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구약 읽기 5 - 신명기
제목
히브리 성서에 나타나는 신명기 제목은 책의 첫 두 낱말이 ‘엘레 하드바림’으로 되어 있는데, 뜻은 ‘이것들은 말씀들이다.(These are the words)’정도로 읽혀 신명기 전체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다는 사실과 적절히 부합된다.
그런데 70인역은 신명기 17:18에 있는 말씀에 기인하여, 책의 제목을 ‘제 2의 율법’ 혹은 ‘율법의 반복’이란 뜻의 낱말인 ‘듀테로노미온’으로 정했다. 일부 학자들은 신명기 17:18 구절의 말씀인 ‘이 율법책을 복사하여’란 뜻에 대해 70인역 학자들이 오해한 바에 의해 ‘제 2의 율법’이란 뜻의 듀테로노미온으로 정한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적절치 않아 보인다. 복사, 등사란 의미로 사용된 히브리어 ‘카타브’는 복사나 등사란 의미보단 ‘쓰다’, ‘기록하다’란 뜻으로 사용된다. 신명기가 쓰일 당시 이미 출애굽 이후 율법은 주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율법을 카타브, 기록하라고 말한 이 대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이는 바로 언약의 갱신, 율법의 영적 재해석의 맥락을 말하고 있음이다. 따라서 70인역 학자들에 의해 제시된 듀테로노미온, 제2의 율법이란 뜻은 단순한 율법의 반복이나 되풀이가 아닌 앞서 네 권에 수록된 내용들에 기초하여 율법과 역사를 새롭게 재해석한 책으로 봐야 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상당하고 본다.
아울러 한글성서역 신명기申命記는 70인역 듀테로노미온의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구조 및 내용
신명기는 모세가 출애굽 제2세대, 이른바 광야 세대에게 주는 교훈, 설교로 구성되어 있다. 신명기는 세 편 정도의 설교문으로 구성되는데, 첫 번째는 1:1에서 4:43절까지로 본다. 이 첫 번째 부분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이 호렙산을 떠나 가데스 바네아를 거쳐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멸하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한다.
모세의 두 번째 설교는 4:44에서 26장까지로 갈무리된다. 여기서는 십계명에 대한 영적 맥락에서의 심층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 중에서 특히 주목될 것은 12~26장으로 이는 흔히 ‘신명기 법전(Deuteronomic Code)’으로 불리는 것으로, 이는 남왕국 유다 시대 요시아 왕의 종교개혁(왕하 22~23장 참고) 추진에 있어 결정적 영향을 준 자료로 알려져 있다.
세 번째 설교는 27장에서 31장에 걸쳐 있는데, 이 설교에는 대부분 하나님의 약속, 그 약속의 갱신 의식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32~34장은 부록적 성격을 갖는 문헌으로 모세의 노래, 그의 축복 기도와 죽음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지만, 이는 모세라는 인물을 기리는 헌사의 의미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신명기 구조의 또 하나의 특징은 이렇듯 크게 세 편의 설교문으로 구성된 부분 곳곳에 모세 오경, 신명기의 최종 편집자로 알려져 있는 포로기 편집자에 해당하는 내레이터의 해설이 가미된다는 점이다. (1:1~5, 2:10~12, 20~23, 3:9, 11 등) 합쳐 보면 56개의 구절들로 이뤄진 내레이터의 해설은 신명기가 야훼 하나님과의 영적 교감을 이뤄낸 모세가 직접 그 의미를 담아 이후 세대로 알려진 광야 세대에게 들려준 역사성을 뒷받침해줌과 동시에 그 역사성이 단지 BC 16~15세기의 과거가 아니라 오늘 모든 인류의 실존적 역사와 함께 한다는 사실을 지지해준다는 점에서 독특한 영적 의미를 갖고 있다.
시대적 배경과 목적
드 베테를 비롯한 현대의 구약학자들은 신명기를 남왕국 유다의 요시아 왕이 종교개혁을 추진하면서 발견한 율법책(왕하 22:8)과 동일하다고 보고 있으며, 이에 대해선 큰 이견이 없다. 이러한 의견을 토대로 신명기를 바라보면 신명기는 BC 7세기경에 기본 골격이 완성되어 있었다가 바벨론 포로기에 최종적으로 완성된 책으로 전해져 내려왔다고 보는 게 가장 적합해 보인다.
