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관의 유형
- 삼위일체론, 유일신론, 다신론, 범신론
- 이종성(한국기독교학술원 원장)
인류역사가 기록되기 전부터 신은 있었다. 얼마 후에 인간의 세계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신들이 인간을 생산하지는 않았다. 다만 인간으로부터 존경받기를 원했다. 인간은 신들을 두려워했다. 원시인들은 전적으로 신에게 의지하고 도움을 신으로부터 받으려 했다. 그 때부터 신과 인간 사이에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가 형성되었다. 그 관계가 더 짙게 그리고 더 강력하게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인류는 불가피하게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그들의 믿는 정도에 따라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이 함께 살게 되었다.
1. 종교(宗敎)의 불가피성(不可避性)
인간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이유에서 신에 대한 의뢰심을 가지게 되었다. 즉 자기의 도덕적 무능을 자각했을 때, 자력으로 자기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 불가사이한 일에 직면했을 때, 육체적 질환과 정신적 질환의 위협을 받았을 때, 그리고 초아적(超我的) 욕심을 충족시키려 할 때 대체로 절대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존재의 도움을 얻어 자기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 결과 수많은 신을 생각하고 믿고 의지하여 이 때까지 살아왔다.
2. 인류역사에 알려진 신의 종류
(1) 유일신을 믿는 종교가 있다.
유대교와 이슬람교와 유니테리안들은 이 세상에는 우리가 믿을 만한 참 신은 한 분밖에 없다고 한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출 20:3). “너는 다른 신을 좇아 섬기거나 숭배하지 말며 너희 손으로 만든 것을 인하여 나의 노를 격동치 말라”(렘 25:6). 이스라엘인은 이 명령을 현재까지 굳게 지키어 야웨 하나님만 참 하나님으로 믿고 있다. 이에 못지 않게 이슬람교도들은 알라신을 유일의 신으로 믿고 일체 다른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알라(Allah)신만 있고 다른 신은 없다. 알라신은 질투하는 신이어서 어떤 경쟁자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는 전지하시고 전능하시며 천지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했으며, 창조세계를 주관하신다. 모든 세계의 주요 인류의 주가 되신다.”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매우 비슷한 신 개념을 가지고 있으나 그 명칭은 다르다.
유대교의 신명은 야웨 또는 엘(로힘)이나 이슬람교는 알라다. 이 두 종교는 각기 자기들이 믿는 신만 참 신이라고 한다. 따라서 그들의 신 관념은 유일신이다. 때로 기독교의 신관도 유일신교라고 하나 그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왜냐하면 기독교에서는 야웨 신 외에 그리스도와 성령도 성부와 동등하고 동일한 신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유대교나 이슬람교는 그리스도나 성령을 야웨나 알라와 동등한 신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2) 많은 신들이 있다고 믿고 그들에게 예배 또는 제사를 드리는 종교가 많이 있다.
희랍인과 로마인과 애굽인과 바벨론인과 그 외의 많은 종족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신화(건국)에서 언급된 모든 신들을 믿는다. 그 중에서도 서양문명에 가장 강한 영향을 준 신들은 희랍신화와 로마신화에 나타나는 신들이다.
그들의 성격과 생활양식은 인간의 그것과 매우 비슷하게 묘사되어 있어 인간사회를 투영한 것과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이들의 신관을 다신론이라고 부른다.
(3) 인도교는 3주신을 믿는 동시에 많은 하급신들을 믿는다.
브라마와 뷔쉬누와 쉬봐다. 이들은 동등한 신들이 아니라 등급이 있으며 그 중 브라마가 제일가는 주신이다. 그들 외에 많은 부족이 자기들이 믿는 신이 있어서 “리그뵈다”나 “우파니샤드”라는 경서에는 수많은 신들이 등장한다. 이들을 총칭하여 다신론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도의 다신론은 희랍이나 로마의 다신론보다 훨씬 더 종교성을 띠고 있다.
(4) 자연계 안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에 신이 총체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존재한다고 하는 범신론이라는 신관이 있다.
