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 교리 비판
김문 엮음
차례:
머리말
1. 성경론에 대한 신천지의 오류
2. 신론에 대한 신천지의 오류
3. 인간론에 대한 신천지의 오류
4. 기독론에 대한 신천지의 오류
5. 구원론에 대한 신천지의 오류
6. 교회론에 대한 신천지의 오류
7. 종말론에 대한 신천지의 오류
머리말
말세지말에 살고있는 우리의 주변에는 가지각색의 이단들이 판을 치고 있다. 그들은 대개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나타나(고후 11:14),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다(벧전 5:8). 베드로후서 2:1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내가 심양에서 성경학습반에 다니던 시절, 나의 친구가 찬양으로 섬기고 있는 오리태 지역의 교회에서는 한국에서 들어온 이단 가운데 한 종류인 신천지로 인해 고난을 겪고 있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오리태 교회를 이단의 세력으로부터 지켜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6:18).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이단의 세력을 우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실 것이다(롬 16:20). 하나님의 교회를 대적하는 세력들은 곧 나의 원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시 3:7)
1. 성경론에 대한 신천지의 오류
1) 성경은 선민에게 하신 말씀인가
1988년에 신천지에서 발간된 “계시록의 진상 2” 511페이지에는 “성경은 선민에게 하신 말씀이다”라고 쓰여 있다.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성경은 스스로 계신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사람의 입을 통하여 구원받을 택한 민족에게 주신 말씀이다. 그래서 성경은 이방인이나 불신자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먼저 택한 선민 곧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하신 말씀이다. 모든 선지자들도 한결같이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그러므로 모든 말씀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말씀을 읽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읽는 것이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선지자들의 피로 기록되었으니 피로 된 유언서요. 피의 호소를 보고 듣는 것이다.”
이는 그릇된 견해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한 하나님이 아니시다. 하나님께서는 만민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며 열방을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시는 분이시다.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열방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경배하리니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열방의 주재심이로다”(시 22:27-28)
“하나님은 온 땅에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양할지어다 하나님이 열방을 치리하시며 하나님이 그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 열방의 방백들이 모임이여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다 세상의 모든 방패는 여호와의 것임이여 저는 지존하시도다”(시 47:7-9)
신천지에서는 성경을 이방인이나 불신자가 아닌 유다와 예루살렘에 주신 말씀이라고 매도한다. 이 주장은 성경과 전혀 맞지 않는 거짓이다. 이사야 13-24장에서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바벨론, 블레셋, 앗수르, 모압, 아람, 구스(이디오피아), 애굽(이집트), 메대(메디아)에 대해 예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예언이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예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에 무지한 소치에 불과하다.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와 엘리사는 유대나 예루살렘에 한 번도 가 본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의 사역은 북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한 예언사역이다. 그리고 엘리야는 이방인인 아람의 왕으로 하사엘을 세운다. 또 엘리사는 이방인인 시돈의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 가루와 기름이 기근이 끝날 때까지 나오게 하고 그녀의 아들을 살려주게 된다.
“말씀은 선지자들의 피로 기록되었으니 피로 된 유언서요. 피의 호소를 보고 듣는 것이다.”라는 신천지의 주장은 제멋대로이다. 제멋대로 생각한 것을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교묘하게 자극적인 말로 호소하고 있다. 성경은 40명에 가까운 저자들로 기록되었다. 거기에는 왕도 있고 선지자도 있고 학자도 있고 사도도 있고 농부도 있고 어부도 있고 세리도 있고 의사도 있다. 그런데 선지자들의 피로 기록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2) 성경 말씀에 짝이 있는가
신천지에서 포교활동을 할 때 가장 먼저 사용하는 성구는 다음의 말씀이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사 34:16- 개역 한글판) 그들은 본문에서 “이것들”이 말씀을 가리킨다고 하면서 성경책을 이쪽저쪽 넘기면서 자기들의 교리를 변호해 줄 수 있는 짝을 찾아나간다. 그냥 이 구절만 보면 말씀에 대해 말하는 것 같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앞에 있는 몇 구절만 읽어보면 그것이 짐승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사야 34장 16절을 표준 새번역으로 읽어보면 다음과 같다. “주님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아라. 이 짐승들 가운데서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이 없겠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짐승은 없을 것이다. 주님께서 친히 입을 열어 그렇게 되라고 명하셨고 주님의 영이 친히 그 짐승들을 모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3) 이만희 식의 비유풀이
모든 사이비들은 비유풀이와 짝풀이를 통하여 나름대로의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교리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얼핏 볼 때, 신천지의 비유풀이는 허점을 잡을 수 없어 보일 정도로 정확해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의 비유풀이의 공식은 황당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만희는 처음에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만을 가지고 비유풀이를 그럴듯하게 한다. 그 후에 사람들이 그의 풀이가 맞는다고 생각하고 성경적이라고 믿게 될 즈음부터는 비유가 아닌 말씀도 비유로 푼다. 계시록은 아예 대부분 비유로 풀고 있다.
