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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 4강의 - 신 존재를 위한 변증 - 논증을 중심으로

하나님아들 2016. 3. 23. 21:37

 

제4강의-신 존재를 위한 변증-논증을 중심으로| 기독교 변증학 (학부)
소피스트 | 조회 128 |추천 0 | 2010.10.05. 16:20

 

 

제4강의 신은 존재하는가?

 

 

참조: ?종교철학담론?, 173-239; ?철학에 관한 신앙적 ․ 신학적 성찰?, 319-348.

 

 

만일 신이 존재하지 않는데, 왜 사람들은 신을 믿는가?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신이 세상의 절대적 주권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한다. 따라서 만일 신이 존재하지 않다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허용된다는 것이다. 가톨릭 신부이자 철학자인 코플스턴은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과의 대화에서 하나님을 “절재적인 존재”로 이해하면서, “만일 하나님이 없다면, 절대적인 가치도 있을 수 없다”고 보았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은 절대적인 가치로 이해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신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 말하자면, 기독교 변증의 가장 큰 논의 중 하나는 신의 존재 문제다. ‘신은 존재하는가?’ ‘만일 존재한다는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기독교 신앙은 신의 존재에서 출발한다. 기독교 신앙은 신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으며, 그 같은 믿음에서 삶의 방식과 행위를 결정한다.

 

신 존재에 대한 비판은 대체로 과학진영이다. 특히 무신론적 과학자들은 신 존재를 부정한다. 옥스퍼드의 리처드 도킨스는 이렇게 표현한다. “과학은, 그것이 가능한 범위 안에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신에 대한 믿음이 망상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사실 과학의 힘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과학이 모든 것을 판단한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과학이 행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한마디로, 과학의 목적이 신을 부정하려는데 있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다. 근육무력증인 루게릭병이라는 불치의 병으로 고생하는 캠브리지 대학의 스티븐 호킹은 ?시간의 역사?에서 “과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주 전체를 기술하는 하나의 이론을 마련하는 데 있다”고 적고 있다.

 

 

1. 존재론적 논증

신의 존재 문제에서 가장 오래된 논증은 존재론적 논증이다. 이것은 연역적 체계다. 연 역적 체계란 주어진 명제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증명해 가려고 전제(근거)를 설정하는 논 리적 방식이다. 이 논증의 가장 대표적인 두 사람은 안셀름과 데카르트다. 우리는 선별 적으로 이 두 사람을 생각해 보면서 존재론적 논증을 배우려고 한다.

 

 

(1) 안셀름(안셀무스)의 논증

신의 존재를 긍정하는 논리로 유명한 사람은 켄터베리 성당의 주교인 안셀름 (1033-1109)이었다. 안셀름의 기본 생각은 “나는 내가 믿는 것을 이해하고자 하지 않 으며, 다만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다”는 것이다. 역으로 말해, 우리가 믿으면 이해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신에 대해 이해(인식)하고 난 후에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으면 인식 된다. 존재론적 논증을 전개한 최초의 신학자로서 안셀름은 신이 존재한다는 명제에서 그것을 증명해 보려고 시도했다. 그의 존재론적 논증은 크게 두 가지 명제에서 시작한 다. 첫째, 신은 “그분보다 더 위대한 분을 상상할 수 없는 존재이다.” 이 표현은 다소 애매하고도 불분명한 의미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의 인식에서 신의 실재를 상상할 수 있지만,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최종적인 사유에서 마주하는 존재가 우리가 믿는 하 나님이다. 이 마지막 단계에서 생각한 신은 “완전한 존재 혹은 위대한 존재가 된다.” 따 라서 신은 중세시대의 신에 대한 통설인 완전한 혹은 위대한 존재로 인식된다는 것이 다. 다른 어떤 존재도 신과 같은 완전한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런 맥락 에서 안셀름은 사자, 인간, 책상, 강의실 등과 같은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것보다 관념 속에 존재하는 것이 더 완전하다는 것이다. 이 말에서 우리는 첫 번째 명제인 “그보다 더 위대한 분을 상상할 수 없는 실재”인 신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위대한 혹은 완전한 존재가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2) 데카르트의 논증: 합리주의적 근거에서 신 존재 증명을 시도한 철학자로서 그는 연역적 명제에서 논증의 형식을 전개한다. 모든 사람은 본구관념(innate idea)을 갖는다. 본구 관념은 하나의 지식이다. 누구도 이것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논리학이나 수학에서 말 하는 지식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신은 이러한 명제에 의해서 정의된다. 신은 존재한다는 명제에서 자명한 결론에 도달하고자 한 데카르트는 “삼각형의 합이 180도다”라는 명제가 자명한 것처럼 신이 존재한다는 명제도 자명하다고 주장한다. 그 의 전제들은 다음과 같다. (1) 삼각형은 속성을 갖는다. (2) 삼각형의 속성은 세 변을 갖는다. (3) 신은 속성을 갖는다. (그것이 사물이든 인간이든, 모든 것은 속성을 가지고 있다) (4) 신의 속성은 위대하고 완전하다. (신이 불완전하다는 것은 신이 아니다. 따 라서 신은 그 속성에서 필연적으로 완전하거나 위대하다). 따라서 (5) 완전하고 위대한 속성을 가진 신은 존재한다.