신명기는 겉으로는 설교 형식을 띄고 있지만 각종 법전에 해당하는 법조문의 명문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스라엘의 사회 질서, 성문화된 법적 원리들과 재판 절차, 하나님 통치하에서의 이스라엘의 자기 이해 등을 정의해 놓은 스타일을 보면 그렇다. 동시에 신명기는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속에 있는 이스라엘의 삶을 통전적으로 해석하는 책이기도 하다. 이러한 신명기의 특성은 분열 이전 통일 왕국 시대 이후로 겪게 된 이스라엘 분열의 역사 등, 여러 경험에서 비롯된 요시아 왕의 종교개혁을 향한 적극적 반영을 뒷받침해주는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신명기의 영적 맥락은 요시아의 종교개혁 의지를 넘어선다. 요시아 왕의 종교개혁 의지엔 신정국가, 신정공동체에 대한 희망이 담겨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겉으로는 특정 민족에게 말씀하시는 군주론적 유일신의 모습을 띄고 있지만 그 내부로는 철저히 일대 일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게 된다. 두 번째 율법이란 뜻 속에 담긴 의미 역시 그렇다. 첫 번째 주어진 율법이 모든 이들이 공통적이고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공동체, 국가를 위한 일종의 생활지침인 헌법이라면, 두 번째 율법의 차원은 공적 차원, 현상적 차원만이 아니라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그 말씀에 관계하는 단독자로서의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읽어야 하는 율법이란 바로 그런 뜻이 아닐까.
그러한 맥락에서 본 신명기는 모세가 가나안으로 들어갈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전의 역사와 율법을 새롭게 가르치려 한다는 측면 역시 일종의 언약 갱신 의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이 갱신의 카테고리 속에서 가나안, 광야, 이스라엘 자손의 정체성, 그 세 가지 키워드가 외적 세계에서 내적 세계로 변혁되어 다시 외적 세계로 출현되는 이른바 갱신의 층위순환을 경험하게 된다. 가나안은 단독자인 존재의 마음으로, 광야는 그 존재의 삶의 시간으로, 이스라엘 자손의 정체성은 인종, 지역, 시대를 초월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들음 그 자체로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신비를 품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신비의 묵상이 가능한 근거는 바로 그리스도론에 있다. 그리스도의 구속은 특정 역사와 특정 민족에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인류와 모든 인류의 존재 핵심인 단독자에게 상승되거나 하방되기 때문이다.
신명기가 갖는 이러한 기본 특징은 모압 평지에서 행해진 언약 갱신 의식을 통해 출애굽 제2세대로 하여금 광야생활을 마치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성공적인 신정공동체의 삶을 살 수 있게 하려는 목적을 보편 역사의 한 교훈만이 아니라 동시에 실존 역사, 해방 역사의 한 교훈으로도 새기고 있음을 보게 된다. 신정공동체의 핵심은 과거의 이스라엘 민족, 현상계에서 인정받은 선민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선 단독자로서의 백성, 그 하나이며, 가나안과 광야 역시 선적 시간으로서의 과정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과 광야가 말씀 사건 속에서 하나됨을 경험하는 하나님 시간 안에서 인간 차원의 시, 공의 하나됨을 경험하는 신비에 이르는 것이다.
신명기의 율법은 이렇듯 야훼의 말씀하심이 곧 광야 안에서의 가나안이 된 이 신비를 체험한 이들에게 하나님 백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가르치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이것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지난 역사를 회고하거나 추억하는 것, 그러한 선적 역사의 교훈을 단순 재연식으로 오늘의 역사 속에 반추하는 것이 아니다. 영적 맥락에서 재해석된 신명기는 이미 가나안을 우리 인생의 광야에서 체험하고 있는 이른바 영적 세대, 새 세대에게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일깨워주는 일을 뒷받침 하는 것이다.
심층 교훈 탐구
1) 모세의 설교들
모세의 첫 번째 설교, 곧 1:1~4:43절에 이르는 부분은 지나온 40년 동안의 광야 유랑 여정과 그 과정에서 겪었던 일들을 되돌아보는 내용으로 꾸려져 있는데, 보다 세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1장에서 모세는 호렙산에서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회상하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말한다. 주목할 점은 이스라엘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정탐꾼들의 부정적 보고에 현혹되어 하나님께 반역하고 불평한 나머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함을 상기시킨 것이다. 그런데, 사실 정탐꾼들의 부정적 보고는 그 일견만 들여다보면 엄연한 사실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고백한 보고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의 층위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현실의 세계와 믿음의 세계를 통합한다. 이로써 진리에 입각한 팩트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하심 그 자체이며, 바로 그 말씀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곧 광야에서 가나안을 경험하는 그리스도론에 합류된 영적 백성에게 주어진 율법이다.