공식으로 풀어서 말이 안 되는 부분인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한 부분과 비유로 풀기 곤란한 부분을 지적하면 이만희는 그것이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유로 풀면 안 된다고 핑계를 댄다. 그러면서도 그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창세기 1장도 비유로 풀고 있다. 이만희는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명령하신 것을 하나님께서 빛을 찾으셨다고 설교한다.
이만희가 사용하는 비유풀이의 첫 번째 공식은 “A=B”이다. 그의 책 “비유론” 제 2과에서는 근거도 없이 모든 새를 영으로 풀고 있다. 길가에 뿌려진 씨를 먹은 새는 악령이고 하나님의 나무에 깃들인 새는 성령이라고 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을 때에 비둘기 같은 성령이 임한 것을 예를 들면서, 성경에 나오는 모든 새는 영이라고 억지 주장을 한다.
다음 구절을 이만희씨 방식으로 풀면 이렇게 된다는 식으로 해석해 보겠다.
그렇다면 다음의 성경 구절을 이만희의 방식으로 풀어본다면 어떻게 될까? “저희가 주의 종들의 시체를 공중의 새에게 밥으로 주며 주의 성도들의 육체를 땅 짐승에게 주며”(시 79:2)
“이 백성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 짐승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을 쫓을 자가 없을 것이라”(렘 7:33)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계 19:21)
이만희의 방식으로 성경을 풀면 성령이든 악령이든 사람의 시체를 먹고 살게 된다. 다니엘 2장 38절에 보면 “인생들과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 어느 곳에 있보면 “인무론하고 그것들을 왕의 손에 붙 공 다 다스리게 하셨으니 왕은 곧 그 금머리니이다”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느부갓네살이 모든 영들도 다 다스린다는 예언이 아닌가......
이상의 구절들만 살펴보아도 “성경에 나오는 새는 영이다”라는 공식은 엄청난 오류임을 알 수 있다.
마태복음 13장의겨자씨의 비유에 의하면 아주 작은 겨자씨 하나가 심겨졌을지라도 큰 나무로 자라서 새가 깃들이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다고 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주 작게 시작했지만, 세계에 복음이 널리 전파되어 수많은 이들이 구원받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를 이만희 식의 비유풀이로 해석한다면 오류에 빠지게 된다. 뿌려진 씨앗은 성령님의 감화 감동이 없으면 깨달을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는데 이만희는 씨앗이 자라서 큰 나무가 된 후 거기에 성령이 깃들인다고 한다. 그렇다면 성령님께서는 씨앗이 자라고 나무로 성장하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다시 언급하지만 이만희 식의 비유풀이는 그의 추종자들을 큰 오류에 빠뜨리고 있다. 요한일서 4:8에서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했다. 그렇다면 사랑은 곧 하나님인가? 또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하셨는데, 소금이 사람인가? 그런데 이만희는 같은 단어를 찾아 연결하여 그럴듯한 교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하나님께서 “A=B”라고 하셨을지라도 B≠A가 아닐 뿐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모든 A는 B라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렘 23:29)는 구절을 가지고 “비유론” 5과에서는 “말씀은 불이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불은 말씀이다”라고 푼다.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불과 같다는 것이지, “불이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그런데 이만희는 이것으로 “말씀은 불이다”라는 식으로 교리를 만들고 있다.
공식이라면 어느 곳에서나 같은 방식으로 풀려야 공식으로 인정을 받는다. 만일 이만희의 비유풀이 공식이 맞는다면 다른 모든 구절도 성경적으로 풀려야 한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만희 식의 비유풀이를 적용하게 되면 오류에 빠지게 되는 구절이 많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런 식의 비유풀이 공식은 교묘한 논리 밖에 되지 않는다.
이만희씨가 사용하는 비유풀이의 두 번째 공식은 “A=B이므로 C=B이다”라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라고 하신 구절을 이 공식에 대입하면 A는 예수님이고 B는 포도나무라고 할 경우, B가 나무이면서 사람이었기 때문에 성경에 나오는 다른 나무 C도 사람이라는 공식이다. 이만희는 그 의미를 확대 해석하고 있다. 그래서 상수리나무를 목사라고 푼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사단아”라고 책망하신 적이 있다. 이만희 식으로 해석한다면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이니 다른 제자들도 사단이 되는 것이고 베드로가 사람이니 모든 사람도 사단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게 된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주장인가......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막 4:30)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막 4:33)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듣는 이로 하여금 쉽게 알아듣고 깨닫기 쉽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제자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비유는 예수님이 친히 제자들에게 설명해 주셨기 때문에 “새는 영이다”라는 식의 새로운 해석은 필요가 없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러나 사이비들은 그렇게 푸는 것을 새로운 말씀이고, 깊이가 있는 성경 해석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만희의 성경풀이가 아무리 기가 막히게 맞는 것 같아 보이고 은혜로워 보여도 엉터리 해석이고 사기일 뿐이다. 이만희의 이러한 수단은 후일 그의 추종자들로 하여금 “이만희가 보혜사다 이만희가 예수이다”라고 해도 믿을 수 있도록 하는 도구이고 그 과정인 것이다.