범신론은 모든 고대종교와 철학사상에서 발견되는 보편적 현상이다. 범신론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세계와 자연을 보편적인 신적 존재라고 하는 희랍적 범신론과 모든 것에는 신성이 내재하며 자아(自我)와 신은 궁극적으로 일치한다고 하는 인도교적 범신론도 있다. 독일의 철학계에서는 인간의 내면적, 신비적 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한 스피노자와 괴테와 쉘링이 있다. 범신론은 신과 자연과 인간의 구별을 무시하기 때문에 무신론이라는 비난도 받고 있다.
(5) 샤머니즘이나 민속종교는 무수한 잡령을 신으로 믿고 그들에게 제사를 드리고 그들로부터 어떤 이득을 얻으려고 한다.
이들이 믿는 대상을 예배나 신앙의 대상이 될 만한 존재는 아니나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잡령을 신이라고 오해하고 혹시나 그들로부터 무엇을 얻을까 하여 기도의 대상으로 취급하고 있다. 샤머니즘이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는 한국의 서민층에는 이러한 잡령숭배가 유행하고 있다.이와 같이 인류역사에는 크고 작은 신들과 잡령들을 믿는 신앙이 뿌리깊게 내리고 있어 정상적인 생활을 하려는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3. 기독교 신관의 특징
상기한 신들과 잡령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는 신이 신구약 성서가 가르치고 있는 신이다. 그 신을 총체적으로 설명한다면, 그 신의 명칭은 야웨(자존자)요 따라서 영원자요 창조자다. 그는 전지하시고 전능하시고 전재(全在)하시다. 타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그는 사랑이시고 공의로우시고 자비로우시다. 범죄자들에 대하여 노하시기를 더디하시고 그들이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그는 역사의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고 과거나 미래가 없이 언제든지 현존하신다. 이 하나님이 인류와의 관계에 있어서 세 가지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인류역사를 주관하시고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시고 역사의 오메가 포인트에 가서 인류역사를 완결시키려고 한다. 이 하나님을 3위1체 하나님이라고 한다. 다른 신에 대해서는 쓰여지지 않던 특유한 명칭이 사용된다. 그 뜻이 너무나도 오묘하기 때문에 고금의 많은 학자들과 신자들이 자기들 나름대로 지혜를 짜서 이해하고 해석을 하고 있으나 그 중에는 정당한 해석과 이해도 있으나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해석과 견해를 가지고 있어서 교회를 어지럽게 하고 신자들에게 혼란을 조성하고 있다. 차제에 필자는 성서가 가르치고 교회가 옛날부터 가장 옳은 해석이라고 고백한 3위1체 신관을 설명해 보려고 한다.
먼저 3위1체라는 명칭은 성서에서 사용된 용어가 아니라 초대교회가 이 문제에 대하여 약 400년 동안 연구하고 논쟁을 거듭하다가 성서가 가르친 신에 대한 가장 정확한 표현이라고 해서 사용한 신학적이고 신앙고백적인 명칭이라는 것을 밝혀 둔다.
(1) 야웨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부신(父神)과 자신(子神)과 성령(聖靈)이라고 하는 세 분으로 계신다.
세 분이라는 말의 원어는 “트레스 페르소나에”(tres personae - 서방교회)라는 말인데 한국을 위시하여 한문문화권에서는 “페르소나”를 위(位)라고 번역하여 쓰고 있다. 한 인격적 실체를 가진 존재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야웨로서의 부신과 그리스도로서의 자신과 영으로서의 성령이 각기 고유의 존재실체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2) 일체신을 의미한다.
숫자적으로나 일상 용어상 1)항의 내용과는 모순되는 말이다. 일체라는 말의 헬라어 우시아는 한 존재의 기초가 되며 그 이상 더 분할될 수가 없는 한 존재의 최저의 양태를 의미하는 말이다. 이 말을 라틴어로는 “숩스탄티아”(Substantia)로 번역한다.