2장, 3장에서 모세는 38년간의 광야 유랑생활을 회고하고 4:1~43에서는 시내산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여러 계명들을 잘 지킬 것을 강조하며, 특히 우상숭배의 죄악에 빠지지 말 것을 경고하는 것으로 첫 번째 설교를 마무리한다. 이 설교에서 주목할 수 있는 것은 1장에서의 영적 맥락,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통합이 하나님 말씀에 의해 이뤄짐을 경험한 존재에게는 2, 3장에서 언급된 광야 유랑생활의 의미가 부정과 회의, 불신으로 점철되는 것이 아닌 믿음 안에서의 생명 사건으로 귀속되고 이는 4장에서 모세가 강조한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우상숭배의 가증스러움에서 해갈되는 생명의 선순환임을 강조한 것이다. (신 4:24 묵상)
두 번째 설교는 4:44~26장까지 이뤄지는데, 이를 세분해 살피면 다음과 같다.
5장은 시내산 언약의 핵심인 십계명을 출애굽기와는 보다 다른, 새로운 관점에서 해설하며, 시내산 언약을 받을 때의 상황, 불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 없음의 신비를 구속적 관점에서 받아들이는 경이로움을 갈파하며, 6~11장은 시내산 언약과 십계명의 두 돌판에 적힌 것에 대한 회고의 요구와 함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과거에 어떻게 구원하고 인도하셨는가를 상세히 설명한다. 이 이스라엘의 과거 사건으로부터의 구원과 인도는 영적 맥락에서 법이 갖고 있는 인간 존재의 한계로부터의 탈주와 새로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엑소더스와 공존의 역사를 새롭게 제시하고 있다. 두 개의 돌판이 갖고 있는 영적 상징에 주목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그 후, 이른바 ‘신명기 법전’으로 알려진 12~26장은 출애굽기에 등장한 언약의 책(20:22~23:33)보다 훨씬 더 상세하게 종교, 정치, 사회적 차원의 여러 율법 규정들을 언급하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고자 작정한 곳에서만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규정(12장), 우상숭배 금지, 우상숭배자에 대한 처벌규정(13장), 가나안 사람들의 부정한 풍속, 음식 금지 명령 및 십일조에 대한 규정(14장), 노예를 포함,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규정(15장), 3대 절기에 대한 규정 및 법의 집행과 왕의 임명(16~17장), 제사장과 레위인 및 선지자에 대한 규정(18장), 도피성 제도(19장) 등이 이에 속한다. 이에 대해선 다른 목록에서 그 영적 맥락을 고찰해 보겠다.
세 번째 설교는 27~34장이다. 27~28장이 시내산 언약 갱신의 절차와 관련되어 27장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에발산에서 맺은 언약 체결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반면 28장은 언약의 법에 대한 순종, 불순종 및 그에 따르는 축복, 저주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29~30장은 시내산 언약의 현재성을 강조하며 언약의 법에 대한 순종을 강조하고 31장은 담대한 마음에 대한 독려와 여호수아의 지도권 승계에 대한 언급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순종과 불순종, 축복과 저주에 대한 인과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것의 바탕은 물론 하나님에 대한 바른 경외를 말함이다. 하지만 그 배경만으로 구원의 대속사건은 만족되는가. 이런 질문들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론을 요청하게 만드는 결정적 이유가 되어준다.
2) 배타적 야훼 숭배의 강조
신명기는 가나안의 다신교적 상황을 염두에 두고 기록된 책으로 보여, 무엇보다 야훼의 유일신 사상에 대한 강조가 눈에 띈다. 이스라엘 왕정사에서 숱한 실패와 좌절에 대한 원인을 야훼에 대한 유일성에 집중하지 못한 결과로 이해하는 최종 편집자의 원인분석 또한 우상 숭배가 민족의 분열과 국가 파멸의 근본 원인으로 지적한 바(왕하 17:7~18) 있어 신명기의 강조점을 유일한 참 신, 야훼에 대한 집중과 충성에 매달리는 건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이러한 강조점들이 부각되는 신명기 구절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우상 숭배를 반대하는 16:21~22, 18:9~14, 피조물을 숭배해선 안 된다는 16:21~22, 18:9~14, 이방종교와 관련된 것들을 철저히 제거해야 함을 강조하는 7:2~5, 25~26, 12:2~3, 13:6~11, 17:2~7, 이와 함께 하나님의 이스라엘 선택은 조상들에게 준 약속에 뿌리내리고 있음에 대한 근거인 4:31, 6:10. 23, 7:8,12, 8:1, 18, 9:5, 10:15, 11:9, 21, 26:3, 15, 마지막으로 하나님 언약 백성으로서 오직 야훼 하나님만을 섬기고 그만을 사랑해야 한다는 고백들인 4:32~40, 5:1~6, 6:10~25, 7:6~11, 10:12~22, 11:1~7, 14:1~2, 26:18~19 구절들까지 모두 유일신 야훼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신명기의 이러한 배타적 야훼 숭배의 모티브는 신약의 그리스도론에 의한 말씀으로 재해석될 필요가 있다. 어쩌면 신명기는 그 내용 자체가 재해석의 필연성을 담보로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엇의 재해석인가. 바로 야훼에 대한 숭배가 가능하기 위해선 말씀의 주체가 우리 인간이 아닌 하나님 자신임에 대한 신앙고백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신앙고백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 그리스도가 아니고선 불가능하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선 하나님이 보내신 사랑에 대한 반응과 감격이 없고선 불가능하다. 이 감격은 우리에게서 일어난 것이 아니다. 인간은 철저히 야훼를 숭배할 수 없다. 만약 숭배한다면, 그 이름은 야훼라 하더라도 그것은 우상이다. 철저히 몰락하는 이스라엘 표면역사의 씁쓸함이 바로 그 증거다. 인간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하심에 주목하여 그 말씀의 주체가 ‘나’가 아닌 그리스도임을 고백하여 ‘나’가 아닌 그리스도가 불러주시는 ‘나’를 발견할 때, 야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제2의 책이라 불리는 신명기 기록의 본질이다.