다른 사이비에 가서 그들과 몇 개월 동안 성경공부를 하다 보면 그들도 성경을 가지고 나름대로 논리와 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국은 그 곳의 교주를 보혜사니 예수님으로 인정하게 되어 있다. 이만희의 가르침의 결론은 “내가 보혜사다, 내가 이긴 자, 내가 두 증인이다”라는 것이다.
우리는 보혜사이신 성령님께서 자기를 증거하시는 분이 아니라, 예수님을 증거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 15:26)
2. 신론에 대한 신천지의 오류
1) 이만희의 삼위일체
이만희는 그의 책 “천국비밀 계시”의 81쪽에서 삼위일체에 대해 다음가 같이 말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 3:21)고 약속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이다. 본문의 삼위일체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은 일반 교단에서 목자들이 삼위일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으나 성경에는 삼위일체(三位一體)라는 말이일체(三位성구가 없다. 그럼에도 혹자는 요한일서 5장일8절의 말씀(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일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을 들어 삼위일체라고 하나 이일말씀은 일체는 되나 삼위는 될 수 없고 성부, 성자, 성령을 삼위일체라고 하나 이일또한 삼위는 되나 일체는 안된다. 본문 21절의 말씀은 위(位)가 셋이요 육체는 하나이니 삼위일체라 할 수 있고 3장 12절에는 이긴 자에게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을 기록하였으니 일체(一體)에 위(位)가 셋이니 이것이 말하자면 삼위일체이다.”
이만희가 삼위일체라고 인용한 요한계시록 3:12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이만희의 주장대로라면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예수의 새 이름이 삼위일체라는 것이다. 왜 이름을 삼위일체라고 하는지 이만희는 이것에 대해서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만희가 이 본문을 삼위일체라고 주장하는지 다른 글에서 그 의도를 발견할 수 있다. 이만희는 예수의 새 이름을 자신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예수님의 새 이름이 이기는 자, 곧 이만희라고 주장한다.
2) 하나님의 이름에 대하여
이만희는 그의 책 “요한계시록의 실상” 73쪽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여호와라는 이름의 하나님께서(출3:15) 새 이름을 가지셨듯이 예수님도 새 이름을 가지게 되셨으니 새 예루살렘이요(갈4:26) 새 이스라엘이며, 예수님께서 장가드시는 이기는 자의 이름이다(계2:17, 28). 하나님의 새 이름이 그가 장가드신 예수님(호2:19, 요10:30)의 이름이 된 것처럼, 예수님의 새 이름은 예수님이 신부로 삼은 이기는 자의 이름이 된다.”
결론을 말한다면 예수님의 새 이름이 이만희요, 이만희가 곧 예수님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만희가 마태복음 24:23-27에 언급되는 거짓 그리스도요 거짓 선지자임을 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23-27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 천사가 성령이라고
신천지에서는 악령은 더러운 영이고, 천사와 성령은 깨끗한 영이라고 하면서, 천사와 성령을 같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천지에서는 성령을 천사의 다른 호칭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전혀 잘못된 교리라는 것을 성경은 증명하고 있다. 한글 성경에 “주의 사자”라고 번역된 부분도 원어로 보면 전부 “천사”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천사를 가리켜 깨끗한 영이라고 한 곳은 하나도 없다. 더구나 천사를 향하여 거룩한 영이란 표현을 사용한 곳은 전혀 없다. 다만 거룩한 천사라는 표현이 있을 뿐이다(막 8:38, 눅 9:26, 행 10:22).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했다면 같은 위상에 있는 존재라야 한다. 만일 천사가 성령님과 동등하다면, 거룩한 천사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시지, 왜 성령(거룩한 영)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였겠는가! 천사는 부리는 영이기 때문에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동격이 될 수가 없다.
또한 성령님이 천사일 수 없는 보다 분명한 증거는 성도의 몸을 성령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고전 3:16, 고전 6:19).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우리 몸에 거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몸은 성전이 되는 것이다. 천사가 있는 곳이 결코 성전일 수 없다.
