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Old Testament)
5세기에 ‘새계약’의 신약성경(New Testament,헬라어(그리스어) 성경)이 결정되면서 경전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짓기 위해 사용되기 시작한 명칭이었다. ‘구약(舊約)’이란 말은 신과의 ‘옛 계약’이 적힌 책이라는 의미로, 신약성경은 유대인에게는 용인되지 않는다. 구약성경(히브리어 성경./에스라 4:8-6:18, 에스라 7:12-26, 다니엘서 2:4-7:28, 예레미야서 10:11, 창세기 31:47 등의 일부분 만이 아람어)은 율법서, 예언서, 성문서 등으로 분류되며, 기독교 종파에 따라 분류 체계에 차이가 있고, 일부 낱권은 제2 경전 또는 외경으로 분류된다. 기본이 되는 신앙과 생활의 규범으로서의 ‘경전‘,또는 ’정전‘ (캐논Canon,’자‘,’기준‘의 뜻)이라고 한다. 경전은 Apocrypha(외전) 및 Pseudepigrapha(위전)과 구별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신.구약성경은 약 40명의 저자에 의해 1600년에 가까운 기간에 걸쳐 기록된 책으로 같은 구원의 계시로 일관해 있는 것은 한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딤후 3:16).
신.구약성경 66권(구약 39권, 신약 27권)은 1,189장(구약 929장, 신약 260장), 31,173절(구약 23,214절, 신약 7,959절)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장 긴 장과 절은 시편 119편과 에스더 8:9이고 가장 짧은 장과 절은 시편 117편과 요한복음 11:35이다. 구약의 중간 장은 욥기 29장이고 신약의 중간 장은 로마서 13장이며 성경 전체의 중간 장은 시편 117편이다.
유래와 결정 과정
구약성경은 유대교의 경전이며, 유대교에서는 율법(torah)와 예언자들(nbiim)과 문서들(ktubim)의 세 가지 머리 글자를 딴 ta-na-kh(타나하, '타나크(TANAK)'라는 구약성서 전체를 가리키는 명칭이 있다. 전통적인 증언은 기원전 1500년~400년 사이에 유대민족의 구전 전승이 문자로 기록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성서학계에서는 실제 문헌 작성 연대를 훨씬 나중으로 이해한다. 토라(모세오경)의 경우에는 주로 유대왕국 후반~ 바빌론 유수기에, 케투빔(성문서)와 느비임(예언서, 선지서)의 경우에는 바빌론 유수기~ 예루살렘 귀환 이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현재의 타나크 내 24권의 모든 문서가 유대교의 경전으로서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은 AD 90년경의 얌니야 회의로 추정되어 왔다.(그러나 얌니야 회의에서 특정한 문헌의 타나크 목록 추가 및 배제가 논의된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주장은 얌니야 회의는 나자렛 이단 세력(후의 기독교)의 축출을 주목적으로 하였다고 본다.)
구약성경의 각 문헌들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전통적인 증언에 주로 의존해 왔지만(벤 시락의 집회서나 에스라 등의 증언), 현재 성서학계의 연구는 여러 갈래의 전승(傳承)들이 본문 비평을 통해 다양한 기록자에 의해서 기록, 채색되었고, 지역 및 시대에 따라서 다른 갈래의 문서들이 만들어졌다고 추정한다. 히브리어 전통을 보존했던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은 그렇지 못했던 다른 지역의 유대인들에 비해 신학적인 우월성을 가지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 세력이 지지하는 문서와 그 목록이 경전성을 인정받게 되었다. 얌니야 회의이후 이들 세력의 지지를 받지 못한 문서들이 유대교 안에서 경전성을 배제당하는데, 신뢰성 있는 히브리어 원문의 존재 유무가 가장 핵심적인 경전성 결정의 기준이 되었다. 이전까지 디아스포라 유대인, 그리고 새롭게 대두되던 기독교 세력이 사용하던 그리스어 번역 성경인 70인역은 얌니야 회의에서 인정된 히브리어 성경인 타나크와의 내용적 차이의 문제와, 히브리어 원문이 없이 그리스어 번역본만 존재하는 문헌들도 있어 그 출처의 신뢰성을 의심받았고, 결국 유대교 안에서 축출당하였다. 70인역을 대신하여 유대교는 히브리어를 모르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위해 타나크를 대본으로 하여 아퀼라역을 새롭게 번역하였다.
