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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그리스도의 감추어진 비밀!

하나님아들 2012. 9. 7. 20:03

본문: 고전1:18-25

제목: 그리스도의 감추어진 비밀!

 

 

바울은 본래 바리새인이요 철저한 율법주의자다. 그는 태어나서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율법으로도 흠이 없는 자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다 관에 넘기는 일을 즐겨했던 자다. 그러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빛으로 찾아오신 예수를 만났던 것이다.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행9:3)” 예수를 만나고보니 비로소 자신이 하나님과 원수 짓만 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만약에 바울이 예수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는 죽는 날까지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비밀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율법만이 사람을 의롭게 하는 것으로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만나고보니, 자신의 생각이 완전히 잘못 되었음을 알고, 그동안 자신이 율법 아래서 배웠던 모든 성경지식을 배설물처럼 여긴다고 했다. 바울의 이 말은, 결국 아무리 오랫동안 법아래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을지라도 결국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게 되면, 인간은 모두 소경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바울처럼 진정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면 자신들이 어둠속에 살고 있는 소경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방인들이 믿은 예수는 율법 아래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 이름을 믿은 것이다. 따라서 율법도 없이 살던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믿고 성령(영적인 율법)을 받은 것은, 이제 겨우 땅에서 하나님 백성이 된 것에 불과하다. 백성의 신분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아직 진정한 그리스도를 만나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들이 진정한 구원에 이르려면 이방인들 앞에 오시는 영적인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소경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겠지만, 성령은 그리스도 영이 아니고 아버지 영이다. 따라서 아직 기독교인들은 인격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아직 때가 되지 않아 그리스도 역시 이방인들 앞에 오신 적도 없다.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고 말하고 있다. 이를 직역하면, 예수가 하나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을 것이 아니라 당연히 살아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 아들이라는 분이 십자가에서 죽어버렸으니, 어느 누가 그를 하나님 아들로 믿으려 하겠는가? 하는 말이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가 왜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몰랐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통해서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시 유대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그런 사실을 가르쳐 주는 자가 없었기 때문에 알 수가 없었다. 그들도 예수가 오시고 난 뒤에야 겨우 이런 비밀들이 밝혀졌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장차 오실 그리스도에 대해서 전혀 아는바가 없다. 만약 그리스도로 거듭 난자가 있었다면 오늘날 잘못된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을 바로 잡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 앞에는 아직 그리스도가 오신 적이 없기 때문에, 기독교인 역시 자신들의 신앙생활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이를 바로 알려면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가르쳐 주어야만 이런 사실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법아래 사는 인간들이 하나님의 표적을 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들이 자꾸만 눈에 보이는 표적을 구하는 것은 아직 자신들이 온전치 못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자꾸만 눈에 보이는 표적을 쫓아 이교회 저 교회를 기웃거린다. 그것은 마음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 대부분이 신비주의에 현혹되어 그들을 따라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 이 말은, 결국 자신의 마음속에서 천국을 발견해야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헬라인이 지혜”를 찾는 것은, 그들은 모두 고상한 말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헬라는 당시 로마와 그리스를 일컫는 말로서 철학자들을 많이 배출한 곳이다. 그들은 고상한 말들을 좋아해서 예수께서 하는 말도 철학적으로 이해하려 했던 것이다. 서양에 고상한 철학이 있다면 동양에는 유교사상이 있다. 오늘날에도 고상하고 유식한 말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그런 자를 흠모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 말속에는 진리가 없기 때문에 당장 듣기에는 좋을지 모르겠으나, 인간의 영혼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바울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이 거리낄 수밖에 없던 이유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살아내려 왔더라면 모두가 그를 하나님 아들로 믿었겠지만,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죽었다는 것 때문에, 유대인들은 예수 믿기를 꺼려했으며, 이방인들은 죽은 자를 믿는다하여 미련하게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스도의 감추어진 비밀임을 누가 알겠는가?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당시 유대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리스도가 아직 이방인들 앞에는 오신 적이 없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아직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를 만난 적이 없다. 기독교인들은 자꾸만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오셨다고 말하고 있지만, 성령과 그리스도 영은 각각 아버지와 아들의 영으로써 그 위격 또한 각각 다른 분이시다(마10:20참조). 성령과 그리스도 영을 똑같은 분으로 보게 되면,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거역한 죄는 영원히 사함 받을 수 없게 된다.

