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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요한계시록1장9~16절(요한이 밧모 섬에 본 예수님)

하나님아들 2018. 8. 28. 22:08

본문 : 요한계시록1장9~16절

제목 : 요한이 밧모 섬에 본 예수님

요한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 유배 되었을 때,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하신 일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요한에게 주어진 것이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계시하고 있는 책입니다.

 

첫 시간(1장1~8절)에서는

① 이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고,

② 이 계시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신 계시로,

③ 반드시 속히 될 것이고,

④ 하나님은 모든 계시의 근원이시며, 계시의 전달 경로를 나타냅니다.

하나님→예수 그리스도→천사→요한→독자

⑤ 그 분은 현재(現在)과거(過去)미래(未來),

알파오메가가 되시는(8절) 영원하신 분이시고,

‘충성된 증인’이셨고, 부활로 만왕의 왕이 되셨고,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시고,

우리를 그의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벧전 2:9).

⑦ 이 위대하신 분이 영광과 권능과 심판주로(구름을 타고)

우리에게 다시 나타나실 것입니다(7절).

⑧ 요한은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고,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요한이 받은 계시는 소아시아 지방에 있었던 일곱 교회(일곱 금촛대)에 보낼 것이었습니다(11절).

일곱 교회에 써 보낸 내용은 2, 3장에 자세하게 나옵니다.

 

오늘 본문은 요한이 교회 문제를 다루기 전에,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먼저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계시를 받은 장소와 시기를 밝히고, 성령의 감동된 가운데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요한에게 보여준 예수님을 기록합니다.

우리에게 보여주신 예수님을 우리가 묵상하면서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1. 주의 날(9~10절)

1) 요한이 밧모 섬에 있을 때(9절).

[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나 요한은. - 요한은 다시금 자신을 밝혀,

하나님과 자신과 수신자들 사이의 관계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요한은 본문에서 자신과 수신자의 관계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患難)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라고 하였습니다. '형제''동참하는 자'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는 '형제'인 까닭에 '동참하게 된다'는 인과 관계를 드러냅니다.

 

한편 '예수의'는 문자적으로 '예수 안에서'란 의미로 '주 안에서'란 바울의 사상과 상통하며, 문법적으로는 '환난'과 '나라'와 '참음'의 세 말에 공통적으로 연결되어 '환난'과 '나라' 그리고 '참음'예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시사합니다.

여기서 '환난(患難)'은 그리스도의 명령에 대해 온전히 충성할 때 나타나는 고난(苦難)을 가리키며(요16:33; 행14:22; 딤후3:12),

'나라'는 메시야적 통치의 축복을 말하며,

'참음'은 충성된 자들에게 요구되는 적극적인 인내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요한도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같이 축복을 기다리는 가운데,

환난(患難) 속에서 인내(忍耐)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요한은 복음 전파에 대한 박해로 말미암아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도미티안 황제 때 에베소 지방에서 전도하던 중 밧모섬에 귀양갔다가 후에 귀환(歸還)하였다고 역사가와 교부들이 전하기 때문입니다.

 

2)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10절).

“[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주의 날'은 문자적으로 주께 속한 날을 의미하는 것으로,

'안식후 첫날'(막 16:2; 눅24:1; 요20:19; 행20:7)

혹은 '매주일 첫날'(고전16:2)과 같은 뜻이며,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유대교의 안식일이었던 토요일이 사도 시대부터 안식일 다음 날인 주일로 대치된 것을 가리킵니다(요20:19; 행20:7; 고전16:2).

한편 '성령에 감동되어'는 문자적으로 '내가 성령 안에 있었다'는 뜻으로

이는 단순히 성령을 받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황홀한 상태에 있게 되었음을 암시합니다(4:2; 17:3; 21:10; 행10:10; 11:5).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나팔소리'구약 시대에 백성을 불러 소집하거나 군사적으로 경고할 때(겔33:6), 전쟁 때(겔7:14), 그리고 특별한 의미로 절기 때(레23:24)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한 징표로 나타납니다(마24:31; 살전4:16).

본서에서 70회나 사용되며 종말론적인 특성을 나타내는 본문의 '나팔소리'심령(心靈)들을 일깨우는 천사(天使)의 음성(音聲)으로 이해됩니다.

