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
“이 일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큰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7:9~)
지난 시간에 환난에서 사명을 담당할 지파에 관하여서 상고하였다. 그때가 되면 그들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박해에서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사역자들의 인도함을 받으며 구원받아야 될 사람들은 자신의 고집과 아집, 그리고 내가 안다는 지식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고 그리스도의 사역을 훼방하다가 대 환난에 남겨진 자들이다.
그들이 주의 사역을 직접적으로 훼방한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훼방해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상처를 입혔던 자들이다. 같은 하나님을 섬기며 예수를 믿는 신자들에게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상처를 주었던 자들이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행위를 찾지 못한 부류에 속한다. 이들은 모두가 행위가 온전치 못해서 세마포 옷을 입지 못하고 벌거벗은 자들이다. 이제 재림 후에 있을 박해를 보고서야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게 될 것이다.
오늘은 하나님의 경륜이 다 차서 심판주가 오심을 알지 못하고 준비하지 않았다가 대환난에 남아서 죽임을 당하는 자들에 관한 내용이다. 대개는 예수를 믿으면 다 환난을 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주께서는 그렇게 말하시지 않으셨다. 9절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환난에서 죽임을 당고 흰옷이 입혀졌다고 한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믿는 사람)을 보겠느냐?”(눅18:8)
인자가 올 때와 믿음을 보겠느냐는 중간에 접속사격으로 ‘세상에서’란 단어의 의미를 생각해야 된다. 세상에서란 뜻은 하늘 위에와 땅 아래를 제외하고 마귀가 주관하고 있는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류를 말한다. 천국과 음부에서도 지상의 환난을 알며, 마귀들도 주님의 심판을 알고 그들대로 준비를 한다. 그런데 땅에 있는 인간들만은 주의 심판 때를 모르고 있다는 경고다. 왜 모를까?
주님의 재림을 기쁨으로 맞이해야 할 믿는 성도들과 가르치는 목자들이 벌거벗은 탓으로 준비는 안하고 오히려 반대하기 때문이다. 주의 재림은 심판에 있음을 모르기 때문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벌거벗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이런 사람들을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셨고, 벌거벗은 자들에게 “어느 사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하신 말씀하셨다.
이러한 사람들이 주님이 오신 후에 대환난이란 심판을 받게 되는 숫자를 사람이 능히 셀 수 없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때서야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고 666표를 받지 않으려고 피해야 된다. 그러나 결국에는 죽임을 당하고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될 사람들에게 대하여 주시는 말씀이 9~17절이다.
얼마나 많은가?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7:9)
앞에서는 한정된 숫자에 대하여 말하고, 여기에서는 능히 셀 수 없는 무한정의 숫자를 무리라 하였다. 이 계수(計數)는 인간편의 능력이고 하나님편의 능력은 아니다. 하나님은 능히 세시고 또 하나님은 정하신 숫자를 알고 계신다는 뜻이다. 계시록 5장11절에서 “내가 또 보니 만만이요 천천이라”했듯이 인간은 셀 수 없지만 천사들을 세시는 하나님은 그 숫자를 셀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계5:9)
이 말씀과 9절의 말씀과 비교하면 예수께서 공중강림하시는 것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구상에 남아서 대환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의 피라고 한다. 여기에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666표를 받지 않으므로 인하여 육신의 죽임을 당한다. 그렇다면 666표를 받는 숫자와 합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는가? 각 나라는 입법, 사법, 행정부를 갖춘 국가들이다. 족속은 종족을 말하게 된다. 백성은 그날 국민을 말한다. 방언은 같은 나라 안에서 서로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부족을 말한다.
이런 원인은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게 될 “검과 흉년과 사망과 짐승으로 죽인다”(계6:8) 하였으므로 핵무기와 살상화학무기 사용까지 모함된다.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공중에서 이루어지기 위해서 부활/휴거 후에 일어날 사건이다. 그때는 모든 나라가 영토와 주권까지 세계정부에 넘겨주게 된다(CFR 참조). 그리고 모든 국민은 그들에게 노예가 되고 그들에게 혹사를 당하다가 죽임을 당한 자들이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지 않은 숫자까지 포함시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7:9)
인간의 능력으로 셀 수 없는 흰 옷을 입은 자들은 불신자들이 아니라 믿는 자라는 결론이다. 그리고 예수를 믿으면 대 환난을 당하지 않는다고 가르치고 배워서 그런 줄로만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 환난에서 죽임을 당하고 인간의 능력으로 셀 수 없는 자들은 예수를 믿었으나 벌거벗었던 숫자라는 사실을 숨기려하지 말아야 된다.
