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요한 계시록!!

[스크랩] 제8장 6절 / 뗄래야 뗄수 없는 세가지 사건(강추)

하나님아들 2014. 4. 18. 16:49

뗄래야 뗄수 없는 세가지 사건(강추)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니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마24:20-22)

 

나팔 재앙은 심판을 부르는 대환난이므로 먼저 심판주 그리스도가 공중에 강림하면서 어두움의 권세가 땅으로 쫓겨나게 된다. 그때에 지상에는 짐승으로 불리는 지구정부시대로 진입하게 된다. 그러므로 대환난 상황은 계시록의 장절별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장절별로 다루게 되면 나팔재앙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이 끝났는데 또다시 대접재앙에서 똑같은 사건들이 겹쳐지는 모순이 있기 때문이다.

 

환난상황에서는 장절별로 취급하기 보다는 사건별로 다루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의 무덤이 열리면서 부활사건과, 그리스도 안에서 삶을 산 자들의 휴거사건과 함께 다루어져야 된다. 이런 일은 지구상에서 격변이 일어남과 함께 세계정부가 시작되고, 대환난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부활사상은 기독교의 핵심사상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재림이 없으면 부활도 휴거도 없다는 결론이기에, 그리스도의 재림은 대환난에서 모든 문제를 풀게되는 열쇠가 된다. 복음의 주제가 살리시는 부활에 있으므로 부활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강림은 절대적이어야 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공중강림과, 그리스도 안에서 삶을 살다가 죽은 자들의 무덤이 열리면서 변형된 그들이 부활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삶을 살아온 성도들의 휴거는 떼어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사건이다. 그러므로 먼저 그리스도 예수께서 심판하러 오심을 알아야 된다.

 

그리스도의 초림에는 천국의 복된 소식을 전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까지는 인류를 향하여 자비를 베푸셨다. 자비는 긍휼과 사랑으로 구원이란 은혜에 이르게 하신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오시는 재림은 글자 그대로 심판하기 위해 오신다. 그런데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요3:17)는 구절만 들먹이면서 세상에는 심판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님의 강림과 부활과 휴거사건을 제8장에서 취급해야하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환난의 기간을 7년으로 보는 데는 이의가 없다. 그렇지만 교단마다 그리스도의 강림이 언제냐 하는 데는 각기 달리하기 때문이다. ①.전환난설, ②.중간환난 설, ③.후환난 설로 나누이고 있다. 첫 번째 것은 그리스도의 강림은 7년 환난전에 있다는 설이고, 두 번째 것은, 그리스도의 강림이 7년 환난중간에 있다는 설이고, 세 번째 것은, 그리스도의 강림은 7년 환난이 끝난 다음에 있다는 설이다.

 

7년이란 기간은 한때 두 때 반 때, 또는 1,260일 등을 3년 반으로 계산은 하지만 7년이란 근거는 다니엘서 9장 27절의 “한 이레”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다니엘은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하였다. 이 예언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가리키는 것이기는 하지만 마지막 때로 적용시키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어쩧거나 7년환난의 예수님의 공중강림이 기준이 아니라, 지구정부통치자가 나타나는 시점이 기준이어야 된다. 그리스도의 강림이 7년 환난의 기준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강림은 지구정부가 과도기가 끝나면서 본격적인 강압이 시작된 후인 7년환난 중간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대환난전이나 대환난후(통과 설)의 강림설은 성서적으로 위배되는 해석이다. 앞에서 상고한바와 같이 넷째 나팔에서 천체에 이상이 생기면서 지구는 대격변이 일어날 때 부활과 휴거가 있으므로 그리스도의 강림사건을 여기에서 취급되어야 옳다.

 

주의 강림사건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 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계1:7)

 

구름을 타고오시는 그리스도의 강림은 성경 곳곳의 예고에서 특별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삶을 살다가 죽은 성도들의 부활과, 성도들의 휴거사건을 함께 언급한 내용은 이러하다.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4방에서 모으리라”(마24:30-31)하신 다음에 25장에서 슬기롭게 기름을 주비했던 자들은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열어 달라할 때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였다.

