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현대의 변증가들
영지주의와 같은 이단의 출현과 로마 정부에 의한 기독교 박해와 같은 역사적 정황 속에 있었던 교부 변증가들과는 달리 현대의 변증가들은 그러한 어렵고 힘든 정황은 아니다. 하지만 무신론과 비유신론자들의 비판은 여전히 기독교 신앙을 위협하고 있다고 보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대 변증가들은 기독교 신앙을 보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측면에서 변호하고 변증한다.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기독교가 진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진리를 증명하고 변증하는 방식은 상이하다. 우리는 C. S. 루이스, 반틸 그리고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의 기독교 변증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1. C. 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1963)
A. 열렬한 기독교 변증가인 C. S. 루이스는 1898년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라는 조그마한 소도시에서 사무변호사인 아버지 알버트 제임스 루이스와 그의 앵글리칸 성공회 신부의 딸인 어머니 플로렌스 해밀턴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났다. 1913년에 북아일랜드에 있는 말븐대학(Malvern)에 입학했다. 1925년부터 1954년까지 옥스퍼드 모들린 단과대에서 개별지도 교수와 평의원으로 있었다. 1954년에 케임브리지 대학의 중세와 문예부흥 문헌학 교수가 되었다. 아일랜드 교회에서 침례를 받았지만 그는 청소년기에 그의 믿음을 버리고 무신론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가 33세의 나이에 기독교로 다시 개종한다. 그가 돌아온 교회는 영국 성공회였는데, 이곳에서 평신도로서 신앙의 중요성을 깨닫고 기독교 신앙의 진리를 방송을 통해서 전파했다. 그래서 흔히 그를 가리켜서 “회의주의를 위한 사도”라고 할 정도로 기독교 신앙을 변론한 변증가였다. 방송을 통한 원고들을 정리하여 낸 책이 이른바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이다.
B. 그의 기독교 변증의 방식: ?순전한 기독교?를 중심으로 그가 주된 목표로 삼는 변증적 임무는 무신론이나 기독교 회의론자들에 대한 기독교의 진리를 전파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두 가지 방식만을 선택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그의 변증적 방식은 귀납적 방식이었다. 귀납의 방식이란 다양한 사례, 관찰 그리고 경험들을 통하여 보편적 진리에 이른다. 대부분의 무신론자들이나 회의론자들은 기독교 신앙이 진리가 아니며 거짓의 내용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루이스는 이러한 사실을 다양한 증거들과 사례 관찰을 통해서 반박했다. 무신론자들과 회의론자들에 대한 비판에서 그가 제시하는 논거는 “도덕법칙”이었다. 무신론자들과 회의론자들조차도 우주에는 엄연한 도덕적 법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제시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인간 본성의 법칙: 인간본성의 법칙은 자연법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옳고 그름의 법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모든 사회는 나름의 법칙이나 규칙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어디서 유래했던 간에 사람은 그 법칙이나 규칙을 따른다.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싸움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상대방이 틀렸다는 것을 밝히는 행동이다.” 축구경기, 풋볼경기, 농구경기 등 모든 경기가 일종의 규칙을 가지고 그 규칙에 합의하여 이루어지듯이, 사람들은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도덕의 법칙에 순응하고 합의한 상태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우주의 법칙 중 “옳고 그름”의 법칙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루이스에 의하면, 이 옳고 그름의 법칙은 단순히 취향이나 견해로 이해되지 않으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일정한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루이스는 기독교 신앙이란 이러한 도덕법칙을 근본으로 하는 신앙이라고 주장한다. (2) 바른 행동의 법칙: 모든 인간은 정언적 명령(categorical imperative)을 받고 있다. 루이스가 예를 제시한 것처럼, 만일 어떤 사람이 물에 빠졌다고 하자. 