3. 인간론에 대한 신천지의 오류
인간은 진화되었는가? 이전에 이만희는 신천지가 진화론을 믿지 않는다고 장담을 했다. 그러나 이만희의 저서인 “신탄”을 보면 그가 진화론을 믿는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신탄” 5쪽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유인원에서 인간이란 신종이 태어나듯 죄와 사망을 극복한 초인(超人)이 탄생한다. 실로 경이롭게도 신인(神人)이 탄생한다.”
“신탄”은 이만희의 저작으로 신천지 도서마다 선전하고 있는데 거기서 이만희는 이렇게 유인원에서 인간이 나왔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만희는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시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셔서 사람이 생령이 되게 하신 것(창 1:27, 2:7)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진화론이 진정으로 학설로 인정받으려면 아래의 난제들을 풀어야 할 것이다.
첫째, 무기물이 어떻게 유기물이 되었는가?
둘째, 유기물이 어떻게 생명체가 되었는가?
셋째, 생명체가 어떻게 인격체가 되었는가?
넷째, 진화했다고 가정하고 있는 화석들 사이에 연결고리들이 빠진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진화론이 다윈에 의해 선포된 지 15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위의 4가지 질문 중에 어느 것 하나도 설명되는 것이 없다. 그런데 이만희는 이처럼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대적하는 교리를 내세우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고 자랑하니, 이만희의 인간론에 대해서는 더 들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4. 기독론에 대한 신천지의 오류
1) 예수님과 이만희
신천지는 예수님이 말씀을 받아먹은 것처럼 이만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었다고 주장한다.
이 어처구니없는 주장의 근거를 확인한 결과 이런 논리가 발견되었다. 에스겔 3장 1-3절을 보면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받는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라 하시기로,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이 본문에서 인자가 나오고, 요13장 31절 “저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이 본문에서 인자가 나온다고 두 인자를 연결시켜서 예수님이 두루마리를 받아먹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신천지의 이러한 논리는 올바른 성경해석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먼저 에스겔 3장의 인자는 바로 에스겔 자신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불신앙으로 바벨론 땅에 포로되어 간 사람들을 중심으로 예루살렘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사명을 맡기시고 그에게 말씀을 먹여주시면서 다정하게 부르시는 장면이다. 여기 나타난 단어는 “son of man”이다. 그러나 요한복음에 나타난 인자는 예수님의 자기 인식인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6-17)
이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대상은 누구인가? 바로 제자들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시면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보혜사를 보내주시지 않고 이 시대에 이만희를 보혜사로 보내셨다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기를 치신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신천지 주장처럼 예수님이 사기꾼일까, 아니면 총회장 이만희가 사기꾼일까?
2) 예수님에 대하여
신천지의 주장에 의하면 예수님이 초림 때 오셔서 한 일이라고는 겨우 말만 몇 마디 하고 죽은 것이며, 시체는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한다. 결과론적으로 실패한 분으로써 하늘에서 실력을 갈고 닦아서 오늘날 두 번째로 이만희의 몸에 들어가심으로 이만희를 통해서 천국을 이룬다고 한다. 예수라는 사람의 육체는 참으로 쓸모가 없는 것이며, 이만희라는 사람의 육체가 쓸모 있기에 예수라는 사람의 몸으로 이루지 못한 하나님 나라를 이만희의 몸을 빌어서 이룬다고 한다.
이만희 교주는 다음과 같은 터무니없는 주장을 내세운다. “엘리야의 뒤에 온 엘리사가 구원자가 아닌 것과 같이 배도자 세례요한 뒤에 온 예수는 결코 구원자일 수 없다.”
신천지에서는 이 교리를 변호하기 위해 성경을 아래와 같이 왜곡하여 해석하고 있다. “계시록의 진상” 187쪽에서 이만희는 “까마귀”를 마귀, 즉 사탄의 종으로 비유하는데, 엘리야가 까마귀가 물어다 준 떡과 고기를 먹었으므로 배도했다고 주장한다(왕상17:4-6). “엘리야는 까마귀가 주는 고기를 먹으면서 3년 6개월간 숨어 지낸다 (약5:17). 엘리야가 초림 당시의 세례 요한임을 아는 바다. 그가 광야에서 3년6개월간 양육 받은 것은 사실은 까마귀의 떡과 고기인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신학을 배운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정하신 대로 진행되지만 사단으로 부터의 양육 받은 행위를 까마귀가 날아다 준 떡과 고기를 먹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다. 엘리야의 행위와 세례 요한의 행위와 삼손의 행위는 실제로 일치를 보이고 있으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의 사명이 한결같이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자 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위의 주장이 성경적인 교리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신약 성경에서 엘리야는 변화산에 영광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엘리야는 의인으로 묘사 되어 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약5:17)
성경에서 나오는 까마귀는 모두 귀신, 사탄인 것이 아니다(욥38:41, 시편 147:9, 잠30:17, 눅12:24). 그리고 열왕기상 17:2-4을 보면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까마귀를 통해 음식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여기서 떠나 동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을 명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엘리야는 나중에 불 병거타고 승천 하였던 것이다(왕하 2:11-12).
