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에이지의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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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에이지의 세계관 - 크리스챤 포스트
19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대표적인 것은 아니지만 자연주의는 주요한 사조가 되었다.자연주의는 하나님을 배제시킨 후 대두된 최초의 사조였다.그들의 핵심적인 사상은 우주가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천문학자인 칼 사강은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우주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또한 자연주의는 인간을 우주의 일부로 간주하고 인간이 매우 복잡한 존재이긴 하지만 어떤 초월적인 존재와의 관련성은 전혀 없다고 주장하였다.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이 진리와 도덕의 판단자가 되는 것이다.여러가지 이유로 자연주의자들은 지금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고수하고 있으며 인간은 각각 가치있는 존재라고 믿고있다.
자연주의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없으므로 그들은 인간의 악과 실패는 완전치 못한 진화의 결과로 본다.인간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오직 인간의 손에 있다고 생각한다.그들에게는 영의 세계가 없으므로 인간이 죽으면 사라지는 것으로 설명한다. 사후의 삶이란 없는 것이며 죽음은 그 인간의 마지막으로 간주된다.
이는 매우 황폐하고 비관적인 인간관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절망적이고 허무적인 자연주의적 인간관이 아닌 새로운 세계관을 갈망하게 되었다. 서구의 자연주의가 아닌 동양의 신비적인 세계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결과로 지난 50여년간 범신론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왔던 것이다.
범신론은 자연주의와 기독교적 유신론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그것은 범신론에서는 신과 우주가 하나이기 때문이다.신과 우주가 하나라는 것은 범신론의 기본 논리이다.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한 인간의 영혼이 우주의 핵심이며 역으로 우주의 핵심은 인간의 영혼이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들의 이론에 따르면 각 개인은 동등하게 신이 되는 것이다. 범신론적 용어로 신을 정의하면 신이란 우리가 알고있는 유일한 절대자 하나님이 아니라 궁극적이며 무한한 비인격적 실체,즉 우주를 말하는 것이다.존재하는 모든 것을 그들은 신이라고 부른다.그러므로 실재하지 않는 것은 신이 아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눈에 보이지않는 실재물이 있는데 그들은 이것을 maya(마야)라고 하며 이는 환상을 의미한다.물론 마야는 실재물이기는 하나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신은 아닌 것으로 간주된다.
또한 그들의 범신론적인 개념에서 보면 인간 각각의 개체들은 특별한 가치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중요한 것은 전체,즉 하나라는 것이다.그러므로 동양에서는 고귀한 영혼을 지닌 인간의 개체가 마치 물통에 떨어지는 한방울의 물처럼 전체에 흡수되어 자신의 가치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이러한 단일성을 방해하는 요소를 예를들면 물질에 대한 욕망이나 행복에 대한 동경, 타인들과의 사랑조차도 배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개인적인 욕망들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여러가지 방법들을 중시하고 있는데 명상은 그 중 대표적인 방법이다.
동양의 사상 체계는 인간이 한 평생에 자신의 신성을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므로 윤회를 거듭해야 하는데 윤회는 업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이다.인간의 행동이 어떤 종류의 것이냐에 따라서 신성에 접근하는 정도가 결정되며 결국 그들의 궁극적목표는 윤회를 끝마치고 우주와 하나가 되는 합일성에 도달하는 것이다.
궁극적인 실체는 하나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절대적인 선도 악도 진실도 거짓도 구분되지 않는 상태가 된다.그들은 이러한 구분은 이 세상의 특징이며 그러한 구별은 극복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개인을 중요시하며 물질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서구인들에게 범신론이란 그리 매혹적인 사상은 아니다.그러므로 뉴에이지는 지금까지 언급한 세개의 세계관의 매혹적인 요소만을 취하여 만들어진 사상이다. 뉴에이지는 사람들이 꺼려하는 요소들은 삭제시켜버리고 현대의 시대적 상황에 맞게 사람들의 구미를 맞춘 것이다.
- 매클레인의 뉴에이지 세계관의 기초 -
뉴에이지는 윤회설을 내포한 범신론의 궁극적 실체 (ultimate reality)의 개념을 수용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독교의 유신론과 자연주의의 인간 개인의 가치를 중시하는 인간관을 수용하기도 했는데 오히려 후자에 더욱 비중을 두었다고 보는 것이 옳은 분석이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셜리 매클레인을 비롯한 뉴에이저들은 인간 하나하나가 신(Each individual is God)이라고 간주하기 때문이다.그들에게는 자아가 궁극적 실체의 핵심이 된다.
셜리 매클레인(영화배우-전재자 주(註))은 특히 인간의 창조력을 중요시하는데 이것은 동양적인 사고보다는 서구적인 사고의 색채가 짙다.동양의 범신론에는 창조성이란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셜리 매클레인에게 있어서 자아란 매우 실제적인 것이다.그녀는 자신의 자아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유일신 하나님으로 정의한다.
출애굽기 3장 5절에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명하신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세와의 구별됨을 강조하신 것이다. 즉 "나는 신이지만, 너는 아니다(I'm God,
but you are not)"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매클레인은 그녀 자신을 동양적인 신이 아닌 기독교의 유일신 하나님과 동등화시켜 버렸다.성경은 분명히 그녀를 창조한 것은 유일신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을 비롯하여 모든 인간이 창조하고 파괴하며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생각은 기독교인들에게는 매우 황당하고 충격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매클레인이 시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신성과 권능에 대한 도전이다.이는 확실히 신성 모독이며 에덴 동산에서 뱀이 이브에게 속삭였던 유혹과 똑같은 속임수인 것이다.
매클레인은 인간자신이 가장 훌륭한 스승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위대한 진리라고 단언했다. 또한 그녀는 우리가 찾고있는 신이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닌 자아 속에 있다고 주장한다.