기독교
기독교에서는 유대교의 '타나크'를 '구약'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382년에 로마 공의회에서 새롭게 정한 경전들을 '신약(New Testament)'이라고 부르기로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결정했기 때문이다. 초창기의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분파로서 역사에 등장하였고, 따라서 '신약성경'으로 분류된 문헌 안에서 언급된 "성경"이라는 모든 표현은 곧 '구약성경'을 의미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경우에는 그리스어 문화권의 디아스포라 유대인 세력과 이방인들을 중심으로 성장하였고, 따라서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하여 사용했던 70인역이 그대로 기독교의 경전이 되면서 외경논란의 화근이 되었다. 내부적으로 높은 권위를 인정되던 주요 문헌들이 70인역의 것을 주로 인용하였기에 기독교의 호교론적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히브리어 원문과 70인역의 차이에 대한 유대교 측의 비판에 대하여 상당히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기독교 안에서는 구약정경의 개념이 유대교에 비해서 상당히 늦게 정해졌다. 유대교는 1세기 얌니야 회의에서 70인역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부분(오역, 히브리어 원문과 내용이 다름, 히브리어 원문 출처가 없는 번역본의 존재 등)에 대하여 2세기 이후 기독교 내부에서도 히브리어 지식을 본격적으로 습득한 멜리투스 등이 동조하기 시작하면서 70인역의 경전성 문제를 둘러싸고서 갈등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갈등은 상당히 일찍 시작되었는데, 4세기 로마 제국이 콘스탄티노플로 천도한 이후에 기존 로마 교구의 위상을 어느 수준까지 인정할 것인가의 정치적 문제가 갈등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 내적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서방교회가 70인역의 위치에 대하여 초대교회의 전통적 호교론의 입장을 견지하자, 동방교회는 상대적으로 학술적인 입장에 서서 유대교 측의 입장을 제한적으로 받아들인 새로운 입장을 옹호하게 되었다.
특히 4세기에 기독교가 로마 제국에게 공인된 이후, 급격히 교세가 확장되면서 로마 제국이 콘스탄티노플로 천도하는 상황에서 신약성경을 포함한 경전 확립의 필요성이 요청된 4세기 후엽에 그 갈등은 극에 달하였다. 당시에 경전의 확정 작업이 막바지에 이른 가운데, 아타나시우스나 히에로니무스 등의 일부 저명한 신학자들은 구약 부분에서 유대교 히브리어 경전 본문과 그 목록의 우월성을 주장하였고 특히 히브리어 원본없이 그리스어 번역본만 있는 문헌들을 '아포크리파'라고 분류하며 그 권위를 상대적으로 낮잡아 보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의 전통적 호교론자들은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마침내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유대교에게는 인정되지 않은 그리스어 번역본의 경전성을 인정하며 '구약성경'을 일단 확정지었다. 그러나 서방교회 내부에서 비판이 완전히 가라앉은 것은 아니었으며, 긴 세월에 걸쳐 일부 문헌 목록의 제외와 재분류 등 내부적으로 조정이 있었고, 동방교회에서도 카르타고 공의회의 일방적인 결정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로 입장을 견지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일부 개신교계 성서학자들은 히에로니무스가 경전적인 문헌과 교회의 문헌을 나누어 불가타 성서에 실었는데, 필사자가 구분없이 필사를 하는 바람에 제2경전도 정경으로 여겨지게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외경에 대한 해묵은 갈등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은 16세기의 종교 개혁에 의해서였다. 특히 마르틴 루터는 신약성서와 구약성서의 각 문헌들 사이에 권위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면서(Kanon im Kanon), 이 중 구약정경 구성에 대해서는 유대교 측의 입장을 확고하게 지지하였다. 칼뱅의 경우에도 과거 카르타고 공의회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루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입장을 취하였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교회는 1545년의 트리엔트 공의회를 통해 정경에 대한 도전적인 주장들을 모두 일축하였고, 제2경전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과거에 '외경'으로 분류되기도 하였던 일부 문헌들에 대하여 다른 성경 문서들과의 동등한 수준의 경전성을 공식적으로 재확인하였다.