 

4복음서 중에서 요한복음 5장은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하였다. 14장에서는 더 정확하게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약속하셨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성도들에게 “우리가 다 잠잘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고전15:51)하였다

 

“주의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6-17)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

 

여기서 휴거 사건은 공중에까지 오셨을 때에 일어난다고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휴거사건은 예수님의 지상재림때로 보는 것은 성서적으로 옪지않은 해석이 된다. 심판주 그리스도의 공중강림의 모습은 친히 오실 때 공중권세 잡은 자들에게 호령하신다. 이 호령에 마귀들은 지상으로 쫓기어 내려온다. 그리스도는 심판주이시며 따라서 만왕의 왕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천사들을 지휘하며 오는 천사장의 지시와 천군들의 나팔소리는 하늘과 땅까지 진동하는 대격변으로 변한다. 이때 지진이 일어나며 화산이 폭발하고 해일이 일어나면서 지구는 크게 균열이 생기면서 갈라진다.

 

바다가 육지로 변하고 육지가 바다로 변하는 대격변은 어느 곳이던 건물들이 붕괴되면서 불바다로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온 것이 아니라 공중에 멈추어 있으며 당신의 사랑하는 신부들, 곧 부활되고 휴거된 자들로부터 공중에서 영광을 받으시게 된다(골3:4). 이러한 영광은 어린양 예수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며(살후1:10), 땅에 남겨진 자들에게는 믿기지 않는 사건으로 설명되었다. "모든 믿는 자들에게"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현대교회가 믿기만 하면 다 휴거된다는 거짓을 굳게 믿어왔지만 사실은 그들은 모두 다 땅에 남겨지고 자신들이 잘못된 신앙인, 광신자, 시한부 종만론자 등 이단으로 정죄를 받으면서 눈물을 흐렸던 사람들만 휴거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상하다"고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설명말하였다. 

 

성경 여러 곳에서 심판주의 오시는 목적을 말할 때, 순종하지 아니하고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어두움의 사주를 받으면서 자기 육신만을 위하여 죄악을 행한 자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오신다고 되어있다. 반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그리스도에께 붙어 있었던 신부들에게는 고통과 환난을 줄 수 없기 때문에 부활시켜야 되고 휴거시켜야 되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에 대환난이라는 심판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땅에 남겨진 자들에게 내려지는 나팔재앙과 대접재앙의 사건들이다.

 

성도의 부활사건

 

“주의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 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4:16)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 그것도 오래된 시체가 썩어졌지만 다시 살아날 때는 변형되면서 가장 아름답고 젊은 모습으로 살아나는 것이 부활이다. 기독교의 본질이 부활이다. 바울은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의 믿음도 헛것이라”(고전15:13-14)고 하였다.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나도] 부활에 이르려 하노라”(빌3:10-11)고 하였다. 따라서 예수를 믿는 성도라면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며 바라는 소망도 부활에 있어야 한다.

 

부활은 크게 둘로 나누어서 첫째 부활과 백보좌심판 때 나타나는 둘째 부활로 나누게 된다. 또한 같은 첫째 부활에서도 세 가지 부류로 분리시키게 되는데, 첫 번째 부류는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의 무덤이 열리면서 살아나서 어린양의 신부로서의 부활이다.

 

번째 부류는 환난기간에 추수군으로써 사역을 담당하는 12지파의 사명 자들이다. 그들에게는 모세와 엘리야에게 허락하셨던 것과 같은 능력과 권능으로 어두움의 권세와 싸우면서 사역하다 죽임을 당하는 환난사역자들이다. 사역자들은 3년 반(1,260일)동안에 각기 죽임을 당하는 시기가 다르지만, 그리스도의 지상재림 때에 또 한 번의 대격변이 있을 때에 부활된다. 이들에게는 어린양의 신부로서의 부활이 아니라 왕권자로서의 부활이다.