 

 

(3) 존재론에 대한 평가

첫째, 존재론적 논증은 논리학에 근거된 변론이기 때문에 사전적 지식을 요한다. 그러다 보니 일반인들의 요구인 단순히 신이 존재하는가의 물음에 적절한 대답을 제공하지 않는다. 오히려 논리학의 복잡함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가 있다.

 

둘째, 존재론적 논증은 연역적 체계의 변론이다. 연역이란 아무리 자명한 전제들이나 명제들을 제시해도 그것이 필연적인 결론에 이르지 않을 수 있다. 역으로 말해, 아무리 전제가 틀려도 결론에서 맞는 답을 제시할 수도 있다.

 

셋째, 상상할 수 있는 신과 상상할 수 없는 신에서 현실의 신보다는 관념의 신이 더 위대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관념에서 더 위대하다고 말하는 것은 오류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이 실제로 그렇게 나타나지 않을 수 있거나 그것이 기대하는 완전한 존재가 아닌 불완전한 존재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넷째, 신이 완전하다는 말은 그 의미에서 본질적 의미라기보다는 술어적 의미이기 때문에 신의 존재성을 충분히 전개해 준다고 볼 수 없을 것 같다.

 

다섯째, 이 논증은 완전하다는 형용어가 갖는 문제다. 어디까지가 완전한 것인가. 신의 완전성에서 완전하다는 것에 대한 모호한 의미에서 문제가 야기된다.

 

 

2. 우주론적 논증

윌리엄 크레이그와 같은 기독교 변증학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논증 중 하나다. 이 논증은 귀납적 아프리오리 논증이 아니라 아포스테리오리 논증(귀납적 변론)이다.

 

 

(1) 토마스 아퀴나스의 논증: 아퀴나스는 다섯 가지 논증(운동, 원인, 가능성과 필연성, 사물의 단계, 질서와 조화)을 제시했다. 이 논증에서 운동으로부터의 논증과 원인(능동인)으로부터의 논증에서 신을 증명하고자 했다. 모든 사물은 단순히 혹은 우연히 존재한 것이 아니다. 모든 사물은 누군가에 의해서 최초로 시작한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우주는 하나의 시작을 갖는다. 소급해 가다보면 최초의 운동자를 만난다. 그 최초의 운동자(the First Mover)가 우리가 믿는 기독교 유신론의 하나님이시다. 그가 이 세계를 창조하신 존재자이시고 운동자이시다. 그리고 최초의 원인도 이런 방식으로 소급해 가면 최초의 원인자가 있을 것이다. 그 최초의 원인자(the First Cause)가 우리가 믿는 기독교 유신론의 하나님이시다.

 

 

(2) 테일러와 크레이그의 논증

그들의 논증은 크게 두 가지 조건을 고려하면서 시작한다. 첫째, 모든 사물에는 해명해야 할 사건이나 경우들이 많다. 그들은 이 조건을 충분이유의 원칙(principle of sufficient reason)이라 부른다. 어떤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해명을 필요로 하는데, 그것의 가장 충분한 설명이 가장 합리적이고 받아들일 수 있는 대답이다. 우주에 대한 해명에서 빅뱅이론이나 진화이론 그리고 창조이론에서 가장 합리적인 해답은 어떤 목적이나 근거를 가지고 신에 의해서 창조했다는 대답이 가장 합리적이고도 타당한 해명이라는 것이다.