(3) 성서에는 이 하나님의 속성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설명한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영생하시는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만군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 왕으로서의 하나님 등으로 표현하나 다 이 하나님에 대한 수식어다. 그러나 신구약 성서의 하나님에 대한 모든 형용사는 위에서 말한 3위1체 하나님에 대한 다양한 설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3위1체 하나님은 성서적 용어는 아니나 성서의 신관의 실체를 정확하게 종합적으로 묘사할 때 불가피하게 얻어지는 가장 정확한 성서적 신명(神名)이다.
(4) 3위1체 하나님은 유일신과는 다르다.
유일신론이란, 믿는 대상이 하나의 이름만 가지고 있고, 그가 하는 모든 일을 혼자서 하는 신을 말한다. 예를 든다면 회교에서는 알라 신만 있다고 믿는다. 알라 신 외에는 어떠한 신도 인정하지 않는다. 유대교도 마찬가지다. 야웨 신만 참 신으로 믿고 그 외의 어떠한 신도 믿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에서 회교와 유대교를 유일신교라고 한다. 기독교에서 하나의 이단으로 취급되는 유니테리안도 성자와 성령을 말하나 그들을 야웨 하나님과 동일하다고는 믿지 않는다.
(5) 동시에 3위1체 신을 3신론이라고 해서도 안 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서로 관계하지 않고 단독적으로 존재하며 단독적인 본체를 가진다면 그것은 3신론이 되지만 3위1체론에 있어서의 신은 3위(persona, modus)가 곧 1체(substantia)요 1체가 곧 3위라는 특이한 존재양태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3신론적 다신론이 될 수 없다. 기독교 신관은 이상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4. 이단적이고 사이비적인 3위1체설
지난 2,000년 동안 3위1체론에 대한 찬반논쟁이 수없이 전개되었으며 그 때마다 이단적이고 사이비적인 3위1체설이 많이 소개되었다. 그 중 대표적인 이단 사설(邪說) 몇 가지를 소개한다면,
(1) 유대교의 유일신론은 구약성서에 나타난 야웨 하나님의 유일성을 강조함으로써 형성된 신관이다.
이 신관에는 그리스도와 성령의 위치와 중요성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기독교 신학은 유대교의 유일신론을 배척한다.
(2) 유일신론을 전제로 그리스도와 성령의 의의를 인정하면서도 신존재의 등급을 말하는 이단론이 군주신론(monarchianism)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신성은 인정하나 그리스도와 성령은 야웨 하나님 아버지보다 아래에 있으며 야웨 하나님의 지배를 받아 활동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성자와 성령은 모든 면에 있어서 하등신(下等神)이요 열등신(劣等神)이다. 이 점을 군주신론이 강조한다.
군주신론에도 몇 가지 유형이 있다.
동력적 군주신론(Dynamic monarchianism)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만 가지고 있을 뿐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하지는 않다고 보는 입장이다. 또한 종속적 군주신론이 있다. 때로는 양태론적 삼위일체론이라고도 한다. 아들과 성령은 세상에 있어서 하나님의 구체적인 존재양태에 지나지 않으며, 모든 면에 있어서 하나님 아버지보다 열등(劣等)하다고 한다. 따라서 참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뿐이다. 또 다른 한 가지 유형은 성부 수난설이라는 3위1체론으로서, 아버지와 아들은 완전동일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수난당하신 것은 사실은 성부 하나님이 수난당하신 것이라고 한다. 이 설은 초대교회에서 이단설로 정죄되었으나 그 후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강조하는 신학이나 설교 안에 끊임없이 재등장하는, 중요하고도 위험한 사상이다.
(3) 그리스도론을 중심한 이단설이 있다.
첫째는 양자설 또는 입양설로 알려진, 초대교회 안에 많은 지지자들을 보유하고 있던 설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사람이었으나 그의 삶이 매우 훌륭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예수를 아들로 입양하여 그리스도라고 했다는 설이다. 이 설의 문제점은 예수님이 사람의 자리에서 신의 자리로 발전했다는 것과 하나님이 처음에는 독존하셨으나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어 하나님의 자리에까지 승진했다는 점이다.