그러면 우리는 물에 빠진 사람을 도울 수도 있고, 자신의 목숨이 혹시 위태로울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돕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안전을 위해 물에 빠진 사람을 돕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의 마음속에 옳은 일을 해야 한다는 어떤 명령을 받고 있고, 돕지 않은 것에 대한 어떤 죄의식을 느낀다는 것이다. 루이스가 말하듯이, “우리는 어떤 본능에 대해서든지 때로는 억누르며 때로는 북돋우라는 명령을 도덕률로부터 받고 있다.” 비록 자신이 이 명령에 순종하지 않더라도 이 명령이 옳지 않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루이스가 모든 사람은 바른 행동의 법칙을 가지고 있다고 논증한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모든 것은 우주를 이끌어가고, 무엇인가 내 안에서 옳은 일을 하도록 요구하며 잘못된 일에는 책임감과 불편함을 느끼게 만드는 어떤 법칙으로 나타나는 어떤 실재가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의 변증적 방식은 전치(transposition)의 방식이다. 전치의 방식이란 기존의 방식을 그것이 갖는 문제들을 논리적으로 세밀히 분석한 다음에 기독교 신앙의 진리를 덧붙이는 방식이다. 남침례신학대학원 기독교 철학교수였던 리처드 커닝햄(Richard B. Cunningham)은 그의 ?C. S. 루이스: 신앙의 변증가?(C. S. Lewis: Defender of the Faith)에서 “전치의 개념은 가장 낮은 것이 없이는 가장 높은 것이 주장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이것은 보다 높은 진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비판이나 주장을 검토하고 분석한다는 원칙이다. 루이스가 적절히 지적하듯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의 차이를 이해함으로서 기독교가 옳고 다른 종교가 틀렸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마치 우리가 산수를 할 때, 맞는 답은 하나이며 나머지가 틀린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지만 틀린 답들 중에도 비교적 정답에 근접하는 답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들을 맞추어 보아야 합니다.” 이런 방식에서 그는 기독교는 무엇을 믿는지에 관해 상세하게 논의한다. 이를테면, 범신론의 구조, 과학의 구조, 종교의 구조, 자유의지, 악의 문제 등 다양한 주제들을 충분하리만큼 논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것에서 기독교 신앙에 관해 변증한다. (1) 기독교 신앙은 기분에 의해서 믿는 것이 아니다. 기분이란 이성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속성이며, 기분은 항상 변한다. 믿음이란 변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이 증거의 무게를 충분하다고 판단한 후에” 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믿음이란 사실에 근거되어 있다는 확신으로 생겨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2) 기독교 신앙은 도덕적 실천에 의해서 정당화된다. 루이스가 표현했듯이, “오직 중요한 건 믿음인데, 믿음만 있으면 어떤 짓을 해도 상관없어! 그래서 친구여 마음껏 죄를 짓고 즐겨라!” 이것은 우리가 말하는 믿음이 아니다. 믿음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는 행위다.” (3) 기독교 신앙은 분별하는 신앙이다. 루이스는 분별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실천적 상식(practical common sense)이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고 있으며, 그 행동으로 말미암아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이해하는 신앙이다. 분별이 없는 신앙은 맹목적이고 맹신적인 신앙이다. 루이스는 “요즘에 분별력을 덕목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없지만, 기독교 신앙은 지각을 포함하는 분별을 중요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가 말했듯이, 신앙은 “아이의 마음”과 “어른의 머리”다. 말하자면, 지성의 영역에서 아이처럼 되는 것이 아니다. 지성의 영역에서는 어른의 머리인 ‘뱀’처럼 지혜로워야 하며, 순전한 상태는 아이처럼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루이스는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하나님은 게으름뱅이를 좋아하지 않으시지만, 지적인 면에서 게으른 사람은 더더욱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2. 코넬리우스 반틸(Corneilus Van Til, 1895~1987)