 

둘째, 그들은 단순성의 원칙(principle of simplicity)을 제시한다. 단순성의 원칙은 보수성의 원칙이라고 하기도 한다. 우리가 추리의 과정에서 복잡한 것을 받아들이기보다는 가장 단순한 것을 받아들인다. 이것이 단순성의 원칙이다. 따라서 크레이그와 테일러는 신이 창조했다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단순성 원칙의 조건에 부합한다고 믿는다.

 

 

(3) 우주론적 논증에 대한 평가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물음을 가질 수 있다. a. 왜 사물은 원인을 가져야 하는가? b. 귀납의 방식은 진리를 규명하는가? c. 경험은 진리를 보장하는가? d. 인과성은 기독교 신앙에 도 움을 주는가? e. 우주론적 논증이 정당하다고 승인했다고 그 논증에서 가리키는 존재가 유신론적 신일 수 있을까?

 

  

3. 목적론적 논증

목적론적 논증은 계획으로부터의 논증 혹은 유추로부터의 논증이라 부른다. 우주론적 논 증과 마찬가지로 이 논증도 아포스테리오리 논증이다. 사물에는 목적이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이 논증은 지적설계 논증의 또 다른 이름이다. 최근에 지적 설계론(arguement from design)에 대한 논의가 매우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1) 윌리엄 페일리의 논증: 시계공의 비유

윌리엄 페일리의 논증은 목적론적 논증의 가장 대표적인 논증이다. 그의 작품인 《자연신학》은 다윈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가 제시하는 비유는 다음과 같다. 사막을 걷던 사람이 우연히 시계를 주었다면, 그 속에 있는 분침, 초침 그리고 모양 등은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만들었던 시계 공(watchmaker)을 연상한다. 따라서 이 논증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가 매우 정교하고도 분명한 목적으로 고안되었거나 설계되어졌을 것이다. 이런 정교하고도 분명한 목적을 가진 이 우주가 우연히 존재했다고 말하기에는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고 보인다.

 

 

(2) 리처드 스윈번의 논증:

페일리의 논증 이후에 이 목적론적 논증을 전개하는 사람은 옥스퍼드 대학의 기독교 철학자인 리처드 스윈번이다. 그는 간명하게 두 가지 것을 제시한다. 첫째, 공존의 규칙성과 연계의 규칙성에서 이 논증의 적합성을 제시한다. 공존의 규칙성은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나 건물과 같은 공간적 질서는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설계한 사람들에 의해서 존재한 것이다. 결코 임의대로 존재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연계의 규칙성은 인간의 행위나 사물의 행위에서 단순히 존재하는 패턴이나 임의대로 행동하는 패턴이 아니라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패턴의 규칙을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일정한 패턴의 질서를 전제로 하며, 눈의 깜박이 등과 같은 것도 인간 행동의 규칙들이다. 따라서 스윈번은 사물의 임의성과 우연성을 부정한다. 둘째, 스윈번은 이 목적론적 논증을 과학적 설명과 개인적 설명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우주에 대한 설명에서 과학적 설명은 인과법칙이나 자연법칙에 따라서 설명이 가능하며, 개인적(인격적) 설명은 인간의 체험이나 개인적 삶의 사건에서 발생하는 것에 따라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과학적 설명이 최상의 것으로 여겨왔지만 스윈번의 생각은 이러한 해명만을 고집하는 것은 일방적인 것이다. 인간의 심리적 상태가 과학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3) 목적론적 논증에 대한 비판

우리는 이 논증이 갖는 문제를 다음과 같은 물음을 통해서 제기할 수 있다. a. 목적론 은 결정론으로부터 자유로운가? b. 목적론적 논증은 기계론적 논증과 다른가? c. 사물 의 목적을 강조한다면, 악의 현실성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d. 목적은 수단을 결정 하는가? e. 유신론의 하나님은 모든 사물에 목적을 부여하는 존재이신가?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그의 ?신은 위대하지 않다?에서 지적설계 논증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종교의 핵심에는 결정적인 역설이 있다. 유일신을 믿는 3대 종교는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비참한 존재로 생각하라고 가르친다. 앞뒤가 잘 맞지 않는 여러 가지 설명에 따르면, 흙과 진흙 또는 피 한 덩어리로 인간을 만드신 성마르고 질투심 강한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린 비참한 죄인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이 종교들이 요구하는 기도 자세는 대개 성질 나쁜 군주 앞에서 탄원하는 농노의 자세를 흉내 낸 것이다. 이 종교들은 끊임없는 복종, 감사, 두려움을 가르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삶은 한심한 것이며, 내세 또는 메시아의 도래 (또는 재림)를 준비하기 위한 막간에 불과하다.”