이와 정반대되는 이단설이 있다. 그것을 가현설(Docetism)이라고 한다. 이 설에 의하면 예수는 참 사람이 아니라 사람같이 보였을 뿐 실제로는 고난을 당하지도 죽지도 않으셨다. 이렇게 말한 것은 야웨 하나님의 절대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4) 단성단의(單性單意) 이단설
니케아 회의에서 시작된 그리스도론 논쟁은 431년에 있었던 칼케돈 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이 내려졌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인 동시에 참 사람이다”(vere Deus, vere homo). 그러나 이 해결은 또 다른 문제를 제기했다. 만약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요 참 사람이라면 예수님은 두 가지 몸과 두 가지 의지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해석에 대하여 강한 반대가 일어났다. 어떻게 한 분이 사람의 몸과 하나님의 몸을 가질 수 있으며, 또한 사람의 의지와 하나님의 의지를 동시에 가질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이렇게 주장하는 교회 지도자들이 많이 나타났다. 이것을 단신론과 단의론이라고 한다. 그러나 교회는 단신단의론을 거절하고 2성론(二性論)과 이의론(二意論)을 주장했다. 단성론은 451년에, 단의론은 681년에 각각 이단으로 처단되었다.
(5) 미국교회 안에서 일어난 이단설
1) 몰몬교는 1820년경부터 조셉 스미스(J. Smith)에 의하여 창도된 반기독교적 이단종파다.
그의 가르?신론에 의하면
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신성은 믿으나 그 세 분이 한 본체를 가진다는 것은 부인한다.
② 그는 하나님의 영성을 부인한다.
③ 성부와 성자와 성령 외에 많은 신들이 있다고 한다(神의 複數).
④ 하나님은 과거 언제인가 시간 안에서 우리와 같이 사람의 모양으로 존재했다고 한다.
⑤ 사람이 신이 될 수 있다.
이상이 몰몬교가 가르치고 믿고 있는 신관이다. 스미스는 신학을 공부한 일이 없이 당시 널리 사용하고 있던 흠정역 성경만 읽는 동안 이상한 체험을 하고는 그것을 영감 받은 것으로 오해하고 몰몬교라는 이단종교를 창설했다.
2) 크리스천 싸이엔스라는 종단은 메리 B. 에디라는 여자가 창도한 이단종파다(1821-1900).
그는 교회가 사용하는 성서 외에 자기가 체험한 것을 내용으로 하는 “과학과 건강”이라는 책을 중심으로 크리스챤 사이엔티스트라는 종단을 창설했다. 그녀가 주장하는 신관은 다음과 같다.
① 하나님은 만물 안에 있는 만물이다.
② 하나님은 선이다. 선은 마음이다.
③ 하나님, 영, 모든 존재 중 아무 것도 물질이 아니다.
④ 신은 신적 원리, 생명, 진리, 사랑, 영, 정신, 마음이다.
이와 같이 그들의 신관은 무신론과 범신론을 종합한 것과 같다.
3) 여호와의 증인 운동은 19세기 말 피츠버그 근방에서 재림운동을 하다가 기성교회의 모든 교리를 부인하고 자기가 느낀 것을 모아 소책자 The Herald of Morning(아침 소식)이라는 글을 발표함으로써 새로운 신앙운동을 일으켰다.
그의 여러 가지 이단적 가르침 중에 3위1체론에 관한 것이 있다. 그에 의하면 “여호와”(Jehovah)만이 참 하나님이다. 창조 전에 여호와는 우주공간에서 혼자 계셨다. 엘로힘이라는 낱말이 복수로 되어 있으나 이것은 세 하나님이 있었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엄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여호와가 진짜 명칭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고 그가 여호와의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제 2위가 될 수 없다. 물론 성령의 신성도 부인한다.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이단적 반3위1체 사상인 몰몬교와 크리스챤 사이엔티스트와 여호와의 증인은 한국교회가 신앙적으로 혼란에 빠져 있는 틈을 타서 침투하여 많은 추종자를 확보하고 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그러한 운동은 성서적인 것도 아니요 기성교회의 신학에 의하여 검증된 것도 아니요 현대 지성인에게 수용된 것도 아니다. 단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주관적 종교체험을 근거로 황당한 교리를 조작하여 만들어진 이단적 교리이므로 그들의 가르침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6) 위에서 언급한 범신론적 이단설은 자연주의자 또는 신비주의자들이 중요시하여 따르는 사상이다.