 

2. 하나님 주신 명령(11절)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일곱 교회에 보내라’하십니다.

“[11]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써서'즉각적인 이행을 촉구하는 표현입니다.

본서에서 12회나 반복되어 사용됨으로 본서의 기록이 하나님의 권위로 되었음을 시사합니다.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 본문에 제시된 교회의 명칭은 1:4에서 언급된 '일곱 교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각각의 교회에 보내진 특별한 메시지는 2,3장에서 동일한 순서로 나타납니다('일곱 교회'에 대해서는 2,3장의 주석 참조). 특별히 기록된 말씀을 일곱 교회에만 보내라고 한 것은 그 도시들이 소아시아 중서부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며 동시에 일곱 교회에 대한 메시지가 보편적으로 모든 교회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3. 요한이 본 예수님(12~16절)

1) 일곱 금 촛대를 보았습니다(12절).

“[12]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요한이 처음으로 본 것은 슥4:2의 환상과 비슷한 일곱 금 촛대로 여기서

'촛대'는 세워놓거나 달아메는 '등잔불'을가리킵니다( 출 25:31; 왕상7:49; 슥4:2).

'일곱 금 촛대'는 스가랴서에서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반면에(슥4:2),

본문에서는 수신자들인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와 나아가 전 세계의 보편적인 모든 교회들을 나타냅니다(20절).

일곱은 완전(完全)을, 금은 신성 혹은 믿음을 가리킵니다.

 

2)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있었습니다(13절).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인자 같은 이'란 단7:13,14을 반영한 것으로 계시자이신 그리스도의 '인성'을 고양시켜 표현한 것입니다(행7:56).

요한은 이 표현을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인성은 물론 영광으로 고양된 그리스도의 모습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성전의 촛대 사이로 움직이시는 것은

그의 대제사장적 임재교회의 머리되심을 시사합니다.

 

이는 교회 중에 혹은 성도에게 함께 거하신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마18:20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엡1:23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요14:18~20 “[18]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20]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습니다. 교회 중에 계신 그리스도를 인자 같은 이라 함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되 마치 성육신의 원리와 흡사하게 우리 인격에 온전히 함께 하심을 시사합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거룩한 신성으로 성도와 함께 하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골2:9~12절).

이 모습으로 나타나심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요14:20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하신 것처럼 우리가 그의 함께 하신 임재를 경험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에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임재가 주는 행복감처럼 은혜로운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임재를 경험하시고 싶으십니까?

주님을 사랑하시고 그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 때 인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처럼,

우리는 주님을 친히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2) 그는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있습니다.

'발에 끌리는 옷'은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이 착용한 예복(禮服)으로(출28:4;레16:4;사6:1)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과 그의 권위와 위엄을 시사합니다.

이는 대제사장의 옷차림입니다(출28:4, 8, 레16:4).

그런데 왜 대제사장의 상징으로 에봇이나 흉패석류금방울 등 여러 모습이 있는데 그 중에 발에 끌리는 모습으로 나타나셨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구약시대 대제사장의 옷이 발에 끌렸던 것은 하나님이 계신 거룩한 장소에서 부정의 상징인 인간의 발이 보여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좌 주위에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스랍 천사의 모습 역시 두 날개로 발을 가리는 형태였습니다.그런데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왜 자기 발을 덮는 그 모습으로 나타나셨을까요? 그것은 우리의 죄를 덮으사 가리워 주시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사랑을 나타낸 것입니다.

처음에는 ‘나는 너희와 함께 있노라’ 하시더니,

이제는 ‘나는 너희들의 죄를 다 용서했다 그 뿐 아니라 지금도 아버지 우편에서 너희들의 자범죄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단다’ 하시는 모습입니다.우리가 지금도 늘 넘어지고 쓰러지지만 주님께서는 그것을 다 덮기를 원하십니다. 요일2:1,2 “[1]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2]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하였습니다.혹시 자신의 죄 때문에 방황하시는 분은 안 계십니까?

이 시간에 주님의 은혜로 덮어주심이 믿어지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이미 죄 값을 갚으셨지만,

우리 마음속에 그 사실이 믿어져서 참된 자유를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참된 양심의 자유를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성 까지도 처리하시고자 다가오십니다.

(3) “가슴에 금띠를 띠고”라고 하였습니다.