 

세 번째 부류는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행위가 없었던 지도자들과 신자들이다. 이들은 세마포 옷을 입지 못하고 벌거벗었던 엉터리 지도자와 신자들이다. 이들은 추수군인 환난사역자들의 도움과 가르침을 받고 짐승과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하고 죽임을 당하는 자들이다. 이들에 대하여 7장14절에서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로서 인간의 지능으로서 능히 셀 수 없는 무리들”인 이들은 신부도 아니요 왕권도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서의 부활이다.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전15:52)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은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고전15:23)

 

세 부류의 부활중에서 그리스도께서 공중강림 하실 때, 부활되는 자들은 첫 번째에 해당되는 신부(계14:3)로서의 부활이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공중강림하실 때 그에게 붙어있었던 거룩한 신자들(고전15:23)이다. 이들은 사람들 가운데서 첫 열매에 해당되는 신자들(고전15:23. 계14:4)이다. 이들이 부활될 수 있었던 조건은 살았을 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하였고, 하나님을 위하여 살았던 신자들(계14:4)이지, 적당주의로 신앙생활을 하다가 죽은 자들은 휴거사건 후(고전15:24)에 부활된다는 사실이다. 어린양의 신부는 흔히 오늘날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예수 믿다가 죽었으니 주님께서 강림하실 때 부활된다는 그런 부류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 신앙으로 생활을 하다가 죽었으니 그때가 되면 부활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어떻게 죽었느냐에 있다. 교회에 출석하다 교통사로 죽은 그런 죽음은 순교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의 사역이 자기가 지닌 사상과 다르거나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상대를 비난하는 설교나 또는 가르치다가 심장이상으로 죽는 사람, 또는 식물인간으로 징계받는 사람, 중풍현상을 일으키며 사역을 못할 정도로 육신을 쓰지못하다 죽은 것을 순교했다면서 그날에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부활된다고 거짓으로 가리치는 지도잘들이나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무리들이 많다고 한다.

 

그리스도께서 공중강림 때 부활되는 사람들은 그러한 무리가 아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증거함으므로 순교했던 사도들과 같은 사람들이다. 바울과 같이 평생을 예수의 일과 하나님의 일만 하다가 죽은 사람들이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는 이유 때문에 재산을 빼앗기고 자식까지 빼앗기고 죽임을 당한 요안나(Ίωάννα), 나사로(Λάζαροs)와 그의 여동생 마르다(Μάρθα)와 마리아(Μαρία) 같은 제자들이다. 예수님을 따르면서 헌신했던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Μαρία), 예수님의 육신의 작은 어머니 살로메(Σαλώμη), 수산나(Σουσάννα), 예수님이 출생했을 때에 도왔던 목동들과 같은 사람들이다.

 

엠마오로 돌아가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죽는 날까지 천국복음과 예수를 증거하다 죽었던 사람에게 허락된 특별한 은총이요 어린양의 신부로서의 부활이다. 이런 사람들은 재산을 빼앗기고 나라를 빼앗기고 이방으로 쫓겨나서도 천국복음과 예수만을 증거하다가 죽었던 스데반이나 빌립 집사와 같은 사람들이다.

 

평양에서 신사참배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일본인들에 의하여 옥고를 치르며 성도들에게 신사참배를 하지 말라고 가르치다 죽임을 당한 종들과 신자들이다. 공산치하에서 자신의 육신이 불로 태움을 당하면서까지 예수를 붙들고 죽임을 당했던 종들이나 성도들이지, 오늘날 일부 교회가 말하는 그러한 무리들은 순교자가 아니다.

 

부활되는 성도들의 몸과 세마포에서 비추어지는 광채와 모습은 인간의 말로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육신적인 그들의 나이는 사람에 따서 30, 40, 또는 60세 이상으로 느껴지는데, 눈으로 보이는 외모는 20세 전후에 가장 아름다웠던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또한 그들이 입고 있는 세마포 옷에 박혀있는 보석에서 발사되는 광채는 실제로 5, 10, 30미터 밖으로 발사되는 것이다. 찬란한 빛과 아름다움을 나타내며 무덤에서 완전하게 변화된 후에 무덤밖으로 나오는 즉시 공중으로 끌리어 올라가게 된다. 이것이 영광의 부활사건이다.