이러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결정에 종교개혁 세력은 반발하였으며, 결국 로마 가톨릭교회를 등지고 독립된 개신교가 등장하게 되었고, 그 안에서는 외경의 경전성을 부인하고 유대교의 타나크 24권을 재분류한 39권의 독자적인 구약정경의 목록을 확립하였다. 그러나 개신교 제 종파 안에서도 의견을 달리해서, 루터교나 성공회는 외경에 대해 '교리를 도출하는 근거가 되기는 어렵지만 신앙에는 유익한 문서'로 권장했던 아타나시우스나 히에로니무스의 입장에 가까운 편이며, 자체적으로 발행하는 성경에 '부록'으로서 삽입하기도 하였다. 특히 성공회는 아포크리파를 준정경으로 인정하여 봉독하기도 하면서 우호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칼뱅주의를 바탕으로 결정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신학적 영향을 많이 받은 개신교 보수적인 종파들은 외경에 대하여 교회 내 봉독을 금지하였고, 자체적으로 발행하는 성경 안에서 아예 완전히 배제하는 등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사해 문서의 발견
1946년에 발견된 사해 문서에서 히브리 말 원본이 있었을 것이라고 막연히 추측되던 토빗기 등의 히브리어 판본이 포함된 채 발견되면서 히브리어 원본에 없었기 때문에 이들 문서들이 경전의 목록에서 제외되는 외경이라는 개신교 등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되었다. 로마 가톨릭교회와 동방정교회가 제2 경전이라고 부르고, 개신교에서는 외경이라고 부르는 책이 정경(正經)인가의 여부는 다른 요소들에 의해 결정짓게 되었다.
구약성경의 목록과 구분
유대교와 기독교의 분류법은 서로 다르나, 기본 골격은 같다. 다만, 기독교 계통의 종파들도 서로 달라 개신교에서는 39권,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46권, 동방정교회에서는 49권으로 분류하고 있다. 수의 차이가 있는 것은, 70인역 성서의 전통에 따른 제2경전을 성문서 범주에 포함시키는지의 여부에 대한 차이 때문이다.
율법서(5권): 유대교 성서와 동일하게 모세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을 취하여 구약성경의 가장 맨 앞에 두고 있다. 모세가 저술했다고 하여 모세 오경이라고도 한다.
역사서(12권): 역사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기록한 책들을 묶는 이름이다. 편의에 따라 두 부류로 세분화하기도 한다.
신명기 역사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적인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 여호수아.사사기.룻기.사무엘상.사무엘하.열왕기상.열왕기하.
역대기 역사서: 바벨론 포로 귀환 후에 다시 쓰여진 역사서이다. 역대상.역대하.에스라.느헤미야.에스더.
시가서(5권): 문학서라고 불리기도 하며, 총 5권(욥기.시편.잠언.전도서.아가)이다.
예언서(17권): 대선지서(5권)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및 소선지서(12권)호세아.요엘.아모스.오바댜.요나.미가.나훔.하박국.스바냐.학개.스가랴.말라기는 유대교 성서에서는 한 권으로 취급하나, 기독교에서는 각각의 12권으로 나누어 분류하고 있다.
제2경전 혹은 외경(12권): 토빗기.유딧.에스더에 첨가.지혜서.시락.바룩.예레미야의 편지.다니엘에 첨가.마카베오 1서.마카베오 2서.마카베오 3서.마카베오 4서.
