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 오경

[스크랩] 심층 구약 읽기 4 - 민수기

하나님아들 2015. 9. 22. 17:24

심층 구약 읽기 4 - 민수기

 

1. 제목

 

  민수기의 히브리 제목은 다른 율법책과 다르게 맨 처음 나오는 낱말 대신 첫 구절의 다섯 번째 낱말인 베 미드마르를 제목으로 갖는다. ‘베 미드마르의 뜻은 광야에서란 뜻으로 이스라엘 광야생활 40년이란 뜻을 가진 점에서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70인역은 민수기 시내산에서 벌어진 1장과 모압 평지가 등장하는 26장에서 일어난 두 차례에 걸친 인구 조사와 함께 다양한 숫자 목록들이 열거된 것 (3:15~31, 7:10~83, 28~29, 31:32~52)에 근거해 그 제목을 아리트모이’, ‘숫자들(number)'이란 뜻을 갖고 있다. 우리말 성서는 70인역 성서의 기초에 근거해 책 이름을 民數記민수기로 붙이고 있다.

  제목에서 드러나는 이해는 두 가지 점에서 심오함을 담고 있다. 민수기는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을 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베 미드마르를 뜻하고 있으며, 동시에 수효의 인식 속에서 히브리 체계가 나타내는 숫자의 인식, 의미의 갱신 의지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아리트모이로 불리워지기도 한다.

 

2. 구조

 

  민수기는 그 특성상 일단 두 부분으로 분류되는데, 첫 번째 부분은 1~10:10까지, 두 번째 부분은 10:11~36장까지다. 첫 번째 부분은 이스라엘이 시내 광야에 계속 머물면서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떠날 준비를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두 번째 부분은 무엇을 담고 있는가. 시내 광야를 떠나 모압 평지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된 출애굽 공동체의 광야 유랑생활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구분을 광야 여정에 따른 기록으로 맞추어 세 부분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첫째가 시내 광야에서의 출발 준비(1:1~10:10), 둘째는 시내 광야에서 가데스 바네아까지의 여정(10:11~20:13), 셋째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20:14~36)을 다루고 있다. 세 부분의 구분에서 주목할 만 한 부분은 첫째, 둘째가 불신앙과 반역의 모티브를 다루고 그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셋째는 첫 세대의 종말과 더불어 출현한 광야 세대의 새로운 희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기본 구조를 중심 내용에 따라 아래의 다섯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겠다.

 

시내 광야에서의 출발 준비 (1:1~10:10)

시내산에서 가데스 바네아로의 여정 (10:11~12)

바란 광야에서 가데스 바네아 체류 기간 (13:1~20:13)

가데스 바네아에서 모압 평지로의 여정 (20:14~22:1)

모압 평지 체류 기간 (22:2~36)

 

3. 구조 안에 담긴 심층성

 

  두 부분으로 나눠진 분류, 시내 산에서의 출발 준비와 모압 평지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된 출애굽 공동체의 광야 여정을 다루고 있음을 보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민수기 이야기 안에는 가나안이 철저히 미래의 장소, 잡히지 않는 미래성에 집중되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현실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적어도 민수기 시점에서는 가나안에 도착하지도, 가나안을 경험하지도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민수기 전체를 통해 주된 핵심 주제는 바로 가나안이며, 그 가나안은 곧 약속의 땅이다. 첫 번째 부분에선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 과정을 다룬다면, 두 번째 부분은 광야에서의 유랑생활로 점철된다.

 

 또한 민수기의 활동 무대가 갖는 영적 의미에 집중될 필요가 있다. 이 무대는 단연코 베 미드바르’, 광야 안에서이다. 광야가 영적으로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믿고 그 보이지 않음 속에서 진리로 실현되는 생명의 몸을 발견해야 할 필연성을 가진 곳, 바로 그 장소가 광야인 것이다.

 

 광야에서 가나안을 발견하는 것은 가나안에 현상적 실재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이때, 광야에서 발견되는 가나안은 영적 실재다. 첫 번째 부분, 시내 광야에서 가나안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 과정, 그 준비 과정 자체에서 하나님 말씀하심의 기억이 우리 인간의 보이는 세계 위, 육신의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것이 바로 말씀을 통한 가나안의 현현이다.