이 또한 대제사장 혹은 왕의 예복의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출28:8; 29:5) 권세를 가지신 메시야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이렇듯 요한은 구약성경에 묘사된 대제사장왕의 모습을 빌어,

그리스도의 위엄(威嚴)과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신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왕의 모습입니다(단10:5-6).

그런데 왕의 모습을 면류관을 썼거나 홀을 쥐고 있거나 옥좌에 앉아 있거나 얼마든지 다른 형태로 묘사할 수 있음에도,

가슴에 금띠를 띤 형태로 소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슴은 마음의 위치로서 신앙이 깃드는 종교의 좌소 이면서,

조직신학 인죄론을 보면 죄의 좌소 이기도 합니다.

금(金)은 불변의 상징으로 믿음이나 신성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단순한 금이 아니고 금의 띠입니다.

띠는 자세나 통제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겸손으로 허리띠를 동이라고 했습니다(벧전5:5).

그러므로 가슴의 금띠를 띠셨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죄(罪)자아(自我)

세상(世上)육신우리 원수인 사단까지도 다스려 주신다는 의미입니다.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금이 상징하듯 날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왕으로 온전히 다스려 주십니다.

그러면 그 어떤 마음도 세력도 다 다스려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을 다스려 주시기를 원하시는 모습입니다.

3)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았습니다(14절).

[14]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1)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라고하였습니다. 본문은 단7:9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단7:9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여기 머리생각이라면, 머리털은 그 결과를 가리키는 행동입니다.

성경에서 흰 색깔은 항상 '권위(權威)''영광(榮光)''순결(純潔)'을 상징하기에

본문은 그리스도의 성결과 영원성 혹은 그의 영원한 신성을 상징합니다(사1:18).

*사1:18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양털도 희고 눈도 힙니다.

양털도 그렇지만 이스라엘에서 눈은 고산지대에서나 볼 수 있는 것으로 사철 만년설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성도를 영원히 성결하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성 까지도 처리하시고자 다가오십니다.

 

(2) "그의 눈은 불꽃같고" 라 했습니다.

이는 단10:6을 반영한 것으로 그분의 전지성으로 모든 악을 꿰뚫어 아시는 날카로운 공의의 눈을 상징하며(Vincent) 아울러 승리로 재림하실 그리스도의 심판을 시사합니다.

*단10:6또 그의 몸은 황옥 같고 그의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의 눈은 횃불 같고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의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

여기 횃불이란 기드온의 횃불처럼 어둠을 밝히는 특성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눈이 불꽃 같다란 사물의 본질과 인간의 마음까지도 꿰뚫어 보시는 그리스도의 신적 통찰력과 냉엄한 공의를 나타냅니다(렘17:10).

*렘17:10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사실 인간은 이 불꽃같으신 그리스도의 통찰력 앞에서 그 어떤 죄도 숨길 수 없습니다.

민32:23너희 죄가 반드시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전지전능하사 불꽃같은 눈으로 죄의 잔재를 깨닫게 하사,

처리하여 주시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마7: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하신 것처럼 주님의 밝은 눈은 우리 속의 들보를 빼어주십니다.

그것은 성도에게서 죄악의 잔재까지라도 찾아내어 온전히 수술하여 주시기 원하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잠재한 죄악의 잔재마저도 처리하시길 원하십니다.

 

4) 그의 발은 풀무 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다고 하였습니다(15절).

“[15]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1) “그의 발은 풀무 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라고 하였습니다.

'빛난 주석'은 분명히 알 수 없으나 일반적으로 '금 같은 청동' 혹은 '양질의 합금이나 놋쇠'로 이해됩니다(계2:18).

그리스도께서 빛난 주석의 발을 가지셨다는 사실은 초림 때에 '십자가에 못 박힌 발'과는 달리 재림 때에는 영광과 권능으로 오셔서 모든 더러운 무리들과 반대자들을 밟아 심판할 것을 상징합니다(단10:6).