 

공중으로 끌리어 올라가는 것은 부활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공중에까지 와서 그들을 부르셨기 때문에 부르신 주인에게로 가야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심판주이신 그리스도의 공중강림과 부활을 떼어놓을 수 없는 사건이다.

 

신부의 휴거사건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전15;51-52)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부활자]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7)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4방에서 모으리라.”(마24:31)

 

그리스도의 강림은 심판에 있음을 잊으면 안 된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에 관해서 사랑만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음을 본다. 우리가 신앙고백으로 사도신경으로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고 신앙고백을 하면서도 그리스도의 심판에 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저리로서’를 영어로는 ‘from thence’라 하였는데 이는 ‘거기에서 부터’ 라고 변역된다. 그래서 ‘저리로서’라고 했을 때에는 성경에 기록된 것과 같이 제자들이 주님의 승천하심을 쳐다보고 있을 때에 흰옷 입은 두 사람이 말하기를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1:11)고 증거 된 그 예수가 오시는 것이다.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라고 하는 뜻에서 해석할 때, ‘저리로서’ 라고 하게 된다. 다른 말로는 앞 문맥과 연결하면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는 그곳, 곧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신다’는 말이다. 여기에 관해서 그리스도 자신이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마26:64)고 증거 했었다.

 

구름을 타고 오시는 그리스도는 심판주로 오신다. 따라서 우리 주님께서 마지막 날에 심판하러 오신다는 것을 믿는다고 신앙고백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산자와 죽은 자를 어떻게 분류하실까? 첫째 가능성에서 ‘산자’는 거룩함과 의로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행위로서 성도의 옳은 행실로 살면서 그리스도에게 붙어있는(고전15:23) 영이 살아있는 사람이다.

 

죽은 자는 세상에만 집착하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부하고 죄인으로서 영이 죽은 사람이다. 두 번째 가능성에서 ‘산자’에 관해서는 그리스도의 재림하시는 날까지 부활과 휴거에 참여하게 될 사람이다. 그리고 ‘죽은 자’에 관해서는 그리스도의 재림하시는 날까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함이 없었던 사람들로서 부활되지 못하고 휴거되지 못하고 땅에 남겨진(계7:14) 사람들이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리라” 하였다. 여기에서 산자와 죽은 자라하는 것은 주의 재림 때까지 영적심판을 말하며, 우주적인 심판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깨끗한 사람은 그 육신이 변화되어 부활될 때에 산자도 함께(together with them)라 하였으므로 부활과 휴거사건은 별개가 아니라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동시 사건이다.

 

심판의 대상은 어두움의 권세와 합류한 인간들이라는 것은 틀림이 없다. 여기에는 신자이거나 이방인이거나 기독교인들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지 아니하고 세상의 풍조에 따라며 육신을 위해 산 사람에게 해당된다. 성경은 육신만을 위하는 사람이 어떤 부류에 속하는가를 알려주는 구절이 있다.

 

“육신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5:19-21)

 

음행은 음란한 행실의 행위다. 더러운 것은 정조를 가볍게 생각하고 지조를 지키지 아니하는 행위다. 호색은 여색을 좋아하는 행위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이 아닌 것을 종교적 대상으로 존경하며 위하는 행위다. 술수는 권모술수(술책)에 능숙한 성품이다. 원수를 맺는 것은 원한을 만들기 좋아하는 성품과 행위다. 분쟁은 말썽을 일으켜서 시끄럽게 다툼을 만드는 행위다. 시기는 샘을 잘 내며 미워하는 성품이다. 분 냄은 자신의 마음을 분리시키면서 열을 쏟아내는 성품이다.

 

당을 짓는 것은 자기들의 유익에 같이하는 무리로 집단을 만드는 성품과 행동이다. 분리함은 나누이기를 좋아하는 성품이다. 이단은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훼방하며 방해하는 성품과 행위다. 투기는 시샘을 내는 성품이다. 술 취함은 술로 인하여 이성과 행동을 잃어버리는 행동이다. 방탕함은 술과 여자에 빠지고 난봉을 부리는 행위를 말한다. 이와 같이 행동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하였으므로 이러한 성품과 행위를 바꾸지 아니하고 계속적으로 지속하는 사람들이 환난에 남겨지는 것이다.