그들에 의하면 자연계에 있는 모든 것이 신적이어서 그 자체 안에 모순이나 대립은 없다. 자연과 세계는 보편적인 신적 요소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것을 파괴하거나 그 세계를 침범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또는 자아 안에 신이 있고 자아가 곧 신의 변형된 존재라고 하여 자아를 높이 평가한다. 인도교의 범아일여(梵我一如)사상이나 천도교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은 일종의 신비주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신비주의에 있어서는 형용할 수 없는 신비로운 세계에 몰입하면 곧 자기와 신이 합일이 되는 경지에 들어간다. 이러한 경험 속에서는 신이 존재하지도 않고 도덕도 필요 없고 선악이라는 도덕적 개념도 필요 없다. 이러한 신비주의는 인도교와 불교에서 중요시되는 사상이다.
철학에 있어서도 플로티누스, 에류게나, 엑크하르트, 쿠사누스, 뵈메, 그리고 벨크손을 잇는 신비주의 철학이 프로테스탄트의 정통주의 교리에 대항하여 시대의 총아(寵兒)로 등장하여, 당대의 지성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신비주의에 있어서는 3위1체론 뿐만 아니라 신관념(神觀念) 자체가 와해된다. 또한 가치의 세계가 공동화(空洞化)되므로 기독교 신앙에도 큰 해독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 안에는 영적 체험을 중요시하면서 무궤도적 신체험을 강조하는 목사나 평신도가 많이 있으나 매우 위험한 경향이다.
5. 한국교회 안에 나타난 3위1체론에 관한 이단사상의 유형
(1) 한국인의 종교적 배경
한국인의 기원이 우랄알타이 계통이며 직접적으로는 몽고계통이라고 한다. 따라서 종교적 배경도 몽고인이 섬기는 샤머니즘이 기초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다음으로는 지리적으로 중국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중국의 크고 작은 종교의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한국인의 종교적 실상은 매우 복합적이며 다양하다. 다음에 한국종교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기보다 신관을 중심한 이단적이고 사이비적인 면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1) 미신적 다신론이란 문명이 발달되지 않은 계층이나 사회에서 강하게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병이나 불행한 일이나 천재지변이 일어났을 때 이를 신의 노여움을 사서 벌로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그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는 미신적 신앙이다.
이러한 미신적 다신론에서는 신앙이나 신학이 없이 자신의 주관적 느낌에 근거하여 신을 생각한다. 그 신이 선신인지 악신인지, 실지로 존재하는지, 어떠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관계없이 맹목적으로 그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기도를 드린다. 이러한 경향은 아직도 우리 사회의 밑바닥에서 발견되는 현상이다.
2) 미신적 다신론보다 더 고급스러운 이단으로서 소위 귀신과 잡령을 신으로 착각하고 그들에게 제사를 드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무교가 있다. 이러한 경향은 오래 동안 한국인을 지배해 왔다.
이조 말엽 국운이 기울어져 갈 때, 다급해진 명성황후가 궁정에 무당을 상주케 하여 그 무당으로부터 도움을 청했다. 무당은 일종의 오컬트(Ocult) 시행자로서 마술, 점, 강신술, 귀신 내쫓는 축사(逐邪) 등을 시행함으로써 서민을 현혹하여 돈벌이하는 사이비 종교인이다. 최근에 기독교 신자들 중에도 오전에는 야웨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오후에는 샤먼을 찾아가서 귀신과 잡령에게 시주하는 수가 증가한다는 말이 있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의 신앙교육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3) 유일신론을 믿는 사이비 목사나 장로나 신자들이 많이 있다.