*단10:6또 그의 몸은 황옥 같고 그의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의 눈은 횃불 같고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의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

 

고대 시대의 원수를 밟는 발은 원수를 굴복시키는 승리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원수는 그 발아래서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내 원수로 발등상이 되게 할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시110:1) 하셨습니다. 그런데 풀무 불에 단련한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정금을 위해 단련하듯 연단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주석놋쇠로도 불려지는 것으로 아주 강인한 쇠로서 성전 뜰의 여러 기구들의 재료로서 이는 죄악을 제하는 심판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이상의 의미를 생각할 때 이 모습은,

일차는 장차 악인을 심판하실 그리스도의 모습이요,

다음은 성도에게서 왕 노릇하는 죄악의 잔재와 자아에 대한 그리스도의 강력한 심판을 뜻합니다.

그래서 우리 속에서 왕 노릇하는 자아의 세력을 깨뜨려 겸손과 순종의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은혜를 받으면 기름과 같이 온유해집니다.

그러므로 환경 속에서 더욱 낮아져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예수님은 우리의 완악함을 깨뜨리시를 원하십니다.

 

(2)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했습니다.

여기 물은 성령이요, 많은 물소리는 그 풍부함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거대한 은혜의 폭포를 시사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거대한 은혜의 폭포로 계시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그와 같이 충만한 은혜를 주시기 원하신다는 묘사입니다. 얼마나 우리에게 풍성한 은혜를 주시기를 원하셨으면,

거대한 폭포소리로 나타나셨을까요?

그래서 요1:16~17 “[16]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17]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은혜 받기를 얼마나 원하시면,

시기하시기까지 사모하신답니다.

은혜 받게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으신 우리 주님의 마음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에게 더욱 넘치고 넘치도록 은혜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예수님은 우리에게 풍성하신 은혜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5)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고 하였습니다(16절).

(1)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했습니다.

'그의 오른손'권세있는 능력 혹은 보호와 안전, 권능을 상징합니다(출15:6; 사41:10; 행2:33).

그리고 '일곱 별''일곱 교회의 사자'를 뜻하며(20절),

더 나아가 전 세계에 흩어진 모든 교회의 사자들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본문은 일곱 교회 즉 모든 교회가 그리스도의 영광과 보호하심 가운데 있음을 시사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강한 손으로 붙드셔서 귀하게 쓰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그대로 나타내십니다.

주의 사역자들은 준비할 사항이 잘 준비되면 하나님께서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신앙훈련 잘 받고 성경을 많이 공부하면서 한 명을 맡겨도,

그 일에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더 맡기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부리려는 자세가 아니라 쓰임 받는 자세를 가지면,

하나님께서 놀랍게 나타나셔서 일을 하십니다.그런데도 하나님께 붙들림을 받는 데는 소홀히 하고,

하나님만 원망하고 있다면 문제가 어디에 있는가 살피시기 바랍니다.

정말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 그에게 붙들림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오직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놀라운 일을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세처럼 엘리야처럼 사도 바울처럼,

이 시대에 필요한 인물로 쓰임받기를 원하십니까?

주님은 그것을 우리보다 더 원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강하게 들어 쓰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2)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했습니다.

이는 신,구약 성경에서 흔히 사용된 비유입니다(사11:4; 49:2; 눅2:35; 엡6:17; 히4:12).

혹자는 '날선 검''율법과 복음'의 양면으로 해석하기도 하나,

본문은 단순히 날선 검의 심판적 기능을 묘사한 것으로,

만국을 심판하시는 메시야의 심판권을 시사합니다(19:15; 살후1:8).

여기 검(劍)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요(엡6:17, 히4:12),

*엡6:17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히4:12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은 음식을 먹는 곳일 뿐 아니라,

마치 꿀벌과 같이 은혜로 소화된 말씀을 토하는 곳입니다.

좌우란 흔히 분별을 암시하는 용어였습니다(욘4:11, 출2:12).

우리가 좌우를 분별할 수 있다면 현명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좌우 검이 날이 섰더라 했습니다.

삿3:16에도 죄우의 검은 예리함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좌우에 날선 검은

모든 실상을 드러내는 지혜(知慧)지식(知識)진리의 말씀임과 동시에,

성령으로 충만 된 은혜의 말씀을 가리킵니다(히4:12~14).

이 시간에도 우리 주님은 입에 날선 검으로 나타나셔서 우리의 생각과 잘못된 사고와 선지식과 고정 관념과 육신에 속한 감정까지도 다 처리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골3:10의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로 만드시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은혜 받아 온전히 변화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우리의 사상과 생각까지도 변화시켜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3)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했습니다.

'얼굴'은 환상 전체에 대한 결론적 묘사로 보입니다.