여기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인가? 주님의 이름으로 부르심을 받은 목자라면 요한에게 주신 계시록을 많이 읽어서 양 무리들에게 올바로 가르치라는 것이다. 그리하지 않으면 복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요한에게 계시를 주셨기 때문이다.
또한 성도들도 자신이 섬기는 목자가 ‘보라’는 요한계시록을 보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속히 될 일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도 확인하고 목자가 속히 될 일을 가르쳐주도록 유도해야 된다. 그렇지만 바른 해석인가도 확인하고 바르지 않을 때는 바르게 가르치도록 해야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성도인 자신도 복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
흰 옷을 입은 자는 주님의 재림이전부터 입고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다. 사데 교회의 흰 옷을 입은 몇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행위가 있었기에 모두 휴거되었다. 그러면 이 숫자는 어떻게 흰 옷이 입혀졌는가? 14절에서 답을 주셨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이 흰 옷을 입지 못하고 벌거벗은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알 것이다. 이런 숫자를 인간의 능력으로 셀 수 없다면 주님께서 누구에게 책임을 물으시겠는가? 목자들이다.
그러므로 잘못 가르친 목자는 회개하고 바로 가르쳐야 한다. 인간의 능력으로 셀 수 없는 무리들이 대 환난에 남아서 죽임을 당해야 된다. 또한 의지가 약해서 666표를 받는 자들은 흰옷 을 입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저들의 영혼이 영원한 유황불 못으로 떨어질 때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그의 피 값을 찾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잘못 가르친 목자는 회개해야 한다. 왜 그렇게 가르쳤는가?
숫자에만 집착하고 질적 양육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에게 예수께서 ‘독사의 자식들’이라 하였고, 또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지옥자식이 되게한다’ 했듯이 오늘날 그런 목자가 얼마나 많은가? 그때에 죽임을 당하는 자들의 손에는 종려가지를 들고 있다.
종려가지는 예수께서 예루살렘 입성 때를 상기시키고 있다. 입성 때 왕으로서의 승리를 보여준 것처럼, 이들도 죽임을 당하기는 했으나 예수를 저버리지 않았다는 믿음의 승리를 표시하는 것이다. 끝까지 666표를 받지 아니하고 예수의 이름을 굳게 붙잡았다는 뜻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냐 적그리스도냐? 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저버리지 아니하고 승리한 사람들이다.
구원은 예수의 주권이다
승리자들은 하나님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경배한다. 그들의 경배는 죽임을 당하기 이전의 생각을 바꾸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들은 진정으로 예수를 갈망하지 않은 탓으로 구속을 얻지 못하고 대 환난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이제 구원받고 보니 인간인 목사가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만이 자신의 구원자임을 고백하는 내용이 10절이다.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7:10)
이 많은 영혼들의 외침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리고 그들의 외침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몇 가지로 분류해서 상고하면, 첫째는 자신들이 신뢰했던 인간인 목사가 구원자가 아님을 고백하는 것이다. 둘째는 자신의 의지로서 구원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와 예수의 보혈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첫째는 목사를 신뢰했다는 말은 목사는 어디까지나 인간일 뿐인데도 미련하게도 목사의 말만 들은 것은 목사를 예수이상으로 섬겼다는 뜻이다. 주님께서 이런 자들을 가짜 신자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가짜 신자들은 옳고 옳지 않음도 분별하지 못하고 목사의 지시대로 맹목적으로 따른 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흰 세마포를 입지 못했다가 대 환난을 통해서 목사의 가르침이 잘못임을 깨닫고 돌아섰기 때문에 죽임을 당할 때 흰 옷이 입혀지면서 부끄러운 구원이라도 받은 것에 감사해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경배한다는 말이다.
둘째는 자신의 의지에 관해서는 사람들은 세상에 몇 만년 살 것처럼 쌓아두려 했었다. 그렇게 한 것은 자신의 의지로 예수보다 자신을 더 위했기 때문이었다. 이 뜻은 성경의 말씀에서 복 받는 신자가 되려면 ‘속히 될 일에 관해서 많이 듣고 행하라’ 하였는데도 듣지도 아니하고 행하지도 아니한 것은 자신의 의지 탓이라는 말이다. 이들은 무형으로 목사를 우상화 시켰고, 자신을 우상화했다는 것이다. 우상화했다는 말은 예수보다 목사나 자신을 더 신뢰했다는 것이다. 이런 잘못을 늦게 깨닫고 돌아섰기 때문에 부끄러운 구원을 받을 때 어린양의 피로서 자기 영을 깨끗하게 씻어주면서 흰 옷이 입혀주신 일에 대한 감사함을 경배하는 장면이다.