 

 그러나 민수기 세 부분으로 나눈 대목에선 광야에서의 가나안 현현이 철저한 영적 변혁을 담보로 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광야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질 수밖에 없는 필연성은 바로 가나안 때문이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대한 인식과 자각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광야로 나왔다. 광야로 나와 하나님 말씀하심을 듣는다.

 

 이 말씀하심 속에서 광야를 광야 아닌 곳으로 되돌리고 싶은 인간의 탄식이 쏟아진다. 이 탄식은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관통 사건 속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탄식이다. 불평과 불만으로 알려진 이 탄식이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심층적 교훈은 이곳이 광야임을 자각하는 발견의 증거다.

  그러나, 이 발견은 우리로 하여금 변혁을 결단하게 한다. 초기에 나온 출애굽 세대는 결국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떤 세대가 가나안에 들어가는가. 이후 세대, post generation이다. 이후 세대는 물리적 시간의 이후 세대만을 뜻하지 않는다. 하나님 말씀하심에 대해 말씀의 외피에서 말씀의 심층을 경험한 세대, 심층을 경험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세계 위에 무리 없이 펼쳐 보일 수 있는 세대, 바로 그 세대가 가나안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광야에서의 탄식과 접목해보면 심층의 신앙고백으로 상승된다. 광야에서의 탄식, 광야에서의 불평과 불만이 다시 이전 것을 향한 회귀로 귀결된다면 그 불평과 불만은 광야를 광야 아닌 곳으로 되돌릴 것이다. 불평과 불만의 결과로 또 다시 우상과 애굽을 그리워하는 모든 태도들이 바로 역행의 악습이다.

  하지만 불평과 불만을 통해 이곳이 광야임을 자각하는 백성, 오늘의 생명 주체들은 광야 안에서 새로운 세대의 변혁적 실재에 눈을 뜬다. 보이지 않는 가나안이 영적 실재의 가나안으로 광야 안에서 하나님 말씀하심과 함께 체화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새로운 세대, post generation은 하나님 말씀하심의 가나안을 인생의 전체 여정으로 상징되는 광야 안, ‘베 미드바르에서 발견하는 세대인 것이다.

 

 우리는 이곳이 광야인 것을 안다. 하지만 가나안 또한 이 광야 안에서 실현되는 것을 본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변혁을 의미하는 민수기의 핵심 말씀이다.

      

4. 민수기 고찰, 교훈과 심층성 탐구

 

1) 시내 광야에서의 출발 준비

 

인구조사

 

 내 광야를 떠나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준비한 것들 중 가장 먼저 한 일은 애굽에서 떠나 가나안을 향하는 자들의 정확한 숫자를 세는 일이었다. (1) 이 인구 조사는 출애굽 공동체를 하나의 통일된 조직으로 재구성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통일된 조직 재구성의 근본 목적은 공동체의 실제 숫자의 과시나 드러냄에 목적을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숫자를 직접 세어낸다는 신적 발견태로서의 발현이 본질적 목적인 것이다.

 

 록상으로 추산되는 출애굽 공동체 전체 인구는 250만에서 300만 정도로 알려진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전체 인구와 동일하게 보기 어렵다.

당시 이집트 인구가 4~5백만이었다. 히브리인들이 거주했다는 고센 땅은 고작 몇 십만이 모여 살아도 비좁을 정도의 지역인데, 그런 곳에 300만 가까이가 살았다는 것도 모순이다. 또한 시내 반도의 여건을 두고 보면 그 많은 인구가 물과 양식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광야에서 40년 동안 실제로 살았다는 것 또한 어패가 있다.


  신학적으로 출애굽 인구에 대해선 다양한 학설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느 정도의 인구가 출애굽 했느냐가 아니다. 이 출애굽 공동체의 계수를 이뤄낸 목적성, 그 자체가 신앙고백이란 사실에 주목하는 것, 그 하나다. 수를 세는 것이 어떻게 신앙고백이란 말인가. 당시 히브리어 숫자는 숫자 마다 의미를 담고 있었다. 따라서 숫자를 읽는다는 것, 수효를 센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를 전달하고 의미를 부여 받는다는 의미교환행위를 뜻한다. 의미교환행위의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하심이 있다. 이 의미는 모두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출애굽 공동체에게 관계되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회막


  인구 조사 다음 이스라엘 열 두 지파가 장막을 칠 때 진을 치는 방법, 광야 행진 순서(2)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 이야기에서 주목할 수 있는 한 가지 특징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진을 칠 때, 언제나 회막이 한 가운데에 오도록 했다는 사실이다.