A. 코넬리우스 반틸은 “개혁파 변증가” 혹은 “전제주의 변증가”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아비지 이테 반틸(Ite Van Til)과 클라지나 반틸 사이에서 여섯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1905년 그의 나이 10세 때(1년)에 그의 가족들은 네덜란드에서 미국 인디애나로 이민을 결정한다. 그는 1914년 칼빈대학 준비학교(Calvin Preparatory School)를 거쳐 칼빈대학을 졸업하고, 이어서 그는 칼빈 신학대학원(Calvin Theological Seminary)을 다니면서 개혁주의 조직 신학자였던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 밑에서 조직신학과 기독교 변증학을 배웠다. 그러는 중에 반틸은 프린스톤 신학교로 편입하여 졸업한다. 최종적인 학위과정인 철학박사 과정은 프린스톤 대학에서 마쳤다. 졸업 후 그는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잠시 가르쳤고, 그리고 가장 보수적인 장로교 학교로 알려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43년 동안 조직신학과 기독교 변증학을 강의했다. 1987년 죽기까지 저술 작업과 가르치는 일 외에 기독교 신앙을 변증하는 일을 지속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B. 반틸의 기독교 변증학 그의 기독교 변증학의 특징은 세 가지다. 첫째, 그이 기독교 변증학은 변증학과 험증학으로 구분한다. 변증학은 철학적인 측면을 강조한 반면에 험증학은 역사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비록 이 영역이 분리되지는 않지만, 강조와 차이는 명백한 것처럼 보인다. 그에 의하면, 기독교 변증학은 ‘유신론’(theism)의 측면을 철학적 방어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에 기독교 험증학은 기독교(Christianity)를 역사적으로 방어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둘째, 그의 기독교 변증학의 방식은 전제주의(presupposition)다. 모든 학문이나 주장에는 그것들의 전제가 있다. 전제를 밝히는 일은 기독교 변증학의 주된 임무다. 구체적으로 전제주의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는 모든 이론에 대한 전제를 밝히는 일이다. 모든 이론에는 전제가 있다는 것은 이미 그들이 주장하고자 하는 이론에는 어떤 근거를 가지고 출발을 하며, 그 출발이 잘못되었는지를 밝히는 작업을 해야 한다. 단순히 어떤 절대 진리에 의해서 모든 것이 알려지지 않는다. 이는 이론에는 그것의 전제를 통해서 진리가 포장되기도 하고 왜곡되기도 하기 때문에 기독교 변증은 이러한 전제들을 밝힘으로써 보다 상대의 주장들을 이해할 수 있고 비판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 자신의 전제를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전제를 지적하는 것은 모든 추리가 성격상 순환논법(circular reasoning)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출발점, 방법 그리고 결론은 항상 서로 연관되어 있다.” 다른 하나는 기독교 변증의 전제는 성경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의 전제다. 기독교 변증학은 성경의 절대 권위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다소 긴 문장으로 표현한다.
“성경은 모든 과목의 중심에 있을 뿐만 아니라 전체로서의 커리큘럼의 중심에 있다. 성경은 그것이 말하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하여 권위 있는 사상이다. 더욱이 성경은 모든 것에 관하여 말한다. 성경이 미식축구, 원자 등에 관하여 직접 언급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들은 성경이 모든 것에 관하여 직접적으로 또는 암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은 그리스도와 그의 사업에 관하여 우리들에게 말해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또 우리들 주위에 있는 우주가 어디서부터 왔는가에 관하여 말해 준다. 성경은 기독교에 관해서 뿐만 아니라 유신론에 관해서도 말해준다. 성경은 역사뿐만 아니라 역사철학에 관해서도 말해 주고 있다. 게다가 이 주제들에 관한 지식과 정보는 하나의 전체 속에 짜여 있어서 풀 수 없는 것이다. 오직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을 거부할 때에만, 당신은 성경의 소위 종교적 도덕적 교훈을 그것이 물질적 우주에 관허여 말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분리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 인간들이 성경을 중요시하지 않는다면, 이 우주 안에 있는 어떤 것에 관해서도 완전하고 참된 지식과 정보를 가질 수 없다.”