 

 

히친스의 비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인간의 존엄성을 가르치지 않고, 인간 스스로 비참한 죄인으로 비하하는 것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는 어떤가.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사건, 즉 성육신의 사건은 인간을 사랑하신 사건이다. 인간을 귀한 존재로 여겼다는 것을 말한다.

 

다른 하나는 내세에 대한 소망을 준비하기 위해 이 세상에 대한 가치를 무의미하게 가르친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기독교는 내세를 위한 준비의 한 과정이지만, 이 세상은 가치 있다고 가르친다. 내세는 모든 종교가 다 강조한다. 그런데 현세를 무시한 내세의 삶은 가르치지 않는다. 주어진 삶을 충성스럽게 살도록 가르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현실에서 비도덕적으로 살다가 죽어가는 천당이나 내세는 사실 기독교 신앙의 가르침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히친스의 비판은 감정적인 요소에서 출발한다고 보인다.

 

 

4. 도덕론적 논증

인간의 도덕은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이 도덕은 교육이나 교화이전에 이미 선행하 는 덕목이다. 이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더욱 양심적이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 유 신론의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는 논증이다.

 

 

(1) 임마누엘 칸트의 논증

도덕 논증에서 신의 존재를 설명하는 방식에서 우리는 임마누엘 칸트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그는 크게 두 가지 도덕적 명령을 설명하는데, 하나는 정언명령(categorical imperative)이고, 다른 하나는 가언명령(hypothetical imperative)이다. 모든 인간은 신으로부터 이 절대적인 명령인 정언명령을 요구받고 있다. 이 명령은 감정이나 기분에 따라 좌우되는 명령이 아니라 그것들을 초월하여 실천해야 하는 당위적 명령이다. 이 명령은 일종의 목적이다. 인간이 지향해야 하는 분명한 목적으로 요구받는 도덕적 규율이다. 이를테면, 살인하지 말라. 내 이웃을 사랑하라. 거짓 증거 하지 말라는 구약의 법률과 같다. 반면에 가언명령은 목적을 이루는 수단의 도덕규칙이다. 구체적인 도덕규칙은 정언명령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도덕 요청이다. 그가 이 규칙들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신은 우리에게 이런 선험적 도덕규칙을 제공한 존재라는 것이다.

 

 

(2) C. S. 루이스의 논증

루이스의 도덕론적 논증은 객관적인 도덕규칙은 어느 곳에서나 존재한다는 것이다. 신은 문화나 역사를 초월한 절대적이고도 도덕 법칙을 제공해 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자연법이라 부를 수 있다. 옳고 그름의 법칙은 모든 곳에서 존재하는 도덕규칙이다. 인간은 이 규칙을 엄연히 따르고 있다. 비록 그가 무신론자라라고 해도 옳고 그름의 행위에 대한 보편적인 생각은 다 가지고 있을 것이며, 그가 그러한 옳은 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가 잘못한 것이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모든 인간이 일종의 객관적인 도덕법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를 참조하라.

 

 

(3) 도덕론적 논증에 대한 비판

우리는 이 논증에 대해 다음과 같은 물음들을 전개할 수 있다. a. 도덕은 객관적인가? b. 도덕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가? c. 만일 하나님으로부터 수여되었다면, 어떻게 알 수 있는가? d. 도덕은 상대적이지 않는가? e. 하나님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은 도덕적 으로 잘못을 행하는 사람들인가? f. 신을 믿어야 반드시 도덕적이게 되는가? 도덕론적 논증에서 가장 큰 문제는 도덕과 신 존재의 문제가 양립한 문제인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무신론자들이나 비유신론자들은 신의 존재를 부인한다고 해도 도덕적으로 그르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논증은 오히려 신을 믿지 않는 선량한 사람들과 신을 믿는 악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출처 : 생명나무 쉼터
글쓴이 : 둥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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