위에서도 지적했지만 기독교를 야웨 하나님만을 믿는 유일신 종교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역사적으로 군주신론자들이나 16세기의 세르베투스나 17세기부터 미국에서 두각을 나타낸 유니테리안들은 다같이 유일신론을 주장하다가 이단으로 처단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성서와 교회의 정통적 신앙과 신학은 3위1체 하나님을 믿고 가르쳐 왔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 다같이 동등한 신이며 이 세 분(위)이 일체를 형성하고 계신다. 이 세 분을 따로 따로 믿는 것이 아니라 세 분을 동시적으로 동등하게 믿는 것은 정통적 기독교의 신관(神觀)이다. 그런데 교인들 가운데에 성부를 제일 크게 믿고 그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다음으로 성령을 믿는다고 함으로써 신을 차별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유교의 영향을 받은 한국에서는 하늘을 신적 존재로 믿고 그 하늘에 천재(天宰)가 있다고 믿는다. 또는 태양신이 있다거나 월신(月神)이 있다고도 한다.
기독교인 가운데 우리가 믿는 대상인 3위1체 하나님을 한 영으로 집약해서 일령론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성서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영이다”라는 말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의 영성과 성령의 영성이 아버지 야웨의 영성으로 승화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정통적 신관은 아니다. 물론 성령도 영이요 그리스도도 영으로 계시고 야웨 하나님도 영이시다. 그렇다고 해서 3령신론을 말해서는 안 된다. 이 세 영이 한 영으로 합일이 된다. 그러나 한 영으로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세 영으로 계시면서, 하나님 자체 안에서 그 세 영이 상호관계 안에서 하나와 셋으로 동시적으로 존재한다. 이것이 정통적 3위1체론의 근본적 논리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성을 아버지 하나님에게만 적용하여 기독교의 신관은 1령신론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구원론이 파괴된다.
3위1체론을 말할 때 두 가지 말해서는 안 될 금물이 있다. 하나는, 3신(령)론이 1신(영)신론으로 발전한다는 생각과 하나님의 섭리에 실패와 변경이 있다는 두 가지 사상이다. 전자는 지방교회론자들에게서 발견되고(윗트니스 리 : 하나님의 경륜, 15쪽) 후자는 스코휠드의 세대주의에서 발견된다. 복음적이고 정통적인 3위1체 신관이 말하는 하나님에게는 발전이나 전진이나 개혁이나 변경이 없다.
4) 신비적 체험신론을 주장하는 신자들이 많이 있는 것이 한국교회의 신앙세계의 하나의 특징이다.
특히 깊은 신앙생활을 하고 기도원에 자주 출입하고 성경을 다독하고 세상에서 보람 있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가운데 이러한 체험을 한 사람이 많이 있다. 본래 한국인은 종교적 전통과 교육을 받은 민족이어서 그러한 방향으로 몰입하기가 쉽다. 그러나 아무리 깊고 경건한 신비적 체험을 한다 해도 피조자이며 상대적 존재인 사람이 직접 하나님을 볼 수도 접촉할 수도 대화도 할 수가 없다. 그러한 체험을 했다는 사람이 많이 있으나 그것은 자기가 본래 가지고 있는 종교적 성향의 작동으로써 그렇게 느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기독교 신학은 경건한 신앙과 신비적 체험을 엄격히 구별한다. 초대교회의 몬타누스와 중세기의 엑크하르트와 20세기의 스웨덴부르크를 교회에서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피조자는 직접 창조자를 수용할 수 없다”(Finitum non capax infiniti)가 정통교리의 원칙이다.
그러므로 심도 높은 경건주의는 환영하나 하나님이나 그리스도나 성령을 신비적으로 접촉하여 그 신을 만나고 보고 대화하고 계시를 받는다고 하는 신비주의는 일체 용납할 수 없다.
5) 견귀론(見鬼論) 또한 수용할 수 없는 위험한 신앙양태다.