 

 

이제 잠시 잠깐 후면 하나님께서 이방인들 앞에도 당신의 아들을 보내주시게 될 것이다. 아들을 기다리는 기독교인들이 경거망동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에게서 진리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죄를 깨달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표적이나 구하고, 그에게서 위로의 말이나 들으려 한다면 기독교인들 역시 아들을 눈앞에서 보고도 믿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방인들 앞에 오실 그리스도는 거친 모습으로 오시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자상하고 고상한 모습이 아니라, 성격이 불같고 말과 행동이 거칠어서 하나님 아들이라고 믿기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분으로 오시기 때문에 모두가 꺼려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께서 이미 정하신 일이라 누구도 이를 번복할 수는 없다. 성경 또한 그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롬9:33)” 여기서 부딪히는 돌은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를 말하는 것이며, 거친 반석은 이방인들 앞에 오실 그리스도를 가리켜 하시는 말씀이다.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 앞에 거친 모습으로 오시는 이유는, 인간의 부패한 마음속에 감추어진 죄악을 들추어내기 위해서다. 인간들에게 고상한 말이나 점잖은 말로 타이르게 되면 인간들은 절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험악한 말로 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면 그들 또한 본색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이때 마음이 선한 자는 그리스도께서 하는 말을 듣고 심기가 불편함을 느끼며, 그것이 자신의 마음속에 숨겨진 죄악임을 깨닫고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의 죄악을 실토하게 될 때, 아들은 그들의 모든 죄를 사해주시게 될 것이다.

 

 

인간이 처음 지음 받았을 때는 모두가 선하게 지음 받았다. 그러나 첫 사람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인간의 영이 죽게 되자, 사단이 인간의 주인 노릇을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사단의 지배를 받는 모든 인간은 절대 선하게 살 수 없게 되었다. 사단은 인간의 선한 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악한 모습은 감춘 체, 인간으로 하여금 자꾸만 선한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 특히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 수록 사단에게 철저하게 이용당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모든 종교가 선(善)을 내세우고 있다. 그 선(善)한 것을 마귀가 철저히 이용하는 것이다. 절간의 스님들을 보면 항상 온유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부처님의 자비가 사람을 선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천주교 신부님들의 정결한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를 존경한다. 그러나 그들 마음속에도 똥(죄)과 악(죽은 영)은 존재한다. 다만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삭히고 있을 뿐이다. 외람된 말이나, 겉으로 착한척하며 사는 자들이 하나님 아들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구원 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울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유난히 더 착하게 살 것을 강조한다. 예수가 선하신 분이기 때문에 자신들 역시 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은 자신의 죄악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보내주신 것이다. 그런데 교회에서 이를 잘못 가르쳐서 모두가 구원 받은 하나님 자녀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 말을 들은 성도들은 그때부터 모두가 착한 예수로 돌변하고 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목적은 이방인들이 교회 다녀서 자신의 죄를 깨닫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교회 다녀서 모두 구원 받은 의인이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본인들 마음속에는 똥(죄악)과 똥파리(죽은 영)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 모두가 하나님 자녀라 불리는 명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으로 위장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겉모습은 착한 예수요 마음속에서는 마귀가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믿는 자들이 겉모습을 예수로 둔갑하고 살아가다보니 마귀는 그들을 꼭두각시처럼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 앞에 오실 하나님 아들은, 인간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죽은 영(마귀)의 정체를 여지없이 드러내실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험한 말로 인간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여 마귀의 본색을 드러내게 하시는 것이다. 누가 자신에게 험악한 말을 할 때 기분이 나쁜 것은 인간이 기분 나쁜 것이 아니라, 사실은 마귀가 기분 나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죽은 영의 지배를 받고 살다보니 마치 자신이 기분 나쁜 것처럼 역성을 내는 것이다.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를 인간이 죽였지만, 마귀가 죽였다고 표현하는 것은 바로 이런 원리 때문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보내심을 받고 온 사람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식하고 험악한 말을 한다면, 어느 누가 그를 하나님 아들로 믿겠는가? 여러분 같으면 그런 자를 하나님 아들로 믿을 수 있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꺼려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자는, 그가 하는 말을 진리로 받아들일 것이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있는 자는 이미 마귀의 궤계를 무너뜨린 자이다. 따라서 그런 자는 누가 뭐라 해도 아들이 전하는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일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 있다. 유대인들 입장에서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던 것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이 더 쉽겠는가?” 아니면 오늘날 기독교인들 입장에서 “거칠고 험악한 말을 하는 자를 하나님 아들로 믿는 것이 더 쉽겠는가?”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이 숙제를 풀어야 자신의 구원문제 또한 풀리게 될 것이다.

출처 : 거친 반석(磐石)
글쓴이 : 거친반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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