- 두 개의 세계 -
뉴에이저들에게는 두개의 세계가 존재하는데 가시적인 세계 (visible world)와 비가시적 세계(invisible world)로 나뉘어진다.가시적인 세계가 보통사람들이 오감을 통해서 경험하는 현상적 세계라면 비가시적인 세계는 가시적 세계와는 전혀 다른 뉴에이저들의 신비한 수단,즉 명상이나 침,무아경들을 통해 경험하는 세계를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수단을 더욱 계발하였는데 특히 매클레인은 몇몇 영매를 통하여 보이지 않는 영들과 교신한다.
케빈 라이어슨은 영매로서 그녀가 두개의 영들과 교신할 수 있도록 해주었는데 그 중 하나는 자신을 탐 맥퍼슨이라고 부르는 영으로서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시대에 소매치기를 했었다고 한다. 다른 영은 세베대의 요한으로서 성경의 요한 계시록을 자신이 썼다고 주장하는 영이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것은 계시록의 내용과 전혀 무관하다.
그리고 매클레인은 정기적으로 요가와 명상을 하며 페루의 안데스 산맥에 있는 온천에 몸을 담그고 촛불을 응시하는 가운데 입신의 경험 (out-of-the-body experience)을 하기도 하였다. 또한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자신의 전생이라고 믿는 장면들을 환상으로 보기도 하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저서에서 일단 비가시적 세계에 들어가면 시공을 초월하게 되며 크리스 그림슨의 침을 맞으면 무아경에 빠지면서 자신의 초자아를 만나게 된다고 밝혔다. 그 초자아는 그녀에게 "I am your higher unlimited self"라고 말했다고 한다.그때부터 그녀는 그 초자아를 자신의 인도자로 여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셜리 매클레인에게는 가르침 (teachings)이라고 부를만한 분명한 윤리성이나 도덕적 교훈이 없다.그녀가 정치적 도덕적으로 주장하는 이슈는 자유(liberal)이다. 그녀의 결혼과 사생활에 대한 관념은 지극히 현대적이다.그녀는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곧 이혼한 후 여러명의 연인을 가졌고 그러한 관계에 대한 슬픔이나 죄악감을 느낀 적이 없다고 한다.
그녀의 윤리성은 형이상학에 근거한다.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신이 되기 위한자기개발과 더 나아가서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그녀는 말하기를 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은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한다.그녀의 윤리관은 자아중심적이며 모순에 차있다.셜리 매클레인이 심취해 있는 사상 체계는 결코 인생의 참의미를 우리에게 줄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우리에게는 훨씬 더 나은 선택이 있다.
- 더 나은 길 -
2천년전 이스라엘에는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면서 이적과 기이한 일을 행하는 사람이 나타났다.그는 그 시대의 사람들을 혼돈케 했고 그 자신이 유대의 성전의 예언을 성취시킬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그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방법과는 다르게 행동했다.그는 종교지도자들과 동족들을 분노케 했다.
하지만 그가 제시했던 것은 새로운 삶, 하나님과의 친밀한 인격적 관계의 회복이었다.그는 자신의 가르침을 위해 살았고 그것을 위해 죽었다.
그러나 그가 어떤 다른 인간과는 달랐던 한가지는 자신의 부활을 예언했었다는 것이다.그가 의미했던 것은 윤회에 의한 환생이 아니었다.그는 무덤에 들어갔던 그 육체대로 살아났던 것이었다.그것에 대한 증거는 그의 제자에 의해 명확히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그를 믿어야하는 이유가 여러가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부활의 증거에 있다.
예수는 우리를 자기희생과 섬김의 삶을 위해 부르신다. 그의 윤리는 하나님 중심이요 타인지향적이다. 그의 가장 큰 계명은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그는 여러 비유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가르쳤고,특히 사회의 소외당한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졌다.아무런 희망도 없이 방황하는 가난하고 눌린 자들과 자리를 함께 하였다.
예수의 가르침에는 인간이 신이며 선악을 심판할 수 있는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개념은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그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그분과 화해가 필요한 존재로 다루었다. 그것을 위하여 예수는 이 땅에 오셨던 것이다.그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선포했다.
우리의 임무는 잃어버린 신성을 기억해내어 뉴에이지가 주장하는 신격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진정한 위치를 인정하고 예수께서 성령을 통해 행하신 일에 대한 감사함으로 그 분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다.그리고 그분의 자녀로서의 삶을 시작하고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다.
뉴에이지의 유혹 -바실레이아 슐링크 [크리스챤 포스트 발췌]
우리는 변화된 세계,새로운 시대로 들어섰습니다. 초자연적인 것이 오늘날의 주제가 돼버렸습니다. 서점들은 방대한 양의 밀교문학(esoteric literature)으로 채워지고, 영화와 비디오들은 보이지않는 영적존재들을 소재로 하여 그들을 우주의 주인으로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청소년 잡지들은 동양의 다양한 정신(심리)공학 Psychotechnique)을 제공하면서 영적존재들을 새로운 예언자,20세기의 신들로 간주하고 그들이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선전합니다.
장난감 가게들은 환상적인 상품들과 유령장난감 그리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E.T나 ALF 등 사랑스럽고 귀여운 악마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 범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사이바바'는 거대한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는 하늘에서 불을 받아서 그의 빈 손에 성스러운 재를 가득 채워 그 손이 닿기만 하면 병자들이 치유된다고 합니다.
가끔 우리를 방문하는 친구 티나는 인도의 푸나에서 힌두교의 구루 (guru:힌두교의 교사)와 생활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때의 느낌을 이렇게 진술했습니다.