3) 이만희가 그리스도라고
신천지의 총회장 이만희는 추종자들에 의해 다음과 같이 인식 되고 있다. “이만희= 보혜사= 이긴 자= 주= 그리스도= 약속의 목자= 예수님의 영이 임한 자= 철장권세를 가진 자= 계시록의 사도요한과 같은 사명자= 말세의 구원자”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지,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을 증거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천지의 이만희는 자신을 증거한다. 그의 가르침의 결국은 자신이 그리스도요 이긴 자라고 하고 있다. 그는 결국 자신을 증거하기 위하여 수많은 비유풀이를 한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 이만희는 성령을 받은 보혜사가 아닌 것이다.
교주 이만희는 자신을 예수라고 하지 않았다는데, 왜 그를 따르는 많은 신도들은 그를 재림 예수로 구원자로 임마누엘로 생각할까? 이는 자신을 그렇게 믿도록 만드는 신천지의 교리로 사람들을 미혹시켜 놓고 이만희 자신은 그 자리에서 빠져나갈 구멍을 다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 시대에 참 목자이고 이긴 자라면 그에 걸맞은 능력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예수님도 보여주셨는데 마지막 시대에 참 구원자가 될 자가 어찌 증거가 없을 수 있겠는가? 배교하고 신천지를 떠나는 자들을 가룟 유다니 뭐니 하고 신약에 나타나 사건을 가지고 자신에게 적용시켜 말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왜 능력은 없는가?
이만희는 자신이 성령체를 받았다는 자신의 말 외에 그 어떤 객관적인 증거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에게서 권능이 나타나고 있지 않다. 과거나 지금이나 그의 인격과 삶에서 성령 받은 증거가 없다. 그에게서 성령의 열매를 볼 수 없고 더구나 그는 고소를 하고 후욕을 하는 자이다. 그것이 성령체를 받은 자라면 성령이 고소나 부추기는 분이란 말인가! 이만희는 성령을 모독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영적 권능이 없음을 변호하기 위해 마태복음 7장의 불법을 행하는 자를 비진리를 가르치는 자라고 오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만희가 성령을 받았다고 내세우는 유일한 증거는 성경풀이와 해석이다. 그러나 이것도 그가 스스로 깨달은 것이 아니라 여러 사이비교주들에게 듣고 배운 것을 각색 편집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이만희가 성령체를 받은 보혜사라고 스스로 말하는 것은 전혀 객관적인 증거가 하나도 없는 사이비 교주의 거짓말일 뿐이다.
5. 구원론에 대한 신천지의 오류
1) 알아야 구원 받는다고
신천지에서는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우리에게 믿음을 가지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서도 지식의 정도에 따라 구원의 여부가 결정된다는 구절이 없으며,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된 믿음이라고 인정받는다는 구절도 없다. 이는 다만 신천지가 성도들을 미혹하여 이만희가 곧 예수라는 이론을 전개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그럴듯한 교리에 지나지 않는다. 성경에는 다만 믿음으로 의롭게 되며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한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때에 의롭다 인정을 받았던 것이다.
복음을 전할 때 보면 한 시간을 붙들고 자세히 복음을 설명해 줘도 믿지 않는 자가 있는가 하면 5분만 전해도 믿고 신앙생활을 잘하는 이들도 있음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구원받는 것이 이론적인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와 감화에 있음을 말해준다. 우리는 믿는 것만큼 다 알지 못하며, 아는 것만큼 다 믿는 것도 아니다. 아는 것은 많지만, 초신자보다 못한 믿음을 가진 오래된 신자도 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믿음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많이 안다고 더 잘 믿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2) 양자로 삼으심과 구원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신천지에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구원이나 영생과 다른 것처럼 궤변을 늘어놓는다.
예수님을 처음 믿은 사람은 영적으로 갓난아이이다.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믿음을 고백하는 순간에 그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만 알고 믿어도 자녀가 되었으므로 아버지 집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이 된 자가 비록 제대로 행동하지 못하더라도 아들이기 때문에 집으로 받아들이신다. 우리 하나님은 믿음을 보시는 것이지 행위와 지식을 보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것은 자녀라는 신분 때문이지 열심히 하는 어떤 행위 때문이 아닌 것이다. 아들이 되면 기도 응답만 받는 것이 아니라, 해가 지면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옷이 더러워졌든지, 시험에 빵점을 맞았든지, 누군가에게 얻어 터졌든지 상관치 않고 집으로 들어가면 문을 열어주고 받아 주신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비록 제대로 살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해도 아들이 되었기 때문에 아버지 집에 당당히 들어가는 것이다.
