메고, 이고 지고 평양까지 왔으니 한 주간 하고 가기는 너무 아쉬웠던 겁니다. 구름떼처럼 모여들어서 말씀을 듣고, 가슴을 치며 회개하고, 조국을 위해 하나님께 부르짖고 뜨겁게 기도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한국교회는 부흥을 통하여 절망가운데 빠져 있는 민족과 백성들에게 소망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3. 복음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어떤 분입니까?

   (3절)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예수님의 인성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혈통을 따라 오셨습니다. 다윗의 혈통은 왕통입니다만 더 중요한 의미는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4절)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예수님은 다윗의 왕통을 잇는 인간으로 오셨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에게는 신성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성령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뒤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appoint)되었습니다. 복음을 받은 자는 복음 전할 직분을 받게 되었습니다.

   (5절)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직분을 먼저 받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받은 뒤에 더불어 직분을 받게 된 것입니다.

   아무 공로 없이 받은 사랑을 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는 우리가 회개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도 없다는 것이 성경의 진리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와 문제를 해결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99%하셨고 내가 1%해야 한다면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온전히 주님이 하신 100%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받고 나서 사도의 직분을 받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도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직분이란 교회 안에서의 직분을 포함하지만 더 나아가서는 결국 모든 직업을 포함하는 소명과 사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직분, 직업, 소명, 사명은 무엇입니까? 저는 교회 안에서 목사의 직분을 받았고, 여러분들은 장로 혹은 안수집사, 권사, 서리집사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이 복음은 특정인을 위하여 있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있습니다.

   원래 바울은 애국자이며 민족주의자였기에 자기 민족을 사랑했으며 민족이 구원받기를 바랐습니다. 동시에 그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 역시 열방을 향하여 복음을 전할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4. 복음의 목적은 믿음의 순종입니다.

 

   (5절)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되고 살아 있는 믿음은 그 안에 순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대상이 예수님이시기에 평생 주님께 순종으로 이끕니다. 날마다 순종하지 않으면 사단의 밥이 되기 쉽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칭찬을 받고 우쭐대고 있을 때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비밀스럽게 꺼내 얘기해 주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베드로가 이번에도 칭찬 받을 줄 알고 “예수님,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러지 마세요.” 인간적으로 너무 사랑스런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베드로를 향하여 “사단아 뒤로 물러나라!” 명하셨습니다. 날마다 주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사단의 밥이 되기 쉽습니다.

   복음을 듣고 순종할 때 신앙에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복음을 듣고 술, 담배, 이성, 잘못된 습관을 끊어야 합니다. 수없이 결심하고서도 끊지 못하는 것은 믿음에 이끌려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순종할 때 능력이 나타납니다.

   주님은 복음으로 우리를 부르셔서 당신의 소유를 삼으셨습니다.

   (6절)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우리를 주님의 것으로 부르셨습니다. “넌 내꺼야!”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사43:1)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가 “주님의 소유”라는 확신 가지면 복음으로 담대할 수 있습니다.

   인기 있고 힘 있는 사람이 불러줘도 좋은데 우리 주님이 “너는 내 소유다!”라고 부르신다면 어떠시겠습니까? 이런 복음의 확신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속했다는 것은 놀라운 특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가지신 모든 영광과 특권에 동참하고, 그 특권을 누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 속한 자가 된 것은 동시에 의무와 책임도 가져다줍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속한 자로서 힘써야 할 의무는 주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소유주가 주님이시고 나는 그의 종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사치할 수 있어요? 과소비할 수 있어요? 직장에 다니신다면 직장을 예배당처럼 생각하십시오. 생업도 주님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장사를 해도 거짓말하지 못합니다. 내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회사 사장은 자기 집무실에 예수님 의자가 따로 있다고 합니다. 소유권을 주님께 맡기는 신앙고백적인 행동입니다.

 

  이제 결론으로 이 편지를 받는 수신자를 다시 살펴봅니다. 수신자는 오늘 우리도 포함됩니다.

  (7절)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로마 교인들을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고 말합니다. 여러분도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는지 아십니까? 지금 우리가 가진 것 중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입니까? 빈손으로 세상에 온 우리가 아닙니까?

   또한 교인들을 성도라고 했습니다. 성도란 하나님을 위하여 구별되었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보혈로 씻으시고 정결케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보실 때 악인으로 보시지 않고 이미 용서받은 의인으로 보십니다. 이것이 우리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지금도 자주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죄에 대하여 정죄하시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미래에 지을 어떤 죄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빌고 있습니다. 거저 주시는 은혜의 선물을 받은 마음에는 평강이 넘치게 됩니다. 우리 같은 죄인이 이 땅을 살아가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입니다.

 

   아무리 들어도 식상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를 살맛나게 하고 기쁨을 주고 힘을 더해 주는 소식, 그것이 은혜의 소식이요, 복음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은혜와 평강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도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주님이 주시는 복음의 은혜를 받아 누리고, 그 안에서 평강을 누리며, 복음을 위하여 사는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바우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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