"전세계에서 모여든 최고의 치료사들에게 너무나도 싼 가격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유혹적인 제안이었어요.그래서 그 치료를 받기로 결심했죠.처음의 치료는 저의 모든 감각을 마비시켜 3살된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로 만드는 것이었어요.저는 그 상태를 매우 즐겼습니다."
몇몇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밀교적인 신비한 경험을 제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카렌은 말하기를 "모든 욕구 불만과 해결책이 없는 문제들, 가정의 불화로부터 벗어나서 요가와 명상,만트라(주:힌두교의 주문)는 제가 오랫동안 갈망하던 피안의 세계로 나를 인도했어요.그곳에서 나는 완벽한 조화를 맛보았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신력(Power of Mind)을 발견한 것은 독특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때 무의식적인 신체의 기능을 내가 원하는대로 조절할 수 있었는데 예를 들어 계단을 걸어올라가는 대신 공중에 떠서 계단을 오를수 있었고 단지 생각의 힘으로 사물을 움직이고 옮길 수 있었습니다.내 자신이 정말로 신이 되었던 것이죠."
또한 마이크는 다음과 같이 진술했습니다. "내가 열네살때 나는 처음으로 신비한 생각의 힘을 체험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초자연적 힘에 몰두했고 나중에는 밀교적인 영역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실제적으로 면밀히 시험해보았죠. 결국 나는 밀교조직의 지도자가 되었고,Grand Master(비밀조직의 단장)가 되었습니다. 나는 신비한 경험과 통찰력을 통해서 우주의 창조자의 영과 완전히 결합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 피안으로의 여행 -
신비주의는 그 비밀스러운 가르침으로 오늘의 서구세계를 정복해가고 있습니다.지난 십여년간 대중적인 운동으로서,뉴에이지는 동양철학,UFO연구(Ufology),밀교,심령술,수상술(손금보기),정신치료,마술,다양한 동방의 심령공학 등을 널리 보급해왔습니다. 그것은 세계평화를 이룩하고,자연과 조화를 이루며,정의와 번영의 미래를 가져오며 우리의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선전되고 있습니다.
일단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자아실현을 경험하면 셀수없이 많은 일상의 욕구와 고통의 상태를 벗어나게 됩니다.사람들은 공포와 강박감,인간관계에서 생기는 긴장감 등의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어 현재의 삶을 미루어 놓고 환상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도취의 경험은 마약을 이용한 환각상태와 같은 것입니다.
라빈드라나스는 자신의 책 "구루의 죽음"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축음기의 소음과 자동차의 경적 등 모든 잡다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경험은 나에게 우주와의 합일을 경험케 해주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생물(꽃,새들,나뭇잎 등)과의 교감을 이루게하는 신비한 경험을 나에게 주었고,나는 자연의 한부분이 되는 것이었습니다.이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지이며,나는 자신의 생각에 의해 나를 창조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계속해서 라빈드라나스는 "당신이 신이 되는 진기한 경험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 될 것입니다. 초자연적 경험의 궁극적 목표는 우주의 신들과 영들과의 조우입니다. 나는 명상을 함으로써 하늘의 음악을 들었고, 황홀한 정도로 눈부신 빛깔을 보았으며 천체여행을 경험했고,몰아지경에서 영과의 교류를 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명상가운데 경험했던 이러한 신비의 세계는 순간적인 것이었지만 요가를 통해서 개발되고 지속되어 공적으로 명백하게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나는 내 자신안에 영적인 힘이 자라고 있음을 분명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나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이마에 손을 얹고 축복을 할때 그들은 광명과 내부의 계시를 느낄수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깊은 명상에 잠겨있을 때 신들이 보이고 나는 그들과 대화를 하며 때때로 지구를 벗어나 다른 별에 가있는 것처럼 느꼈습니다.또한 나는 요가의 몰아지경에 있을 때 파괴자 시바와 단둘이 남게되는 경험을 했는데 나는 두려움으로 그의 발밑에 꿇어앉아 있고 거대한 코브라가 그의 목을 둘러감고 나를 노려보며 그 혓바닥을 위협적으로 날름거리고 있는 것을 목격하곤 했습니다.
때때로 나는 내가 만났던 신들이 왜 친절하고 온유하며 사랑스럽지 않은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그러나 어쨌든 그들의 모습은 결코 아름답지 못했지만 사실인것처럼 보였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그것들은 결코 단순한 신화가 아니었습니다."
미국 청년 랜들은 그의 저서 "뉴에이지의 악몽"에서 자신이 뉴에이지의 리더로 급상승하는 과정과 그가 어떻게 영들과 접촉하게 되는가를 적고 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하도록 돕는 일을 했습니다. 입신경험(out-of-body experience)을 하는동안 그는 자유와 빛과 진리로 자신이 채워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그런데 그의 삶을 급선회시키는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어느날 밤 그가 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별을 여행하고 있을 때 눈부시게 밝고 환한 빛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본 것입니다.그때 갑자기 그 빛의 반대편에서 그를 움켜쥐고 있는 어떤 힘을 느꼈고 증오와 분노에 가득찬 얼굴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악마의 강력한 힘은 그를 조여오기 시작했고 그는 절망과 벗어날수 없는 공포로 인해 일주일 내내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그는 자신이 곧 미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면밀한 관찰 -
랜들의 경험은 우리를 불안하게 합니다. 이러한 경험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우리는 마약복용의 폐해와 그 사람들의 최후를 잘 알고 있습니다.그러나 요가와 명상의 결과로 생기는 최후의 고통을 사람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정신과의사들의 보고에 따르면 밀교의 가르침의 영향으로 감정적으로 안정을 찾지 못하는 청년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특별히 초월 명상과 같은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은 완전히 개인적으로 명상에 빠져들고 구루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어 감정적이고 정신적인 도착 상태가 되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게 되므로 입원까지 하게되지만 회복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또한 부부가 모두 명상을 하게 될 경우 이혼율이 특별히 높다고 합니다.