3) 구원과 성령의 사역
우리는 성령님께서 우리의 삶과 인격에 구원을 적용시키시는 사역에 대해 아홉 부분으로 살펴 볼 수 있다. 이 아홉 가지는 다음과 같다. 부르심, 거듭남, 회심, 믿음, 의롭다 하심, 자녀로 삼으심, 거룩하게 하심, 끝까지 붙들어 주심, 그리고 영화롭게 하심이다. 이러한 성령님의 사역을 로마서 8:30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한 마디로 말해서 성령님의 사역은 우리의 구원과 성화를 위해서 필수라는 것이다.
신천지에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이만희 식의 비유풀이에 의하면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새를 영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신천지의 관점에서 마태복음 13장의 겨자씨의 비유를 해석한다면 어떻게 될까? 겨자씨의 비유에 의하면 아주 작은 겨자씨 하나가 심겨졌을지라도 큰 나무로 자라서 새가 깃들이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다고 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주 작게 시작했지만, 세계에 복음이 널리 전파되어 수많은 이들이 구원받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 말씀을 이만희 식의 비유풀이로 해석한다면 오류에 빠지게 될 것이다. 뿌려진 씨앗은 성령님의 감화 감동이 없으면 깨달을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는데 이만희는 씨앗이 자라서 큰 나무가 된 후 거기에 성령이 깃들인다고 한다. 그렇다면 성령님께서는 씨앗이 자라고 나무로 성장하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6. 교회론에 대한 신천지의 오류
1) 신천지 교회의 자아 인식
신천지에서는 누가 됐든 성경속의 나쁜 놈은 무조건 일반교회의 기독교인들과 목사들이라고 한다. 그들은 먹을 것(양식-떡, 술 등)은 다 교리(말씀)인데 좋은 음식은 신천지의 교리이고, 독이나 해로운 음식은 일반교회의 교리나 말씀으로 본다. 짐승은 사람으로 보는데 양이나 소 같은 짐승은 이만희나 신천지의 강사라고 보고, 돼지나 개 같은 짐승은 일반 교회의 목사나 성도라고 본다. 그리고 대접이나 가마솥처럼 무엇을 담는 용기는 무조건 사람, 또는 교회라고 한다. 구름이니 하는 것들은 전부 보이지 않는 영이라고 하며, 지팡이는 이만희의 동역자라고 본다. 나팔도 사람이요, 나팔소리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요, 하늘에서 울리는 나팔소리는 이만희로 부터 시작된 신천지 교리라고 한다.
2) 최초의 교회
신천지의 교리에 의하면 창세기는 최초의 교회가 세워져서 거기에 있던 사건들을 쓴 것이라고 한다. 아담과 하와는 최초의 목사와 사모님이고, 뱀은 집사나 장로쯤 되는데 목사를 미혹시킨 사람이라고 한다.
출애굽기는 일반교회에서 빠져나와서 신천지로 가는 것을 숨겨놓은 내용이고, 모세가 아기였을 때 물에서 건진 것이나 애굽의 왕자였던 것은 멸망할 곳에서 있었던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이만희가 사이비 교주인 유재열의 밑에서 그를 예수로 믿고 신앙생활 했던 것을 성경에 숨겨놓은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것들이 초림 때에도 반복되어서 모세를 물에서 건진 것과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은 것은 동일한 사건으로서 세례요한은 사탄의 새끼로써 쳐 죽일 놈이라고 한다.
3) 목회에 대하여
신천지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목회를 그만해야 합니다. 왜냐고요 여러 번 말했지만 선지자 노릇하는 것이 이제는 불법입니다. 과거에는 해야 했지만 지금은 주님이 재림하셨으므로 재힘하신 주님 앞으로 나아와야 합니다.”
이만희는 이 주장을 변호하기 위하여 마태복음 7장 21-23절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한 자라도 불법을 행하였기 때문에 지옥에 갔다고 가르친다. 문제는 불법을 행한 것을 비진리를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있다. 그러나 여기서 불법이란 단어의 뜻은 법을 어긴 것, 법대로 하지 않는 것을 가리키지 절대로 비진리를 가르쳤기 때문이란 뜻은 아니다.
요한일서 3장 4절에서는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고 분명히 불법이라는 뜻이 죄를 짓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다. 비진리를 가르치는 것이 죄 중에 죄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마태복음 7장에서는 불법을 행한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기에 이만희 교주의 해석은 틀린 것이다.
불법을 행한 자란 다시 말하면 은혜와 권능을 받고도 탐심을 이기지 못하여 죄의 영향력 가운데서 생활하며 자기중심적인 사역을 하는 교회 지도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21절에도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23절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자 즉 자기 야망을 따라 사역을 하며 죄에서 떠나지 않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지 비진리를 가르쳤기 때문이 아닌 것이다.