이처럼 그의 기독교 변증학은 성경의 절대 권위에서 출발한다. 성경은 사물을 판단하는 절대기준이다. 그러면 성경의 권위로 인해 이성의 역할이 배제되는가? 반틸은 이성을 배제하지는 않지만, 이성은 성경의 권위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가 주장하듯이, “인간은……죄인이므로 그의 이성을 성경에 종속시켜야 하며, 성경의 빛에 비추어 그의 경험을 해석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셋째, 그의 기독교 변증학의 방식은 전도적 방식이다. 반틸은 기독교에 대한 비판에 대해 우리가 조목조목 반론을 제기하는 방식이라기보다는 그들의 비판과는 상관없이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를 알리는 방식을 선택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우리가 믿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가르치는 조직신학의 전반적인 주제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아마도 이것은 그의 신앙적 전통인 개혁주의 혹은 칼빈주의 전통에서 출발하고 있을 것이다. 그의 신앙은 칼빈주의 신앙을 옹호한다. 한마디로 그의 변증학은 칼빈주의의 신앙을 세상에 알리는 것을 주된 목표로 한다고 보인다. C. S. 루이스의 기독교 변증이 기독교 진리와 신앙에 대한 비판적 물음에 대한 논리적이고도 합리적인 대답을 제공하는 것이라면, 개혁주의 전통의 기독교 변증은 비판적 물음과는 관계없이 기독교 진리를 선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전하는 기독교 진리는 (1) 스스로 독립하여 계신 하나님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며, (2) 일반 창조와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을 지은 특수 창조의 사실을 알리는 것이며, (3) 우주 안에 있는 모든 사물들이 하나님의 포괄적인 계획과 섭리의 사실을 알리는 것이며 그리고 (4) 인간의 타락과 그 결과로 발생한 죄의 사실을 알리는 것이다. 이러한 선포적 방식에 근거해서 반틸은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개혁주의 변증만이 죄인의 얼굴에서 가면을 벗겨 버리고 그로 하여금 자기 자신과 세계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도록 강요할 수 있다. 두더지와 같이 자연인은 사실들이 있는 그대로 드러날 때마다 땅 밑으로 파고들어가려고 애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반틸의 기독교 변증학은 매우 도전적이고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포하는 열정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적극적 변증이 오히려 세상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반틸의 기독교 변증론은 개혁주의 혹은 칼빈주의적 전제에서 기독교 신앙을 변호하려는데 있다. 현대는 다원적이다. 서로의 입장차이가 있다. 기독교 전통 안에서 서로 다른 주장들이 상충될 때에 어떤 방식으로 접촉점을 찾고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인 것 같다. 이런 점에서 반틸의 기독교 변증학이 다원주의 시대에 설득력을 지닌 기독교 신앙을 변호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3.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William Lane Craig, 1949~ )
A. 미국의 철학자, 신학자, 신약성서역사가 그리고 기독교 변증가인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는 1949년 일리노이 주의 페오리아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철도회사간부였고, 어머니는 가정에서 부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살았고 그들은 매우 평범한 비기독교이었다. 16세에 크레이그는 복음주의 전통에 소속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1971년에 휘튼대학을 졸업했는데, 학부에서 그는 프란시스 쉐퍼와 에드워드 콘웰과 같은 기독교 변증가들에 매료되었다. 그는 시카고의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석사과정을 공부했는데, 이곳에서 그는 두 개의 석사과정을 마쳤다. 1974년에는 종교철학으로 석사학위를 그리고 1975년에는 교회사로 석사학위를 마쳤다. 1977년 그는 영국의 버밍햄 대학에 입학하여 종교철학자인 존 힉(John Hick)의 지도하에 1984년에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학문적 열정은 여기서 그친 것이 아니라 독일로 지속된다. 그의 학문적 열정은 독일 뮌헨 대학교(University of Munich)에 입학하여 볼프하르트 판넨베르그(Wolfhart Pennenberg)의 지도하에 공부하여 신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80-6년 동안 그는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의 교수로 있었고, 켈리포니아주의 산타바브라에 위치한 웨스트몬트 대학(Westmont College)에서 철학과 종교철학교수로 있었다. 1994년부터 현재까지는 탈보트 신학교(Talbot Seminary)와 비올라 대학(Biola University)에서 연구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그의 주된 관심은 종교철학, 역사적 예수, 세계관, 기독교 변증학 등이다. 