또한 명상을 할 때의 그 무아지경과 현실로 돌아왔을 때 일상의 스트레스나 욕구불만 사이의 괴리감은 너무 큰것이어서 조화로운 삶을 영위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라빈드라나스는 이러한 경험을 다음과 같이 진술했습니다.
"내가 나의 기도방에서 몇시간의 명상을 한 후 엄연한 현실로 돌아왔을때 나의 아주머니는 내게 언제 계단을 쓸것인가를 물었고 나는 그때 너무나도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가 그에게 참을 수 없는 압박감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타인들에게 어떠한 고통들을 주었든지 그는 사과조차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몰래 피우던 담배를 끊을 결심을 했지만 그의 결심은 하루 이틀이 고작이었고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 구루가 되고 추앙을 받았음에도 그 작은일 하나 마음대로 할수 없었던 것입니다.
어느날 그는 그의 아저씨가 구루를 위선자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그러나 그는 이것을 반박할수 없었습니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자신이 위선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명상과 천체여행, 다른 모든 신비한 경험들을 권장하는 그 배후에는 악의를 가지고 있는 누군가가 분명히 있어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의도는 사람들을 단순한 일상의 일들도 혼자서는 처리할 수 없는 의존적 상태로 만들어 결국은 현실적인 삶과 조화할 수 없는 절망으로 몰아넣는 것입니다.
카렌도 결국 라빈드라나스가 경험한 것과 같은 비참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카렌의 편지에는 그녀가 요가와 명상은 물론 불교의 선(선)까지도 경험한 것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다음은 그녀의 편지 일부분입니다.
"그러나 명상의 고요함과 평안함 가운데 느끼는 신비한 활기를 경험하면 할수록 내 일상의 삶은 더욱 강력한 긴장과 깊은 절망감 그리고 훨씬 더 심각한 가정의 불화가 나를 괴롭혔습니다.거기에는 조화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초자연적인 경험에서 오는 평온함은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더이상 제 자신을 감당할 수 없었고 그즈음 내가 신뢰해왔던 사람이 나를 실망시켰을때 나는 그것을 참아낼수가 없었습니다.그래서 결국 음독의 길을 택함으로써 그 독약이 나의 인생을 마무리해 줄 것이라고 확신했고 내가 깨어나면 윤회에 의해서 다른 세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아마도 물고기나 거북이로 태어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눈을 떴을때는 위세척을 하고 누워있었습니다.그들은 나에게 매우 운이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인생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누가 카렌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었을까요? 수많은 사람들을 명상을 통해서신이 될 수 있다고 미혹하여 결국 현실과 단절시켜 버리는 그는 누구일까요?
매우 사악한 존재가 모든 배후 조종을 맡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간섭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우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그가 우리의 약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일상의 삶에서 오는 무기력과 공포와 무의미함에서 벗어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그가 제공하는 제안들은 매우 매혹적입니다. 그는 모든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올무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면 그는 마약에 약한 자들에게는 그들의 육체와 영혼이 모두 덫에 걸려 황폐해질 때까지 계속 그것을 공급합니다. 인간 관계나 사업의 실패로 좌절한 자들에게는 그는 아주 쉬운 방법을 제시해 줍니다. 그의 속임수는 매우 교묘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제안을 신뢰하게 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가 원하는 것은 우리를 불행하게하고 우리의 인생을 철저히 파괴하는 것입니다.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것들에 무한한 증오심을 품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몹시 증오합니다. 당신과 나도 예외는 아닙니다.그는 인류의 행복을 참을 수 없는 것입니다.그는 자신의 실수로 잃어버린 좋은 것들을 인간이 소유하고 추구하는 것들을 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이미 자신에게 속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더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들까지 자신의 마음대로 조종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는 것입니다.중요한 것은 그가 누구이든 간에 미국 청년 랜들이 공포 가운데 만났던 그를 다른 많은 사람들도 만났다는 것입니다.셀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악의 세력을 체험해 왔습니다.
- 오직 한길 -
유혹적인 제안으로부터 당신을 지킬 수 있는 길이 있을까요? 어쩌면 당신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내가 옳은 것이라고 믿고 따를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은 대개가 나의 젊은 친구들이 경험했던 것과 유사한 문제들을 가지고 있을것입니다.나는 여러분들이 풀리지 않는 문제들과 씨름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아픕니다.
옳은 길을 찾는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위해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더군다나 도처에 허위와 속임수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우리 시대에 옳은 길을 찾는다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내가 여러분들을 생각할때마다 나는 이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여러분이 신뢰할만한 분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를 선택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여러분은 결코 낙심치 않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이것이 진실일까요? 자신의 가르침으로 우리를 미혹하지 않고 의의 길로 인도할수 있는 그 누군가가 있을까요? 그러나 그분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나는 진리요 그 진리를 구하는 자는 나를 찾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 그분과 사귈수록 여러분은 더욱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왜냐하면 그분은 진리이며 그 진리는 여러분 자신의 참모습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 진리가 여러분을 고통스럽게 할수도 있습니다.그러나 진리는 여러분을 자유케 합니다.
