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인물

[스크랩] 성경의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하나님아들 2012. 9. 6. 23:25

 

 

 

성경의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 마리아 Mary (인)

마리아는 신약성경에서 마리아 또는 마리암으로 나온다. 이 두 이름은 둘 다 미리암이라는

히브리 이름을 헬라식의 형태로 바꾼 것이며, 70인역본에서는 마리암(Mariam, 한글개역은

'미리암', 모세의 누이)으로 나온다. 이 이름의 뜻은 '가장 사랑받는'이라는 뜻의 애굽어 마르예에

 그 기원을 둔 것 같다. 그러나 히브리 이름 미리암은 '완고, 반역'을 의미한다.

신약성경에서 이 이름은 다음의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

1. 동정녀 마리아.

(a) 예수님의 어머니, 마 1:16.

(b) 그녀에 관한 예언, 사 7:14.

(c) 요셉과 정혼, 눅 1:26-27.

(d) 동정녀 수태에 대한 예언, 눅 1:28-38.

(e) 엘리사벳을 방문함, 눅 1:39-41.

(f) 예수님을 낳음, 눅 2:6-20.

(g) 요셉과 함께 애굽으로 피난함, 마 2:13-18.

(h) 다른 자녀들의 어머니, 막 6:3.

(i)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을 방문함, 눅 2:41-52.

(j) 예수님께서 모친 마리아를 요한에게 맡기심, 요 19:25-27.

2. 글로바의 아내.

(a) 글로바의 아내, 요 19:25.

(b) 야고보와 요세(요셉)의 어머니, 마 27:56.

(c)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지켜봄, 마 27:55-56.

(d) 무덤까지 예수님의 시신을 따라감, 마 27:61.

(e) 부활하신 주님을 봄, 마 28:1 마 28:9 마 28:10.

(f)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주님의 부활을 알림, 마 28:7-9 눅 24:9-11.

3. 막달라 마리아.

(a) 막달라 마리아, 마 27:56, 마 27:61.

(b) 일곱 귀신으로부터 구원함을 얻음, 눅 8:2.

(c)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해 기부함, 눅 8:2-3.

(d)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지켜봄, 마 27:55-56.

(e) 무덤까지 예수님의 시신을 따라감, 마 27:61.

(f)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감, 막 16:1-8.

(g)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진 것을 말함, 요 20:2.

(h) 부활하신 예수님을 첫 번째로 본 사람, 막 16:9 요 20:11-18.

4.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

(a) 마르다와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 요 11:1-2.

(b) 예수님께 칭찬을 받음, 눅 10:38-42.

(c) 나사로의 죽음을 인해 슬퍼함, 요 11:19-20, 요 11:28-33.

(d) 예수님께 향유를 부음, 요 12:1-3, 요 12:7.

(e) 예수님께 다시 칭찬을 받음, 마 26:7-13.

5. 마가의 어머니. - 행 12:12-17.

6. 로마의 기독교인. - 롬 16:6.

*막달라 마리아

지난 세기 동안 사람들은 풍부한 돈을 이용하여 역사적 사실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자신들의 상상 속에서

지어낸 이야기들을 책으로 써서 출판하고 영화로 만들어 보급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모습과 그리스도가 살아 계실

때 접촉하셨던 사람들의 생애를 왜곡시켜왔다.

그중의 한 예로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를 소설화하여 전 세계에 퍼뜨렸다. 그들은 또한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발을 값비싼 향유로 씻겨 드린 죄 많은 여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가 사용하는 통일 찬송가 346장에도 보면 막달라 마리아가 값비싼 향유를 예수께 드렸다고 표현되어

있는데, 하지만 성경에는 죄 많은 여인의 이름이 나와 있지 않다.(누가 7,36-50 참조) 그 죄 많은 여인은 막달라

마리아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딴 인물인 것이다.

 

막달 라 마리아는 한 때 일곱 마귀에 사로잡힌 질병에 걸려 있었는데 예수께서 그녀의 병을 치유해 주셨다.

(누가 8:3) 그 이후 그녀는 다른 여인들과 함께 예수와 열두 제자들이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그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했다. 예수께서 골고다 산에서 십자가에 매달리실 때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그곳에 있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 아침에도 그녀는 다른 두 여인과 함께 향유를 들고 예수의 무덤을

찾아갔다가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천사들에게서 듣는 영광을 누렸다. 그녀는 또한 부활하신 예수를

직접 두 눈으로 보기도 하였다.