이것은 마치 과거에 변화산에서 순간적으로 체험한 그리스도의 영광의 모습과 유사한 것으로(마17:2; 막9:3) 그리스도의 신성한 영광과 우월함을 시사합니다.대개 얼굴은 마음이 표현되는 곳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얼굴을 해라고 하지 않고 해가 비취는 것 같다라고 한 것에 유의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해로 표현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가 비취는 것 같다고 한 것은 어떤 메시지를 담고자 함입니다. 여기에는 약 두 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주님과 우리 성도와의 관계입니다.

즉 우리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힘 있게 비취는 것 같았다란 단순한 빛줄기가 아니라,

이것은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의 강한 힘을 받고 있음을 뜻합니다.

이것은 당신의 사랑하는 성도들로 인해 너무나 좋으셔서 몸을 가눌 수 없어 하시며 너무 기쁘셔서 그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나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습3:17에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하셨습니다.

엡1:12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라고 했습니다.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주님의 현현이 늘 그러하시듯 이 모습은 자기 백성을 해와 같이 밝게 하여주실 것을 시사함니다.

그래서 마13:43에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셨습니다.

여기자기 아버지 나라라 하신 것을 유의하셔야 합니다.

아버지는 사랑의 극치입니다.

그리고 나라라 했으니 우리들은 하나님의 왕자와 공주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처럼 사랑의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그렇게 환한 얼굴로 기뻐해야 합니다. 이런 아버지가 계신데도 아직도 어둡게 살아갑니까?

그러므로 은혜와 복을 주셔서도 그렇지만 하나님만 생각해도 해와 같이 빛날 수 있는 스데반과 같은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본의 아니게 우리의 마음과 얼굴이 얼마나 어둡습니까?

이 지상의 환경이 너무나도 악해서 우리의 마음은 늘 찌들고 밝을 날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 같은 강력한 주의 은혜로 우리를 해처럼 밝게 살게 해 주시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 주셔서 아버지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 은혜와 복을 주셨는지 경험하게 해주십니다.

이 경험은 참으로 강력해서 세상의 그 어떤 근심도 다 불식시켜 줍니다.

그래서 날마다 기뻐하며 춤을 추며 살아도 부족하도록 만들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해와 같이 밝게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요한은 성령이 감동 된 가운데서 나타나 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 그대로 기록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에게 큰 교훈과 소망을 주십니다.

(1) 일곱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2) 그는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성 까지도 처리하시고자 다가오십니다. (3) “가슴에 금띠를 띠고”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을 다스려 주시기를 원하시는 모습입니다.

(4)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라고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도를 영원히 성결하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성 까지도 처리하시고자 다가오십니다.

(5) "그의 눈은 불꽃같고" 라 했습니다.

성도에게서 죄악의 잔재까지라도 찾아내어 온전히 수술하여 주시기 원하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잠재한 죄악의 잔재마저도 처리하시길 원하십니다.

(6) “그의 발은 풀무 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라고 하였습니다.

환경 속에서 더욱 낮아져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예수님은 우리의 완악함을 깨뜨리시를 원하십니다.

(7)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풍성하신 은혜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8)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강하게 들어 쓰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9)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했습니다.

여기 검(劍)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입니다(엡6:17, 히4:12).

우리의 사상과 생각까지도 변화시켜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10)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했습니다.

'얼굴'은 환상 전체에 대한 결론적 묘사로 보입니다.

주님께서는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 같은 강력한 주의 은혜로 우리를 해처럼 밝게 살게 해 주시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 주셔서 아버지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 은혜와 복을 주셨는지 경험하게 해주십니다.

이 경험은 참으로 강력해서 세상의 그 어떤 근심도 다 불식시켜 줍니다.

그래서 날마다 기뻐하며 춤을 추며 살아도 부족하도록 만들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해와 같이 밝게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십니다.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후에 성경말씀대로 다시 살아나셔서(부활하셔서), 지금은 하나님의 보좌 곁에서 우리의 기도를 중보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사도 요한을 통하여 보이신 모습을 묵상하며,

이제 더 이상 실망하지 말고, 주님께서 주시는 크신 은혜를 받으므로

해와 같이 밝게 하나님을 섬기며,

행복하게 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헤브론선교회
글쓴이 : 빛으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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