또한 그 분은 윤회로 인한 여러분의 혼란된 가치관을 바로 잡아 주실 것입니다.그분은 죽음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그러므로 여러분은 윤회에 의해 미래에 무엇으로 태어날 것으로 인해 괴로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들을 버려두지 않으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모든 사람들은 이 길을 발견하고 따를 수 있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삶에 의미를 주실것이며 여러분의 영혼을 완전히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마약이나 명상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여러분의 의식세계를 확대시킬 것입니다. 단순히 신비한 경험을 약속하는 것이 아니고 그분의 기적을 체험케 하실 것입니다. 또한 그분은 궁극적으로 여러분이 거할 아름다운 세계를 맛보게 해주실것이며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말씀은 도사나 구루,요기(주:요가의 수도자)등의 은밀한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분을 따른다면 사후에 여러분은 무의 세계인 열반에 이를 필요가 없습니다.그분께서는 영원한 영광 가운데 여러분의 집을 예비하고 계십니다.여러분은 수천번이나 거듭되는 윤회를 겪지않고도 지금 당장 바로 이곳에서 새롭게 태어날수 있습니다.그분께서는 이 짧은 우리의 인생에 각 사람을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하기 원하고 계십니다. 그분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 그분은 누구입니까 ? -
예수 그리스도! 하늘과 땅의 모든 권능이 그에게 속해 있습니다. 이것은 그분이 우주의 모든 가짜 신들과 영적인 존재들 위에 계신다는 것입니다.그분은 많은 신들중의 하나가 아니고 살아계신 하나님,만유의 주재이시며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바로 그분의 아들이십니다.지금은 그분께서 자신의 능력을 숨기고 계십니다.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분 앞에 심판 받을 날이 옵니다. 그분은 거룩하고,전능하신 유일한 신입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형상대로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가 죄로 인해 잃어버린 그분의 형상을 다시 찾을수 있도록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그분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라빈드라나스는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간증했습니다.
"나는 조용히 그러나 목이 메일듯한 간절함으로 주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저는 성경을 공부해 본적도 없고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지내왔습니다.그러나 저는 당신이 저의 죄를 위하여 갈보리에서 죽으심으로 나의 죄가 사함받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나의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시고 저를 용서하기 위해 찾아오신 것을 감사합니다. 저는 변화된 새로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나는 그동안 내가 살아온 것을 회개하며 울며 기도했습니다. 나의 기도가 끝나기 전에 나는 예수님께서 수많은 신들 중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그분은 나의 죄를 가져가셨고 내안에 들어와 살고 계십니다.
그분이 내 안에서 나를 새로운 인격으로 만들어가고 계신 것을 깨닫습니다.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참 기쁨,회개의 눈물은 기쁨의 눈물로 변했습니다. 내생애 처음으로 나는 진정한 평안함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카렌도 수년간의 방황 끝에 똑같은 평안을 발견했습니다. 마이클을 비롯하여 나에게 신비한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나의 젊은 친구들도 하나님안에서 참 평안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라빈드라나스는 그가 만났던 신들이 친절하거나 온유하고 사랑스러운 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분입니다.우리가 죄로 인해 괴로와할 때 그분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그분은 당신도 사랑하시며 오늘도 당신에게 도전을 주고계십니다."환멸과 거짓, 속임수의 세계를 떠나라"
밀교적인 가르침이 주는 약속은 비현실적인 환상의 세계입니다. 그것은 마치 이땅 위에서 천국을 경험하는 것 같지만 그것은 악마적인 것입니다.
사탄은 거짓 선동자입니다.성경은 그를 거짓의 조상이라고 부릅니다.우주 안에서 그의 부하들은 우리를 파괴하는 그의 일을 돕습니다. 그는 다양한 종류의 명상들이 세계를 치유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거짓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시인하고 회개함으로써 용서를 받고 참 자유를 얻을 수있지만 동양의 신들에게는 죄사함이 없습니다. 각자가 지은대로 이생에서 혹은 다음 생에서 그 댓가를 반드시 치루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들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시각으로는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습니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영적인 존재도 당신의 죄를 사하고 고통의 올무에서 자유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오직 예수님만이 그 일을하실 수 있습니다.그분만이 분노와 증오,자아도취,알콜과 약물중독에서 당신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흠없는 그분만이 우리를 대신하여 짐을 지시고 우리를 자유케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그분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그러면 모든 것이 새로워 질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사탄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입니다. 지금도 결코 늦지 않았습니다.
- 무엇이 보증이 됩니까? -
여러분이 다시 실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요? 그가 참 신이며 자신의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증거가 있습니까? 우리는 뉴에이지가주장하는 신들과 대조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영원하신 하나님을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이사야서에는 가짜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질문이 나타나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 우상들은 소송을 일으키라 야곱의 왕이 말하노니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 장차 당할 일을 우리에게 진술하라 또 이전 일의 어떠한 것도 고하라 우리가 연구하여 그 결국을 알리라 혹 장래사를 보이며 후래사를 진술하라 너희의 신 됨을 우리가 알리라 또 복을 내리든지 화를 내리라 우리가 함께 보고 놀라리라 과연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며 너희 일은 허망하며 너희를 택한 자는 가증하니라"(이사야 41:21-24)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이사야 46:9-10)
성경은 거짓이 없는 유일한 분의 책입니다. 라마나 크리슈티 그외의 다른 신들과는 달리 그는 온전히 신뢰한 만한 분입니다.그 분의 약속은 당신의 삶에서도 이루어질 것입니다.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지키지 않을 약속은 하신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내 자신이 경험해온 분명한 사실입니다.