4) 핍박에 대한 성도의 자세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 10:34-39)
신천지에서는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부모님을 거역하고, 형제들을 버리고, 심지어 가출하는 것까지도 정당화한다. 그러나 과연 그런 정당화가 가능할까? 신천지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이 말은 복음을 위해 부모와 불화하라는 뜻이 아니며, 집안 식구들과 원수가 되어 살라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는 능동적인 것과 피동적인 것을 잘 구분해야 한다.
우선 이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앞뒤 문맥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신천지에서는 문맥을 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말씀의 의미를 곡해하는 것이다. 본문의 문백을 보면 이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도에 대해 가르치는 말씀이다. 즉 예수님의 제자라면 복음 때문에 가족들과 불화할 수도 있고, 원수와 같은 취급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것을 자기 십자가로 받아들여서 끝까지 참고 인내하며 주님을 따르라는 뜻이다.
신천지는 진리를 위해 가족에게 핍박을 받고, 원수가 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아예 집을 떠나라, 핍박을 피하여 도망가라고 가르친다. 피하여 도망가는 것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니며, 복음을 위하여 헌신하는 것도 아니다. 신천지의 교리가 진리이고, 거기에만 구원이 있다면 핍박 받는다고, 가족들을 떠나서 되겠는가? 가족들이 원수처럼 대한다고 똑같이 원수처럼 행동해서 되겠는가?
가정을 만드신 하나님, 가정의 구원을 최우선으로 하시는 하나님, 형제간의 사랑을, 부모에게 순종할 것을 가르치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피하여 도망가라고 하시지 않았다. 반대로 가족들의 반대가 자기 십자가인 줄 알고 그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고 말씀하신다. 심지어 자기 목숨을 잃는 한이 있어도 그것은 주님을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가르친다.
7. 종말론에 대한 신천지의 오류
1) 십사만 사천과 생명책
신천지에서는 요한계시록에서 좋은 것을 받아먹는 사람은 다 이만희라고 한다. 이만희가 천국을 보았고, 이만희를 통해서 신천지 교회로 가면 계시록을 다 이룬 것이라고 한다. 일곱 인과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에서 해를 겪는 사람들은 유재열 교단의 사람들과 새신청지기 교육원의 목사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팡이는 홍종효(같은 사이비에서 나온 또 다른 보혜사)요, 그런 사건들 후에 이만희를 통해서 십사만 사천 명이 모이는 것이요, 예수님과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있는 시온산은 신천지 교회라고 한다.
그러므로 신천지 증거장막 성전의 교인으로 등록되면 생명책에 기록된 것이고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서 다른 사람들이 죽는 것 바라보며 희희낙락할 수 있다.
신천지에서는 자기들의 교적부가 생명책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교적부를 작성하는 사람이 예수님과 동일한 권세를 갖고 있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예수님 대신 생명책을 작성하려는 신천지 총회장 이만희의 배후에는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지려는 사탄의 교만이 자리잡고 있다.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사 14:13-15).
2) 신천지의 천년왕국
이만희가 쓴 “신탄”의 38쪽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있다. “성경에는 사후 천국에 관한 기록이 단 한 구절도 없음을 알자. 성경은 사람의 장막 안에서 인간들과 함께 동거하시는 하나님, 하늘에서 내려와 땅에 좌정하는 거룩한 성, 사망이 없는 곳에서 천년 동안 왕노릇하는 유토피아를 약속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는 그가 다시 오실 때에 주저하지 말고 믿으라고 당부하신 것이다. 살아서 이루어지는 천국, 이 천국 복음이 실상으로 나타나는 그 날이 우리의 목전에 도래하였다.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멸하고 이 지상에 포개어지는 천국을 믿고 그곳으로 들어가야 한다.”
여기서 신천지는 사후 천국을 믿는 것이 아니라 이만희의 신천지가 사망과 음부(지옥)의 권세를 멸하고 지상에 실상으로 도래한 천국(새 예루살렘 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39쪽에서는 증거자 이만희를 만나서 그로부터 증거를 듣고 신념으로 구체화하는 것이 성도의 도리라고 말한다.
“오늘날에도 모든 예언이 성취됨을 드러내어 밝게 증거하는 증거자가 나타난다. 성도의 마땅한 도리는 이제 실상을 증거하는 사자를 찾아 만나 그로부터 증거를 듣고 이를 신념으로 구체화하는 일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들을 분석해 낼 수가 있다. 첫째, 신천지는 사후의 천국을 믿지 않는다. 둘째, 신천지가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멸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셋째, 거룩한 성이 1000년 동안 왕노릇 하는 곳이라고 주장한다.