1. 창세기:히브리 민족의 창건,BC 10-9 2. 출애굽기:히브리 민족과의 약속,BC9-8 3. 레위기:히브리 민족의 율법,BC 7-5 4. 민수기:약속한 땅으로의 여로,BC6-5 5. 신명기:히브리 민족의 율법, 6. 여호수아:가나안 정복,BC 6세기 중기 7. 사사기:가나안에서의 처음 30년 생활, 전기사료 BC 10, 후기사료 BC 7말-6. BC4-3에 보수. 8. 룻기:메시야 가정으로서의 다윗가문 시작,BC 400년경 9. 사무엘 상:왕국의 조직, BC 10이전의 사료 일부, 주요 부분은 BC 7. 6에 개정 10. 사무엘 하:다윗의 통치,“ |
21. 전도서:이 세상 생활의 헛됨, BC3중기-2중기 22. 아가:결혼 생활의 영화,BC3 23. 이사야:메시야적 예언자, 제1이사야(1-39장)BC 8 후반,제2이사야(40-55장).제3이사야(56-66장)BC 6-4. 24. 예레미야:예루살렘을 구원하기 위한 최후의 노력, BC후반-6후반. BC 5-3 25. 애가:예루살렘의 황폐에 대한 장송가,BC6,일부는 BC 4-3 26. 에스겔:내가 하나님인줄 알리라, BC 6-5,가필BC3 27. 다니엘:바벨론에서의 큰 예언자,BC2 28. 호세아:이스라엘의 배교, BC8후반, BC 4 29. 요엘:성령 시대의 예고 30. 아모스:정의의 하나님, BC 8중기 |
11. 열왕기 상:왕국의 분열, BC 600년 전후에 편집 12. 열왕기 하:분열된 왕국의 역사, “ 13. 역대 상:다윗왕의 통치,BC 4,BC 4-3 15. 에스라:포로 생활에서의 귀환,BC 5-3의 사료로<역대기>저자가 편집 16. 느헤미야:예루살렘의 재건,BC 5-3의 사료로<역대기> 저자가 편집 17. 에스더:민족 전멸에서의 회생,BC3-2 18. 욥기:고난의 문제, BC 7말-6.일부는 BC 4, 완성은 BC 200년경 19. 시편:이스라엘 민족의 찬미가,BC 4이후,그보다 오랜것이 있으나 BC 7이전의 것은 적다, 마지막 편찬은 BC 100년경 20. 잠언:솔로몬의 지혜, BC4-3,오래된 것도 BC 600년 이전 것은 없다. |
31. 오바댜:에돔의 파괴,BC 5-4 32. 요나:니느웨에 대한 자비의 부르심,BC 4-3 33. 미가:메시야 탄생지 베들레헴,BC 8후반,가필BC 6 34. 나훔:니느웨의 파괴,BC 7말기. BC300년경 편집 35. 하박국:의인은 그 믿음으로 살리라,BC 7말기,일부는 BC 6-5 36. 스바냐:깨끗한 입술의 회복,BC 7말기,후대의 가필 포함 37. 학개:성전 재건, BC 6후반 38. 스가랴:성전 재건,1-8장(BC6후반),9-14장(BC 3) 39. 말라기:불순종하는 백성에게 주는 최후의 메시지,BC 5 |
최초본의 성경은 십계명은 돌에 기록되었으며 다른 성경들은 양의 가죽으로 만든 종이나 왕골로 만든 파피루스 종이 위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후에 원본은 오래동안 보존될 수 없어 파피루스와 가족종이에 필사본으로 재 기록되어 전해져 내려오게 되었다.
성경의 장절(章節 : chapters and verses of Bible)은 처음부터 구분되어 있던 것은 아니다. 현재의 모습으로 장 구분을 한 이는 대체로 영국교회의 켄터베리 대주교였던 랭튼(Stephen Langton)일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한편 스테파누스(Stephanus Robertus)는 신약성경을 절로 구분하여 1551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출판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스테파누스는 파리에서 리용으로 가는 마상(馬上)에서 절을 나누었다고 하나. 신.구약성경 모두에 장절이 붙여져 처음 출판된 해는 1555년인데, 스테파누스의 라틴역 불가타(Vulgata) 성경이다. 오늘날의 성경은 1560년판 제네바 성경의 장절 구분을 받아들이고 있다.