- 질문과 대답 -
주님께서는 지금 당신앞에 서서 묻고 계십니다."너는 나를 너의 주인으로 받아들이겠느냐? 나는 진리요 사랑이라. 나는 모든 것을 새롭게 할 수 있다." 이제 여러분은 "예"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저는 당신을 나의 주인이며 구원자로 영접하길 원합니다. 그리고 나를 괴롭히고 있는 모든 문제를 당신 앞에 가져갑니다. 당신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나의 죄를 사하셨습니다. 당신은 죽음에서 살아나셨고 저를 사탄의 권세에서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당신이 저를 사랑하므로 저와 함께 계시고 저를 도와주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거짓신들과 그들의 해악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습니다. 저는 그들을 버리겠습니다. 저는 더이상 그들의 가르침과 관련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 당신께 속하기를 원합니다.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그리고 저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주옵소서.아멘"
크리스챤 포스트 발췌
뉴에이지운동과 기독교문화 - 더글라스 그루튀스
뉴에이지는 이제 단순한 방관자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조차도 일시적인 유행 그 이상의 것이라는 인식이 일반화되었다.
즉,뉴에이지는 지위의 고하,신분의 귀천을 막론하고 생활 전반에서 사람들을 유혹하는 중요한 문화사조가 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뉴에이지의 본질적인 주제인 자기 신격화(self-deifying)는 개인은 물론 조직,단체,사상에까지도 그 영향력을 확대시키고 있다.
셜리 맥클레인(Shirley Maclaine)이나 존덴버(John Denver)와 같은 유명 연예인과,프리쵸프 카프라(Fritjof Capra)와 같은 물리학자, 사업가인 에르나 어하드(Werner Erhard)와 같은 이들은 뉴에이지와 관련된 서적,잡지,신비치료요법,정신요법 세미나들을 확산,장려하고 있다.
문화의 모든 영역이 뉴에이지에 의하여 잠식되어가고 있다. 급격히 확산되는뉴에이지의 문화적 영향력에 대해 기독교는 처음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이제는 그것을 숙고하고 분석하여 폭로함으로써 그 실체를 밝히는데 진력하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러한 일련의 대응책들은 극히 피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뉴에이지에 관한 연구는 수박겉핥기식에 그치고 있는 실정인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연구의 목적이 성도들로 하여금 뉴에이지에 관한 경각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추어진 사실들을 들추어 냄으로써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데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뉴에이지운동에 대한 단호하고도 강경한 대응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또한 효과적인 대응을 위해 우선 우리가 얼마나 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는가에 대해 성경적인 이해를 분명히 해야 한다.
- 문화란 인간적인 것 -
`삶의 양식(Way of life)'을 단적으로 표현하면 문화가 된다.즉 문화란 인간이 어떻게 자기자신과 주변환경 그리고 하나님과 상호작용을 하며 살아 가느냐하는 것이다.그러므로 문화는 풍속,도덕윤리,관습 그리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모든 것들을 포괄한다.자연과는 달리 문화는 인간의 힘이 가해진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원을 이용하여 명백한 인간의 흔적을 남긴다.하나님께서는 금을 창조하셨고 인간은 그것을 이용하여 금반지를 만들고, 십자가를 만들고, 부처상을 만들기까지 한다. 즉 문화란 하나님의 창조를 인간의 손길로 재창조하는 것이다.
문화는 그 형성자들의 종교에 따른 세계관에 의하여 좌우되므로 헨리 반 틸(Henry Van Til)은 "문화란 형체화된 종교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세계관도 주위 문화의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성경은 우리의 사고를 문화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진리에 기초하도록 명령하며,성경의 특별한 문화에 그것을 적용시킬 방법을 모색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이와같은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뉴에이지의 거센 물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성경은 대략 3가지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분리(Separation),변형(Transformation),보존(Conservation), 이것들은 뉴에이지에 대항하기 위한 핵심적인 요소들이며 이들 3자간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지 못할 경우 우리는 결국 뉴에이지의 세력 앞에 굴복하고 말 것이다.
- 구별된 사람들 -
성경으로 양육된 크리스챤이라면 누구든지 뉴에이지나 모호한 밀교(비교) 등과의 접촉을 단호히 배격함으로써 그것들과 분리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들 사이에 행해지는 접신술(강신술),이에 따르는 최면상태(trance)등에 대해 성경은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신명기 18장은 여호와께서 이들을 가증히 여기시므로 이러한 것들을 너의 중에 용납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러한 `가증한 것들'에 오염되어 심판을 자초하지 않도록 깨어있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분리'는 그들에게 물들지 않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들을 이교도들로부터 분리하여 특별한 민족으로 세우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는 자들에게서 분리되지 못하고 그들에게 동화되어 `영적간음'을 범했을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심판하심으로 그 백성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죄악된 문화로부터 분리되는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죄로부터 분리되신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므로 우리도 거룩해야 한다.
사도 요한은 이것을 매우 강조했는데 그는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가르쳤다. 요한은 세상 자체를 기피하거나 인간의 모든 문화를 배척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그가 의도했던 바는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멀리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거듭하여 가르쳤던 `순종'의 의미는 악은 어떤 형태든지 버리는 것이었다. 즉 그것과 분리되는 것이다. 또한 마태복음 6장24절에서는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버림받은 자,죄인들과 함께하셨지만 그는 어떤 종류의 문화적인 죄에도 굴복치 않으셨다.
`분리'는 뉴에이지에 대항하는데 있어 결정적인(매우 중대한)주제이다. 뉴에이지의 세계관은 기독교의 그것과 완전히 대조된다.양자는 융화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과 뉴에이지를 동시에 수용할 수는 없다.반드시 한가지를 선택해야한다.
복합적인 문화권내에서 생활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신앙이나 신념을 반박하는 것이 무례한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외쳐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악과 싸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자신이 죄에 거하도록 내어 버려두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분리'되어야 한다.거듭 강조하지만 분리,변형,보존이 상호보완의 균형을 잃게되면 정상적인 문화의 발전에 참여하지 못하고 고립되고 소외되는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 탈환의 무대(장) -
예수는 구세주이다.그는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죽음을 담당함으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교제를 회복시키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도록 해놓으셨다.