크레이그는 다양한 저서들을 통해서 미국 신학교에 널리 알려진 인물들 중의 한 사람이다. 특히 우주론적 논쟁을 통한 신 존재 증명에서 그의 이름이 자주 거론될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B. 크레이그의 기독교 변증학 크레이그는 변증학을 “기독교 신앙의 진리 주장들을 위한 합리적인 정당성을 제공하기 위해 추구하는 기독교 신학의 범주”로 정의한다. 따라서 그는 기독교 변증학을 이론적 학문의 영역으로 간주한다. 루이스와 반틸과는 달리 크레이그는 보다 포괄적인 철학적 사유의 패턴으로 기독교 변증학을 전개한다. 우선 그는 기독교 변증학이 좋은 점을 제시하는데,
(1)문화를 형성하는 것(Shaping culture)이다. 기독교인들은 복음주의의 접촉을 넘어서 서구 사상과 문화의 보다 넓은 그림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따라서 크레이그는 변증학은 복음이 사유하는 사람들을 위해 유익한 선택으로서 들을 수 있는 문화적 환경을 보존하는 일을 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2)변증학은 그리스도인들을 강하게 한다 (strengthening believers). 일반적으로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신앙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렇지만 그들이 기독교 변증학을 배운다면 그들은 불신자들과 그들의 신앙을 논쟁한다고 해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3) 변증학은 믿지 않는 자들을 복음화 한다(evangelizing unbelievers). 말하자면 변증학의 유익성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방식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가 재미있게 표현하듯이, “논쟁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올 자가 없느니라”(No one comes to Christ through arguments). 크레이그는 복음에서 변증학의 역할이 성서적이라기보다는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진리들을 논증하는 문제에 강조된다고 보았다. 사도행전 17: 17-8에서 언급했듯이, 사도 바울은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저자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 새” (He reasoned in the synagogue with the Jews and with the Gentile worshippers, and in the marketplace daily with those who happened to be there. Then certain Epicurean and Stoic philosophers encountered him). 이처럼 크레이그는 기독교 변증학은 매우 논쟁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크레이그는 신 존재, 악의 문제, 우주 창조의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을 논쟁적 맥락에서 논의하고 변론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 논쟁에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이성의 역할과 성령의 역할이다. 우선 그는 이성의 역할을 강조하는데, 크레이그가 보통 사람들은 합리적인 설명을 요구하고 있고, 합리적인 설명이 전개된다면 사람들은 설득될 수 있다고 보았다. 말하자면 기독교가 진리라는 것은 인식시켜야 하고, 논증을 통하여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성의 역할은 기독교 변증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논증의 방식은 귀납적 논증(inductive arguments), 연역적 논증(deductive arguments) 그리고 개연성적 논증(probabilistic arguments) 등이다. 그리고 크레이그는 성령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성만이 모든 사람을 설득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호할 수 없다. 그는 이성의 역할에다 성령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성령의 역할은 기독교 진리에 관해 믿지 않는자를 설득하기 위해 우리의 논증들을 사용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신앙이나 믿음을 위한 이유들을 제시할 때 그는 성령에 대항하거나 성령의 역할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성령이 합리적인 논증을 통하여 역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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