성경의 구약과 신약이란 명칭은 신약이 거의 형성된 2세기 말에서부터 불린 것으로,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 맺어진 두 큰 언약인 모세의 언약(출 24:8)과 새 언약(눅 22:20)에 각각 입각하기 때문이다. 구약과 신약은 시간적으로 전자는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의, 후자는 오신 후의 기록이다.
내용적으로는 구약의 주제가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을 준수함에 있었으나(고후 3:6-16) 신약은 성자 그리스도의 보혈로 성립되고(마 26:28; 고전 11:25), 그로 인하여 인류에게 마련된 구원의 복음을 믿을 것을 가르친다(요 3:16). 그러나 신약은 구약에서도 이미 예언되었고(렘 31:31-34), 신약 자체에서 확증된 바 있다(히 9:15-20). 더 나아가 구약과 신약을 대조한다면 공의의 하나님과 사랑의 아버지(출 19:18; 마 6:9). 창조와 중생(창 1:1; 요 3:3), 범죄와 속죄(창 3:17, 18; 갈 2:20), 율법과 복음(출 20:1-17; 롬 1:16), 동물의 제사와 그리스도의 구속(출 12:3-7; 요 1:29), 예언과 성취(사 11:1, 2; 눅 24:27), 실락원과 복락원(창 3:23; 계 22:14)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므로 구약을 떠나 신약을 바로 이해할 수 없고, 신약을 떠난 구약은 무의미하게 된다.
구약성경은 약 30명의 저자에 의해 약 1천년간에 기록되었다. 구약의 구분은 초기에는 율법(모세오경)과 선지서(그 위 책들)로 양대분된 듯하고(마 5:18), 그 후 3부로 나누어졌다. 즉 히브리어 원전은 24권으로서, 첫째는 율법 또는 "토라"라는 모세오경, 둘째는 선지서 또는 "느비임"인데 이는 전선지서 4권(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열왕기)과 후선지서 4권(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소선지서)으로 구성되어 있다. 셋째는 성문서 또는 "케투빔"인데, 이것은 다시 시가 3권(시편, 잠언, 욥기)과 두루마리(Megilloth) 5권(아가, 룻기, 예레미야애가, 전도서, 에스더)가 역사서 3권(다니엘, 에스라.느헤미야, 역대기)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약이 39권으로 구성된 것은 BC 200년경의 70인역(LXX) 이후였고, 현재는 일반적으로 모세오경(창세기-신명기), 역사서 12권(여호수아-에스더), 시가서 5권(욥기-아가), 선지서 17권(이사야-말라기)으로 분류하고 있다.
구약의 언어는 히브리어인데 일부는 히브리어와 사촌간인 아람어로 되어 있다(창 31:47; 스 4:8~6:18; 7:12-26; 렘 10:11; 단 2:4~7:28의 두 낱말 등). 구약의 편성과정은 명백하지 않으나 귀환기의 에스라와 그의 후계자에 의해 편집된 것으로 본다. 구약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을 중심으로, 그 역사적 시간적 및 예언적 과정의 기록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종교적 및 국가적 생활을 위해 율법을 주셨고, 그 준수여하가 곧 그들의 흥망성쇠의 척도였다. 이스라엘은 끝없는 격려와 경고를 받으면서도 결국 율법준수에 실패했고, 그 결과가 곧 바벨론 포로였다. 그러므로 율법은 임시적 용도로 주신 것이고, 그들로 하여금 율법의 불완전성을 깨닫고 새 언약을 대망시키기 위해 주신 것이었다(렘 31:31-33). 그것이 곧 구약에서의 메시야 대망이었던 것이다.
신약성경은 약 9명의 저자가 약 반세기에 걸쳐 기록한 것으로서, 내용은 4분되어 복음서, 역사서, 서신서 및 예언서로 되어 있다.