이것은 곧 우리가 `변형(변화)'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누구든지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했다.그는 우리들 각자에게 권고하고 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 -이것은 확연히 구별되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요구하는 것이다.
`분리'는 타락한 문화가 우리에게 주는 죄의 유혹을 피하라고 경고한다.
`변화'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죄에서 분리되어 기독교적 세계관을 문화에 적용시키토록 용기를 준다.태초에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아담과 하와에게 이 세상을 다스리도록 위임하셨다.
철학자 캘빈 시블드 (Calvin Seerveld)는 그의 저서 `타락한 세상에 세우신 하나님의 언약'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우리 인간은 이 땅을 다스리고,복종시켜 쓸모있게 만들고,그곳에 거하는 모든 창조물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초석이 되도록 만들기 위해 부름받은 것이다.
... 하나님은 인간이 세상을 지배하여 `야훼'라는 자신의 이름을 우주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울려보내도록 하시기 위해 인간을 선택하신 것이다."
그 소명은 지금까지 철회되지 않았다.그러므로 우리는 강탈자 사탄에게 빼앗긴 영토를 탈환하기 위해 계속 전진해야 한다.
기독교는 이 세상 자체를 궁극적인 최고의 가치로 여기지 않고 빼앗긴 것을 수복하는 `탈환의 무대'(theater of redemption)로 보고 있다.
우리는 "주님의 나라가 임하시고,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한다. 주님의 나라는 현재와 미래 모두에 실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실재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고 일하는 것이다.
존 스토트(John Stott)는 다음과 같이 단언했다. "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라는 것은 예수를 통하여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여, 악과 대항하여 싸워 이김으로 죄에 거하던 인간을 다시 찾도록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악에서 분리되고 그것을 저주하는 것은 단순한 소극적 반응이 될뿐이다.악의 왕국은 항상 그 세력을 확장시킬 방법을 찾고 있다.
사탄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포기해버린 타락하고 세속적인 땅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성스러운 하나님의 나라까지도 무자비하게 침투해 들어오는 것이다.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포기해 버리면 그들은 너무나도 쉽게 그것을 취할 것이다.
교회가 사탄의 공격에 견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역습을 가하는 것뿐이다. 교회가 아무런 능력도 없이 그저 유지되고 보존되는데 그친다면 교회의 존재의미는 무엇인가? 교회는 사회를 변혁시키는 수고를 해야한다. 우리가 세상과의 싸움을 그만둔다면 교회가 세상과 짝하게 될 날은 멀지 않을 것이다.
역사는 크리스챤의 역동적인 힘이 세계를 변화시켰음을 말해준다. 퇴락해가는 로마제국의 문화적 혼란속에서도 숭고한 가치관을 지녔던 초대교회는 노예의 인간적인 가치를 일깨우고 그들을 해방시키려고 노력했으며, 로마 시민들이 즐겼던 야만스러운 오락(경기)에 대해 경고했으며,기독교적인 최고의 사랑으로써 로마의 부패한 문화를 개선시켜 나갔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이교도 세계를 변형시키고 서구 문명이 발전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던 것이다.
후에도 기독교는 정치적,종교적 자유의 획득과 문학,교육,의술,예술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으며,노예제도의 폐지,낙태금지 등의 사회개혁을 주도하였다. 이러한 변화를 가능케하는 능동적인 힘은 역사상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어떠한 경우든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죄로부터의 분리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그것을 개선하고 변형시키고자 하는 소명(책임)의식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 부분적 진리의 보존 -
`분리'와 `변화'외에 크리스챤에게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문화의 영역들은 지키고 `보존'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안타깝게도 세상은 점점 죄에 의해 오염되어 가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몇몇 문화의 영역들은 존재하고 있다.이러한 문화 영역들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부분적인 진리를 내버리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보존'의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성경에 비추어 진리라고 판단되는 것을 추려내어 유지시키는 것이 바로 `보존'이다. 이해를 돕기위해 일례를 들어보자. 뉴에이지가 주장하는 것들 중 일부분은 참으로 구제할 수 없을 정도의 사악한 것들이다.그러나 뉴에이지와 관련된 모든 것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뉴에이지의 어떤요소들은 기독교적 진리와 일치하고 있으므로 보존되어야 한다.즉 기독교 심리학자와 뉴에이지의 심리학자 양자 모두는 유물론에 반대한다. 인간은 어떤 기계나 동물보다도 가치있으며,그러한 인간은 `영적인 능력'이 있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인정한다.즉 `인간의 잠재적 가능성'에 공감하는 것이다.물론 양자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점이 있다.
크리스챤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자이며 구원자이신 하나님께 복종할때만 인간에게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뉴에이저(뉴에이지 운동가)들은 인간 자신이 신이 될 때 인간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부여된다고 주장한다.
-(옛날부터 통상적으로 어떤 집단이나 개인이 거짓된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참된 것을 부분적으로 들여와서 내세웠었다. 그런데 그들이 주장하는 것이라고 해서 참된것까지 몽땅 거짓된 것이라고 몰아세운다면 심각한 오류를 불러올 수 밖에 없다.)
- 6가지 오류 -
지금까지 설명한 `분리',`변화',`보존' 이들 3자 사이에 적절한 균형이 유지될때,우리들은 매우 효과적으로 뉴에이지와 맞서 싸울 수 있다.이 균형이 깨지면 각각 다른 6가지의 정신적 덫에 걸려 헤어나올 수 없게 된다.
첫째 `검역의 오류'(the quarantine mentality)이다.