3) 제의 중앙화
신명기에는 ‘야훼가 택한 곳’ 혹은 ‘야훼가 택하실 곳’(12:14,18,26, 14:25, 15:20, 16:15, 17:8, 10, 18:6), 또는 ‘야훼가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12:5, 11, 21, 14:23~24, 16:2, 6, 11, 26:2)에서 제사를 드리라는 명령이 나타난다. 이는 신명기의 제의중앙화, 즉 예배 장소의 단일화 내지는 통일을 의도함을 보게 되는데, 과연 이 예배 장소의 통일성이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을 말하는 것일까.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신명기는 철저히 하나님 자신이 직접 눈에 보이는 성전에 계신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시고 자신의 이름을 통해 성전에 임재한다는 메시지(12:5, 11, 21, 14:23~24, 16:2, 6, 11, 26:2)를 암시하고 있다. 이는 예배장소의 궁극이 존재의 마음 안에 있음으로 집중되며, 그 마음 안에서 야훼의 이름을 부를 수 있고, 야훼가 우리들의 그 기도를 들을 수 있는 근거가 우리의 마음 그 자체이신 그리스도임을 확인하게 된다. 하나님은 자신을 통해 말씀하신다. 그런데 그 자신이 누구인가. 바로 그리스도 그 분이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지금 우리가 이 말씀에 참여하는 의미도, 목적도, 흐름도 모두 그리스도를 통한 나타남이 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이며, 그리스도를 통한 나타남이 신명기를 비롯한 구약 성서 전체에 발현되려면 그 의미 줄기와 해석의 무게중심 또한 외적 표적의 해석과 단순 나열식의 교훈의 흡수, 신율법주의로의 퇴행으로는 어느 것 하나 해결할 수 없음을 경고한 것이다.
4) 인과율, 순종과 불순종의 새로운 패러다임 제시
신명기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율법을 성실히 지키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복과 저주, 생명과 죽음의 길이 결정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4:25~40, 8:11~20, 11:8~32, 28~30장) 그런데 신명기는 이스라엘이 율법을 어떻게 잘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를 마음의 할례, 즉 영적 내면성에 근거를 두고자 한다. (10:16, 30:6) 이것은 무엇을 뜻하느냐. 신명기에서 말하는 순종은 곧 신약적 패러다임에서는 들음이며, 이 들음이 우리로 하여금 믿음을 일으킨다고 말하고 있다. 영적 내면성인 마음에서 전심을 다해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런데 바울의 표현을 빌리면 의인, 곧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이는 하나도 없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이 마음은 우리의 몫이 아니란 것이다. 이 마음은 곧 하나님의 은혜, 인과율의 패러다임 자체를 새로운 지경으로 이끌어 올리는 은혜이신 그리스도라는 것이며, 동시에 그리스도가 곧 말씀이 가리키는, 말씀이 머무르는 말씀의 전부란 뜻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주어진 순종과 불순종, 축복과 저주를 제시한 하나님의 말씀은 순종의 주체, 축복의 주체에 대한 발견, 그 자체임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예수가 인용한 신명기 가르침들, 마귀와의 세 가지 유혹에서 사용한 말씀들(신8:3, 6:16, 6:13)과 계명의 핵심을 드러낸 마 22:37~40의 인용 근거 역시 이러한 마음의 할례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참고한 문헌
E. Sellin and G. Fohrer, 「구약성서 개론」, 김이곤 외 역편, 서울:대한기독교서회, 1982.
Rendtorff, R. The Old Testament: An Introduction. tr. by J. Bowden.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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