복음서는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설을 전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전기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특이한 품성과 역사를 나타내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복음서 중 처음 세권은 같은 견지에서 그리스도의 생애를 전하려 했다고 해서 공관복음(共觀福音)이라고 불린다. 요한복음서는 공관복음서보다 약 30년 후에 기록된 것으로, 그리스도의 보다 친밀한 말씀을 통하여 그의 구주성을 확증하고 있다. 4복음서는 각각 특별한 대상과 주제들을 갖추고 있다. 즉 마태는 유대인을, 마가는 로마인을, 누가는 헬라인을 그리고 요한은 세계 모든 사람을 상대로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마태는 그리스도를 유대인의 왕으로, 마가는 종으로, 누가는 사람으로 또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로 각각 묘사하고 있다. 사도행전은 복음서에 이은 사도들의 역사로서 성령강림에서 시작된 교회가 로마에까지 확대되는 자취를 밝히고 있다.
구약이 성부의, 사복음서가 성자의 행적이라면 사도행전은 성령의 행적이다. 서신은 로마서 이하 유다서까지 21권으로, 바울서신 13권과 그외 사도들의 기록인 공동서신 7권 및 히브리서로 되어 있다. 서신들은 당시 교회들의 긴급한 필요에 의해 저술된 것으로 기독교 신앙의 기본교리가 해설되고 실생활의 지침이 주어지고 있다. 요한계시록은 신약의 유일한 예언서로 현세의 종말과 최후의 심판 그리고 그 후에 계속될 영원한 세계를 계시한다. 성경의 첫 책인 창세기는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서 완성되었다. 전자에서 범죄로 인해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인류는 후자에서 속죄를 받아 영원한 하나님의 동산으로 영접되는 것이다.
신약성경은 당시의 일반 통용어였던 "코이네"라는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원저자의 기록은 인쇄술이 발명된 15세기(1450-55)까지 사본으로 각지에 전해졌다. 현재까지 발견된 고대의 사본은 근 5천에 달하며, 그 중에서 가장 현저한 것은 바티칸사본(B) 및 시내사본(a)을 필두로 하는 대문자 사본들인데, 4∼9세기의 것으로서 약 42종이나 된다. 이와 같은 사본들은 내용에 있어 약간씩의 차이가 있으나 이를 고대의 번역성경 및 다른 문서에의 인용문 등과 종합하여 잃어버린 원문을 규정하는 연구가 꾸준히 계속되어 오늘에 이르러서는 거의 만족할 만한 원문을 재생시키고 있다. 이와 같은 원문 연구의 결과 수많은 본문이 형성되었는데, 그 중에 현저한 것으로 에라스무스(Erasmus, 1516), 베자(Beza, 1624), 티쉔도르프(Tischendorf, 1841-72), 네스틀레(Nestle, 1904) 및 알란트(Aland, 1965) 등을 들 수 있다.
신약성경 원저자의 수기는 수신자인 교회나 개인들에게 전달되었고, 이것이 초대교회에서 회람으로 각지 교회에서 읽혀지다가(골 4:16), 그 사본들이 집성되어 한 책으로 형성되어 갔다. 그것은 교회의 자연적 요구였으며, 외부적으로 위협을 주는 영지주의나 마르키온주의와 같은 이단설에 자극되어 더욱 촉진되었다. 이와 같은 형성작업은 1세기에 시작되어 처음에는 사복음서, 사도행전, 바울의 13서신 및 베드로전서와 요한 1서 등이 먼저 집성되었고, 그 외는 후대에 첨가되었다. 367년에 현재의 27권이 처음으로 확정되었고, 그것이 구약 39권과 더불어 정경(正經)으로 공식 확정된 것은 397년의 제3회 카르타고 총회에서였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성경 배경사! 형성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성경 저자와 그 배경 (0) | 2015.08.03 |
---|---|
[스크랩] 구약성서배경사 요약 (0) | 2015.07.21 |
[스크랩] 가나안의 식물 (0) | 2015.05.15 |
[스크랩] 10. 유대인의 장례식 (0) | 2015.05.12 |
[스크랩] 신약성경의 종교적 배경 (0) | 2015.05.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