이는 `분리'의 의미를 지나치게 의식할 때 생기는데, 이러한 오류에 빠진 자들은 뉴에이지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악한 것이라고 단정해버림으로써 다른 모든 크리스챤들에게도 자신들과 동일한 부정적인 선입관을 갖게 한다.
이렇게 되면 `분리'의 개념만이 너무 확대되어 `보존'과 `변화'의 개념은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만다.
둘째 `금기(taboo)의 오류'이다.
오늘날 뉴에이지는 우리 생활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즉 뉴에이지가 파고들지 않은 영역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영적,지성적인 식별력은 그것이 뉴에이지와 관련된 것이냐 아니냐를 따지는데에도 기진맥진하게 된다.터부시 해야 할 뉴에이지와 관련된 사람,행위,사상에 대하여 긴장하고 주의하다보면 우리는 너무나도 피곤하고 지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뉴에이지와 관련된 것들에 대해 의도적이고 단호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크리스챤이라면 누구든지 심령치료,점성술,신비적 치료요법과 같은 것들에 참여해서는 안된다.기독교에는 `해서는 안될' 많은 것들이 있다.십계명만 보더라도 그렇다.
그러나 `금기의 오류'에 빠지면 건전한 분별력을 상실하게 되어 흑백논리에 빠짐으로써 현실에 대한 정확한 판단력이 흐려지게 된다.-(즉 부분적으로 나쁜 것인데도 전체를 나쁜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영화에 뉴에이지가 부분적으로 들어와 있는데도 영화 전체가 모두 뉴에이지라고 생각하고 영화 자체를 거부하는 것도 여기에 속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는 말씀을 기억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셋째 `편집병적 오류'이다.
악을 분별하고 단절하는 것은 크리스챤의 미덕이다. 그러나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치게 악에 대해 심사숙고하고 악을 두려워하는 것은 이미 덕이 될 수 없다.
이러한 편집병은 뚜렷한 증거도 없으면서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뉴에이지와 관련된 것처럼 몰아붙여 그들을 실족케하고 망쳐버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성급한 비난이나 정죄는 교회내의 불화의 씨가 되어 뉴에이지의 세력 확장만을 돕게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오류에 빠진자들은 `변화'를 수용할 인내나 능력이 부족하다.그들의 두려움은 그들을 소극적으로 만들어 문화를 `변화'시키고자하는 시도를 저해한다.
더 나아가서 그들은 `분리'의 의미를 오해하기도 한다. 즉 양과 염소를 구별하는 것이 아닌 양과 양사이를 분리시켜 버리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교회는 더욱 분열되고 그 힘이 점점 약화되는 것이다.
넷째 `병아리 오류'(the chicken little mentality)이다.
주님의 승천이후로 지금까지 크리스챤들은 세상 끝날에 있을 주님의 재림을 고대해 왔다. 그것은 믿는 자들에게는 축복된 기다림이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뉴에이지의 출현을 말세의 징조로만 촛점을 맞추는 편집병적 증상을 보인다. - (이 말은 이런 현상들이 말세의 징조일 뿐이므로 우리가 문화에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여기고 방관적 자세를 취한다는 말이다.) 이는 `편집병적 오류'와 마찬가지고 `변화'와`보존'의 의미를 상실시켜 버린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문화의 어떤 종류라도 포기하셨다고 추측하거나 단정지어서는 안된다. 때가 차면 하나님의 나라는 임할 것이다. 그러나 그 때까지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해야 할 하나님의 일이 있다.
이러한 시각은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의 지상 군대로서 전진하는 적극성을 소멸시킴으로 교회의 비젼을 단지 몇몇 영혼을 구원하는 소극적인 것으로 제한시켜 버린다.세상 종말의 실현이 계속 지연되는 한 이러한 해석은 공허하며 무기력한 메아리가 될 뿐이다. 그것은 마치 부화되지 못하고 말에 그쳐버린 병아리와 흡사한 것이다.
다섯째 `타조의 오류'(the ostrich mentality)이다.
이것은 `변화'와 `분리'의 의미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온다.
일부 크리스챤들은 뉴에이지를 단순한 허구로 간주하여 뉴에이지의 침투를 간과해버리는 실수를 저지른다. 이는 흡사 무지라는 모래 속에 머리를 박고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타조와 같다.
이와같은 무지는 영적인 무능력을 초래하여 뉴에이지의 정체를 밝히고 그에 대항해나갈 힘을 잃게 한다.문제를 직시하지 않는다면 잘못된 상황을 개선할수는 없는 것이다.
여섯째 `카멜레온적 오류'이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착각의 오류'와 흡사하다. 그러므로 `분리'와 `변화'의 의무를 매우 잘못 이해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이러한 오류에 빠지는 자들은 자신을 단지 유행에 민감한 사람으로 생각해버린다. 이들은 인기있는 뉴에이지의 사상이나 활동을 수동적으로 흡수하면서 서서히 자신의 색깔을 바꾸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크리스챤 요가'`크리스챤 선(선)'과 같은 단어들에 접한다.이들은 서서히 온건하게 타협해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는 모두 참되다.그러나 반짝인다고 해서 모두가 하나님의 황금이 될 수는 없다.어리석은 자의 황금도 빛을 내기 때문이다.
- 절대적인 균형 -
우리는 `분리' `변화' `보존'을 균형있게 정비하여, 이들을 무기삼아 오늘날의 문화와 참으로 위험한 싸움을 해나가야 한다.
우리는 비판적 안목을 갖추어야 한다. 즉 세상의 문화를 하나님의 말씀 앞에 비추어 보고, 그에 준거하여 우리는 그릇된 문화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문화를 변형시키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문화적인 측면들을 보존해 나가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의무를 충실히 수행할 때 `문화의 주인'되신 하나님께서는 홀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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