이 세 가지의 주장은 모두 거짓이다. 첫째, 사후 천국이 성경에 없다는 주장 자체가 거짓이다.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고 약속하셨으며(요 14:2), 한편 강도에게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약속하셨다(눅 23:43). 나사로는 하나님의 품에서 안식을 누렸다(유대인들은 여호와라고 하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았으므로 하나님 대신에 자기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자리에 넣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천지가 성경에 사후 천국이 나오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거짓말인 것이다.
둘째, 신천지가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멸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신천지인들은 죽지 않아야 한다. 이미 신천지는 1000년 동안 왕노릇하기에 신천기라는 달력을 사용하지 않는가? 그러나 이미 부천 바돌로매 지파장 신준수씨가 죽었다. 그리고 신천지 본부에서 일하던 정OO라는 사람도 죽었다. 이만희도 늙어서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 평범한 늙은이에 불과하다. 진짜 신천지가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멸했다면 왜 이렇게 사람이 죽어나가는가? 그러므로 신천지 이만희는 자신을 신격화시키고 신천지를 신성화시키기 위하여 성경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거짓말장이에 불과한 것임을 쉽게 알 수가 있다.
셋째, 신천지는 거룩한 성이 1000년 동안 왕노릇하는 곳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한데서 나온 거짓말에 불과하다. 거룩한 성이 내려오기 전에 먼저 이루어져야 할 일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흰 보좌 심판이다. 죽었던 사람들이 모두 살아나서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진 뒤에야 새예루살렘이 내려온다(계 20:11-15). 그리고 처음 하늘과 처음 땅, 바다가 없어져야 한다(계 21:1). 없어지는 광경은 베드로후서 3:7-13에 잘 나타나 있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7-13)
현재의 세상이 불심판으로 사라지고 난 다음에 새 예루살렘성이 임하는 것이다. 또 한가지는 흰 보좌 심판이 새 예루살렘성보다 먼저 있어야 한다. 죽었던 사람들이 모두 살아나고 살아 있던 사람들은 죽지 않는 몸으로 모두 변화되어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고 영생과 영벌이 나누어진다. 그 후에야 새 예루살렘이 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천지가 각 지파를 각색 보석으로 위장하고 신천지를 새 예루살렘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람들을 기만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또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거룩한 성은 1000년간 왕노릇하는 곳이 아니라 영원토록 사는 곳이다. 죽음도 없고 병드는 것도 없고, 애통하는 것도 없고, 밤도 없고, 생명나무가 있고, 생명수가 있어서 만국을 소성하게 하는 곳이다. 하나님이 빛이 되시고 어린 양이 등이 되시므로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는 곳이다. 이런 영광스러운 새 예루살렘 성을 거짓이 난무하는 신천지 이만희의 증거장막 성전이 대신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거짓 교리이다.
3) 이만희의 새 예루살렘 성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그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 사십 사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계21:16-17)
이 말씀에 대하여 이만희는 그의 책 “계시록 완전 해설”(1986년 판) 217쪽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성과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니 12,000스다디온이요. 장광이 같다 하였으니 (12,000x12) 곧 144000임을 말한 것이며, 성곽만 척량하니 144규빗(216)이라. 이는 문지기에 속한 중요 인물들이다. 먼저는 예수께 속한 영들의 조직수요. 둘째는 땅의 신부의 이름의 수이다(마19:28). 이들을 척량하니 천사의 척량 곧 사람의 척량이다. 하늘(영)의 수대로 척량(인친다)하여 땅과 하나된 거룩한 새예루살렘 거민이다.” 여기서 이만희는 스다디온을 사람으로 계산하고 있다. 이것은 정말 무식한 해석이다.
스다디온이라는 단위를 사람으로 계산하고 있을뿐 아니라 장광이 같더라 라는 표현에서 12000과 12000을 곱하면서 뒤의 12000에서 0을 세 개를 빼고 12000곱하기 12로 해서 144000이라고 계산하고 있다. 뒤에 나오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즉 길이와 폭과 높이가 같더라는 것은 빼먹고 말이다.
스다디온(σταδιων; stadia)이란 단위는 로마의 도량형의 하나로 거리를 나타내는 단위이다. 스다디온이란 단위가 계시록에만 나타나는 이유는 이 편지를 전달받은 사람들이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고 이 단위가 당시 사람들에게 가장 이해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1스다디온은 184미터 정도 되는 거리를 말한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이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라는 표현을 보아서 새 예루살렘성의 길이와 폭과 높이가 동일한 정입방체라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다. 스다디온이라는 기본적인 당위조차 모르고 이를 영적인 의미의 사람이라고 계시를 받아 썼다고 하면 그에게 계시한 영이 성령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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