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져버리지 않으려고 죽임을 당했다. 저들은 자연적이거나 어떠한 사고로 죽은 것이 아니다. 마귀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고 당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죽임일지도 하나님은 저들의 영혼을 받아주신다. 왜 그런가? 예수께서도 죽임을 당하고 피를 흘리셨다. 이 피는 생명을 살리는 피였기 때문에 이렇게 죽임을 당하는 피는 절대로 죽지 않고 산다는 것이다.
살리심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의 피 값에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끄러운 구원은 보좌에 앉아 계시는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진 것을 시인하는 외침이다. 이 외침은 심판을 재촉하는 외침이요 이 외침은 장막절인 천년왕국을 이루시는 성부와 성자에게 경배와 찬양드리는 영혼들의 외침이다.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7:11)
5장13절에서는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바다에서나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경배드렸다. 그런데 여기서는 한정된 무리들만이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을 보여준다. 천사들만으로 제한하여 경배하는 것은 구원받은 자들을 담당했던 천사들이기 때문에 자기들의 임무를 완수했다고 보고하는 찬양이다.
장로들과 네 생물들은 경배하는 대상에서 제외되고 오직 천사들만이 주체가 되는 것은 그들의 영혼을 구원받도록 도와주었던 천사들이기 때문이다. 죽임을 당한 자들의 숫자가 인간의 능력으로 셀 수 없는 무리라면, 경배행사에 참여하는 천사들은 죽은 자들의 몇 배가 될 것이다. 이토록 많은 수의 천사들이 드리는 경배를 살펴보면 인간을 구원하시는 권능이 하나님과 어린양에게만 있음을 찬양한다.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 지로다, 아멘.(7:12)
대 환난에서 피 흘리고 죽임을 당하고 영혼들의 구원에 관한 경배에 셀 수 없는 영혼들의 숫자보다 많은 천사들이 드리는 경배를 우리도 배우고 그렇게 경배하라는 교훈이다. 우리들이 땅에서 이러한 경배에 인색하면 안 된다.
처음 아멘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곧 처음이요 나중이라는 첫 번째 아멘을 말한다. 이 뜻은 창조로부터 모든 것이 진행됨을 말한다.
찬송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이다. 하나님은 찬양의 보좌에 앉으시고 당신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로부터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시편기자는 여호와 하나님께 찬양드려야 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찬송으로 즐거이 부르는 중에 임재하고, 끝나면 올라가신다’하였기 때문에 찬송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영광은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있을 뿐이지 그 외 어떤 피조물에게도 찬양을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다. 그런데 이들은 땅에 있을 때 인간을 높이고 목사를 찬양하는 일이 얼마나 잘못인가를 깨닫도록 천사들의 교훈을 받으라는 것이다.
지혜는 인간의 머리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다. 사탄의 무리들을 멸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설명하신다. 창세부터 종말까지 볼 때 사탄을 박멸하기 위해 하나님은 어떻게 계획하시고 역사 하셨는지는 하늘나라에 가야만이 알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혜를 찬양함이다.
감사는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는 하나님의 섭리를 전부 이해하지 못했지만 모든 것이 끝나고 하늘나라에 가서보면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으며 그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그래서 저들이 진정한 감사를 드리게 되는 것을 천사들이 보여준다. 사실 대환난에서 구원받은 영혼들이 그랬다. 땅에 있을 때는 하나님보다 인간에게 감사했지만 인간들이 자기들을 구원시킨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어린양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음을 교훈한다.
존귀는 진정으로 감사한 마음이 있을 때 하나님이 존귀하심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분의 존귀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분별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보좌위에 찬란한 광채로 싸여있는 하나님을 볼 때 얼마나 존귀한가를 말한다.
능력은 모든 것을 만드시고 움직이는 일은 하나님께 있을 뿐이지 어느 피조물에게도 없다. 물론 사탄도 능력을 행사하고 힘이 있다. 그러나 그 능력과 힘은 하나님의 능력과 힘에는 비교가 될 수 없다. 생명의 구원함이 하나님의 능력과 어린양이신 예수께서 흘려준 피 외에는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 아멘은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는 마지막 아멘이다. 이 뜻은 마지막까지 하나님과 어린양이 끝마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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