그들은 성서에 있는 귀신론을 근거로 지금도 귀신이 맹렬히 활동하고 있다고 하나 한 귀신이 시대를 초월하여 영존할 수 없다. 성서에 나타난 귀신은 그것으로 끝났다. 만약 그 귀신이 계속해서 생존한다면 그 귀신이 하나님과 같이 시간을 초월하여 생존하는 것이 되며 그렇다면 피조자가 아닌 영원자가 된다. 그러나 성서는 그러한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님은 귀신을 창조하지 않으셨다. 귀신이란 실체적 존재가 아니라 개인이나 사회나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 가운데 오작동(誤作動)의 현상으로 나타나는 주관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이다. 귀신이 실체를 가지고 왕국을 만들어 선의 세계에 대항해서 전쟁을 일으키는, 하나님의 세계와 다른 세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귀신의 세계에는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문명도 없다. 일시적인 악의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귀신을 보고 그들과 논쟁을 벌이고 개인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추방했다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주관적 현상이요 사람의 착각에서 연유된 정신적 오판이 생산한 작품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이러한 사람들의 주장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견귀론자(見鬼論者)들이 목회하는 교회는 기독교회가 아니며 그러한 교회에 다닌 사람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 견귀론자를 믿는 사교집단(邪敎集團)이다.
6) 자기를 신격화하여 제 2신으로 주장하는 이단종파가 유독 한국에서 많이 생겼다.
해방 전에는 황국주가 있었고 해방 후에는 박태선과 문선명이 그러한 유의 이단자들이다. 성서와 교회가 가르치는 하나님은 특정한 사람과 동일시되거나 그렇게 이용당하지 않는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경고가 있으나 한국인 중에는 그 계명을 범하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
7) 3위1체 하나님을 알기 쉽게 설명하려는 의도에서 이단적인 과오를 범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태양에 비유한다든가 물(H20)에 비유하는 과오를 범한다. 또 어떤 이는 수박에 비교하고 또한 생산품에 비교한다. 이렇게 하나님의 신비적 존재양식을 불완전한 물건과 비교함으로써 신성을 모독한다.
8) 재림운동자들은 두 가지 점에서 이단적 과오를 범한다.
첫째는, 하나님의 역사경륜이 모든 사람에게 숨겨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의적으로 하나님의 시간(카이로스)을 측정하여 인간의 시간(크로노스)으로 계산함으로써 예수의 재림을 예고한다. 특히 한국교회 안에 이러한 과오를 범하는 신자들이 많다. 1992년 10월 28일에 예수재림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렇게 가르침으로써 인간이 하나님의 섭리권을 침해하고 있다.
둘째는, 예수재림 운동자들은 예수재림에만 관심을 가지다가 그만 성부와 성령의 참여를 망각하게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3위1체 신앙을 파괴하고 만다. 이 두 가지 점에서 예수재림운동은 반3위1체 운동이 되고 말았다.
이상에서 필자는 인류역사 안에 있는 신관의 보편성과 기독교 신관의 특수성과, 이단적이고 사이비적인 3위1체론과 한국교회 안에서 독버섯처럼 일어나고 있는 반3위1체론을 간략하게 서술했다. 3위1체론은 우리의 이성과 감성과 오성의 능력을 벗어나 있는 신비스러운 존재양식이기 때문에 인간의 지적이고 감성의 기능을 가지고 이해하려다가는 뜻하지 않게 이단적이고 사이비적인 과오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초대교회의 교부들이 겸손한 마음으로 믿고 고백한 그 교리를 그대로 받아들여 먼저 믿은 후에 알게 되기를 기다리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특히 아타나슈스 신조(5세기) 제 3조항에서 28조항까지 고백되고 있는 내용이 현재까지 로마천주교회와 프로테스탄트의 주요 교파가 믿고 따르는 3위1체론에 관한 내용이다. 그 고백을 표준으로 믿고 따른다면 더 이상 3위1체론에 관한 사이비 이단설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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