동방정교회에서는 막달라 마리아의 이런 열성적인 선교활동을 높이 평가하여 그녀를 준사도의 반열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그녀는 믿음이 깊고, 영혼이 깨끗하였으며,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하는 생활을 하였으므로 교회는 그녀를 특별한 인물로 존중하며 그녀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한다.막달라 마리아는 막달라 마을에서 살았던 여인이었다. 그래서 예수를 따라 다녔던 다른

여러 마리아와 구별하기 위해 막달라 마리아라고 불렀다. 그리고 수세기 동안 그림, 소설, 연극, 영화 등에는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로 표현되고 있는데 성경 어디에도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였다는 기록은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럼에도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로 언급되는 이유는 AD. 590 년 성경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초대 교황이 되었던 그레고리우스 1세가 교황이 되었던 다음 해 즉 591년 부활절 설교를 하면서

누가복음 7장에 등장하는 죄 많은 여인이 창녀이며 막달라 마리아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필자가 사춘기 때 본 예수의 생애를 그린 영화에서도 막달라 마리아가 간음 현장에서 잡혀 온 여자와

동일인으로 표현한 것을 본 기억이 난다. 그리고 록 오페라 수퍼스타 예수 그리스도에서도 막달라

마리아가 간음 현장에서 잡혀온 여자(창녀)로 표현되고 있으며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와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도 막달라 마리아를 창녀로 표현하고 있다.

성경에서 간음(adultery)에 대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간음이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예수께서 오시기 전 유대인들은 유부녀와 유부남이(법적인 관계 속에 있는 사람) 다른 남자나 여자와

성관계를 가지는 것을 간음죄로 인정을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떤 관습을 떠나서 남자나 여자가 서로

상대를 보고 음욕만 품어도 간음죄라는 주장을 하셨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 5:28)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성경을 읽다가 마태복음 5장 28절 내용을 보고는 예수께서 과연 그런

 말씀을 했을까? 하는 의문을 품고는 예수님 다시 사용하던 아람어를 조사한 결과 아람어에서는

“여자를 보고..”에서 본다는 말이 ‘애착하여, 사랑하여’ 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안심하였다고 한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예수께로 끌고 온 것을 볼 수가 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이 여자를 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질문을 던진다.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혔는데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고

하셨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이들은 십계명 중 6계명인 ‘간음하지 말라’는 내용을

언급하면서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려고 한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일 예수님이 이 여자를 그냥

용서하라고 말하면 레위기 20장에 나오는 율법에 위배되므로 예수님을 고소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녀를 율법에 나온 대로 돌로 쳐 죽이라고 말하면 예수께서 평상시에 말씀을 전하시면서 용서를

강조한 자신의 가르침을 스스로 어기는 위선적인 모순에 빠지게 되는 것이었다. 베드로가 예수께 형제가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를 베풀어야 합니까? 일곱 번 용서를 해야 합니까 라고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시면서 무한적인 사랑을 강조하셨다.

평소의 이러한 가르침과는 반대로 심판을 명하신다면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말과 행동이 다른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 줄 것이고 그러면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실망을 하고 예수님을 떠날 것이라는 계산

 하에 이들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예수께 끌고 온 것이라고 여겨진다.

또 만약 예수님이 돌로 치라고 하면 예수님은 모세의 법은 따랐지만 그 당시 로마 지배하에 로마법을

따르고 있는 실정법에는 위배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은 로마법을 어긴 책임을 져야 되는

것이었다. 이것을 저들은 이중 삼중으로 이용하려 한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몰려든 사람들 앞에서 몸을 굽혀 땅바닥에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쓰셨다. 몰려든 사람들은

예수를 향해 재차 답변을 요구했고 예수께서는 일어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다.