  회막이 중심성을 차지한다는 것은 표면적 의미와 이면적 의미가 함께 공존함을 발견하게 된다. 표면적 의미로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철저하게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신정, theocratic 공동체가 되어야 함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신정 공동체의 중심성을 나타내는 퍼포먼스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메시지를 품고 있다. 그것은 바로 중심성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말씀하심에 집중된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말씀은 가나안에서 절정에 이른다. 민수기의 포인트는 가나안이 출애굽 세대가 광야에 나온 그 자체에서 이미 구현되었음을 나타낸다는 사실이다. 이 인식은 매우 중요하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실제 역사에서 가나안을 정복하고 이뤄냈다는 정복사관은 말 그대로 이스라엘의 표면 역사에 대한 윤색에 지나지 않는다. 구약문헌비평의 잣대를 냉혹하게 들이밀면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입성이 얼마나 타협적이고 이교중심주의적인지 새삼 들춰내지 않아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나안은 무엇인가. 이는 실재의 말씀하심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하심은 육적 실재만을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영으로서 보이는 세계를 압도하는 진리의 주체요, 감춰진 것의 드러남이다. 때문에 회막의 중심성은 우리에게 보이는 세계에서의 아무 것도 잡히지 않는 허망함일 수 있으나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보이는 세계를 압도하는 하나님의 차원에서는 충만함 그 자체다. 그 충만함이 회막의 중심을 우리로 하여금 보여준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보여주는 것이다.

 

레위 자손들의 형성과정

 

 인구조사, 행진 방법, 행진 순서 이후 레위 자손의 계수(3), 레위 자손 중 30세에서 50세까지 봉사 가능한 자들의 계수(4), 회중의 정화와 축복(5~6), 예물 헌납(7), 레위 자손의 성별(8), 시내 광야에서 지킨 유월절(9:1~14), 행군을 위한 구름과 나팔(9:15~10:10) 등이 등장한다. 이상의 내용들은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가. 바로 이는 출애굽기와 레위기에 등장했던 시내산 언약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시내산 언약은 그 자체로 가나안이다. 왜냐하면 언약은 말씀하심이고 말씀하심은 그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말씀하시는 화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말씀하심의 주체는 단연 야훼 하나님이다. 그 언약을 기억하는 것, 그 기억의 퍼포먼스가 구약 시대 때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의 전통과 규례로 재연되었다면 그 재연의 본질이 풀어지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아들의 보이는 세계에서의 단 하나의 재연인 그리스도 예수의 공생애로 수렴된다. 그 공생애의 중심에 다시 하나님이 보내신 자의 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하심이 있다.

 

 레위 자손들의 성별 과정은 심층적 영성의 상승과정으로 볼 수 있다. 처음엔 그저 보이는 대상으로서 레위 자손을 계수한다. (3) 하지만 그 후 회막을 인식하고 성전에서 봉사할 수 있는 이른바 예배의 가능성을 계수해낸다. (4) 그 뒤, 레위 자손의 성별된다. 성별의 절정은 표면적 유대인에서 이면적 유대인으로 이행하듯 표층에서 심층으로, 현상에서 본질로 돌입되는 일련의 신비과정을 묘사한 것이다.

 

2) 광야 유랑 생활

 

 시내 광야에서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살펴보면 다음의 스토리텔링을 갖고 있다. 우선 출애굽 2년째 되는 해 220, 하나님의 언약궤를 앞세우고 시내 광야를 출발한다. (10:11~35) 여기서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한다. 그러다 불의 심판을 받기도 한다. (11:1~3) 또한 기브롯 핫다아와 지역에서는 애굽을 동경하다 재앙을 만나 죽게 된다. (11:4~35) 12장에 가서는 아론조차도 모세를 비난한다.


  비난의 절정은 가나안 땅을 점령한 사건에서 극에 달한다. 열 명의 정탐꾼들이 부정적 보고를 함으로써 이스라엘 자손의 불평과 원망이 극에 달한 것이다. (13~14) 그들은 가나안 사람들의 칼에 죽을 바에야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고 불평하기에 이르렀다. (14:2~3)

이러한 일련의 불평과 원망이 쏟아진 뒤 하나님은 이 일을 계기로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 이스라엘 자손 중 20세 이상의 연령층은 모두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을 선포한다.