 

우리가 신앙고백으로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 그리스도께서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한다. 그리스도의 공중강림은 죄와 악에 대한 심판이다. 따라서 심판을 받지않을 옳은 행실의 성도들에게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대환난]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심판]할 때라”(계3:10)고 약속하신 성도들을 공중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휴거다.

 

심판주 어린양의 공중강림이 있어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이 있게 된다. 따라서 부활복음은 그리스도의 강림에 있다. 그리고 죽은 자들이 부활하고 즉시로 살아남은 자들 중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옳은 행실의 삶을 산 자만이 구름위로 끌어올려서 공중에서 어린양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 기쁨으로 공중에서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사건이 휴거며, 이 사건은 청함(Invited)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택함(Chosen)을 받은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특별 은총이 휴거사건이다.(마22:14, 25:10-12,계19:9)

 

휴거사상은 부활복음이요 신실한 신자들만이 소망하는 영광이다. 주의 강림과 부활과 휴거는 떼어놓을 수 없는 동시 사건이다. 이는 주님께서 상받을 자와 벌받을 자를 구별하는 공중강림이 곧 심판의 기준이라고 성경은 증거한다. “너희로 고난[주는]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대환난으로 갚으시고 [고난주는 자들로 인하여]핍받 당하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공중에서 주를 영접함]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공평한 정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성경을 오용하]는 자들에게 형벌[환난]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유황으로 타는 불 못]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1:6~9)

 

그리스도의 공중강림은 옳은 행실의 삶을 살다가 죽은 자들에게는 부활되는 영광으로 상을 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옳은 행실의 삶을 살아온 살아있는 거룩한 성도들 게는 휴거라는 영광의 상을 주실 것이다. 따라서 같은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로 영접하고 믿는 신자들이 다른 교회나 다른 교회 신자들을 비난하고, 박해하고, 핍박하며, 아픔을 준 자들에게는 대환난에 남겨서 환난을 당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평하신 심판의 표[기준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심판주의 공중강림 사건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 개인이나, 교회라는 단체,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며 인도하는 지도자들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인가?

 

대환난에 남겨져야 되는 심판을 깨닫고 같은 그리스도의 사람이나 교회를 비방하거나 폄론하거나 박해하면 안 된다. 예수님께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는데도 이웃을 향하여 욕하고 비방하고 박해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계명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남을 판단하는 어리석음을 벗어버리고 대환난이란 심판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바울은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1:5)라고 하면서,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Glorification)을 기다린다.”(롬8:12)하였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너희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고 하였다. 이처럼 휴거는 육신이 죽지않고 살아있는 그대로 눈 깜짝할 순간에 공중으로 끌리어 올라가는 것이 휴거사건이다.

 

이 단원에서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기독교의 핵심사상은 부활이다. 그런데 모든 믿는 자들이 부활에 관하여는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데, 그것이 곧 믿기만 하면 다 부활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도 부활의 주인 되시는 그리스도의 강림에 관해서는 소극적이다. 어떤 지도자는 성경에 ‘휴거’라는 단어가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성경 어디에 휴거된다는 말씀이 있느냐?”라고 물어온 일이 있었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휴거문제를 거론하면 잘못된 신앙인으로 취급하려는 부류들이 많은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성경에서 교훈하는 진리는 모든 자가 다 휴거되기를 원하신다는 바울의 교훈대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 [예수]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이 구

    속을 기다리느니라”(롬8:23) 하였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

    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 하였다.

 

③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나도] 어찌하

    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휴거]에 이르려 하노라”(빌3:10-11)고 자신은 휴거에 미친 사람이라고 말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바램이요, 예수님의 소원이다. 그러므로 믿는 신자라면 부활되고 휴거되려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해야 된다는 교훈이다.


출처 : churchofpraise
글쓴이 : 장죠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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