그리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다. 몰려든 사람들은 예수의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다 떠나 가버렸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 때 예수께서 땅에 쓰신 글자에 대하여 많은 호기심을 갖고 있다. 성경은 예수께서 쓰신

글자가 무엇이라고 밝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단순하게 상상의 날개만 펼칠 뿐이며 후세에 신학자 제롬은

예수께서 땅바닥에 쓰신 글자는 그곳에 몰려든 사람들이 범한 죄목을 쓴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예수께서 땅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신 내용을 전혀 알 수가 없다. 다만 성경에서 손가락으로 글씨를

쓴 기록을 찾아보니 첫째로 다니엘서에 어떤 사람의 손이 나타나서 벽에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고

썼다는 기록이 있으며(단 5장), 둘째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이 기록된 두 개의 돌판을 받아올 때 하나님이

손(손가락)으로 친히 쓰셨다고 기록되어 있다(출 24:12; 신 9:10)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일을 두 번씩이나 하셨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땅에 손가락으로 쓰신 내용도 십계명의 10가지 항목을 전부

쓰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등)

또한 그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의 풍습은 자신들의 할 이야기를 손가락이나 막대기를 이용하여 땅 바닥에

쓰기도 하였다. 특히 베두인족은 양이나 염소를 거래할 때 땅 바닥에 쓰면서 거래를 하였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땅에 무엇인가를 쓰는 모습은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생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과연

예수께서는 땅에 무엇을 쓰셨을까? 먼저 예수님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기에 앞서

‘너희 중에 증인이 누구냐’ 라는 것을 땅바닥에 썼을 수도 있다.

신명기 17장 7절의 말씀에 이런 자를 죽일 때에는 증인이 그에게 손을 댄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대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증인이 먼저 돌로 쳐야 하는데 그 자리에는 증인이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다시 말해 이 여자는 증인에 의해 현장에서 끌려 온 것이 아니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

 의해 예수를 고소할 목적으로 끌려 온 것이다. 또한 증인이 필요한 것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왔다면

분명 여자와 남자가 함께 끌려 와야 한다. 그런데 그 자리에 남자는 없는 상태인 것이다. 간음이란 부부가 아닌

남자와 여자가 성관계를 할 때 성립되는 것으로서 간음죄란 남자와 여자 둘 다 똑같이 적용되는 법이다.

남자 없이 여자 혼자 간음죄를 저지를 수 없고 또 여자 없이 남자 혼자 간음죄를 저지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또 다른 글, ‘남자는 어디 가고 여자만 끌고 왔느냐’고 땅바닥에 쓰셨을 수도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것은 필자의 상상(추측)이지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남녀의 간음(음행) 현장을 알고는 미리 기다리고 있다가 급습하여 여자를 예수께 끌고

 왔다고 볼 수 있으며 여자의 상대인 남자는 동작 빠르게 현장에서 도망쳤거나 일부러 놓아 주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들은 그 당시 정,부정을 엄격히 따지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직접하기 보다는 돈을 주고

사람들을 매수하여 간음한 여자를 현장에서 붙잡아 온 것을 넘겨받아서 예수께 끌고 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매수되어 돈을 받은 사람들은 아마 그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되며 그러므로 간음한 여자를

예수께 끌고 온 현장에는 증인(목격자)도 없었다고 할 수 있으며 설사 증인이 있었다 해도 그 증인은

여자의 간음을 막지 않고 방조(간음하기를 일부러 기다림?)했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성경 원어에 보면 간음과 음행이 같은 뜻으로 쓰인 경우도 있어서 예수 앞에 끌려온 여자도 간음이

아닌 음행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그렇다면 끌려온 여자는 몸을 파는 창녀였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지 예수께서는 여자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 하시고 여자를 용서하셨다.

이제 결론적으로, 성경에는 여러 명의 마리아가 등장하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께 병

고침을 받고 자신이 가진 재물로 예수님과 제자들을 섬긴 열성적인 여인이었으며 예수를 따르는 여러

여자들 가운데 중심인물로서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에서 여선교회 회장 같은 인물이었다고 볼 수 있으며,

서양화, 소설, 연극, 영화에서 표현된 것처럼 예수께 향유를 부은 죄 많은 여자도 아니었으며 간음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도 아니었음을 단언할 수 있다.

   정리: 김문영

 

               *아래의 그림이나 음악은 그동안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왜곡된 내용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렘브란트의 그림

 

 

 

 

                                                         Music: I don,t know how to love him
                                                            
Andrew Lloyd Webber (앤드류 로이드 웨버)
                                                              락 오페라 "Jesus Christ Superstar " 中
                                                            Maria Magdalena의 아리아 / Evonne Elliman

 

                                                    

        I don't know how to love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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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Bak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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