 

 이 텍스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민수기 제목이 갖는 숫자의 의미부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만약 백성들의 불평과 원망을 피할 수 있었다면, 다시 말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에 제대로 순종했다면 광야 40년이란 유랑을 피할 수 있었을까. 20세 이상의 출애굽 1세대가 가나안에 들어설 수 있었을까. 이 말씀이 갖는 의미는 오히려 역설적이다. 광야는 피할 수 없는 생명주체들의 필연이며, 1세대는 반드시 영적 변혁을 겪는 post generation의 세계 안으로 들어서지 않으면 이 말씀의 신비에 참여할 수 없다는 하나님 말씀하심의 선포인 것이다.

 

 불평과 불만은 광야를 거쳐 가는 이들에게 필연성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애굽을 동경하는 그 동경의 의지가 갖는 욕망은 광야를 광야 아닌 곳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인간의 허상에 대한 의지와 동일시된다. 애굽에 대한 추억은 인간에겐 과거 시간에 대한 동경이요, 그것은 곧 지옥이다.

불평과 불만 텍스트의 이해에서 가장 핵심인 것은 그 광야를 받아들이는 존재가 가나안에 대한 인식을 이전 애굽과 같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 속, 보이는 세계에서 붙잡히고 만져지는 실증이 곧 존재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생각의 우상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이다. 그 해방을 맞이할 수 있는 이 세대와의 철저한 결별과 오는 세대와의 철저한 화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약에서 바울이 이야기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신비의 체현인 것이다.

 

  이 관계의 패턴은 이후 과정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일단 가데스 체류 기간 중간에 각종 규례들이 등장한다. 각종 희생 제사에 대한 규례 (15:1~31), 안식일에 벌목한 자에 대한 처벌 (15:32~37), 옷단 귀에 술을 만드는 일에 대한 규정 (15:38~41), 제사장과 레위인의 봉사 및 십일조에 관한 규례(18), 부정을 깨끗케 하는 것에 관한 규정 (19) 등이 기록되어 있고, 그 중간 지점인 16~17장엔 모세 지도권에 반발하는 고라, 다단, 이바람의 반역에 대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20장 이후 광야 유랑 말기의 이야기는 또 어떠한가. 물이 없음에 대한 백성들의 불평이 다시 불거진다. (20:2~13), 에돔 사람들의 반대로 호르산으로 우회하고 호르산에서 아론이 죽는 사건이 나온다. (20:14~29), 아랏 사람들과의 전쟁, 승리가 기록되고 (21:1~3), 이스라엘 백성의 불평과 불뱀을 통한 징계(21:4~9)가 나온 뒤, 아모리 왕 시흔과 바산 왕 옥과의 전쟁 및 승리(21:10~35) 등이 등장한다.

 

 광야 유랑 말기의 기록에서도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이 발견된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과 그로 인한 징계의 이야기다. 백성들의 불평이 징계와 심판을 가져온다는 이 이야기는 표면 역사에서 신성의 교훈을 얻고자 하는 태도를 버릴 것을 요구한다. , 하나님이 자신에게 잘하면 축복을 주고 잘못하면 저주를 내린다는 형태의 복과 저주의 잣대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광야가 필연인 것처럼 백성들의 불평과 불만의 드러냄도 필연이다. 문제는 이 필연이 바벨의 욕망으로 연결될 때, 다시 말해 필연에 대한 처리와 반응의 태도가 애굽을 그리워하듯 우리가 가진 어떤 경험, 어떤 행위, 어떤 원인, 어떤 인과에 의존할 때 그 의존의 결과가 스스로 벌여낸 심판의 비극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성경의 말씀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에 대한 한계자각에 충실하길 원한다. 백성들의 불평과 불만을 말씀사건 속에서 자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 자체인 약속의 땅 가나안을 생각하게 되고, 말씀하심 자체인 새로운 세대가 우리 안에서 우리를 주장하는 것을 보게 된다.

 

참고문헌

C.F. 화이틀리. 고대 이스라엘 종교의 독창성, 안성림역 서울:분도출판사, 1981.


출처 : 동서말씀연구회
글쓴이 : 주 원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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